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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14화)
제6장 그림자에 가려진 비리(1)
이튿날부터 알론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말이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것이지. 딱히 다른 이들에게 눈에 띌 만한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엄연히 다른 이들에게 자신은 아카데미의 현황과 학생들의 만족도 그 외 등등을 체크하러 온 장학사로 보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응?”
지루한 수업과정을 또다시 반복하여 본 알론이 화장실을 가던 중 자신의 앞에 보이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목격한 모습은, 귀족으로 보이는 여럿의 남자 아이들이 평민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입은 옷을 억지로 벗기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야야, 가자.”
하지만 이내 아이들은 알론이 지켜보는 모습을 인식한 듯 후다닥 그곳에서 벗어났다. 알론이 곧 주섬주섬 옷을 추스른 뒤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키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괜찮니?”
“아…… 네. 괜찮아요. 익숙하니까요.”
알론은 대충 그가 살던 차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집단 따돌림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물어봤다. 그의 물음에 소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익숙하다고? 이렇게 친구들이 네 옷을 벗기거나 하는 게 익숙하단 말야?”
하지만 곧 알론이 무언가 의구심이 생긴 듯 막 사라지려는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아무리 집단 따돌림이 행해진다고 하더라도 옷을 막 벗기는 행위는 교사들에게 지적을 받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알론은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교사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 믿고, 방금 도망치듯 사라진 아이들을 붙잡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한두 번이 아닌, 소년이 익숙해질 정도로 이런 일을 당해 왔다면 그간 교사들이 제지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잘 생각해 보거나 하면, 간혹 자신이 지나쳐 온 곳에 여러 귀족 아이들이 모여 평민 아이들을 건드리는 모습을 본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에 교사들은 대부분이 지나쳐 간 걸로 기억이 되었다.
“네. 익숙해요…… 어차피 전 평민밖에 안 되는 녀석이니까요…….”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가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알론이 말했다.
“나와 점심이나 같이 하겠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저같이 괴롭힘을 당하는 애들은 평민이고, 괴롭히는 아이들은 귀족이니까요. 이게 권력의 차이 아니겠어요?”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년은 꽤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알론은 소년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소년답지 않게 진지하자 입가에 살짝 웃음을 띠었다.
“권력의 차이라…… 그래. 평민과 귀족이 같은 곳에 나란히 설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딱 한 가지 평민이나 귀족이 같은 곳에 나란히 설 수 있는 것이 있긴 하지.”
“그게 뭐죠?”
입안에 음식을 밀어 넣으며 말하던 소년이 알론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소년의 관심에 알론이 피식하고 웃으며 조용하면서도 박력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바로 법이지.”
“법이요?”
“그래. 법은 귀족이든 평민이든 차별 없이 사용되는 것이니까.”
“에이이이…….”
그의 말에 소년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괜히 기대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론이 방금 한 말처럼 법은 본래는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권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금은보화 몇 푼에 누군가의 잘잘못을 덮어 주기도 하며, 또 누군가의 압박으로 인해 쉽사리 법을 사용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 때문에 아무리 법이 공정하다 한들, 평민인 자신에게는 별 필요성이 없다고 소년은 느꼈다.
“후후. 네가 법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이 만든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거야. 물론 남들이 법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법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이 헤쳐 나가야 할 하나의 길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
알론이 웃으며 말하자 소년이 접시의 음식을 포크로 깨작깨작 건드렸다.
알론의 말처럼 법을 사용하기 위함에도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다. 잘 생각해 보면 이제껏 자신이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괴롭히던 귀족들에게 덤벼들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실력 또한 그렇게 주눅 들 만큼 약해 빠지지 않았다. 충분히 귀족들에게 주먹 한 번씩은 먹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때문에 싸움이 난다고 하면 자신은 얼마든지 타당한 이유를 말할 수 있었고, 또 자신에게는 카네시스 제국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억울함을 토해 낼 권리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그 길을 헤쳐 나가면…… 그 평등한 법이라는 것 앞에 설 수 있을까요?”
“네 의지만 있다면.”
끄덕끄덕.
알론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소년의 물음에 답해 주었다. 그와 함께 소년이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장학사 아저씨!”
“으, 음? 아저씨? 난 아저씨가 아닌데…….”
알론이 자신을 아저씨라 칭한 소년 때문에 피식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곧 알론이 뭔가 생각이 난 듯 다시 소년에게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름이 뭐야?”
“기온. 기온이라고 해요.”
“흐음, 기온…… 그렇구나.”
알론이 자신을 기온이라 소개하고 웃어 보인 소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에 주입시켰다, 그리고 곧 소년이 급한 일이 생각났다며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식당을 빠져나갔고, 소년이 나선 자리를 보며 입가에 살랑거리는 미소를 지은 알론이 혼자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한편, 이 모습을 지켜보는 소년이 한 명 있었다. 소년은 갈색 머리에 어린아이답지 않은 조각 같은 귀족 고유의 뉘앙스를 풍기는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바로 쟉셀이었다.
쟉셀은 알론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연히 레카 아카데미에도 학생들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가 존재하였다. 이 아카데미의 건물은 총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중 하나의 건물은 귀족들이 머무는 건물로 평민들이 머무는 건물과는 그 차이가 확연히 났다.
현재 점심식사를 마친 대부분의 학생들은 산책을 하거나 쉬기 위해 자신에게 배정되어 있는 방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었다.
“후후.”
“무엇이 재미있어서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한 명의 소년과 소녀가 탁자에 마주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고, 곧 소년이 웃자 소녀가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아아. 아니야, 이르니안, 그냥 재밌는 장난감이 생겨서.”
“재밌는 장난감? 이번에는 무슨 장난감인데 그래. 쟉셀?”
