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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4화)
2. 친구를 얻다(2)


이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미향.
어린 시절은 빼빼 마른 귀여운 꼬맹이였는데 무슨 일로 이렇게 뚱뚱하게 변한…….
윽! 젠장! 다시 흘러들어 오는 기억들.
결국 포기하고 모든 기억을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기억과 관련된 것을 생각하려 하면 들어오는 모양이다.
어차피 오늘은 한 20분 정도 있을 생각이었다.
정신 이동 당한 대상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손에 들린 장치를 본다.
마치 책처럼 생긴 기계. 내 기억에는 이런 기계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에는 이 장치의 이름과 사용법, 그리고 이 장치로 그녀가 매일 하는 일을 알 수가 있었다.
밑에 있는 작고 오목한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떠오른다.
환자의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프로그램인가 보다.
난 재빨리 환자 이름 밑에 있는 이상 없음 버튼을 다다다 눌렀다.
그러다 내 이름이 적힌 곳에서 멈췄다.
이름은 이상할 게 없었다.
문제는 입원일.
내가 기억하기론 분명 2003년 7월에 사고를 당했었다.
한데, 입원일은 2004년 8월.
‘다른 병원에 있다가 옮겨진 건가?’
난 내 이름 있는 곳을 눌렀다.
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역시 내 예상대로 사고 당시 목뼈와 척추 뼈가 부러지며 척수가 다친 것이다.
다른 이의 눈으로 나에 대해 보게 되다니…….
열린 창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예쁜 연꽃이 배경으로 된 바탕화면이 보인다.
작은 아이콘들.
그리고 날짜……
“지, 지금이 2011년 4월 5일이라고?”
여성의 고음이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설마 8년 동안 누워 있었던 건가?
지금까지 생각 못했던 곽지안의 기억과 신미향의 기억을 살펴봤다.
곽지안의 기억은 2008년에서 계단에서 한 남자를 바라보는 것으로 끊겼고, 신미향의 기억은 바로 오늘 할 일에 대해 정리한 업무 일지를 보고 이 방으로 들어오는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그 업무 일지에 적은 날짜가 바로 2011년 4월 5일이었다.
난 내가 누워 있는 침대로 갔다.
침대에 누워서 힘겹게 숨 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단지 아무것도 먹지 못해 말라서 늙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내 나이를 알고 보니 이해가 된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정신이 혼란스럽다.
내 상태가 비정상적이어서일까?
무언가가 날 당긴다. 그 힘을 거부하지 않았다.
난 내 육체로 돌아왔다.
“어? 내가 왜 여기에 서 있지?”
신미향은 얼떨떨해 한다.
내가 몸을 차지하고 있는 동안의 일을 기억 못하나 보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됐네. 아무래도 다이어트를 한다고 너무 급작스럽게 밥 양을 줄여서 이런 증상이 생긴 것 같은데…… 조금씩 줄여야겠다.”
잠깐 혼잣말을 하더니 후다닥 병실을 나선다.
‘크크크! 하하하하!’
사실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했는데 신미향의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오전에 밥 세 그릇을 삼겹살과 함께 먹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왜? 이제야 나와요?’
유체 이탈을 하자마자 들리는 목소리.
난 곽지안이 있는 곳을 봤다.
영화에 나오는 귀신이나 영혼처럼 투명한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성공했군요.’
‘물론이죠. 좀 어렵긴 했지만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더군요.’
‘하하! 정말 이렇게 대화가 될 줄이야. 정말 반가워요.’
‘저도 반가워요. 그리고 저에게 유체 이탈에 대해 가르쳐 주신 거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그녀는 정말 고맙다는 듯 고개 숙여 인사한다.
‘그러지 말아요. 저도 제가 좋아서 한 일이니까요. 사실 대화 상대가 없어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거든요.’
‘저도 그 기분 알아요. 처음 그 어둠 속에서…… 정말 끔찍했어요.’
곽지안과는 말이 통했다. 동병상련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마치 친구처럼 편안했다.
이렇게 누군가와 얘기하는 게 8년만인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군요? 간호사의 정신세계로 가서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어? 알고 계셨어요?’
‘혼잣말 하는 거 다 들었어요. 대략 짐작할 수 있었죠.’
똑똑한 아줌마다.
과거 그녀가 거울을 쳐다보는 기억을 상기하면 정말이지 아름답게 생겼다.
그 의사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헤헤! 그냥 충격 좀 받았어요. 제가 사고가 난지 벌써 8년이 흘렀더라고요.’
‘8년이요? 지금이 몇 년도죠?’
‘2011년도 4월이요. 어제가 5일이었으니 오늘은 6일이겠네요.’
‘전 3년이 되었군요. 그 기간도 마치 수십 년은 된 것 같은데…… 8년을 어떻게 버티셨어요?’
그녀의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와 이해한다는 얼굴이 마음의 위로가 된다.
‘괜찮아요. 그 암흑의 정신세계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니까요. 단지…… 어느새 나이를 먹어 버려 좀 그래요. 젊은 시절이 사라져 버렸잖아요.’
‘그렇긴 하겠네요.’
우리는 정말이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시시껄렁한 얘기부터 알고 있는 유머까지.
‘호호호! 그건 정말 옛날 유머군요.’
‘컥! 제가 들었을 땐 최신 유머였다고요.’
‘시간을 생각해야죠. 저도 비록 2008년까지밖에 모르지만 많은 것을 가르쳐 드리죠.’
