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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18화)
제8장 그를 인정하다(2)


“자, 시험 시작할 테니. 모두들 번호대로 서도록 하세요!”
카렌의 지휘하에 모든 귀족들이 조금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줄로 줄을 섰다. 줄을 선 귀족들을 한번 훑어본 알론이 카렌이 건네는 학생들 명단을 받아 들었다.
“평가는 상. 중. 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뭐 알론 경도 아카데미를 졸업하셨을 테니, 상. 중 .하의 수준 정도는 구별하실 수 있겠죠?”
끄덕.
카렌의 혹시나 하는 물음에 알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알론의 기억에는 상. 중. 하를 구별하는 방법이 뚜렷이 각인되어 있었다.
“1번 학생과 2번 학생은 앞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명단을 받은 알론이 맨 앞줄의 두 소년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하얀색의 레카 아카데미의 수련용 옷을 입은 두 소년이 앞으로 나섰다.
“카네시스!”
“카, 카네시스!”
알론의 앞으로 성큼 다가온 소년 중 한 명이 먼저 기사로서의 예의를 차려 보이고, 그다음으로 옆의 소년이 엉거주춤 경례를 해 보였다.
그에 알론도 가슴에 오른쪽 손을 얹으며 경례를 해 보였다.
‘일단 오른쪽 소년은 어느 정도 예법 점수를 무난하게 주면 되겠군. 왼쪽 소년은, 조금 주춤하고 어색했으니 그만큼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겠지.’
실전 시험은 총 세 가지를 봐야 했다. 그중 하나가 이렇듯 처음에 하는 인사였다. 이 인사를 박력 있고, 흐트러짐 없이 한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처음에 박력 있게 인사를 하였던 소년은 높은 점수를, 엉거주춤하였던 소년은 중간에서 조금 낮은 점수를 체크했다.
예법 부분을 체크한 알론이 곧 소년 둘이 거리를 벌리는 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둘이 동시에 허리춤에 차고 있던 목검을 빼어 들었다.
“하아압!”
“하아압!”
실전 시험에서 두 번째는 얼마나 검을 균형 있게 잘 다루고, 흐트러짐 없이 다루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엄연히 검술이란 것에도 대륙 통틀어 존재하는 기본 동작이 존재하였다.
이 기본 동작만 제대로 흐트러짐 없이 구사할 수만 있더라도, 일반인들은 ‘아, 실력 있는 기사구나.’라고 할 정도였다.
때문에 이 부분도 빼놓지 않고 봐야 할 부분이었다.
사각사각.
볼펜으로 또다시 체크를 한 알론이 곧 펜과 명단을 옆에 있는 의자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허리춤에서 목검을 뽑았다.
그가 목검을 뽑는 이유는 세 번째 시험이, 시험관과 검을 맞대어 보며 실력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 번째 시험은, 실기 시험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학생은 사용 가능하게 되며, 오러 사용 시 거의 100%로 최고 점수를 받는다고 보면 되었다.
“하아압!”
탁. 탁탁.
먼저 오른쪽의 소년이 검을 휘둘러 왔다. 소년치고는 빠르고 날카로운 검이었지만 알론의 눈에는 한없이 느려 보였다.
더군다나, 귀족이었기 때문인지, 자신의 몸을 방어하는 데에만 치우쳐 있었다. 아마 분명 이 소년은 보통 실력의 평민 소년과 붙는다면 필히 질 것이었다.
검에 앞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막는 것만이 아니라, 공격하는 것도 중요하였다. 공격하지 않는다면 그 상대를 어떻게 쓰러뜨리고, 또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귀족들의 대부분이 방어 위주로 검을 배웠기에 공격 부분에서는 서툴렀다.
때문에 그들이 살기 위해 검을 배우거나, 높은 자리에 서기 위해 검을 배우는 평민들을 이기기엔 힘든 일이었다.
“다음!”
두 명의 소년의 평가를 마친 알론이 그 둘을 다른 한쪽으로 보내 놓고는 다음을 외쳤다. 그리고 곧 도착한 카일도 명단을 받아 들고는,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한편, 이 모습을 쟉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로 한껏 소년답지 않은, 정말 어린 악마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잘됐군. 가지고 놀 방법이 생각났어.’
쟉셀은 요즘 장학사인 알론을 어떻게 골탕 먹일지에 생각하던 중, 뜻하지 않게 오늘 알론이 시험을 치른다는 것을 알고는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황궁의 사람이고, 기사라는 점을 이용해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알론에게 망신을 주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곧 소년 쟉셀의 순서가 다가왔다.
“카네시스!”
“카네시스!”
쟉셀이 알론에게 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예의를 차려 보였다.
알론이 그의 눈빛에서 무언가 노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소년 쟉셀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이,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언가 알론의 눈으로 노리고 있다는 것이 엿보였다.
그리고 곧 시험이 시작되었다.
‘역시 탄탄하군.’
쟉셀의 검의 휘두름을 보면서 알론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소년으로서 나무랄 데가 없는 솜씨였다. 그만큼 소년 쟉셀은 인재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소년이었다.
때문에 쟉셀의 다음으로 검을 움직여 보인 소년이 모자라 보이기까지 하였다.
스르륵.
알론이 시험은 시험이었기에 첫 번째 부분이나, 두 번째 부분에서 두 부분 모두 쟉셀은 높은 점수를 주었다. 아무리 그가 무언가 노리고 있다고 한들, 시험은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시험을 시작하기 위해 곧 쟉셀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목검을 빼 들었다.
소년 쟉셀의 목검은 다른 귀족들이 들고 있는 목검과는 조금 남달랐다. 어두운 소년 쟉셀의 검은 흑떡갈나무로 만든 것으로 이스론트 대륙에만 존재하는 검은색의 떡갈나무를 이용해 만든 목검이었다.
