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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21화)
9장. 실행(2)


“그런데 주민들에게 내 이름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 달라고 잘 말해 뒀지?”
“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근데 너무 민감하게 신경 쓰시는 것 같군요.”
웨드의 말에 카일러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웨드를 노려보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니.가 제.일 잘 알 텐데?”
“글쎄, 전…….”
“내가 좀 유명해지면 너.처.럼 날 노리는 녀석들이 생기겠지?”
“그러면 주민들에게도 말씀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텐데 왜 주민들에게는……?”
“주민들에게 내 이름까지 감추면 날 믿어 주겠어? 그리고 주민들은 NPC잖아. NPC도 여러 부류가 있지만 적어도 이곳 주민들은 약속은 지킬 거야. 배신이나 칠 줄 아는 너하고 저 캥거루만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으면 되겠지?”
그런데 그때 분명히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던 루스턴이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갑자기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렸다. 하지만 이내 곧 다시 잠을 잤다.
“네 소환수는 귀도 밝군.”
“하하. 그렇군요. 아무튼 저희는 이제 카일러 님과 한 배를 탔습니다. 이제 믿어 주시길 바랍니다.”
“에혀…….”
카일러는 웨드와 루스턴을 이제 어느 정도 믿지만 이미 한 번 배신을 맞았기에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런데 너 전직했어?”
“저도 카일러 님하고 레벨 똑같아요. 그때 사냥할 때 말씀드렸는데.”
“거짓말한 줄 알았지. 그게 진짜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럼 저 소환수는 뭐야? 소환사도 아닌 놈이 무슨 수로 저 녀석을 소환해?”
“아직도 저희를 믿지 못하시는…….”
“시끄러워!”
“사실 복잡한 사연이…….”
웨드는 허공을 응시했다.
잠시 뒤 웨드가 입을 열었다.
“루스턴을 처음 만난 것은 레벨 7때였습니다. 테스칼 도시로 가는 길이었죠. 그런데 웬 캥거루 하나가 제가 있는 쪽으로 오더군요.”
“루스턴이었군.”
“네. 그런데 말을 하더군요. 그땐 정말 놀랐습니다. 그래서 왜 캥거루 주제에 말을 하냐고 물어봤죠.”
카일러도 테스터 선발 시험 당시 캥거루가 말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왜 말을 하냐고 묻자 자신이 말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랬더니 캥거루가 말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든?”
“자신은 캥거루가 아니랍니다. 캥거루하고 비슷한 종이지만 캥거루는 절대 아니라고 했습니다.”
“뭐? 그럴 리가?”
“캥거루가 아니라 ‘스칼른’ 종족이라고 하더군요. 캥거루가 진화한 종족이라더군요.”
“캥거루나 캥거루 사촌이나 거기서 거기 아니야?”
“그런 것 같습니다만 루스턴은 조금 걸걸하긴 하지만 남자아이 목소리죠?”
“그런데?”
“원래 캥거루는 암컷만 앞 주머니가 있답니다. 하지만 루스턴은 수컷인데도 주머니가 있죠. 캥거루가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그, 그렇군…….”
“그런데 만나자마자 ‘나 소환수 시켜 줘’라고 한 거야?”
“아뇨. 그때 몸을 보니 큰 상처가 나 있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늑대한테 습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위험하다며 도와달라고 했죠. 그래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갔을 때는 핏자국만이 남았습니다. 그때 루스턴이 우는 모습은 정말 애처로웠죠.”
“흐음…….”
싸가지 없는 루스턴이 애처롭게 우는 모습이라… 솔직히 상상이 안 간다.
“그래서 제가 잠시 동안 돌봐 주기로 했습니다. 테스칼 도시까지 가는 길을 같이 다니며 상당히 친해졌죠. 그런데 갑자기 뜻밖의 말을 내뱉더군요.”
“뭔데?”
“자기를 영원히 보살펴 달라더군요.”
카일러는 그 광경을 상상했다. 골칫덩어리 말하는 짐승이 자신을 책임지라고 말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내 썩소를 지으며 상상을 멈췄다.
“그래서 수락했다는 거네?”
“원래는 수락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메세지 창이 뜨더군요. ‘스칼른 종족 루스턴을 소환수로 받아들이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허, 그것 때문에 솔깃해졌고 그래서 루스턴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겁니다. 덕분에 소환 한 번 할려면 마나를 거의 다 소모하지만 그만큼 값어치를 합니다. 재밌기도 하고 말입니다.”
“글쎄…….”
‘정말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군.”
카일러는 만약 자신에게 같은 메시지 창이 떴다면 ‘꺼져.’라고 했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주민들을 훈련시키러 가야죠?”
“훈련 장소는 몬데릭 영주한테 들키지 않을 만한 곳으로 정해야 해. 혹시 아는 데라도 있어?”
‘몬데릭 영주는 지금쯤 치료제가 털린 것을 알고 길길이 날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치료제를 훔친 자들을 잡으려고 기를 쓸 것이 분명해. 따라서 몬데릭 영주가 절대 찾지 못할 만한 장소가 필요하다. 적어도 주민들을 훈련시킬 동안만이라도.’
“산에서 훈련하는게 좋을 듯합니다. 저쪽 뒷산에 가면 절대 들키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리고 몬데릭 영주뿐만 아니라 유저들의 눈을 피하는 것도 중요해. 주민들 일부를 동원해서 싸움을 벌인다든지 해서 유저들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해.”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주민들에게 1시간 뒤에 가지고 있는 무기하고 연장 다 들고 그곳으로 집합하라고 해. 그리고 저 코골고 있는 네 소환수도 데려가라. 시끄럽다.”
