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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20화)
제8장 그를 인정하다(4)
알론은 현재 그녀의 심리를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처음 그녀에게 그녀의 잘잘못을 인식시킨 이유는 협조를 유도하기 위함이었고, 이렇게 손수건을 내민 이유는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고작 손수건 하나 내미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겠냐만은 사람이란 동물은, 자신이 힘들 때, 옆에서 보듬어 주고 도와주는 사람에게 믿음을 갖기 마련이었다.
“정말…… 제가 정말…… 그렇게 한다면…… 잠시나마 아이들에게 용서가 될까요…….”
“물론입니다. 아이들도…… 당신의 마음을 잘 알게 될 겁니다.”
싱긋.
그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알론이 싱긋하고 웃어 보였다. 순간 그의 웃음에 하렐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얼굴이 붉어졌던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듯 황급히 말을 이었다.
“하, 할게요…… 정말 이 길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후회는 없으시겠습니까?”
알론은 후회의 여부를 물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나중에 후회를 할까 하여 걱정스러움에 묻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사실 애초에 후회할 마음가짐이라면 나중에 복잡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묻는 것이었다.
“후회요……?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할 거예요. 아니 하고 말 거예요.”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어느새 굳어진 그녀의 결심은 꽤 단단해 보였다. 그에 알론은 자신이 성공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협조해 주신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렐 양께서는 저희 측에 서서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증언해 주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성적표 조작. 혹은 옳지 못한,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의 평민과 귀족 아이들의 차별. 또 뇌물을 받았다는 것까지 세세하게 말씀만 해 주신다면 충분히 이 레카 아카데미를 무너뜨리는 데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근데…… 만약 레카 아카데미가 정말…… 장학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하렐은 자신의 걱정이나, 혹은 꼭 레카 아카데미를 무너뜨리는 데에 전념한다는 생각보다는 그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아이들의 일이 걱정이 되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그 부분은…… 황궁 측에서 결정을 내리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곳 교사들의 교사 자격증을 영구 박탈시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그 외 다른 벌을 받겠지요. 또 레카 아카데미의 교사들 모두가 이 범행을 알고 있음에도 함께 동참하였기 때문에 아마 레카 아카데미의 교사들이 모두 떠나고, 새로운 교사들을 황궁 측에서 지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도 그렇게 되겠군요.”
그녀가 곧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여보였다. 자신도 엄연히 그 범죄 행위에 동참한 사람 중 한 명. 처벌을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렐 양에 대해서는 제가 황궁 측에 건의를 해 보도록 할 것입니다. 비록 모든 죄 값을 피해 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1∼2년 정도의 교사 자격증 정지 기간 정도의 죄 값을 물게 되실 거고, 또 잘만 한다면 이 레카 아카데미에 복귀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마, 황궁 측에서 이해해 줄 겁니다. 아무리 하렐 양이 범행에 동참하였다고 하지만 그 후에 반성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비록 알론 그가 돌격적이고, 모든 범죄자들 앞에서 냉정하며 또 악법도 법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죄를 짓고, 또 그 자신이 벌였던 죄에 대해 얼마나 반성하는지에 대해서도 중요하다고 그는 여기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렇게 보자면 하렐은 충분히 자신이 했던 일에 반성을 하고 있었기에 황궁으로 가고 난 후, 자신이 뜻하는 대로 재판이 진행된다면 한번 건의해 볼 생각이었다.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레카 아카데미에 몇 년 정도의 자격증 정지 기간 후 다시 복귀할 수도 있다는 말에 하렐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의 얼굴이 밝아진 이유는 직장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정말 생긴 것과 같이 순수함 그 자체의 이유였다.
알론은 하렐과 방 안에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주 주제는 하렐이 알론에게 줄 수 있는 레카 아카데미 측에 대한 정보와 또 성적표 조작 그 외에 대한 이야기였다. 알론은 방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비록, 알론이 다른 방법으로라도 풀어 나가기 위해 애를 썼겠지만 그녀로 하여금 다소 쉽게 일이 풀릴 것 같았다.
