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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15화)
제6장 그림자에 가려진 비리(2)
“별로 얻는 게 없군. 쟉셀이란 녀석이 요즘 일을 터뜨리는 것도 아니니…….”
알론은 요 며칠 사이에 허탕만 치자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인도 아닌 어린 소년의 정보를 얻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비밀리에 정보를 얻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학생들에게 다가가기도 꺼림칙했다.
때문에 교사들에게 물어볼까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분명 자신이 교사들에게 쟉셀에 대해 철저히 물어온다면 교사들은 대충 알론과 카일이 이곳에 온 목적을 눈치를 챌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힘이 들어질뿐더러, 또 쟉셀의 아버지 쟉론과 친분이 있다고 소문이 난 카르 교장이 이 사실을 쟉셀에게 귀띔해 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것보다…… 이곳 교사들이나, 교장의 행동이 수상해…….’
쟉셀에 대한 부분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알론이 곧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번에 하는 생각은 레카 아카데미의 교사들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무언가 교사들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평민들이 귀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웬만하면 아무런 제제도 가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이 뜻하지 않게 본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귀족들의 시험점수나, 혹은 신체적 점수가 평민들보다도 월등히 앞섰다.
보통 평민 사이에서 인재가 더욱 배출되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평민의 대부분이 더 이상 무시 받지 않고 살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은 비록 귀족과 평민, 이 둘로 나누었지만 그 신체적 능력과 두뇌를 부여한 것은 둘 모두가 똑같은 조건이었다.
때문에 악착같은 평민들이 보통 더 앞서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평민들이 아예 귀족들의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듯싶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저번에 본 프로드라는 소년의 경지는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으로 수많은 귀족들이 월등히 성적이 좋다고 기재되어 있던 것이다.
‘혹시……?’
알론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하는 바는, 이곳 교사들이나, 교장 카르가 모두 다 짜고 귀족들에게 뇌물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엄연히 아카데미도 학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더 좋은 직위를 가질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때문에 분명 자신의 아이가 더 잘되길 바라는 귀족 소년들의 부모들이 아카데미 측에 돈을 퍼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조사해 봐야겠군.’
알론은 이곳에 왠지 모르게 쟉셀의 문제뿐만이 아닌 다른 문제도 있다고 여겼다. 때문에 진지하게 조사해 보자고 마음을 굳히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선 알론은 그대로 다시 조사에 나서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렇게 그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에 그의 방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던 듯 어제 알론과 마주하였던 소년 기온이 그가 나오자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아, 기온! 어? 얼굴이?”
기온의 얼굴을 본 알론이 놀라며 소년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 그러자 기온이 갑자기 매섭게 그를 바라보며 그의 손길을 쳐 냈다.
“……?”
“어, 어떻게 할 거예요! 아저씨 때문에……! 아저씨 때문에!! 으아아아앙!”
소년의 반응에 의문을 느꼈던 알론은 곧 소년이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가슴을 그 굳건히 쥔 주먹으로 때려 대자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소년의 울음은 잦아들 줄을 몰랐고, 그렇게 한참을 울던 소년을 겨우 달래고는 다시 소년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퇴학!?”
“흐, 흐흑. 네.”
기온의 이야기를 들은 알론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부릅떴다. 소년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젯밤 자신을 괴롭히던 그 귀족들이 또다시 자신을 괴롭히려 하자 소년은 맞서 싸웠다고 했다.
그리고 한밤중 싸움은 결국 교사들에게 알려졌고, 교사들에게 넷 모두가 끌려갔다고 하였다.
헌데, 이상한 점은 교사 중 한 명이 귀족 셋을 데려갔고, 남은 교사들이 갑자기 기온을 꾸짖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기온을 꾸짖었던 교사들은 곧 기온과 귀족 셋을 돌려보냈고, 바로 오늘 아침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회의의 내용은 어젯밤 소년 넷의 싸움이었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것은 처리 부분이었다. 아카데미 측은 본래 잘못을 해 온 귀족 소년 셋의 잘못은 덮어 주고, 소년 기온은 퇴학을 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에 억울함을 참을 수 없었던 기온은 결국 알론을 찾아온 것이다.
