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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18화)
8장. 몬데릭 영주(2)


방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초췌해 보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쉴 틈 없이 계속 쿨럭대는 것이 병을 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쿨럭… 저분들을 부디 용서해 주게나.”
“어르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놈들이 제 피 같은 아이템을 2개나 훔쳐 갔고 그리고 나를 개 패듯이 밟았습니다. 내가 왜 저놈들을 용서해 줘야 합니까?”
카일러에게 있어 자존심을 짓밟고 아이템을 빼앗아 간 그놈들을 그냥 용서해 준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
“쿨럭… 이분 말이 사실인가?”
남자가 웨드와 루스턴을 보며 말했다.
표정에 둘 다 대답하길 망설이는 것이 역력히 드러났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웨드가 입을 열었다.
“마, 맞습니다만… 아저씨하고 모리스는 빨리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템을 팔면 치료제를 살 수 있습니다. 아저씨하고 모리스를 살릴 수 있단 말입니다!”
웨드가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
“자네가… 쿨럭… 나와 내 아들 녀석을 생각해 주는 건 내 잘 아네만… 그렇다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해선 안 될 짓이네. 돌려주게나.”
“하, 하지만!”
“어서 돌려주게나… 쿨럭.”
“알겠습니다…….”
남자가 계속 돌려주라고 하자 결국 체념한 듯했다.
“지, 진짜 돌려주려는 거야?! 그러면 아저씨하고 모리스는 죽는단 말이야!”
“그렇다고 물건을 훔치는 건 아니었어…….”
“제, 젠장…….”
루스턴은 상당히 아쉬워하는 듯했다.
‘저 캥거루 자식이! 아무리 딱한 사정이 있어도 그렇지 내 물건 내가 받겠다는데 저렇게 대놓고 불평을 해 대?!’
카일러는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에라도 캥거루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아이템을 다 받고 하려고 꾹꾹 참았다. 지금 이 분위기에서 폭력을 썼다가는 웨드가 생각을 바꾸고 아이템을 안 돌려줄 것 같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카일러 님. 여기 있습니다.”
웨드가 카일러에게 슬러크의 검을 건넸다. 카일러는 그것을 낚아채듯 잡았다.
‘드디어 다시 돌려받았군!’
카일러는 슬러크의 검을 아이템 창에 잘 보관한 다음 웨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타이푼 견갑은?”
“아, 그게 이미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 경매에 올려서 취소하면 벌금이…….”
“너 미쳤냐? 그럼 내 아이템 팔아넘기겠다는 거네?”
“아이템 판 돈을 드리면 어떻습니까? 지금 타이푼 견갑을 300만 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300만 원? 내가 테스터로 활동하며 월마다 받는 급여가 100만 원. 300만 원이면 그 세 배다. 하지만 타이푼 견갑은 내 전력의 중요한 부분이다. 렙제가 있어 언젠가는 쓸모 없게 되어 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닥치고 취소해!”
“알겠습니다…….”
결국 웨드는 보증금을 날리고 말았다.
“여기 타이푼 견갑입니다.”
이번에도 카일러는 아이템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드디어! 다 돌려받았다!”
“축하드립니다.”
그때 웨드가 도둑놈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해 댔다.
“야.”
“네?”
“아이템은 돌려받았지만 빼앗긴 내 자존심은 어쩔 거냐?”
카일러가 웨드와 루스턴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그게…….”
카일러가 분노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보자 웨드와 루스턴은 구석으로 도망가 쭈그려 앉아 서로 부둥켜 안고 벌벌 떨었다.
“카, 카일러 님의 자존심은 제가 다른 것으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새 존댓말을 하는 캥거루, 루스턴을 보며 카일러는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태도가 확 바뀔 수 있는 것인지 비록 캥거루이긴 하지만 타고난 정치가 기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잃어버린 자존심은 니들 자존심을 짓밟으면 회복이 될 것 같은데?”
카일러의 공포스러운 말에 웨드와 루스턴은 할 말을 잃었는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서로를 더 꽉 끌어 안았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름이 카일러인가? 쿨럭.”
“그렇습니다… 어르신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카일러는 자신의 아이템을 돌려받은 것뿐이지만 자신의 아이템을 팔았다면 남자와 그의 아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공연스레 죄책감마저 들었다.
“난 모르튼이라 하네. 카일러… 내 얘기를 들어 보게나. 이곳… 쿨럭… 높으신 분들과 이방인들은 나와 내 아들을 도와주기는 커녕… 쿨럭 … 가난하다며 천대하기만 했었네. 그리고… 쿨럭… 형편이 우리와 비슷한 주민들은 어려운 형편에 서로를 도와주기는 커녕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다네. 그런 우리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바로 저분들이네… 쿨럭. 저분들을 용서해 주면 그 은혜 잊지 않겠네.”
카일러는 고민에 빠졌다.
‘모르튼이 은혜를 잊지 않는다 해도 너무 가난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보상도 없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을 떠나 곧 죽어 가는 사람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다. 비록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게임 속 NPC라고 해도…….’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네… 쿨럭.”
