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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22화)
제9장 체포. 그리고 마지막 쟉셀(3)
“맞군요. 이 서류봉투 안에 레카 아카데미의 모든 비리가 들어 있군요. 자, 이제 어떻게들 하실 겁니까. 저희는 모든 것을 확보하였습니다. 저희에게는 저희 편에 서서 증인을 서 줄 사람들도 있으며, 또 증인으로 되지 않는다면 법정에 제출할 증거들도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니 순순히 따라 주십시오.”
알론은 웬만해서는 말로 끝내기 위해 타이르듯 말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거친 몸싸움 후에 그들을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별 탈 없이 그들을 연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레카 아카데미 측의 교사들은 자신의 요구에 콧방귀를 끼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카르 교장이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크, 크크큭. 어이가 없군. 크큭, 고작 황궁에서 내려온 장학사 녀석들이 우리 레카 아카데미를 무너뜨리겠다고? 크, 크큭. 내가 이빨 빠진 호랑이로 보이는 게지? 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이빨 빠진 호랑이라도 그 힘은 굳건하다는 것을!”
스르릉!
카르 교장이 허리춤에 걸려 있던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순식간에 주위로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퍼져 나갔다.
‘이, 이것이 소드 마스터의 힘…….’
알론은 그가 뿜어내는 기운에서 흠칫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르는 올해로 80살을 넘어 가는 노인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보이는 기운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닌,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탈출하려는 용감한 호랑이의 모습이 깃들어 있었다.
스르릉.
스르르릉.
“감히 배신을 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이렇게 순순히 끝낼 것 같나!”
카르가 검을 뽑아 듦과 동시에 아직도 카르를 따르려는 몇몇의 교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또 그들을 제외하고는 이미 다른 이들은 포기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뒤로 몸을 뺐다.
총 몸싸움을 하기로 결심한 듯 보이는 교사들의 수가 여덟 명 정도였다.
알론이 지원받은 병사들과 기사들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교사였다. 검을 가르치는 자들 말이다. 그런 그들이 결코 호락호락한 실력일 리는 없었다.
아무리 알론 측이 우세가 높다고 하지만, 긴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죠?”
지휘권은 알론이 가지고 있었기에 카일이 물었다.
“더 이상 말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들을 강제 진압해야 할 듯싶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면 카르 경은…….”
“제가 맡도록 하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한때 제국에서 손가락에 꼽혔던 기사입니다.”
“힘 닿는 데까지는 해 보도록 하죠.”
“훗. 역시 때로는 대책 없는 모습이 참으로 알론 경답습니다.”
카일이 그의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곧 알론이 배에 힘을 주어 외쳤다.
“이제부터 연행을 거부하는 이들을 강제 진압에 나서겠다. 하지만 범죄자라 할지라도 최대한 그들의 안전을 생각하라!”
“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카토 백작이 지원해 준 기사들과 병사들이 그들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둘러싸인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잔뜩 어려 있었고, 곧 싸움이 시작되었다.
“최대한 안전을 생각하며 속박하라는 명령이 있으셨다! 모두들 신속하고 빠르게 움직여라!”
카일이 힘껏 외치며 싸움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곧, 알론은 카르 교장의 앞에 섰다.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건 알고 계실 텐데…… 꼭 이래야겠습니까?”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다. 아무리 카르와 교사들이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곧 있으면 수적 우세에 밀려 모든 교사들이 수갑을 차게 될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이들이 하는 행동은 최후의 발악인 것이다.
“후, 후후후. 이대로 끌려가면 왠지 억울할 것 같아서 말이네. 또 이제까지 나 때문에 이런 일에 가담한 이들이 이렇게 쉽게 끌려간다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나.”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알론도 곧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와 함께 카르의 검에서 푸른색의 오러가 맺혔다.
‘저것이 소드 마스터의 오러 소드…….’
알론은 찬란하게 푸른 빛을 뿜어내는 오러 소드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러 소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순간적으로 몸의 근육이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그의 몸은 긴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드 마스터와 소드 익스퍼트의 격차는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카르의 나이가 많았기에 소드 푸른 빛이 옅다는 점이었다.