이 흑떡갈나무는 무척 단단했으며 웬만한 목검을 만드는 나무들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는 성능을 자랑하였다.
또한, 흑떡갈나무로 만든 목검은 특이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 특이점은 오러 사용 시,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수련용 검이었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후후, 가지고 다니는 보람이 있군.’
특이한 목검이었기에 그 값도 웬만한 집 한 채 값을 했다. 쟉셀은 자신이 이 검을 가지고 다닌 것이 이런 행운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에 속으로 작게 조소하며 자신의 앞에서 검을 늘어뜨린 채 바라보는 알론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하아압!”
스우웅.
곧 쟉셀의 검이 빠르게 휘둘러지며 알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순간 소년 쟉셀의 검의 속도에 알론이 멈칫하였다.
소년 쟉셀의 검의 수준은 소드 익스퍼트로 치자면 중하급 정도 되어 보였다.
아직 어린 소년의 경지가 이렇다는 것에 알론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였다.
딱! 딱딱딱!
알론과 쟉셀의 검이 수없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둘의 검이 부딪치자, 모든 아이들이 숨을 죽여 이 모습을 지켜봤고, 카렌이나 카일도 잠시 행동을 멈추고 이 모습을 지켜봤다.
‘이, 이건……?’
딱딱딱!
알론은 소년 쟉셀과 검을 부딪치면서 쟉셀이 휘두르는 검에서 무언가 얕은 검은색의 잘 보이지 않는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곧 그것이 오러라는 것을 눈치챘다.
오러를 머금은 검은 그 검이 무척 강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알론은 자신의 손이 저리는 것이 느껴졌고, 곧 순간적으로 휘두름의 속력을 올린 쟉셀이 빠른 속도로 알론의 손목을 목검으로 가격했다.
퍽.
떨그럭.
“아아, 이거 죄송합니다. 이거 제가 그만…… 스피드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도록.”
알론은 자신의 손목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목검을 주웠다. 분명 주위의 다른 소년들은 어째서 알론이 목검을 떨어뜨렸는지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카렌이나 카일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내가 오러를 사용하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이 나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선 오러를 써야겠지.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쟉셀은 사악하게도 레카 아카데미 학생들의 시선이 알론과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비록 자신은 오러를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아이들은 인식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알론을 교묘히 놀리려는 속셈이었다.
쟉셀은, 알론이 오러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을 마친 상태이다. 만약 알론이 뜬금없이 오러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방금 전 손목을 친 쟉셀을 혼을 내기 위함이라고 학생들은 여길 것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법으로도 이런 실기 시험 중 시험교관은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알론으로서는 쟉셀에게 밀리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 줄 수는 없었기에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 쟉셀에게 밀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뭐야. 설마…… 황궁에서 내려온 기사가 아카데미의 학생에게 밀리는 거야?”
“에이…… 설마…….”
학생들도 소년 쟉셀로 인해 알론이 검을 떨어뜨리자, 밀리고 있다고 의심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알론이 곧 주위를 흘끗 둘러보았다.
‘함정에 빠지셨군요.’
카일의 얼굴로 걱정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또 학생들의 눈에는 ‘설마’ 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후우.”
알론이 곧 숨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소년 쟉셀이 만든 늪에 빠진 것은 맞았지만, 자신은 그래도 황궁의 기사.
어린아이의 농락에 빠져들 만큼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 오거라.”
“흐아압!”
우우웅.
남모르게 다시 만들어진 오러가 알론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탁! 탁탁!
‘검을 부딪칠수록 불리해진다. 그러니 스피드로 승부해야겠군.’
일단은 쟉셀의 검과 알론의 검이 부딪치면 좋을 것이 없었다. 혹여 검이 박살이라도 나면 좋지 않은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곧 쟉셀의 검이 알론을 공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알론이 빠르게 검을 휘둘러 쟉셀의 공격이 채 들어오기도 전에 그의 목검 손잡이 바로 위를 쳐 냈다.
“……!”
스우우웅.
소년이 자신의 검이 움직여 보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나자 우연이라는 생각에 다시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알론은 계속하여 방금 전 보였던 행동을 계속 반복하였다.
애초에 검을 움직이기 전, 못 움직이게 봉쇄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계속되는 알론의 행동에 쟉셀의 표정이 한껏 굳어졌고,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알아챘다.
‘제길!’
그가 속으로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더욱더 목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목검은 휘둘러지지 못했다.
“쟉셀이라고 했던가? 검을 잘 휘두르지도 못하다니…… 어린 악마라는 소문이 있던데. 실망이군.”
결국 시험 종료 시간인 4분이 지나서도 쟉셀은 그의 손목을 딱 한 번 때린 후로는 검을 움직여 보지도 못했다.
알론이 잔뜩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소년들도 곧 쟉셀에게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마 다른 아이들에게는 소년 쟉셀이 검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마디로 쟉셀이 이용하려던 함정을 알론이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어른을 놀리면 안 되지.”
곧 쟉셀이 분한 표정으로 움직이려 할 때, 알론이 주위가 조금 소란스러워진 것을 틈타, 조용히 속삭였다. 그에 얼굴이 붉어진 쟉셀이 수련장을 뛰쳐나갔다.
사각사각.
그가 빠져나간 모습을 본 알론이 곧 시험 명단에는 방금 전 쟉셀에게 하였던 말과는 정반대로 최고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
비록 자신은 황궁의 사람이었고, 몸 자체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쟉셀에게 이렇듯 행동할 수 있었지만, 만약 이제 막 기사가 된 이였다면 졌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쟉셀은 그 행동만 아니면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총명한 소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