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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16화)
제7장 그를 인정하다(2)
“……레카 아카데미의 선생들이 말입니까?”
카일 역시도 알론과 마찬가지로 요 며칠간 허탕의 연속이었다. 때문에 그도 요즘 막막한 때였다. 이런 시기에 자존심을 계속하여 내세울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에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하자는 생각으로 알론의 방을 찾았던 카일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네. 일단 쟉셀이란 녀석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카데미 자체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됩니다. 애초에 쟉셀이란 소년이 나온 계기가 이 아카데미 때문일 테니까요.”
애초에 쟉셀이란 소년이 어린 악마라고 불리게 된 계기는 어쩌면 아카데미 측에서 제지를 전혀 가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가문의 악명도 그에 한몫 단단히 했겠지만 소년 쟉셀이 계속하여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만든 주원인 축은 아카데미일 수도 있었다.
소년 쟉셀은 일을 저지를 때마다 자신을 덮어 주는 아카데미로 인해, 자신은 이런 일을 저질러도 된다고 머릿속에 저절로 인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잘못된 사고방식을 머릿속에 가지게 된 쟉셀이 어느새 지금의 쟉셀이 돼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카데미 전체를 건드리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레카 아카데미는 제국 내에서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저희가 맡은 일은 소년 쟉셀에 대한 일만 있지 않습니까.”
카일은 알론의 말처럼 아카데미 전체를 수사하고 나서면 일이 복잡해진다고 여겼다. 더군다나,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나 알론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노릇.
일단은 피하고 보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알론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맡은 일이 비록 쟉셀이란 소년에 대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눈에 빤히 보이는 곳에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기사 된 도리로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것 아니잖습니까.”
“과대망상에 젖어 계신 겁니까? 침착하게 생각하시지요. 우리는 단둘입니다. 우리 단둘이서 아카데미 전체를 조사하고, 또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차라리 가장 시급한 일부터 끝내고, 황궁으로 가 이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카일 경이 이렇게 겁쟁이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적어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 줄 알았는데…… 지금 제가 보기에는 카일 경은 오로지, 자신에게 올 피해가 두려워 피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현재 학생들은 자신을 가르치는 세상의 하나뿐인 스승들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
알론이 카일의 말을 가로채고는 말을 이었다. 순간 그의 말에 카일이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처럼 현재 레카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들이 교사들의 탐욕에 피해를 보고 있었다. 평민들은 자신들이 노력한 바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고, 또한 귀족들은 귀족으로서, 자신들이 갖춰야 할 행동과 또 노력하여서 얻는 쟁취감을 알게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엄연히 아카데미는 성인이 되기 전에 딱 한 번 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헌데, 이러한 추억이 깃들어야 하는 곳이 아닌 부정부패와 비리가 가득한 곳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카일 경께서는 하기 싫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혼자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 두시죠. 저희 둘의 노력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쾅.
말을 마친 알론이 갈색 서류봉투에 종이 몇 장을 집어넣고는 그대로 방에서 빠져나갔다. 졸지에 알론의 방에 혼자 남게 된 카일이 그가 내뱉고 간 말을 중얼거렸다.
“우리 둘로 인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카일도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갔다.
“알론 경께서 직접 말이십니까?”
“네.”
알론의 말에 놀란 카렌이 눈을 크게 떴다. 알론은 귀족과 평민, 둘 사이의 성적 차이가 많이 나는 점을 감안하여 교사들이 조작할 수 없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시험 부분은 자신이 어느 정도 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한 상황이었다.
“하,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엄연히 저도 황궁의 기사이니 말입니다.”
카렌의 걱정스러운 어투에 알론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야……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답하는 카렌의 표정이 썩 밝지는 못했다. 정말로 알론이 대신 학생들의 시험 부분에 있어서 평가한다면 자신들이 조작할 방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말을 해 보겠다고 말한 카렌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알론이 막 자리를 벗어나려던 때였다.
