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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20화)
9장. 실행(1)


“아니 이 인간이! 자네가 먼저 내게 시비를 걸지 않았는가!”
“자네가 먼저 날 재수없게 쳐다봤으니까 내가 그리 말한 거지 않은가!”
테스칼 도시 물약 상점 근처였다. 주민 두 명이 서로 박 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병사 세 명이 있었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니가 갔다 와라.”
“나 요즘 허리가 쑤셔. 니가 갔다 와라.”
병사들은 주민들이 박 터지게 싸우고 있기 때문에 마지못해 말리러 가야 했다. 하지만 귀찮은 나머지 서로 일을 떠넘기려고만 했다.
“아나, 핑계는… 이봐, 막내! 니가 갔다 와라.”
“예, 예? 저 혼자서는 무리일 것 같은데…….”
막내 병사가 콜로세움의 전사로 빙의한 듯이 맹렬히 싸우고 있는 주민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가서 칼로 위협해 버려.”
“아, 알겠습니다.”
막내 병사는 진엄하신 상관의 말을 거부할 수 없어 결국 주민이 박 터지게 싸우는 곳으로 갔다.
“그만 싸우시죠.”
“아니, 이놈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니까!”
“아나! 네가 먼저 날 재수없게 쳐다봐 놓고는 그건 시비가 아니다?”
병사가 말리려 해도 주민은 계속해서 싸웠다. 잠시 고민하던 병사는 상관이 시킨 대로 했다.
“빨리 해산하십시오!”
하지만 오히려 주민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그 화살은 병사에게 향했다.
“아니, 이놈이! 어린놈이 감히 어른한테!”
“너! 죽어 볼래?”
“아, 아니… 크헉!”
서로 박 터지게 싸우던 주민은 이제 힘을 모아 경비병을 밟아 대기 시작했다.
“어! 지금 막내가 밟히고 있잖아?!”
이를 지켜보던 병사들은 황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이 인간들이 미쳤나! 감히 병사를 때려?”
병사가 주민에게 겁을 주어 멈추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주민의 반응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더니 누군가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검은 복면을 남자 한 명과 웬 짐승 하나가 있었다.
“걸려들었군.”
“저, 저놈이 뭐라 지껄이는 거야?”
그런데 그때 주변에 싸움 구경을 하던 주민들이 어느샌가 복면을 두른 채 순식간에 달려와 병사들을 밟아 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병사들은 모두 기절하여 땅에 엎어졌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중앙으로 가 큰소리로 외쳤다.
“자, 여러분! 이제 치료제를 챙깁시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웨드. 그리고 옆에 루스턴도 있었다.
“웨드, 이 루스턴의 도움이 그렇게 필요한가? 귀찮다는데 왜 끌고 나와? 내가 없으면 일이 안 풀리는 것이구만?”
“하하, 당연하지. 네 주머니가 얼마나 큰데 좀 써먹어야 할 것 아니냐?”
“쳇. 내가 무슨 장바구니도 아니고.”
“시끄럽고 빨리 가자.”
웨드와 루스턴은 주민들을 이끌고 물약 상점으로 갔다. 도시에 있는 물약 상점이라 그런지 확실히 규모가 컸다.
“치료제 사러 오셨습니까?”
상점 주인이 웨드와 루스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애완동물이 귀엽군요. 그런데 사료값이 장난이 아닐 듯 싶습니다?”
“뭐, 뭐야?!”
“진정해 루스턴. 사실이잖아.”
“나랑 장난해?”
“그리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웨드는 손에 들고 있던 큰 보따리를 꺼내 주인에게 건넸다.
“이게 뭐죠?”
“보면 압니다.”
상점 주인이 보따리를 열어 보자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골드가 들어 있었다.
“이, 이게 도대체 몇 골드나 되죠?”
“이곳에 있는 치료제를 개당 1골드로 계산해서 싹 쓸어 가겠습니다.”
“하, 하지만 치료제 가격은…….”
주인이 당황하여 황급히 반박하려 했지만 웨드가 말을 끓었다.
“무슨 말 하려는지 잘 압니다. 개당 400골드라고 하실려는 거였을 테죠? 하지만 원래 가격은 1골드입니다. 그게 적당한 가격이죠. 그럼 그거 받고 그냥 가만히 계시죠. 어르신들. 들어오십시오.”
웨드가 밖에 있는 주민들을 부르자마자 주민들이 곧바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상점 안의 치료제란 치료제는 모두 자루에 쓸어 담았다.
상점 주인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 이게…….”
“진정하시죠. 치료제 값은 이미 지불했잖습니다.”
“그, 그건…….”