카일러는 결국 모르튼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모르튼의 상태가 정말 심각해 보였다.
“도대체 무슨 병입니까?”
“허허… 사실 병명도 밝혀지지 않았다네. 쿨럭… 확실한 것은 이곳 테스칼 도시 내에 점점 더 퍼지고 있는 병이라는 것이네. 그 때문에… 내 아내도 죽고 말았지.”
“유감입니다… 그런데 이곳만 그렇다는 겁니까?”
“그렇다더군.”
‘도시 내에서만 퍼지는 병이라…….’
“그런데 도대체 치료제가 얼마입니까?”
“허허… 나 같은 가난뱅이는 감히… 쿨럭… 쳐다보지도 못할 가격이지. 한 명 치료하는데 필요한 치료제 가격이 총 400 골드라네. 내 불쌍한 아들 녀석이라도 치료하고 싶지만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내 형편으로는 도저히…….”
모르튼은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치료제가 1인당 400 골드면 확실히 가난한 주민들에게는 큰돈이었다. 일반 유저들도 레벨 10 정도 때는 많아야 1골드나 2골드 정도 갖고 있는 것이 다였다.
유저들은 사냥을 통해 얻은 아이템을 팔아 그나마 조금이라도 버는데도 그 정도였다. 하지만 모르튼처럼 일반 주민, 그것도 몸이 아픈 사람이라면 푼돈밖에 벌 수 없는 소일거리도 하기 힘들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치료제 값이 비싼 겁니까?”
치료제가 1인당 400골드나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아프면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카일러는 400골드나 하는 치료제 가격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사실… 쿨럭… 몬데릭 영주 때문에 가격이 그렇게 올라간 걸세.”
“영주 때문에요?”
“그렇네. 원래 치료제 가격은 1인당 1골드였네. 그런데 병이 급속이 퍼지자… 쿨럭… 몬데릭 영주가 치료제 가격을 조금씩 올리더니 이제 400골드가 된 것이네. 그렇게 올린 치료제 가격 중 390 골드는 영주가 가져간다고 하더군…….”
“하지만 그렇게 비싸면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귀족들이나 대상인들, 기사 같은 부자들은 그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치료제를 살 테니까 몬데릭 영주가 그것을 노린 것 같네.”
“…….”
카일러는 이 잔인한 상황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뉴 얼스. 게임 속 세상. 하지만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카일러가 이곳에 오기 전에 살았던 세계. 그곳에서 카일러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부조리한 짓을 일삼는 영주 때문에 잃고 말았다. 그런데 비록 이곳이 게임 속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와 같은 부조리한 일이 반복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지만 이미 지나 버린 자신의 끔찍한 과거가 되풀이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카일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치료제를 훔치는 겁니다.”
카일러의 말에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중 캥거루, 루스턴이 대놓고 불만을 표현했다.
“지금 장난해?! 자기 물건 훔쳤다고 미친듯이 팰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남의 물건을 훔치자고 하네?!”
“모르튼 아저씨하고 모리스를 살리고 싶어하는 게 아니었나?”
“그, 그렇지만 치료제가 있는 물약 상점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고!”
“마, 맞습니다. 카일러 님. 우리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흠흠. 아무튼 불가능합니다. 카일러 님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웨드가 루스턴을 거들었다. 중간에 ‘그래서 카일러 님을 털은 겁니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참나, 나한테 독약 먹이고 아이템 훔쳐갈 때는 언제고 ‘카일러 님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라고? 허, 어이가 없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아니라 니들이 훔치는 것이란다.”
카일러의 말에 웨드와 루스턴이 얼 빠진 표정으로 카일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우리가 병사들한테 죽었으면 좋겠단 말입니까?!”
웨드가 바닥에 엎어져 땅바닥을 치며 절규했다.
‘아까는 차라리 죽여 달라더니… 어이가 없군. 역시 안 되겠어. 나중에 손 좀 봐야겠어.’
카일러는 절규하는 웨드와 흥분한 루스턴을 내버려 둔 채 모르튼에게 말을 걸었다.
“치료제가 도시 내에 넉넉하게 있습니까?”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하네…….”
‘치료제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귀족, 대상인, 기사 등 부자들도 병에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치료제를 미리 다량 사 놓거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병에 걸려 치료제를 사게 될 겁니다. 그런데 그들만 치료제를 산다고 해도 자칫하면 부족할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다고 하네. 그 구실로 몬데릭 영주가 치료제 가격을 올렸으니까…….”
그때 웨드가 절규를 멈추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 그대로 구실입니다. 영주는 돈에 미친 겁니다.”
“뭐 어쨌든, 치료제가 부족하다면 병사들에게 줄 치료제는 없겠군요. 그리고 그들이 치료제를 사비로 살 능력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병사들을 잘 선동하면 이번 일이 더 쉬워질 겁니다.”
“자, 자네. 콜록… 설마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병사들이 아무리 불만이 많다고 해도… 콜록… 그들도 식솔들이 있네. 반역을 했다간 그들은 물론 식솔들도 죽게 될 텐데 그들이 가담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제게 좋은 생각이 있답니다. 굳이 그들이 가담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가담한다면 더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