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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16화)
7장. 테스칼 도시(4)
‘동물 해체 스킬이 생겨 좋기는 하다만… 다른 스킬은 거의 발전이 없다. 땅굴 파기는 그렇다 쳐도 검술하고 발차기는 전투 중에 자주 써먹었야 했는데 팔꿈치만 써 댔으니 스킬 경험치가 거의 오르지 않는 것도 당연한 건가. 앞으로는 검술하고 발차기도 고루 써 줘야겠군.’
“웨드 님, 사냥 계속하죠.”
그런데 그때 웨드가 난처한 기색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지금은 밤이라 몬스터가 더 강해집니다. 장비도 수리할 겸 잠깐 테스칼에 들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뭐 그게 좋겠군요.”
“그, 그럼 갑시다.”
어느 정도 가자 웨드가 입을 열었다.
“목마른데 마실 거나 먹으면서 가죠.”
웨드는 물이 든 컵 2개를 꺼내더니 그중에 하나를 카일러에게 넘겼다.
하지만 카일러는 전직 암살자였다. 확실히 믿을 만한 자가 아니면 아무나 건네는 음식을 먹지는 않았다.
“전 괜찮습니다. 웨드 님이 드세요. 아까 밧줄 던져 대느라 힘드셨을 텐데.”
“아, 아뇨. 전 괜찮습니다. 오히려 카일러 님이 타조 머리 두드려 대느라 힘드셨을 겁니다.”
“전 그 정도로는 끄떡 없습니다. 웨드 님이 드세요.”
카일러가 계속 거절하자 웨드는 당황한 듯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 성의를 무시하시는군요… 주시죠.”
웨드는 카일러에게 건넸던 잔을 뺐더니 모두 마셨다. 그러더니 자신의 잔에 있는 물까지 마시려 했다.
‘독 탄 게 아닌가? 내가 괜히 쓸데없는 의심을 했나 보군.’
“죄송합니다.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그 물이라도 마실게요.”
카일러는 웨드의 손에 들린 물잔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카일러는 물을 모두 들이켰다.
‘역시 아무 이상 없군. 나의 쓸데없는 직업병이었어.’
“카일러 님은 역시 남자답군요.”
“흠흠…….”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그나저나 무기 수리하는데 얼마나 들죠?”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 커헉!”
그런데 그때 갑자기 웨드가 쓰러졌다. 몸이 마비된 듯했다.
‘설마… 진짜 물에다가 독을 탔던 건가? 그렇다면 나도?’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카일러도 이내 쓰러졌다.
“독에 몸이 마비되었습니다.”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인 독은 아니지만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비가 서서히 풀리며 20분이 지나면 완전히 풀립니다.”
독을 먹었지만 특별히 데미지를 입거나 몸을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못 움직일 뿐이었다.
“이 개헥… 새…기…가 가핰 감힉! 주겨 버리게따!(이 개새끼가 감히! 죽여 버리겠다!)”
카일러가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하지만 혀까지 마비된 터라 제대로 발음이 되지 않았다.
“거허억…!(커헉!)”
웨드는 도망가려 애를 썼으나 마치 굼벵이가 기어가는 듯한 속도였다. 카일러도 굼벵이가 기어가는 듯한 속도였지만 분노를 연료로 미친듯이 쫓아갔다.
이내 웨드를 덥쳤고 안간힘을 다해 웨드의 면상에다 박치기를 해 댔다.
“크흐윽!(크흑!)”
그리고 니킥을 갈겼다. 그곳에. 약한 힘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기술이므로 현재 상황에 아주 적합했다.
“크으…윽! 이, 이 고통…으은!(크윽! 이 고통은!)”
모든 것이 현실 같은 뉴 얼스는 고통까지 그대로 구현해 냈다. 물론 실제 고통의 반의 반 정도의 고통이지만 그곳은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곳이었다. 반의 반의 고통?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화날 대로 화난 카일러는 무릎에 온 힘을 집중시켜 타격했다.
“하…하, 그러허…었다! 바하…로 그 고통…이다!(하하! 그렇다! 바로 그 고통이다!)”