또 긴가민가하였던 레카 아카데미 측의 성적표 조작과 또 귀족들에게 뇌물을 받는 등의 일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렐로 인해, 레카 아카데미를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제9장 체포. 그리고 마지막 쟉셀(1)
우걱우걱.
알론이 자신의 앞에서 미친 듯이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는 기온을 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기온은 현재 마구간의 말이 없는 곳에서 교묘히 숨어서 생활하고 있었다.
현재 기온에게 내려진 학교 측 처벌은 퇴학이었다. 퇴학은 기숙사에서도 나가라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퇴학이란 것이 아카데미 자체에서 나가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렇듯 숨어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알론으로서는 그를 자신의 방에 두고 싶었지만 매일같이 카렌이 들락날락거렸기에 하는 수 없이 기온을 이곳에 둔 것이었다.
“조금만 참으면 곧 다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마.”
“……정말요?”
한참 입안으로 알론이 가져온 음식들을 밀어 넣던 기온이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조금은 의구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한번 그의 말을 들었다가, 퇴학이라는 것을 짊어져 버리게 된 그였기에 쉽게 그의 말을 믿는 것이 꺼림칙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끄덕끄덕.
알론이 그의 물음에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끄덕임에 곧 기온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아저씨만 믿을게요!”
활짝 웃어 보인 기온이 곧 다시 음식에 전념했다. 알론이 다시 음식으로 시선을 돌린 그를 보더니,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들어 주겠니?”
“부탁이요?”
“그래. 이 봉투를 영주성에 가져가 주었으면 좋겠구나.”
알론이 품속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기온은 그가 내민 편지봉투를 고개를 갸웃하며 보는 듯싶더니, 이내 알았다는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곧 다시 음식으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론이 기온에게 건넨 봉투는 이곳 영지의 영주에게 황궁에서 온 기사로서 보내는 하나의 도움 요청 메시지였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알론과 카일이 아카데미의 교사들과 카르 교장의 뇌물 혐의, 또 그 외 성적 조작 등의 행위를 잡아낸다고 하더라도, 알론과 카일 둘의 힘으로 뚜렷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대책이 서지를 못했다.
때문에 영지의 영주에게 이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영지 내의 레카 아카데미가 이렇듯 비리로 썩어 물들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 영지의 영주도 다른 귀족들에게 뇌물을 받거나 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알론이 이렇듯 이곳 영지의 주인인 영주에게 이 도움 요청을 하는 이유는, 이곳 영지의 주인인 카토 렌 레카일 백작이 커스 공작과 친분이 있기로 유명하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알론은 이제껏 카토라는 백작이 꽤 성실한 사람으로 영주들 중에서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이란 것은 먼지를 털면 하나쯤 죄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카토 백작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이 언급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알론은 충분히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젠 증거 확보만이 남은 건가?”
방으로 돌아온 그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아마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쯤 아카데미의 평민들과 귀족들의 성적표를 레카 아카데미 측에서 조작할 것이었다. 이 사실은 하렐이 알려 준 사실이었다.
어떻게 보면 성적표 조작을 나중에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이스론트 대륙의 모든 아카데미는 소속된 제국의 황궁으로 이렇듯 시험을 보면 일주일 내로, 성적표를 황궁으로 제출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레카 아카데미 측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성적표를 조작하여 황궁으로 제출하여야만 했다.
끼이익.
“오셨군요.”
“네.”
방의 문이 열리며 카일이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그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요?”
“그래야겠죠.”
카일이 품속에서 사람의 주먹만 한 수정구와 볼펜을 위장한 커스 엔더를 꺼냈다.
커스 엔더란 카네시스 제국의 범죄 처리 반에서 만들어 낸 하나의 감시 카메라와도 비슷한 물건이었다. 이 물건은 볼펜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이 볼펜으로 하여금 수정구에는 볼펜의 맨 앞 볼펜 촉 부분 쪽이 감시 카메라의 역할을 하여 모습을 보게 해 준다.
