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악법도 법이다 1권(13화)
제5장 레카 아카데미(3)


곧 알론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 소년의 뒤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알론은 소년의 걸음걸이에서 그가 품위 높은 귀족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곧 그는 소년이 복도를 거니는 것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다른 교사들도 소년이 복도를 거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미 소년이 지나친 교실만 세 개가 넘으니, 아마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교사도 문을 열고 나와 그를 꾸짖지 않았다.
더군다나 소년은 몸이 아프거나, 생리현상이 급해 보이지도 않았다.
한참을 걷던 소년이 어느새 아카데미의 내부에 위치해 있는 한 수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수련장 안으로 들어가자 알론도 곧 그를 따라 수련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으로 슬그머니 수련장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가, 가만두지 않겠다. 쟉셀.”
“무엇을 말이지.”
히죽히죽.
수련장 안에는 알론이 쫓고 있던 쟉셀이라는 소년 말고도 다른 한 소년이 뒤에 한 소녀를 보호하듯 하면서 목검을 굳게 쥐고 있었다.
알론은 이 모습을 보고, 그냥 학생들의 대련이라고 생각하고는 나서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았다.
“무엇을 말이냐고! 너 때문에 민체스터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아!?”
“어떤 일을 겪었는데?”
소년의 성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쟉셀은 계속하여 히죽히죽 웃었다. 그의 태연한 행동에 민체스터라는 여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흐, 흐흑.”
“괜찮아. 내가 저 녀석을 짓밟아 줄게.”
“프로드…… 부탁해…….”
보통 남자가 여자 때문에 누군가를 짓밟으려 한다면 여자는 그를 말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자는 쟉셀이란 소년에게 가진 원한이 큰 듯 그런 반응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부추기는 듯싶었다.
“프로드. 네가 나를 짓밟겠다고? 가소롭구나.”
“닥쳐!”
어느새 히죽히죽 웃어 대던 쟉셀의 얼굴도 굳어져 가소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전형적인 귀족이 평민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프로드는 아카데미에서 손에 꼽히는 사람이었다. 귀족 중에서는 쟉셀이 그 뛰어남을 자랑한다면 평민 중에서는 프로드가 최고의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착각하지 마라. 프로드. 이제까지 내가 너를 건드리지 않은 것은 귀찮았기 때문이다.”
“귀찮았다고? 흥! 내가 두려웠기 때문이겠지.”
“크큭, 그래 그렇게 생각해라. 그보다 알고 있겠지? 나와 대련하려면 목숨을 걸어라.”
곧 쟉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어린 소년이 내뱉은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고작 대련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라니? 알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고, 곧 쟉셀이란 소년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카네시스!”
“카네시스!”
둘이 기사로서의 예의를 차려 보이고 곧 서로를 경계하였다. 그리고 곧 가장 먼저 프로드가 공격하기 위해 목검을 휘둘렀다.
‘오, 오러……!?’
알론은 프로드란 소년의 목검에서 생겨나는 하얀 빛을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15살이나 됐을 법한 소년이 미세하지만 오러를 쓴다니,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 오러가 담긴 목검에도 불구하고 쟉셀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검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그러고는 그대로 자신의 검으로 소년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퍽.
“윽!”
소년이 옆구리를 가격하는 통증으로 인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쟉셀의 목검이 소년의 볼을 때렸다.
콰직.
“커, 컥!”
목검으로 얼굴을 때리면 뼈가 부러지거나 치아가 나가는 건 당연한 일. 프로드의 얼굴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그, 그만둬!”
민체스터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프로드가 바닥에 구르기 되자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하지만 쟉셀은 멈추지 않고 프로드를 가격하기 시작했고, 이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하에 알론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만두지!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의 폭력은 허용할 수 없다!”
“황궁에서 사람이 내려온다더니, 당신이었나 보군요. 누군가 내 뒤를 밟는다 했더니. 그리고 이건 폭력이 아닙니다. 대련일 뿐입니다.”
빡!
“컥!”
쟉셀이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히죽히죽 웃으며 또다시 프로드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고, 또다시 그의 매질이 이어졌다.
결국 이 모습을 참을 수 없었던 알론이 빠르게 다가가 쟉셀의 팔을 낚아챘다.
“더 이상의 폭력은 카네시스 제국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제국의 법에 대련 중 누군가를 부상 입힌다고 해서 처벌 받는다는 내용도 있던가요? 전 단지 대련 중에 실수로 프로드를 이렇듯 때리는 것뿐입니다.”
팔이 잡혔던 쟉셀이 자신의 팔을 풀어 내리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였다. 그의 웃음에 알론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아, 재미없군. 이제 가야겠어.”
알론의 표정이 굳어지자, 쟉셀이 일이 귀찮게 되는 것을 피하고 싶은 듯 자리를 피하기 위해 몸을 수련장의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던 쟉셀이 몸을 돌렸다.
“그것보다 제가 누구인지는 알고 계시나요? 전 쟉셀 론 바로틴이라고 합니다.”
소년이 마치 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알론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었기에 단지 귀족가의 아들이라고만 생각했고, 곧 다시 알론에게 피식하고 웃어 보인 쟉셀이 수련장을 빠져나갔다.
“제길!”
쟉셀이 사라지고, 바닥에 누워 입안 가득 피를 흘리던 프로드라는 소년이 분한 듯 주먹으로 바닥을 강하게 때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애초에 이런 무모한, 대련을 시작한 것은 프로드라는 소년이었기 때문에 알론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련장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아카데미 내에 위치해 있는 양호실로 몸을 옮겼다. 프로드가 무거운 몸을 침대에 올렸고, 민체스터는 그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사실 쟉셀이 얼마 전, 민체스터에게 큰 치욕감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치욕감을 주었다고?”