“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알론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연히 기온의 얼굴에 난 멍이나, 귀족 셋이서 평민 한 명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 대충 교사들도 누구의 잘못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터무니없이 평민인 기온을 퇴학시킨다는 것은 속이 훤히 보이는 일이었다.
귀족인 그들은 무서워서 손을 못 대거나, 혹은 돈을 받아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고 만만한 평민 기온을 더 이상 아카데미 내에서 어제의 일로 이야기가 나오지 못하게 퇴학을 시키려는 것이었다.
“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기온이 알론에게 또다시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년의 물음에 알론이 한숨을 쉬며 꽉 껴안았다.
소년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자신이 가르쳐 준 방법을 사용하였을 뿐이었고, 용감하게 맞서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카데미 측에서는 법을 가볍게 무시해 준 것이다.
‘일단…… 쟉셀은 미뤄 둬야겠군.’
알론의 제1차 공격 대상이 쟉셀에서 레카 아카데미 전체의 교사들로 바뀌었다.
짹짹.
소년 기온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방에서 쉬게 한 알론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카렌의 안내를 받으며 아카데미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현재 그들이 위치한 곳은 마구간이었다.
“이곳이 우리 학생들이 타는 말을 두는 마구간이죠. 어떻습니까.”
“괜찮군요.”
카렌의 어떻냐는 말에 알론이 고개를 살짝 마구간 안으로 넣어 속 안을 살폈다. 속 안은 깨끗함 그 자체였고, 또 말들이 먹고 있는 건초도 파릇파릇해 보였다.
하지만 알론은 청소를 급하게 하고, 또 건초도 급하게 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은 마구간의 곳곳에 때를 황급히 벗긴 듯 나무가 조금씩 까진 것이 보였다. 또한, 마구간에서 흘러나오는 청소용품의 냄새는 가히, 대놓고 급하게 청소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건초를 먹고 있는 말들이 건초를 먹다가 대부분 그만 먹는 것을 발견하였다. 보통의 동물이나, 사람은 본래 자신이 살았던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때문에 말들도 본래 좋지 않던 건초만 먹다가, 이렇듯 갑자기 질 좋은 건초를 먹으려니, 뭔가 입에 맞지 않는 것이다.
‘아무 말이 없군. 역시 덮으려는 건가.’
입에 방실방실 미소를 지으며 오로지 아카데미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만들려는 카렌의 얼굴을 보며 알론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렇듯 자신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을 보니, 자신이나 카일에게 숨겨 확실히 덮어두려는 속셈으로 보였다.
결국 그가 말하지 않자, 알론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보다 카렌 경. 어젯밤 평민 아이들 기숙사에서 작은 소동이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이해하지 못한 듯 카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족 소년 세 명과 평민 소년 한 명이 싸움을 벌였다더군요.”
‘이, 이런…….’
알론의 입에서 어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카렌이 속으로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실은 교장 카르에게서도 철저히 장학사들이 알지 못하게 비밀로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하지만 이 장학사는 누가 말해 준 것인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네, 네. 그런 일이 있었긴 했습니다. 하지만 뭐 어린애들 싸움이니, 별 소동은 아니라고 볼 수 있었죠.”
카렌이 사건을 대충 얼버무리기 위해 입을 놀렸다.
“별 소동이 아니라고요? 제가 듣기로는 평민 소년을 퇴학시키기로 했다고 하던데요?”
“……!”
대충 얼버무리려던 카렌이 너무나도 자세히 알고 있는 그로 인해 순간 주춤하고 물러났다. 그러더니, 곧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사, 사실 그 어제 평민 녀석이 귀족 소년 셋을 자신이 힘이 좀 세다고 해서 괴롭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귀족 아이들이 하는 수 없이 맞섰다고 하더군요. 때문에 안타깝지만 평민 소년을 퇴학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는 전혀 다른 사실을 입에서 술술 토해 냈다. 알론이 그의 말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이제는 죄 없는 평민 소년을 퇴학시키려는 것도 모자라 아직 철이 들 무렵의 아이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었다.