“으라아압!”
나이에 맞지 않은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카르가 달려나왔다. 알론의 검에도 어느새 짙은 하얀색의 오러가 맺혔다. 어느덧, 꾸준한 연습으로 어느 정도 오러를 잡 잘아낼 수 있는 상태가 된 알론이었다.
챙! 챙챙!
그와 카르의 검이 부딪치며 마치 한밤중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현상을 만들어 냈다. 하나의 폭죽은 푸른색이고, 또 하나의 폭죽은 짙은 하얀색인 것 같은 현상 말이다.
챙!
부르르르.
“호오, 생각보다 높은 경지에 이른 장학사 분이셨군?”
“여, 역시 소드 마스터는 다르다 이거군요.”
둘의 검이 한 곳에 부딪쳐 힘겨루기를 했다. 카르가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낱 황궁에서 장학사로 내려온 끽해야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나 될 줄 알았던 알론이 최상급의 힘을 보유하고 있자 놀란 것이다.
또, 카르가 놀란 것처럼 알론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검의 오러는 옅어졌다고 하지만, 그 힘만큼은 아직도 굳건했기에 절로 몸이 떨려 오고 있었다.
챙!
둘이 힘겨루기를 끝내고 검을 서로 쳐 냈다. 거리를 벌린 알론이 자신의 검에 미세하게 생긴 균열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큰일이다. 역시 소드 마스터의 오러와 익스퍼트의 오러는 그 강도 자체가 다르다는 건가…….’
소드 마스터가 뿜어내는 푸른색의 오러는 익스퍼트의 오러에 비해 1.5배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카르의 괴물적인 힘과 또 그의 오러의 힘으로 인해, 익스퍼트 최상급의 오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알론의 검임에도 불구하고 균열이 생긴 것이다.
알론이 낭패라는 생각을 감추지 못했다. 이대로 검이 깨져 버린다면 자신의 패배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뒤로 내뺄 수는 없었다.
자신은 엄연히 지금 주위의 이들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 그런 사람이 추하게 몸을 빼다니, 그것은 그로서는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 해 봐야겠군…….’
거리를 벌리고 카르의 눈치를 살피던 알론이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 냈다. 이제까지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가능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봤다.
그것은 바로 단전에 있는 마나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엄연히, 심장에 모일 수 있는 마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마나의 한계가 곧 오러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 심장에 어느 정도의 마나를 쌓을 수 있느냐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경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심장 주위에 모인 마나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을 때가 바로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것이었다.
알론은 이런 이론을 이용하여 비록, 자신의 심장에 모인 마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만 단전에 있는 마나와 심장의 주위에서 흐르는 마나를 합쳐서 검에 함께 배출해 보기로 생각한 것이다.
이미 꾸준한 노력 덕분에 이제까지 단전에 어느 정도의 마나를 축적해 놓은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알론은 그 축적된 마나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후우웁. 후우우.”
알론이 마치 단전호흡과 마나호흡을 같이 하는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를 반복하였다. 단전호흡과 마나호흡을 번갈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었지만 곧 단전에 모인 마나와 심장에 모인 마나가 서로 위아래로 이동하려는 것처럼 움직임이 활성화되었다.
알론은 그 두 개의 섞이지 않는 기운을 섞기 위해 노력했다.
“뭐하는 거지?”
갑자기 심호흡을 하는 그로 인해 카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에도 알론은 묵묵부답이었다.
알론은 현재 자신의 한계치까지 두 마나를 섞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이제까지 이렇듯 두 개의 호흡을 번갈아 가며 노력을 해 온 바가 있었기에 호흡 부분에서는 별문제가 없었고, 곧 섞이지 않던 두 개의 마나가 기이하게 섞여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기름과 물이 섞인,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두 개의 것이 섞인 것처럼 말이다.
알론은 몸의 정중앙 명치 부분에서 회오리처럼 돌며 섞인 두 기운을 검 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극심한 고통이 팔로 와 닿았다. 아무래도 평소의 몸의 한계보다 더욱더 많은 양의 마나를 검 쪽으로 보내는 것이었기 때문인 듯싶었다.
