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뉴얼스 1권(22화)
9장. 실행(3)
카일러는 타이푼을 잡은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의 친밀도가 최상으로 올라갔다. 카일러가 테스칼 도시로 떠나기 전 여관 방을 무료로 빌려 주는 것은 물론이고 텔레포트도 무료로 이용하게 해 주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슬란 마을의 볼보크 장로가 ‘슬러크의 후계자’라는 칭호까지 주어 단순히 슬란 마을 주민들과 친한 것뿐만 아니라 존경까지 받게 되었다.
따라서 슬란 마을의 무기점에 가 수리를 해 달라고 하면 무료는 아니더라도 싸게 수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기점 주인 토르에게 타이푼의 뼈를 맡겨 더 친해지지 않았던가?
문제는…….
“그런데 그 무기들을 갖고 가 수리하고 다시 갖고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적어도 며칠은 걸리겠군요.”
카일러와 웨드는 한숨을 쉬었다.
‘시간에 쫓기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무기는 수리시키고 그동안 목검을 만들어 훈련시키면 된다. 그 사이에 영주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돼.’
“웨드, 무기 수리는 루스턴 시켜.”
“루스턴이요? 솔직히 믿음이 가십니까?”
“그렇다고 내가 가면 훈련은 누가 시켜? 그리고 너도 이곳에 남아 거들어야 할 것 아냐? 루스턴은 남아 있어 봤자… 알지?”
루스턴이 검술 고수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잘 싸우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곳에 남아 있어 봤자 도움될 게 없었다. 그냥 무기 셔틀이나 시키는 것이 나았다.
“그런데 카일러 님이 직접 가야 수리를 싸게 하든 공짜로 하든 할 것 아닙니까?”
“걱정 마. 이게 있으면 마을 사람들도 믿어 줄 거야.”
카일러가 꺼내 든 것을 보고 웨드는 경악했다. 카일러가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슬러크의 검이었다.
“서, 설마 이걸 루스턴에게 맡길 생각이십니까?”
“찝찝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갈 수는 없으니 내가 보낸 심부름꾼이라는 증표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 그렇긴 하지만… 카, 카일러 님 혹시?”
그때 웨드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카일러를 바라봤다.
“왜, 왜?”
“이제 저희를 믿어 주시는 것입니까?”
‘믿긴 뭘 믿어. 어디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를…….’
비록 아이템을 돌려받았고 이제 한 배를 탄 동료였으나 아직까지 웨드와 루스턴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루스턴에게 검을 맡기는 데에는 일종의 ‘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슬러크’.
슬러크의 검에는 슬러크의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때 웨드와 루스턴이 검을 훔쳐갔을 때 슬러크의 영혼이 카일러에게 검이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따라서 이번에 만약 루스턴이 허튼짓을 한다면 당장 쫓아가서 아작을 내 버리고 검을 되찾으면 되었다. 설령 팔아 버린다고 해도 검 속에 깃든 영혼인 슬러크가 이미 카일러를 주인으로 정했다. 되찾아 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쨌거나 루스턴에게 검을 맡기는 것은 웨드와 루스턴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보험’을 믿는 것이었다.
하지만 웨드와 루스턴을 철저히 이용하려면 적절한 입놀림이 필요했다.
“하하! 그래, 이제 너와 루스턴을 믿는다!”
“크흐흑. 믿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카일러 님! 이렇게 좋은 분을 저희가… 정말 면목 없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 어차피 지나 일이야! 암, 그렇고 말고! 그러니까 앞으로 잘해.”
“감사합니다. 카일러 님이 원하시는 것이 곧 제가 원하는 겁니다! 몬데릭 영주를 제거하기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겠습니다!”
카일러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지만 웨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카일러에게 굽실굽실했다.
‘이거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인데? 뭐, 일은 똑바로 하겠지.’
“그럼, 무기를 모두 거두는 대로 루스턴 보고 나한테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카일러 님!”
잠시 뒤 루스턴을 선두로 주민들이 줄줄이 왔다.
웨드는 루스턴에게 달려가 무언가 말을 했다. 그러자 루스턴이 놀란 얼굴로 카일러를 보더니 곧 카일러에게 달려왔다.
“카, 카일러. 나 불렀어?”
“루스턴.”
“마, 말해.”
“주민들한테 무기 다 거둬 갖고 슬란 마을로 갔다와. 그곳에 있는 대장장이 토르를 만나 내가 보냈다고 말하고 수리 좀 해 달라고 부탁해. 그리고 내가 보낸 것을 못 믿을 테니까 이 검을 보여 줘. 그러면 믿을 거야.”
“아, 알았어. 근데 이제 나를 믿어 주는 거야?”
“당연하지. 난 너를 믿는단다.”
카일러는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었지만 겉으로는 살며시 미소까지 지으며 거짓말을 내뱉었다.
‘단순한 녀석들. 내 뒤통수를 칠 때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들인 줄 알았는데 나한테 몇 대 맞더니 멍청이가 됐나?’
카일러는 단순한 거짓말에 넘어가는 웨드와 루스턴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멍청해서 속는 것이 아니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카일러의 연기가 수준급이었기에 웨드와 루스턴이 속아 넘어간 것뿐이었다.
카일러가 만약 처음부터 한국에 태어나 배우의 길을 걸었다면 타고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출세했을 것이 분명했다.
“고, 고마워. 근데 그 토르라는 사람이 수리를 무료로 해 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가능한 무료로 해 달라고 해. 하지만 정 돈을 받으려 하면 최대한 깎아. 돈은 내가 나중에 직접 찾아가서 준다고 하고.”