화장실 쪽에서 숙덕이는 소리가 들렸고, 자신이 알고 있는 소년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어쩐지…… 쟉셀이 기온을 괴롭히라고 한 이유가 이거였나? 근데 기온이 쟉셀에게 무슨 잘못을 한 거지?”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기온을 괴롭힌 귀족 소년 세 명이었다. 세 소년의 얼굴은 꽤 심각하였고, 이 이야기를 엿듣던 알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쟉셀이라고 했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애들아, 가자.”
알론의 등장에 흠칫하고 놀란 귀족 아이들이 황급히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알론이 화장실의 문 앞에 서서 소년들이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왜, 왜 그러세요?”
“너희들 기온과 싸웠던 녀석들이지? 내게 이야기해 주면 좋겠구나.”
알론의 말투는 꽤 타이르듯 하였으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의 표정 때문에 귀족 소년 셋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앞의 장학사에게 그날 쟉셀이 기온을 괴롭히라고 시켰던 것을 말하자니 쟉셀이 두려웠고, 또 장학사에게 말을 하지 않으려니 지금 이 장학사의 표정이 무서웠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곧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알론의 말이 흘러나왔다.
“설마…… 쟉셀이 시켜서 기온을 괴롭힌 거니?”
“……제, 제길…….”
“그런 거니?”
한 소년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오자 알론이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고 단정 지었고, 곧 소년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였다.
“네…… 맞아요…… 사실 저희가 기온을 괴롭혔던 것은 맞지만…… 그날만큼은 이상하게도 쟉셀이 기온을 괴롭혀 달라고 하더라구요…….”
“하아…… 그렇구나. 알았다.”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알론이 한숨을 쉬며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자 귀족 소년 셋이 황급히 자리에서 사라졌고, 홀로 화장실에 남은 알론이 물을 틀고는 손을 모아 물을 받아 얼굴에 한껏 부벼 주었다.
“후우.”
시원한 물로 얼굴을 가득 적셔 준 알론이 깊은 숨을 내쉬더니, 거울로 비춰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피식 하고 웃었다.
“역시…… 어린 악마라 이건가?”
알론으로서는 소년 쟉셀이 벌인 행동이 소년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소년의 장난으로 보일 뿐이었다.
때문에 알론은 이 몇 초의 시간 내로 소년 쟉셀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줄 수 있는 방법을 수십 가지는 떠올렸다.
애초에 소년인 쟉셀은 알론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본래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의 알론은 만나 보지 못했던 이들이 없었다.
또한, 그중 청소년들도 상당수 껴 있었다. 때문에 청소년들의 심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청소년들은 작은 일에도 자존심을 상해 하며, 화를 내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숙하지 못한 그들이 겪는 하나의 성장 과정이니 말이다.
때문에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고, 또 쉽게 좌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쟉셀의 경우. 충동적으로 벌이는 일들이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때문에 알론은 자신으로 하여금 소년 쟉셀을 한 번쯤 좌절시켜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시험을 치러 주기로 했으니, 쟉셀도 시험을 치르겠지.”
알론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감돌았다. 다 큰 어른인 마냥 행동하는 어린 소년에게 세상 물정을 알려 줄 생각을 하니, 흥이 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카르와 교사들은 회의 끝에 결국 장학사의 부탁이기 때문에 수락하기로 한 듯 알론의 부탁에 승낙했다.
하지만 물론 어느 정도 그쪽에서 가하는 제지가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제지는 적을 것이다.
중간고사의 시작은 바로 내일이었다. 알론은 학생들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엿보거나 혹은 학생들과 검을 맞대어 보며 직접 평가할 것이었다. 물론 알론이 평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카데미 측에서는 웬만하여서는 조작을 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눈 뜨고, 평민들의 성적이 올라가는 것을 볼 아카데미도 아니었다. 분명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어떻게든 다시 귀족 아이들의 성적을 올려놓을 것이었다.
어느새 밤공기가 차가워졌다. 오늘은 달이 뜨는 날인 듯 방대한 크기의 황궁을 달빛이 아름답게 덮어 주었다.