“알겠습니다. 야, 루스턴 일어나.”
“아… 왜 자는 소환수를 깨워? 니가 그러고도 주인이야?”
“주인이니까 깨워 주는 거야. 일어나.”
“이번에는 뭐하려고?”
“그냥 따라다니면 자연스럽게 알게 돼.”
웨드는 루스턴을 끌고가다시피 데리고 나갔다.
‘역시… 저건 아무리 봐도 골칫덩어리군.’
아무리 생각해도 루스턴이 가치 없는 소환수라 생각하는 카일러였다.
“자, 그럼 훈련 장소로 가 봐야겠군.’
그런데 누군가 카일러를 불렀다.
돌아보니 9살 된 꼬마 아이였다.
‘9살 정도 돼 보이는군. 힐베르크와 처음 만난 것도 9살 때였는데…….’
한때는 연약한 소년이었던 카일러가 비록 게임 속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바람대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있다. 그 생각을 하자 카일러는 웬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카일러 형?”
“네가 모리스구나?”
저번에는 아파서 방 안에 계속 누워 있었는지 얼굴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치료제를 먹고 금세 조금 나아진 듯했다.
“응. 근데 형. 영주님을 정말로 해칠 거야?”
‘허… 이 얘기는 또 언제 들은 거지? 어린애가 알아서 좋을 얘기는 아닌데.’
그때 모르튼이 방에서 나왔다.
“모리스, 어른들 일에 버릇없이 끼어들면 안 된단다. 그냥 방에 들어가서 쉬도록 하자.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니잖니. 카일러, 미안하게 됐네.”
모르튼이 미안한 듯이 말하며 모리스를 데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몬데릭 영주를 해치지 말라는 건가? 하지만 그 영주 놈 때문에 자기 엄마가 죽고 아빠와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갔는데…….’
카일러는 자신의 9살 때를 떠올렸다. 자신은 복수심에 불타 영주를 죽이려 했었다. 하지만 모리스는 영주를 용서한 듯했다.
‘내가 옳은 건가… 아니면 모리스가 옳은 건가.’
카일러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나쁜 놈은 모두 죽여 버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카일러의 가치관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있던 암살단 역시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웨드가 수많은 이유를 들어 반대를 했었지만 계속 밀어붙인 것도 확고한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리스가 한 말을 듣자 그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냥 어린애가 한마디한 것이지만 어린애가 한 말이었기에 카일러의 가치관을 더욱 흔들어 놓은 듯했다. 잠시 혼란스러워 멍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 결국 카일러는 훈련 장소로 향했다.
카일러는 웨드가 말한 뒷산으로 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가 무성하여 잘 들키지 않겠지만 나무가 많은 만큼 400명이 서 있기에는 너무 비좁아 보였다.
‘주민들이 오면 벌목부터 시켜야겠군.’
카일러는 우선 훈련 장소 근처 산을 둘러봤다. 함정을 팔 곳을 찾기 위함이었다. 주민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기간을 길지 않다. 영주가 무슨 꿍꿍이를 벌일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서둘러서 영주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400명이나 되는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문외한인 일반 주민들이기 때문에 전면전으로 테스칼 기사단을 상대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함정이었다.
멧돼지를 잡을 때 역시 함정을 이용하여 혼자서 다수의 멧돼지를 잡을 수 있었다.
함정을 잘 이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
카일러는 주변을 간단하게 둘러본 뒤 주민들이 집합하기로 한 장소로 되돌아갔다.
그곳에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웨드였다.
“카일러 님. 루스턴이 주민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이곳으로 올 겁니다.”
“그런데 무기는?”
“주민들이 각자 갖고 있는 무기가 하나씩은 있더군요. 하지만 성능은 좋지 않습니다.”
“그나마 갖고 있는 게 다행이군.”
“하지만 전투에 쓰기에는 내구도도 거의 없는 무기입니다. 이래 가지고는 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을 뚫기는커녕 부러질 것이 분명합니다.”
“…….”
‘이를 어쩐다… 그렇다고 없는 형편에 주머니 털어서 주민들 무기를 다 사 줄 수도 없고, 아니,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그만한 돈은 없다. 제대로 된 무기가 없으면 400명이 아니라 4천 명이 덤벼도 기사단의 몸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한데.’
기사단이 입고 있는 갑옷은 그야말로 최상품이다. 내구도가 떨어질 때로 떨어진 무기로 쳤다가는 갑옷에 피해를 주기는 커녕 무기가 부서져 버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카일러는 한참을 고민했다.
“아!”
“왜 그러십니까?”
“주민들이 갖고 있는 무기 다 거둬.”
“네? 아무리 상황이 급급해도 그 무기를 훔칠 생각을…….”
“내가 너냐? 그게 아니라 수리를 하려는 것뿐이야.”
“수리를 한다고 하셨습니까? 그 부서지기 직전인 무기를 수리하려면 수리비가 새로 사는 것만큼은 나올 겁니다. 아무리 이곳 도시 주민들과 친해졌어도 NPC입니다. 계산은 계산대로 할 겁니다.”
“이곳에서 수리할 생각은 없어. 수리비도 문제지만 그렇게 많은 무기를 대량으로 수리하면 영주가 눈치챌 가능성도 있어.”
“그러면?”
“슬란 마을에 갖고 가서 수리하면 돼.”
“아,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