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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19화)
8장. 몬데릭 영주(3)


테스칼 도시에 있는 선술집. 이곳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이곳에 들른 마을 주민 두 명이 근처 테이블에 앉아 쉬고 있는 병사 두 명을 힐금힐금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네 그 얘기 들었나? 치료제가 부족해서 돈 많은 것들이 사고 싶어도 못 산다는데?”
“그게 우리랑 뭔 상관이겠나. 어차피 가격이 너무 비싸 구경도 못하는 약을.”
“재밌는 건 그게 아닐세. 그 못돼 먹은 영주 놈이 약이 부족하니까 자신의 기사단만 챙기고 병사들을 나 몰라 한다더구만.”
“뭐? 그게 사실인가? 분명 그 영주놈이 병사들도 책임진다고 큰소리 쳐 대지 않았던가?”
“그러니 재밌는 것이지. 병사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지 않나?”
그런데 병사들은 치료제 얘기와 영주 얘기가 나오자 귀를 쫑긋 세우며 모든 이야기를 들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지금 영주님 얘기를 하는 중인가?”
“그, 그럴 리가요.”
“시끄러워! 다 들었어! 순순히 털어놓으면 봐줄 수도 있지만… 만일 거짓말을 했다가는.”
그러자 마을 주민은 모든 얘기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병사들이 들은 이야기조차도 진실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모든 이야기는 거짓이었다.
그 이야기는 전부 카일러가 지어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근처 테이블에 카일러와 웨드가 잔뜩 긴장한 채 앉아 병사들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웨드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카일러 님. 과연 먹혀들까요?”
“조용히 해. 끝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어.”
카일러는 웨드의 물음에도 웨드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병사들을 주시했다.
“……제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부디 저희 목숨만은.”
“그래서 영주가 우리가 죽든 말든 치료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그, 그렇습니다만… 그냥 소문일 뿐입니다.”
“시끄럽다! 이번만은 그냥 모른 척하겠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발각되면 그땐 우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 가자!”
병사들이 선술집을 나갔다.
“카일러 님. 아무래도 안 먹히는 것 같습니다. 역시나 그냥 떠도는 소문이라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따라가 보자.”
“벼, 병사들을요?”
“눈치채지 못하게 따라가면 상관없어.”
카일러는 병사들을 몰래 따라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웨드 역시 카일러를 따라가기는 하지만 극도로 불안해했다.
“카, 카일러 님. 병사들이 눈치채기라도 하면 우린 끝장입니다!”
“조용히 하라니까! 그냥 조용히 하고 있어.”
카일러는 병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따라다니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아까 그 주민들이 하는 말이 사실인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몬데릭 영주님이 분명 우리들 몫으로 치료제를 배분해 준다고 했잖아.”
“주기로 약속한 날짜가 벌써 5일 전이잖아. 아무래도 뭔가 찜찜해… 영주님한테 물어보러 가야겠군.”
“영주 성격 드러운거 너도 알잖어! 겁도 없이 뭘 한다고?”
“그럼 넌 여기 있든가.”
병사 중 한 명이 영주가 있는 곳으로 가자 나머지 한 명도 마지못해 따라갔다.
‘역시나 먹혀들었군.’
“카일러 님 먹혀들긴 한 것 같은데… 근데 기사들만 챙긴다는 등 병사들이 영주에게 따지고 들면 금방 들통나지 않을까요?”
‘몬데릭 영주는 병사들에게도 치료제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어떤지 대충 감이 온다. 치료제를 받지 못하면 병사들도 인간이니 당연히 불안해 할 테고 그 불안감이 길어질수록 영주에게 불만이 잔뜩 쌓이겠지. 5일이라고 했었지? 그 정도면 병사들도 충분히 약올랐을걸.’
“그럴 리는 없을 걸. 날 못 믿는 거야?”
“그, 그게 아니라…….”
“그거로군.”
카일러가 웨드를 째려보자 악마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거나 병사들이 예상한대로 움직여 줘야 이번 일을 성공하기가 쉽다.’
카일러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기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테스칼 도시뿐만 아니라 이 도시가 속한 국가인 슬덴브르크 왕국에서 알아주는 유명 인사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뉴 얼스를 접어야 할 수도 있었다.
“몬데릭 영주님, 크블란입니다.”
테스칼 기사단의 단장 크블란이 말했다. 목소리가 너무 걸걸하여 듣기 거북할 정도였다.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냐.”
몬데릭 영주는 아직도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신경질을 냈다. 말할 때마다 목에 붙은 살이 출렁거렸다.
“아까부터 병사 두 명이 영주님께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냥 보내. 귀찮은 놈들.”
“가라고 해도 계속 버티고 있습니다.”
“그깟 병사 놈들 두 명을 못 쫓아내느냐!”
잠이 모두 달아난 몬데릭 영주는 이제 버럭 소리까지 질러 댔다.
“치료제 배급을 미루고 있어 병사들이 불만이 많습니다. 잠시만 얘기를 들어주고 다시 주무십시요. 그때도 시끄럽게 군다면 제가 진짜로 쫓아내겠습니다.”
“귀찮은 것들같으니라고.”
몬데릭 영주는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병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갔다.
“이놈들, 아침부터 뭐 그리 할 말이 많다고 날 귀찮게 하는 것이야!”
“몬데릭 영주님. 영주님이 저희 병사들과 식속들 몫의 치료제를 주기로 약조한 날이 벌써 5일 전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치료제를 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나중에 준다고 했을 텐데? 감히 나한테 대드는 것이냐?”