소년의 정체는 다름 아닌, 쟉셀이었다. 장난감이라는 말에 소녀가 무언가 기대가 되는 어조로 물었다.
“아주아주 재밌는 장난감이지. 후후. 바로 황궁에서 내려온 장학사 녀석들.”
“……장학사들이면 그 기사 분들을 말하는 거야? 위험해. 쟉셀. 그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지는 마.”
소녀가 곧 쟉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놀랐다. 아무리 쟉셀이 이름 높은 가문의 귀족이라고 할지라도 괜히 황궁 측 사람들을 건드려서 좋을 것은 없었다.
“걱정하지 마, 이르니안. 난 그들이 내 장난감이 되었다고 말할 뿐이야. 난 녀석들에겐 털끝 하나 손대지 않을 거야. 대신 한 장학사 녀석의 얼굴을 손 하나 대지 않고 찡그러트릴 방법을 알아냈거든.”
“그게 무슨…….”
끼이익.
소녀가 그의 알 수 없는 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며 물으려는 때였다. 쟉셀이 머물고 있는 기숙사의 방이라고 볼 수도 없는 방의 문이 열리며 귀족 소년 세 명이 들어왔다.
“왔구나.”
“으, 으응. 무슨 일이야. 쟉셀.”
그의 방으로 들어온 소년 세 명은 마치 겁에 질린 듯 축 늘어진 어깨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별일 아니야. 단지 너희들이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해 줘야 할 일?”
“그래. 너희들 기온이라는 평민 녀석 알지?”
“기온이라면…….”
기온이라는 말에 소년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맞췄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매일같이 기온을 괴롭히는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녀석을 괴롭혀 주도록 해. 크큭, 아마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게 아주 재미있는 반응을 보일 거야.”
“알았어. 그, 그러도록 할게. 그것보다 더 시킬 일은 없는 거지?”
“그래. 나가 보도록 해.”
쟉셀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는 듯 곧 소년 셋이 재빠르게 그의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기온이라면…… 저 셋이서 매일 괴롭히는 그 평민이잖아. 근데 왜 더 괴롭히라고 부추기는 거야?”
소녀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별거 아냐. 어줍잖은 장학사 한 녀석이 괜히 꿈을 키워 주더군. 아마 내 생각으로는 이번엔 기온이 평소의 반응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아서.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질 일은…… 생각할수록 즐겁군.”
이미 소년 쟉셀은 기온의 반응과 또 그 후에 생길 일들을 예측한 듯 잔인하면서도 징그러운 미소를 피웠다.
그의 웃음에서 소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비록 자신이 쟉셀이 하려는 일을 알지 못하였고, 또 지금 그가 예측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쟉셀이 남을 해하기 위해 생각하는 부분은 자신도 가끔 겁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은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의 곁에서 이렇듯 있는 것이었다.
‘쟉셀…….’
소녀가 서글픈 표정으로 쟉셀을 바라봤다.
콱.
“악!”
쟉셀에게 명령(?)을 받은 귀족 소년 셋이 기온의 기숙사 앞에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가 오자 그를 벽에 몰아붙였다.
“흐흐, 자, 오늘은 어떻게 괴롭혀 줄까.”
소년들 중에서 덩치가 큰 귀족이 요상한 웃음을 지으며 기온을 압박했다. 그에 기온이 겁을 먹은 표정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녀석들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무언가 다급해 보이는 표정. 때문에 평소보다 그 무서움은 자신에게 있어 배가 되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세 명의 소년들에게 꼼짝없이 괴롭힘을 당하려던 때에 기온의 머릿속으로 점심쯤 들었던, 한 장학사가 해 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법.
법 하나면 무엇이든지 해결이 된다. 또 그 법을 자신이 사용하기에 앞서 생기는 거친 길은 자신이 어떻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달렸다.
그 말은 아직 어린 소년인 자신에게 꽤 크게 와 닿은 말이었다. 때문에 기온이 용기를 내어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한 소년의 팔을 손으로 쳐 냈다.
“그만둬! 이건 아카데미의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이야!”
“뭐? 규칙? 푸하하하! 이 평민이 지금 뭐라는 거야.”
이제까지 이런 행동을 한 번도 취한 적이 없었던 겁쟁이 평민 기온이 갑자기 손을 쳐 내며 말하자 소년들이 당황하는 듯싶더니, 이내 웃어 젖혔다.
“규칙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인 거야. 그 사실을 직시해야지, 기온!”
중간에 있는 귀족 소년이 그의 턱을 손으로 붙잡고 설교를 하듯 말했다. 하지만 곧 기온이 자신의 손을 쳐 내며 씩씩거리며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자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규칙에는 그런 건 없다고 했어!”
“뭐? 이게!”
수우웅.
퍽.
결국 평민의 발악이 참을 수 없었던 듯 한 소년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그리고 곧 주위의 다른 소년들도 기온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들이 이 밤중에 기온을 괴롭힌 것은 쟉셀의 의도였지만, 이제는 어느새 이 기고만장한 녀석의 행동으로 인해 그런 것은 잊고 녀석을 패고 싶어졌다.
그렇게 셋이서 기온을 때리던 중 갑자기 기온이 한 소년을 다리를 붙잡고 들어 올려 그대로 넘어뜨려 버렸다.
쿵.
“아얏!”
“이, 이게!”
수우웅.
자신의 친구가 넘어지자 보고 있을 수 없었던 한 귀족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 주먹을 피한 기온이 소년의 팔을 꽉 깨물었다.
“아아악!”
“씨익씨익! 분명 너희들이 먼저 때렸어!”
폭력이 정당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폭력에서 더욱 그 죄를 먹고 들어가는 것은 먼저 공격을 가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기온은 그대로 셋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고, 아닌 밤중에 소년 넷이서 물어뜯거나, 할퀴며 싸움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