“알았어. 갔다 올게. 수레에 싣고 가야 하는데 무거우니까 나 혼자 못 끌어. 도와줄 사람 좀 데려가도 돼?”
“그래. 아무나 대려가도록 해. 대신 ‘한 명만’ 데려가도록 해.”
카일러는 ‘한 명만’이라는 말을 강조해서 말했다.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지금 수레 심부름에 많은 사람을 투입할 수 없었다.
“한 명이면 충분해.”
다행이 루스턴이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루스턴이 같이 수레를 끌 사람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닐 때 쯤 웨드가 주민들의 무기를 거둬 수레에 싣고 있었다.
카일러는 무기가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살펴봤다.
녹슨 철 검
타입:한 손 검
공격력:5 공격 속도:5
내구도:1 무게:4 레벨 제한:1
‘이럴 수가…….’
무기 성능이 안 좋다고 하길래 녹이 슬어 그렇지 수리만 하면 괜찮은 무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리를 해도 성능이 여전히 낮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젠장… 수리를 해도 내구도 말고는 별 차이도 없겠군…….’
카일러는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괜히 주민들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거짓 하는 것과는 달랐다. 뼛속까지 쓰라리며 크나큰 좌절감과 이번 임무에 대한 책임감이 카일러를 짓눌렀다.
덕분에 표정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를 본 웨드가 걱정스러워했다.
“카일러 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으… 응? 아니야 그냥 갑자기 우울하네.”
“힘내십시오, 카일러 님. 저희가 카일러 님 곁에 있잖습니까?”
웨드의 말에 주변에 있던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맞장구를 쳤다. 주민들이었다.
“맞습니다! 힘내십시오!”
목소리가 장난 아니게 큰 데다가 카일러를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존경의 의미를 담은 눈빛이었지만 400명 남자들이 쳐다보자 살짝 부담스러웠다.
“고, 고맙다. 흐음… 자, 그럼 일단 훈련할 장소부터 제대로 갖춰야 하니까 다들 이곳 주변에 난 나무들 좀 벌목해서 공간좀 확보해. 그리고 한 20명 정도는 날 따라오도록.”
카일러의 말에 남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순식간에 조를 나누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카일러 앞에 20명이 모였다.
‘훈련도 안 시켰는데 벌써부터 군기가 바짝 잡혀 있군. 빡세게 훈련시켜도 군소리 없이 하겠군.’
“자, 그럼 일단 이곳 주변에 있는 나무를 벌목해서 훈련 공간을 확보한다. 1시간 내로 할 수 있겠나?”
“그깟 나무쯤이야 다 베어 버리겠습니다!”
“좋아, 그럼 시작해.”
카일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400여 명의 장정들이 주변에 있는 나무를 빛의 속도로 찍어 내렸다.
“웨, 웨드! 쟤네들 와, 완전 병사잖아. 일반 주민들 맞아?”
“마, 맞긴 합니다만… 농사 때문에 몸이 단단해졌나 봅니다.”
“그, 그런가?”
잠시 뒤 주변에 있는 모든 나무를 쓰러뜨린 장정들이 카일러 앞에 모였다.
“모두 끝냈습니다!”
“무기는 수리를 보냈기 때문에 올려면 며칠은 걸린다. 우선 저 나무들로 각자 자신이 쓸 목검을 만든다.”
“알겠습니다!”
장정들은 연장을 들고 각자 목검을 만들어 나갔다. 벌목하는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해 나갔다.
잠시 뒤 형체가 이상하긴 하지만 각자 목검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우선 기본적인 자세 몇 가지를 알려 줄 테니 계속해서 연습하도록.”
카일러는 병사들에게 기본적인 검술 자세를 알려 주고는 삽을 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카일러가 함정을 설치하려고 생각 중이었던 곳이다.
‘땅굴 파기 스킬을 성장시킬 기회가 쉽게 오진 않지. 다른 사람한테 양보할 수 없다.’
땅굴 파기 스킬을 성장시키려면 말 그대로 땅을 파야 한다. 하지만 아무 때나 쓸데없이 땅이나 파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스킬 레벨을 올릴 계획이었다.
카일러는 삽집을 시작했다. 땅굴 파기 스킬이 있어 일반인들보다 빠르게 땅을 파는데다가 스킬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지난번 멧돼지를 잡기 위해 하루종일 삽질을 하며 쌓은 노하우가 집약되어 눈부신 속도로 금세 구덩이 하나를 만들었다.
깊이가 사람 키만 한 구덩이였다. 카일러는 전직 암살자 출신답게 쉽게 빠져나왔다.
그렇게 묵묵히 삽질을 하던 중 반가운 메시지 창이 떴다.
“땅굴 파기 스킬이 중급으로 상승했습니다.”
“오, 드디어! 스킬 창!”
땅굴 파기(중급, 패시브, 0%)
땅굴 파는 속도가 기존 속도의 1.7배 빨라집니다.
*쉐도우 워커 소환
플레이어의 분신 쉐도우 워커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분신은 플레이어를 대신하여 땅을 팝니다.
땅을 파는 속도는 플레이어의 2배이며 분신은 소환한 지 5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한 번 사용 후 다시 소환하려면 12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검술(초급, 패시브, 20%)
검을 휘두르는 속도와 공격력이 20% 상승합니다.
발차기(초급, 패시브, 20%)
발차기 속도와 공격력이 20% 상승합니다.
“허? 분신?”
분신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낀 카일러는 곧바로 분신을 소환했다.
“쉐도우 워커 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