또한, 행여 볼펜 촉 부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 볼펜 자체가 워낙 섬세하게 만들어 낸 물건이었기에 주위의 열을 감지하여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커스 엔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황궁 내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고, 카일의 경우는 오랫동안 커스 공작을 보좌해 왔고, 또 커스 공작이 꽤 그를 신뢰하고 있었기에 제국 내에서 열 개도 채 되지 않는 커스 엔더를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알론과 카일은 이 커스 엔더를 이용하여 아카데미 내의 교사들이 성적을 조작하는 모습을 적발해 낼 것이었다.
때문에 곧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카일이 교무실에 이 볼펜을 스리슬쩍 아무도 모르게 가져다놨다.
아마 단순히 볼펜을 가져다 놓은 것이었기 때문에 카일이 교무실에 들어왔다 나갔다고 한들, 그를 목격하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곧 다시 교무실로 커스 엔더를 놓으러 갔던 카일이 방으로 돌아왔다.
카일이 돌아오고, 곧 알론이 커스 엔더의 하단에 존재하는 스위치를 눌렀다. 스위치를 누르자, 교무실 내부가 훤히 비춰졌다.
아마도 이곳의 교사들은 현재 아직까지도 카일과 알론이 장학사가 아닌 다른 일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아무 의심 없이 교무실 안에서 성적을 조작할 것이었다.
더군다나, 앞으로 황궁으로 레카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의 성적표를 제출해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분명 오늘 내지 내일 교사들이 다급하게 이 사실도 모른 채 성적표를 조작할 것이었다.
그렇게 알론과 카일이 현재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 수정구에 시선을 집중하였고, 그렇게 삼십 분가량이 흘렀을까.
켜져 있던 수정구가 살짝 빛을 머금으며 몇 개의 그림자를 비춰 주었다.
“역시 왔군.”
알론과 카일은 하렐의 말처럼 교무실 안으로 여러 교사들이 들어서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그림자의 숫자로 보아 교무실로 들어온 이들의 수는 여섯 명 정도 되어 보였다.
“자자, 빨리 일 끝내고 돌아가지.”
“네.”
그리고 그중에는 카르 교장도 있었던 듯 카르 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카르 교장으로서는 불안할 것이었다.
평소에 매일같이 잘만 해 오던 조작을 이번에는 별 이상한 장학사 놈들이 자신들이 대신 시험을 치르겠다며 깝죽거렸으니, 그로서는 혹여 성적표 조작을 하지 못하고 황궁에 제출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클 것이었다.
슥삭슥삭.
각자의 자리에 앉아 학생들의 성적표를 조작하는 교사들의 손동작은 꽤 빨랐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실력 있는 평민 아이들도, 그 평민의 발 뒤꿈치에 미치지 못하는 귀족들의 실력이 더욱 앞서게 조작을 해 놓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었다. 평민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힘을 기르려는 것에 비해 반면, 귀족들은 겨우 돈과 권력으로 자신들이 평생 안고 갈 성적표를 사는 것이니 말이다.
약 두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모든 조작을 끝낸 것인지, 교무실 안에서 성적표를 끄적이던 비리 교사들과 카르 교장이 빠져나갔다.
“후우우…….”
“하아아…….”
그들이 빠져나가고 알론과 카일이 안타까움의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막상 자신들의 눈으로 그들의 비리 사실을 직접 목격하게 되니,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싶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 버리도록 하죠.”
굳은 표정의 카일이 눈빛을 빛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고, 알론도 그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알론과 카일이 이 수정구를 증거 자료로 제출만 한다면, 레카 아카데미는 완전한 물갈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전의 비리를 일으킨 교사들과 카르 교장은 교사직 박탈과 함께, 그 죄 값을 치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고, 학생들의 엉망진창으로 뒤바뀐 성적도 어느 정도 올바르게 고쳐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