“그만.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웨드는 상점 주인의 말을 계속해서 중간에 끓었다. 충격에 휩싸인 상점 주인은 말문이 완전히 막혔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눈에 불을 켜고 치료제를 쓸어 가는 주민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상점 주인을 루스턴은 즐겁다는듯이 쳐다봤다.
“이봐, 거만한 주인. 난 애완동물이 아니라 존엄한 하나의 독립체다. 잘 알아 둬라! 풉하하하하하!”
루스턴이 주인에게 모욕을 안겨도 주인은 이미 정신줄을 놓았기 때문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루스턴은 자신만의 착각에 빠졌다.
“훗. 쫄았나 보네. 에혀, 불쌍하니까 이 마음 넓은 루스턴 님이 봐주도록 하지. 하하하!”
“루스턴! 치료제 다 챙겼으니까 자뻑질 그만하고 튀어나와!”
웨드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루스턴을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루스턴이 웨드를 따라갔다.
“후∼ 벌써 다 한 거야?”
“네가 농땡이 피우는 사이에 재빨리 챙겼지.”
“난 그냥 삶의 여유를 위해 잠시 명상을…….”
“시끄럽고 밥값은 해야지?”
웨드는 큼지막한 자루 하나를 루스턴의 앞 주머니에 넣었다.
“커억. 뭐, 뭐가 이렇게 무거워?”
“툴툴대기는.”
“크흑.”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흡족해 하던 것도 잠시 곧 다시 현실을 깨달은 루스턴이었다.
잠시 뒤 마을 주민들이 치료제를 들고 어딘가로 모였다. 그곳은 다름 아닌 모르튼의 집이었다.
“모르튼 아저씨. 저희들 왔습니다.”
“콜록… 웨드로군. 번거롭게 이 병든 사람을… 콜록… 찾아올 필요 없네.”
“이제 병든 사람이 아니라 건강한 남자가 되실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치료제를 가져왔습니다.”
“서, 설마 진짜로… 콜록… 훔친 것인가?”
“훔친 건 아니고 싸게 가져왔죠. 자, 여기 아저씨하고 모리스 몫입니다.”
“고, 고맙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사실 가져온 치료제를 필요한 주민들에게 모두 배분한다고 해도 남습니다. 문제는 몬데릭 영주가 치료제를 애타게 찾고 있을 테니까 은밀히 감추어 둘 곳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 도시에는 치료제를 숨겨 둘 만한 장소가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이라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하게. 콜록… 어차피 이곳이라면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으니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 걸세.”
“감사합니다. 자, 여러분! 각자 필요한 치료제만 가져가시고 나머지는 이곳에 두시면 됩니다.”
그러자 주민들이 각자 필요한 치료제만 챙기고 나머지는 한쪽 구석에 잘 정리해 두었다.
그런데 정리를 마친 주민들 중 한 명이 웨드에게 질문을 했다.
“이보게. 이 계획을 생각해 낸 분이 도대체 누구인가?”
“곧 만나게 될 것입니다.”
웨드는 말을 마치고 잠시 동안 침묵했다.
잠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치료제를 구하기는 했지만 미리 말씀 드렸듯이 이번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걱정 말게나! 내 이래 봬도 젊었을 때는 힘 좀 쓰던 남자였네!”
“나도 힘이 넘치는 장사였다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웨드가 말한 가장 중요한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했다.
“흠흠. 이 루스턴 님도 거들어 주도록 하지.”
루스턴의 자뻑질에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하지만 곧 주민들이 웃어 젖히며 가볍게 넘겼다.
“하하, 자네 귀여운 애완동물을 갖고 있구만.”
“제, 젠장! 난 애완동물이 아니야! 난 독립적인 존재라고! 웨드! 뭐라고 말 좀 해 봐!”
“틀린 말 하나도 없는데?”
“왜?”
“왜라고? 넌 내 소환수잖아.”
“어허! 난 소환수이긴 하나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
“너 소환하려면 내가 가진 마나 거의 다 써야 하거든?”
“그, 그래도…….”
“역소환해 버린다?”
“미안… 안 깝칠게.”
역소환이라는 말에 꼬리를 내리는 루스턴이었다. 역소환을 하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가 혼자 시간 죽이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모르튼도 치료제를 챙기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웨드 군. 자네가 나와 모리스를 살렸네!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어서 들어가서 모리스에게 치료제를 주십시오.”
“알겠네.”
모르튼은 아픈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쾌활해 보였다. 잠시 뒤 모르튼마저 방으로 들어가고 정적이 흘렀다. 그때 누군가 들어왔다. 카일러였다.
“카일러 님. 지금까지 실패한 것 없이 모든 계획이 성공했습니다.”