“예. 사실 민체스터의 어머니는 길거리의 여자이고, 아버지는 낮은 직위를 가지고 있는 귀족이십니다.”
알론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단번에 프로드와 민체스터가 교제중인 아카데미 내의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녀석이 터무니없는 이유를 걸고넘어지며 1주일 전부터 민체스터의 뒤를 조사하고 다니더군요.”
“터무니없는 이유?”
“네. 큭, 단지 복도에서 몸이 부딪쳤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녀석은 민체스터의 뒤를 조사하고는 며칠이 되지 않아, 온 학교의 칠판에 낙서를 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녀석일 겁니다.”
프로드가 흘끗하고 민체스터의 눈치를 살피며 낙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고, 알론도 대강 낙서의 내용을 알아차렸기에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만약 정말 녀석이 그런 짓을 했다면 아카데미의 교사들에게 말하면 되지 않았을까? 굳이 네가 나선 게 이해가 안 되는군.”
“교사들이요? 쟉셀은 이곳의 교장인 카르 선생님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녀석입니다. 혹시…… 녀석에 대해서 모르시는 겁니까?”
끄덕끄덕.
프로드의 설마 하는 눈빛에 알론이 주춤주춤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곧 프로드의 눈에서 한심스러움이 생겨나는 듯하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쟉셀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가문의 차기 가주입니다. 헌데 그 점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손에 꼽히는 가문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식의 잘못은 인정하는 게 도리이니까요. 하지만 쟉셀의 아버지는 쟉론이라는 사람으로 기사로서 검을 배운 사람이기도 하였거니와 또 그 치졸함에 모든 이들이 몸을 떨 정도입니다. 쟉셀이 그 부분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만만치 않죠…… 더군다나 소문으로는 교장선생님인 카르 선생님이 그의 아버지와 꽤 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교장선생님은 쟉셀이 학교 내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든 외부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죠.”
“으음…….”
프로드의 이야기를 들은 알론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프로드의 말을 대강 들어 보면 쟉셀이 이미 소문이 나 있는 만큼 나 있는 듯싶었지만 뚜렷이 어떻게 사건을 벌이는지에 대해서는 소문이 나 있지 않았다. 아마 그 부분은 정말 교장인 카르가 연류 되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었다.
프로드에게 쟉셀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더 수집한 알론이 곧 몸을 일으켰다. 이제 보니 꽤 많은 시간을 이곳에 있었다. 분명 카일이 자신을 찾고 있을 터였다.
양호실에서 빠져나온 그는 곧바로 카일이 지루하게 수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방금 그 교실로 향했고, 역시나 카일이 양 팔짱을 낀 채 지루함 가득한 눈으로 앞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꽤 오래 걸렸군요.”
“아, 네.”
어느새 수업 시간인 1시간은 다 끝나 가고 있었고, 곧 마법 스피커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수업종이 치고, 알론은 카일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이곳에 온 이유가…… 쟉셀이란 소년 때문입니까?”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쟉셀에 대해 말하는 그로 인해 카일이 놀라는 듯싶더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곧 그 둘에게 아카데미 내에서 쉴 수 있게 친절히 배급된 방으로 카일이 그를 데려왔다.
“뭐 어차피 말하려 했던 사실이니, 상관없겠죠. 알론 경 말씀처럼 쟉셀이란 소년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 온 사실이 맞습니다. 뭐 녀석에 대해 알고 있으니, 어떤 녀석인지는 대강 알고 있겠지요.”
“네.”
알론이 고개를 두어 번 작게 끄덕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쟉셀이란 소년을 잡아들이는 것입니다. 뭐 법적으로 녀석을 우리가 어찌할 방도는 없겠지만 최소한 어린 녀석의 볼기짝을 때려 주기는 해야겠지요. 그러니 어린 소년이라고 방심하지 말고 최대한 녀석에게 벌을 주는 데에 주력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최대한 주력한다라…….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카일의 말에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던 알론이 곧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힘을 합쳐 녀석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거나 하면 되는 겁니까?”
“……착각하지 마시죠.”
“네?”
그의 말과 함께 곧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알론이 되물었다.
“알론 경과 나는 이곳에 함께 온 것일 뿐이지, 움직이는 것은 따로따로입니다. 알론 경이 정보 수집을 하건, 아니면 녀석을 때려잡건 저는 상관하지 않고 제 방식대로 할 거고, 알론 경은 자기 방식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
“…….”
그의 말에 알론이 입을 열지 못했다. 이제껏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투에서 대강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일단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더군다나, 사실 알론의 성격도 팀을 이뤄 일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이 더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나마 말이 통하니 다행이군요. 결론적으로 우리는 각자 알아서 녀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움직이면 되는 겁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카일의 좋지 못한 반응에 알론도 좋은 반응으로 대꾸할 필요는 없었기에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카일이 방을 나섰고, 알론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까탈스럽군. 하지만 괜히 서로의 방식에 의견 충돌을 할 바에는 이게 나은 건가?”
알론의 사건 해결 방식은 조금 남들이 보면 얼굴을 찌푸릴 만했다. 때문에 그 부분으로 인해 충돌을 하느니 차라리 이러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 났다.
“그것보다 카르 교장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네?”
알론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아차 했다. 그러고 보니 쟉셀과 이곳의 교장인 카르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카일의 싸늘한 반응에 깜빡하고 있었다.
때문에 ‘말할까’ 하던 알론이 곧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왠지 모르게 카르 교장에 대해서는 카일에게 말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대에 누운 알론이 자신도 모르게 창가로 빛이 스며들어 오는 방에서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