지이이잉.
“거, 검이……?”
모든 마나가 검 쪽으로 향하자 검에서 빛이 맺혔다. 하지만 그 빛에서 흘러나오는 색은 이제껏 이스론트 대륙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빛이었다.
알론의 검에서 생겨난 오러의 색은 초록색이었다.
“오, 오러 그린 소드?”
그의 검에서 초록색으로 얕게 흘러나오는 검을 본 카르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렸다. 이제까지 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오러의 색. 오러의 색은 단순하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익스퍼트들이 사용하는 하얀색의 오러. 그리고 소드 마스터가 사용하는 푸른색의 오러가 말이다.
하지만 알론이 보여 주는 검의 색은 그 어디에도 연관이 없어 보였다. 오직 카르의 머릿속에는 오러 그린 소드라는 말만 맴돌 뿐이었다.
“자, 자네는 대체…….”
“…….”
알론도 속으로 내심 놀라고 있었기에 그의 놀라움에 가득 찬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의 검을 내려다봤다.
자신의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는 정보를 아무리 끄집어내 보아도 초록색의 오러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자신이 최초로 일궈 낸 것이라는 뜻이었다.
속으로 절로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참아냈다. 현재는 전투 중이었다.
스으윽.
알론이 검을 세웠다.
“후, 후후후후. 후후후! 검으로 이야기하자는 것인가!”
놀라움의 표정이었던 카르가 알론이 검을 세우자 이내 고개까지 뒤로 젖혀 가며 웃어 젖혔다.
“좋다! 으아압!”
그러고는 먼저 선제공격에 나섰다.
챙! 챙챙!
확실히 단전에서 모였던 마나와 가슴에 모였던 마나가 합쳐지자 마나의 양이 불어났다. 또 소드 마스터인 카르의 검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기색이었다.
한마디로, 이제는 둘의 실력 싸움이 되는 것이었다.
챙! 챙챙챙챙!
둘의 검이 매섭게 불꽃을 튀기며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 누가 우세라고 보기에도 그랬다. 이렇듯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고, 또 아직은 몸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알론이 오랜 경험자이고 손에 꼽히는 소드 마스터인 카르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이유는 카르가 늙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둘 모두에게 하나씩 크나큰 단점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둘의 상박은 오래가지 못했다. 알론은 젊은 피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 카르는 달랐다. 점차 숨소리가 거칠어졌으며, 또 커졌다. 그 때문에 결국 검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던 카르의 검이 알론의 검에 튕겨져 나갔다.
챙!
“이, 이겼다…….”
이미 카르를 제외하고 모든 상황은 끝난 상태였다. 반항하던 모든 교사들이 결국 수적 우세에 밀려 손에 해루석으로 만들어진 수갑을 차고 있었다.
해루석이란 마나를 흡수하는 신비한 돌이었다. 이 해루석을 손에 차게 되면 마나를 사용하려고 할 시 모든 마나를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마법을 사용하거나, 혹은 검에 오러를 불어넣을 수도 없었다.
뭐 그렇다고 하여도 어차피 수갑을 차게 되면 검을 휘두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긴 했지만 말이다.
“후, 후후후…… 결국 이렇게 끝나는군.”
검이 튕겨져 나가고, 카르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허탈함만이 있는 듯하였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알론이 승리하였음에도 환호를 지르거나, 혹은 그에게 달려와 포옹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만큼 알론이 보여 주었던 오러 그린 소드는 신선하고도 매서운 충격이 된 것이다.
“알론 경.”
“카일 경, 어서 카르 교장을 체포하도록…….”
휘청.
카일이 알론에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으로 다가가려던 때였다. 알론은 갑자기 몸의 힘이 풀리며 단전에 남아 있던 모든 마나가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검에 맺혔던 오러도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마도 갑작스럽게 단전의 마나와 심장 쪽의 마나를 함께 사용해 일어난 상황 같았다.
곧 알론이 단전 쪽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알론 경! 알론 경!”
정신이 흐릿해지는 알론의 귀에는 자신을 흔들며 외치는 카일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