“제바…알… 그으…거…마는…!(제발 그것만은 자제를!)”
하지만 카일러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쉴 새 없이 온 힘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고 웨드는 정신줄을 놓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카일러의 등짝을 밟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웨드가 반가움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젠장! 일행이 있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 다시 부활할 때도 됐군. 이런 머저리 같은 놈, 사기를 당하다니 젠장! 아무나 믿는 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뒤를 돌아본 카일러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곳에는 캥거루가 있었다.
“너 일부러 늦게 왔지?”
웨드가 울먹이며 말했다.
“뭐 사실 니가 맞는 것 좀 구경하다가 왔어.”
“소환수 주제에 주인을 뭘로 보는 거야?!”
“아아, 그만.”
‘자, 잠깐! 동료가 아니라 소환수였고… 그게 바로 저 캥거루란 말인가? 내가 캥거루하고 웬수 진 거라도 있는 건가? 도대체 캥거루 따위가 왜 말을 하는 거야!’
카일러는 테스터 선발 시험 당시 첫 대련 상대였던 ‘싸가지 없게 말하는 캥거루’를 떠올렸다. 그 캥거루보다 조금 작고 생김새도 좀 다르지만 싸가지 없게 말하는 건 똑같았다.
“그나저나 참 끈질기네. 내가 잠깐 멀리서 구경 좀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주제에 열심히 웨드의 그곳을 공격하더군.”
캥거루가 거만하게 카일러의 등을 꾹꾹 밟아 대며 말했다.
“이 미친 캥거루 새끼가?!”
“어! 이제 혀는 마비가 완전히 풀렸나 보네? 그런데 말이야. 루스턴 님이라고 부르렴. 거두절미하고 너 슬란 마을에서 타이푼 잡고 마을 사람들한테 축하 세례받은 놈이지?”
거만한 캥거루가 이번에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카일러를 깔고 앉으며 말했다.
“그, 그걸 어떻게?!”
“이거 멍청이 아니야? 마을 사람들이 가게문까지 닫고 잔치를 하길래 그 근처에 있던 마을 경비병한테 물어봤지. ‘카일러 영웅님’이 잡으셨다는데?”
‘젠장… 유명해지면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 못지않게 단점도 존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을 주민들에게 내 이름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야 한다. 아니 애초에 잔치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카일러 영웅니임∼”
“이 캥거루 자식이!”
“루스턴 님이라고 부르랬지? 닥치고 네가 가진 돈 다 내놔!”
“풉, 내가 내놓을 것 같냐? 더러운 캥거루 자식아!”
“뭐 정 그렇다면 나도 방법이 있지.”
캥거루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꺼냈다.
“자, 이거 보이지? 이것만 있으면 니가 주고 싶든 말든 뺏을 수 있단다. 후훗.”
“그까짓 종이 조가리가 뭔데?! 허풍 떨지마!”
“에혀, 완전 초보구만. 이거는 ‘훔치기’ 주문서, 이거는 ‘엿보기’ 주문서라고 하는 거란다. ‘훔치기’ 주문서는 타겟의 체력이 10% 이하일 때 쓰면 50%의 확률로 지목한 아이템을 빼앗을 수 있지. 그리고 ‘엿보기’ 주문서는 일정 시간 동안 타겟의 상태 창이나 스킬 창, 아이템 창을 엿볼 수 있는 거지. 이걸로 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훔치기’ 주문서를 난사하기만 하면 끝. 주문서를 여러 장 준비해 뒀으니까 계속 써 대면 결국은 뺏을 수 있게 되겠지? 아! 역시 난 똑똑한듯. 이제 조금 알겠냐? 하등한 인간아.”
캥거루가 혀까지 내밀며 카일러를 약올렸다.
“이, 이 자식이! 나중에라도 반드시 쫓아가 죽이겠다!”
“글쎄, 이미 우린 도망치고 없을 텐데? 뭐, 그럼 이제 시작하지.”
캥거루가 ‘엿보기’ 주문서를 쭉 찢자 보라색 빛이 나왔다. 곧이어 캥거루가 카일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보라색 빛이 카일러를 둘러쌌다.