“다행이군. 문제는… 마지막 계획은 수행하기 쉽지는 않을 거야.”
“정말로 영주를 죽이실 겁니까? 영주를 죽이려면 테스칼 기사단을 상대해야 합니다.”
마지막 계획이란 영주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영주가 살아 있는 한 치료제를 훔친 것에 대한 복수를 하려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테스칼 도시에 대한 폭정은 계속될 것이고 이번 치료제 사건보다 더 악독한 짓거리를 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 때문에 영주는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온갖 방법으로 병사들을 무력화시킨 것이기도 하다. 덕분에 상대해야 적이 줄어들어 몬데릭 영주의 앞잡이 테스칼 기사단만 상대하면 되었다.
문제는 아무리 썩었어도 기사단은 기사단이다. 뉴 얼스에서는 기사 같은 고위급 NPC는 레벨이 높다. 일반 병사들보다 5레벨 이상 높았다. 게다가 기사단 인원은 총 40명.
자칫 덤볐다가는 카일러 일행을 포함하여 마을 주민들이 전부 학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 결국 테스칼 기사단을 쓰러뜨릴 방법은 치고 빠지기 식의 게릴라 전투밖에 없었다.
가능한 기사단과 전면전을 하면 안 되었다. 기사와 마을 주민이 전면전을 한다면 비록 마을 주민이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공격 한 번 제대로 못해 보고 질 것이 분명했다.
“어쩔 수 없어. 치료제를 훔친 이상 영주가 가만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영주를 죽인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부패한 영주라고는 해도 슬덴브르크국의 영주입니다. 슬덴브르크국이 가만 있을 리가 없습니다.”
웨드의 말도 일리가 있다. 영주를 죽인다고 모든 게 끝날 리가 없다. 분명 슬덴브르크국이 개입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슬덴브르크 국에서도 모르게 하면 된다.
‘어차피 영주는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로워져.’
“그거야 슬덴브르크국이 모르게 하면 돼.”
“하지만 영주가 이미 국왕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면 끝장입니다.”
“질병이 퍼지고 있는 곳은 이 도시로 한정되어 있어. 따라서 치료제가 사라졌다고 해도 질병에 걱정 없는 국왕이 신경 쓰겠어? 국왕에겐 그저 강 건너 불난 격일 뿐일 거야.”
“하지만 치료제를 훔칠 만한 사람들은 이곳 주민들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조금만 생각해도 바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만약 영주가 죽는다면 국왕뿐만 아니라 슬덴브르크의 모든 정치가들이 주민들을 범인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주민들이 학살당해도 괜찮겠습니까?”
“증거가 없이 심증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이번 일에 대부분의 주민들이 가담했어. 증거가 있다고 해도 이곳 주민들을 학살하지는 못할 거야. 그랬다가는 잘나가는 테스칼 도시를 망하게 만드는 꼴일 테니까.”
“그렇지만… 알겠습니다.”
웨드는 결국 카일러의 뜻대로 하기로 했다.
“주민들 중 힘 좀 쓰는 사람을 추려내면 총 몇 명이지?”
“총 400명 정도 됩니다.”
“그 사람들을 기사단만큼은 아니어도 적어도 일반 병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훈련시켜야 돼.”
‘아무리 훈련시킨다고 해도 일반 주민이다. 게다가 훈련을 할 시간도 넉넉치 않다.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시킨다고 해도 실력이 단기간에 확 늘어날 수는 없다. 기껏해야 훈련시킨 주민 여러 명이 기사 한 명을 놓고 싸워야 간신히 이길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400명이다. 훈련시킨다면 해 볼 만하다.’
“주민들을 훈련시키려면 진짜로 칼을 쓸 줄 알고 훈련을 시켜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웨드의 말에 카일러는 자신을 가리켰다.
“설마 카일러 님이?”
“내가 레벨이 낮아서 그렇지 칼질 좀 하거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검술을 가르쳐 본 적도 있어.”
카일러는 암살단에 있던 시절을 떠올렸다. 카일러는 암살자들에게 혹독한 검술 훈련을 받았고 또 자신의 후배들을 가르쳐 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주민들을 훈련시키는 일은 자신 있었다.
“그런 것 같긴 하더군요.”
카일러가 암살자인 것까지는 모르지만 웨드는 열받았을 때의 카일러를 떠올렸다. 순식간에 문을 박차고 달려와 단 한 번 검을 휘둘렀는데 뉴 얼스의 고수들도 여러 번 시도해야 한 번 뜬다는 크리티컬 샷을 터트렸다.
카일러가 단순히 잘난 척하는 것은 아닌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