영주가 오히려 발끈하며 소리쳤다. 안 그래도 불만이 잔뜩 쌓여 있는 병사들에게 되레 화를 내자 병사들도 눈에 뵈이는 것이 없었다.
“영주님! 분명 약속하셨잖습니까?!”
“아니, 이놈이! 저놈들을 당장 감옥에 처넣어라!”
하지만 주변에 있는 병사들은 머뭇거릴 뿐이었다.
“이, 이놈들이! 내 말이 말 같지 않느냐?”
그런데 그때 옆에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가 입을 열었다.
“영주님, 저도 궁금합니다. 제 아내가 지금 병 때문에 앓은 지 8일째입니다.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제를 주기로 약속한 지 벌써 5일이 지났습니다. 도대체 치료제는 언제 주실 생각입니까?”
“맞습니다, 영주님. 치료제를 언제 주실 생각입니까?”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몬데릭 영주에게 따지고 들자 역시나 되레 화를 냈다.
“네놈들도 한패냐! 크블란 기사단장! 저놈들을 싹 다 옥에 처넣어라!”
“알겠습니다, 영주님! 뭣들 하나! 저놈들을 당장 감옥에 처넣어라!”
그러자 기사단원들이 병사들을 포박하여 감옥에 데려가려 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감옥에 끌려가는 중에도 계속해서 항의를 했다.
“억울합니다! 약속한 치료제를 달라는 게 무슨 죄라고 절 잡아간단 말입니까!”
“영주님! 영주님의 기사단만 치료제를 주고 우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병사들이 감옥에 끌려가며 외치는 소리에 다른 병사들 역시 동요했다. 일부 병사들은 그 말을 듣고 영주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시나 감옥행이었다.
“시끄럽다! 말 같지도 않은 헛소문을 듣고 버르장머리 없게 굴다니!”
잠시 뒤 모든 병사들이 끌려 나가자 크블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영주님. 아무래도 병사들이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병사들에게 치료제를 배급하는 것이…….”
“말도 안 돼는 소리! 치료제 하나만 팔아도 그게 얼마인데 내가 미쳤다고 저런 거지 같은 것들한테 치료제를 그냥 내주겠느냐? 그렇게 치료제가 필요하면 지들이 사비로 사면 될 것 아니냐?”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런데 다른 병사들이 계속해서 반항을 할 텐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 다 감옥에 처넣어 버려.”
“영주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미 자기 배를 채운 크블란이 병사들까지 신경 쓸 리 없었다.
영주 집무실 밖 상당수의 병사들이 포박당한 채 감옥이 있는 곳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테스칼 도시에 있던 유저들이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봐봐! 반란이라도 일으켰나?”
“반란은 무슨… 아무리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어도 그렇지 그건 아니다.”
“그럼 반란이 아닌데 뭐 저렇게 떼거리로 끌려가냐?”
“글쌔… 병사들이 끌려가면서 치료제를 달라고 외쳐 대는 것 같던데.”
“아, 그러고 보니 요즘 NPC들이 질병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던데… 호, 혹시!”
“왜?”
“특별 이벤트라도 있는 것 아닐까?”
“오! 그러면 좋겠다.”
질병이 도시 곳곳에 퍼지고 병사들이 감옥으로 끌려가도 유저들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저들에게 이곳은 게임 속 세상. 즐기기 위해 뉴 얼스에 접속하는 것이지 이곳에서 현실에서 하던 고민을 그대로 하려 온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사들이 떼거리로 잡혀가는 것을 보고도 강 건너 불 보듯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 테스칼 도시 주민들에게는 병사들이 잡혀가는 것을 마음을 조리며 쳐다봤다. 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도시 주민들이 치료제를 얻도록 하게 하기 위해 카일러가 계획한 작전 중에 하나다. 카일러는 도시 주민들에게 헛소문을 퍼트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 소문으로 인해 병사들이 몬데릭 영주에게 더 이상 따르지 않고 또한 영주의 기사들과 분열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인간이란 원래 어느 정도 그럴듯한 얘기는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아도 곧이곧대로 믿는다. 특히 자신의 코가 석 자인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져 그런 특성이 강해진다.
카일러는 그것을 노린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다수의 병사들이 감옥에 갇히게 됐고 그나마 있는 병사들도 영주를 믿지 못하지만 마지못해 따르는 척하는 병사들이다.
따라서 치료제를 지키는 병사들이 줄어들어 경비가 허술해졌고 훔치는 일이 더 수월해진 것이다.
처음 카일러가 자신이 계획한 작전을 말하며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카일러를 도운 것이었다.
사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마을 주민들의 마음속에서는 희망이 생겼다.
“어쩌면… 치료제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쉿. 이방인들이나 영주의 수하들이 들으면 끝장일세.”
“그나저나 이제 드디어 아픈 가족들을 치료할 수 있겠구만.”
“자네도 참, 아직은 아닐세. 그분이 이건 계획 중 일부분이라 하지 않았는가?”
마을 주민들이 수근대는 곳 어느 한 곳에서 웨드와 카일러도 테스칼 도시의 병사들이 떼거리로 끌려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일러 님. 이제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가 중요해.”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일을 처리했어도 앞으로 일을 그르친다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된다. 그렇기에 카일러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제 남아 있는 병사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해졌군. 이제 다음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웨드, 이제 뭐해야 하는지 잘 알지?”
“물론입니다. 지금 곧장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웨드는 어딘가로 황급히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