“좋아, 됐다! 호오, 너 아이템 좋은 거 갖고 있는데? 그럼 즐거운 시간되렴∼”
캥거루는 카일러를 신나게 밟아 대기 시작했다.
“큭! 이 미친 캥거루 저주한다!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아나, 그냥 네 운명을 받아들여. 자꾸 시끄럽게 굴면 니가 미친듯이 아플 만한 데만 때린다?”
‘미친듯이 아플 만한데? 이런 젠장!’
“가, 감히 캥거루 주제에 날 협박해!”
카일러는 캥거루의 위험한(?) 협박에 더 분노했다.
그런데 그때 웨드가 입을 열었다.
“죽이지는 마!”
웨드가 간절히 말했다.
‘저 자식이 병 주고 약 주고 나를 갖고 노네?!’
카일러는 웨드가 죽이지 말라고 소리치자 고맙긴 커녕 그 이중성에 치가 떨렸다.
“뭐 어때?”
“어차피 죽이지 않아도 아이템은 뺏을 수 있잖아. 그것만 팔아도 충분해.”
“에혀, 물러 터지긴. 살려 두면 곧 마비가 풀릴 텐데 그럼 우리가 도망갈 시간도 없잖아!”
“갖고 있는 독약 다 꺼내서 먹이면 돼지.”
웨드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혀… 알았어. 독약 다 꺼내 봐.”
웨드가 캥거루에게 독약을 건넸다. 독약은 색깔이 투명했다, 마치 물처럼. 그래서 물에 섞은 것이었다.
‘서, 설마 진짜로 나한테 그딴 걸 또 먹이겠다고? 그것도 갖고 있는 거 다 털어서 몽땅 먹인다니… 만약 그렇게 되면 도시 안에서만 로그아웃이 되기 때문에 마비가 풀릴 때까지 이 차가운 땅바닥에 자빠져 있어야 한다. 먹으면 엿 된다!’
카일러는 이를 꼭 다물고 면상을 땅에 처박았다.
“아이고, 이놈 봐라. 안 먹을려고 애쓴다, 애써. 겁쟁이 자식 같으니.”
‘거, 겁쟁이라고?! 더러워도 지금은 참아야 한다. 나중에 배로 갚아 주마.’
캥거루의 도발에도 카일러는 묵묵히 면상을 땅에 처박았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어차피 독 때문에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데 얼마나 버틸 것 같아?”
캥거루는 말을 마치자마자 ‘카일러 뒤집기’를 시도했다.
“꾸오오오오오오!”
괴상한 소리까지 내며 안간힘을 쓰는 캥거루를 마비된 몸으로 당할 리가 없었다.
마침내 카일러는 캥거루에게 몸이 뒤집혔다. 땅에 처박고 있던 면상이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고 이제 캥거루가 강제로 카일러의 입에 독약을 쑤셔 넣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자! 이제 끝이야! 그냥 순순히 입을 벌리시지?”
“니, 니가하지게에 뭐허언데!(니까짓 게 뭔데!)”
카일러가 어설픈 복화술을 했다. 덕분에 혀가 마비된 것처럼 발음이 엉망이었다. 입을 벌리면 끝장이기 때문이었다. 불타는 카일러의 발악이었다. 하지만 캥거루도 만만치 않았다.
캥거루는 카일러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려 대며 카일러의 입을 벌리려 애를 썼다.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비혀어러하아노옴!(비열한 놈!)”
“풉! 뭐라는 거?”
캥거루는 카일러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카일러의 복부를 때렸다. 그리고 마침내 카일러의 주둥이가 함락되고 말았다.
“커허억… 욱!”
“크크, 맛있게 먹어라!”
결국 통증에 이기다 못한 카일러는 입을 벌리고 말았고 캥거루는 그 틈에 잽싸게 독약병을 카일러의 입에 쑤셔 넣었다.
독약이 카일러의 목구멍을 넘어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들어 갔다.
“크흑… 네놈들 반드시… 반드시 죽일 거야.”
카일러는 타오르는 분노와 억울함 때문에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독약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