카렌의 어떻게든 숨겨 보려는 모습과 이제껏 알지 못했던 그의 가식에 알론은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평민 소년 한 녀석이 귀족 셋을 괴롭혔다라…… 알겠습니다.”
‘누, 눈치챈 건가?’
알론의 눈빛에서 카렌이 자신의 변명이 너무 터무니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힘센 귀족 한 명이 평민 세 명을 괴롭히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평민 소년 한 명이 귀족 소년 셋을 괴롭히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평민의 대부분이 어렸을 적부터,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귀족이 서 있는 자리를 인식한다.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면 당했지,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평민인 것이다.
“휴.”
좋지 못한 시선을 보내던 알론이 곧 시선을 거두자 카렌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눈치챈 것 같기도 하였지만 알론이 덮어 주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지금 알론의 심정은 더욱더 이 레카 아카데미의 비리들을 모아 철저히 무너뜨리자는 생각이었다.
아니 레카 아카데미가 아닌, 이곳의 교사들을 말이다.
제7장 그를 인정하다(1)
이스론트 대륙의 아카데미에도 엄연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존재하였다. 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역시나 1년에 4번 치러졌으며, 알론이 살던 세상과 다른 점은 이스론트 대륙에서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신체적인 능력도 함께 시험을 본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시험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배운 검의 사용법이나, 혹은 레카 아카데미의 고유의 검술을 연습하는 데에도 시간을 쏟아 부었다.
또한, 본래 1주일 정도만 있다 가려던 알론과 카일은 일이 쉽사리 풀리지 않자, 대충 핑계거리를 대 가며 1주일 정도 더 머물기로 하여 중간고사 시험이 겹치는 날까지 머물기로 하였다.
처음 그들의 말에 물론 카르 교장이나, 교사들은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대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뒤에서 그 둘을 욕할 뿐이었다.
딸깍.
“쟉셀. 저번 그 기온이라는 소년…… 퇴학 조치를 받았대.”
“그래? 역시 내 예상이 적중한 건가?”
쟉셀이 이르니안의 말에 피식하고 웃어 보이며 다시 찻잔을 기울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거야?”
“물론이지. 레카 아카데미는 쉽사리 귀족 자녀분들한테 손을 못 대거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쫓겨나는 것은 평민 녀석이 될 거고.”
“…….”
쟉셀의 치밀함에 이르니안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보는 쟉셀은 두뇌가 뛰어난 아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뛰어난 두뇌를 좋은 곳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것보다 내 재미있는 장학사 분들께서 앞으로 더 이곳에 머문다고 하니, 이번에는 무슨 장난을 쳐 볼까.”
쟉셀이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처음 친 장난은 사실 다른 이들에 비해 약과에 불구했다. 더군다나 장학사에게는 피해 자체가 가지 않는 일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장학사는 일을 이렇게 벌인 이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쟉셀에게 꽤 좋은 것이었다.
예전 이르니안이 하였던 말처럼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황궁의 사람을 건드려서 좋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생각을 바꿨다. 이번엔 자신의 존재감을 장학사에게 인식시켜 주고 싶었다.
‘저번에 그 사람…….’
쟉셀이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저번의 그 장학사가 자신의 손을 거칠게 잡아챘던 것을 아직 잊지 않았다.
귀하디귀하게 자라 온 자신이 누군가에게 손이 잡힌 것은 치욕스럽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의 교사들이나, 교장인 카르마저도 자신의 몸엔 털끝 하나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헌데, 고작 황궁에서 내려온 기사 주제에 자신의 손을 잡아채고, 화를 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떤 일을 할 건데?”
이르니안이 조금은 걱정이 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말려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는 소녀인, 그녀였기에 말리지는 않았다.
“글쎄…… 중간고사를 이용해 볼까 해.”
“중간고사?”
“그래. 아직 뚜렷이 생각한 거는 없지만,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
쟉셀이 히죽히죽 웃으며 장학사가 보일 표정을 생각했다. 이번에는 철저히 자신을 그의 머릿속에 인식시켜 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