이렇게 달빛이 황궁을 비추는 이날 알론이 아카데미의 외부 쪽 수련장 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가 수련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일을 앞서 단전호흡과 마나호흡을 행하고 그로 인해 긴장을 풀고, 또 오늘은 최초로 오러라는 것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아직까지 알론은 새로운 몸을 얻고 난 뒤로 오러라는 것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오러를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할지, 또 어떻게 발현시켜야 할지 어색하기만 했다.
일단 머릿속의 기본 바탕은 입력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어떻게 해도 되긴 될 거라는 생각을 그는 하고 있었다.
알론이 곧, 단전호흡과 마나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것도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해 왔기 때문에 꽤 익숙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자칫 긴장을 풀면, 역시나 허공에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었다.
“흐으읍, 하아아.”
단전호흡과 마나호흡을 40분이 지나도록 유지하던 그가, 곧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역시 호흡이란 것이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니었지만 단순 호흡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또 몸의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 그가 곧, 검집에서 검을 빼 들었다.
스르릉!
어느새 검을 빼 들어 휘두르는 모습도 꽤 자연스러웠다. 그가 짬이 날 때마다 연습한 결과를 보여 주듯 말이다.
검을 자연스럽게 뽑아 든 그가, 곧 달빛이 아름답게 비춰지는 수련장에서 멋들어지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활인검과 살생검 같은 이곳의 검술을 함께 하는 부분에도 익숙해진 면모가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이라면, 이렇게 날이 갈수록 본래 몸에 익숙해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오러를 발현해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한참을 검을 휘둘러 보던 그가, 곧 우두커니 멈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를 몇 번 반복했다.
그는 숨을 깊게 마시며, 머릿속 오러를 발현시키는 부분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의 머리에 입력되어 있는 오러를 발현시키는 방법은 심장 주위에 가득 모여 있는 마나를 검 쪽으로 흘려 내보면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곧 그가, 자신의 검에 힘을 살짝살짝 심장에서 흐르는 마나를 검에 흘려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검으로 이동하려던 마나는 검의 앞에 다다랐을 때쯤, 허공에 흩어져 버리기 대부분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그가 포기할 위인은 아니었기에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검에 마나를 집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어느덧 요령을 알아낸 듯 자신의 검에 밝은 빛이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돼, 됐다!”
비록 어눌하고 어색하지만 그의 검에서 발현된 것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오러였다. 비록, 그가 발현하는 오러는 처음이었지만 본래 몸의 경지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올라 있는 몸이었기 때문에 이렇듯 검에서 밝은 빛이 뿌려져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밝은 빛이 곧 오래가지 못하고, 힘이 쭉 빠져나가듯 사라졌다.
“뭐, 뭐지?”
갑자기 겨우겨우 만들어 낸 최초의 오러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자 알론은 당황했다. 순간적으로 빠져나가는 오러를 잡아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갑작스러운 오러의 증발로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수련장의 구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힘…….”
“…….”
알론이 들려온 목소리에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곧, 어둠 속에서 한 익숙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카일이었다.
“놀랍군요. 알론 경이, 저와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었다니……. 하지만 어째서 제4기사단에 위치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카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문을 표했다. 제4기사단의 기사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이다?
엄연히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적어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라면 최하 제2기사단에 머물러 있어도 부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오러를 오랫동안 잡아 놓지 못하시는군요. 마치 단기간에 힘을 얻은 것처럼.”
흠칫.
순간 알론이 그의 예리함에 흠칫했다. 카일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그가 흠칫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 자신의 문제였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스르릉.
“잘 보십시오, 알론 경. 알론 경의 검에서 오러가 오랫동안 발현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뜬금없이 어디선가 나타난 그가 이번에는 검을 뽑아 들고는 그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겠다며 자처하고 나섰다.
그리고 곧 그의 검에서 밝은 빛의 오러가 맺혔다.
“오러라는 것은 마나를 이용해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마나라는 것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흩어지기 쉬운 존재이지요. 때문에 검에 마나를 흘려보내는 것에 한 치도 소홀해서는 안 되며, 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