‘잘 부탁드립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8년의 세월이 별거 아닌 것 같다.
하긴,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내공심법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고, 찾는다고 해도 배우다 숨을 거둘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태를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정신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에 감사하며 지내자.
‘그런데, 앞으로 어쩔 생각이에요?’
‘일단, 내공심법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내공심법이요?’
‘헤헤, 네. 좀 황당하시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요. 이 몸을 움직이려면 아무래도 소설에서 보던 내공심법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호호호, 나쁜 방법은 아니네요. 유체 이탈도 있는데 그거라고 없으란 법은 없죠. 한데, 문제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어떤 문제점요?’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몇 명 없잖아요. 설령 그들 중 내공심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내공심법을 알아낼 생각이에요?’
그녀가 말하는 사람 찾는 방법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실 어제 그 실험을 해 볼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로 정신 이동 후 다시 또 다른 사람에게로의 정신 이동이 가능한지를 말이다.
‘음, 그 문제를 사실 어제 연습해 보려고 했거든요. 그리고…… 죄송해요. 다른 사람에게 정신 이동을 하면 그 사람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답니다.’
‘…….’
일순 놀란 표정의 그녀. 잠시 후 부드럽게 표정이 풀린다.
‘괜찮아요. 그럼 저에 대해 잘 아시겠군요.’
‘오해는 마세요. 그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은 읽을 수 없어요. 오로지 기억만 읽어요. 아, 죄송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돈을 내세워 금이 씨에게 부탁하려고 했는데 소용이 없겠군요.’
에에?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내 표정을 읽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휴∼ 생각해 봐요. 제가 그 새끼, 이해해요. 다른 말은 안 나오니까. 그러니까 그 새끼에게 재산을 뺏길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재산을 묶어뒀어요. 공식적인 재산의 경우에는 제가 죽으면 모두 사회 환원되게 해뒀고, 차명계좌로 만들어둔 통장은 제가 잘 숨겨뒀죠. 제 기억을 읽었다면 숨긴 곳을 잘 알 테니 그냥 찾아 쓰면 되잖아요.’
난 성인군자는 아니다.
돈을 보면 물론 욕심이 생긴다.
기억하려 하니 그녀가 통장을 어디에 숨겼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아는 사람의 돈을 탐내지는 않는다.
‘전 그런 사람 아닙니다. 절대 지안 씨의 돈을 쓰지 않을게요.’
‘그렇게 정색하지 않아도 알아요. 하지만, 사용해도 좋아요.’
아니, 이 여자가 누굴 놀리나?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야!
자존심이 있지.
‘사용 안 할래요.’
‘사용해요. 어차피 제가 죽으면 언젠가 나라에 귀속될 돈이니까요. 그리고 복수는 안 해주셔도 되요. 다만, 나중에 내공심법이라는 걸 얻게 되면 그걸 저에게도 가르쳐 주세요.’
‘…….’
‘그리고 무엇보다도 금이 씨의 몸은 8년간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부터라도 재활치료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내공심법이라고 해도 재활훈련에 족히 몇 년은 걸릴 거예요.’
틀린 말이 아니다. 은근히 마음이 끌린다.
‘고집 피우지 말고 그냥 사용해요. 덕분에 저도 좀 편하게 생활하게요. 돈만 있으면 병실 옮기고 물리치료사를 고용해 최소한 더 이상 근육이 퇴화되지 않게 할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도 음악 좀 듣고 싶어요. 이 조용함 이제 지긋지긋하다고요.’
돈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돈 주인이 저렇게 부탁하는데…….
험!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럼, 잘 쓰겠습니다.’
‘천만에요. 부디 저도 버리지 마시고 같은 방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세요.’
‘크! 전 친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는 건가요? 앞으로 잘 지내봐요, 친구. 호호호!’
‘저야말로요.’
이렇게 난 영체 친구를 한 명 두게 되었다.

***

지안의 돈을 이용하기로 하고 출발에 앞서 몇 가지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점핑.
난 정신 이동을 하여 대상자에게 옮겨가는 걸 편의상 점핑이라고 정했다.
점핑을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의 점핑은 성공적이었다.
내 몸에서 점핑을 하는 것보다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걸 제외하곤 기억을 흡수하지 않고 바로 점핑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 와중에 알아낸 것은 바로 내가 이 병원에 8년이라는 시간을 있을 수 있던 이유였다.
고아 출신에 가진 것 없는 내가 월 200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낼 수는 없다.
내 이름으로 된 모든 재산을 처리한다고 해도 역시 불가능.
의대생들의 실험체가 되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어야 할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김병우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내 병원비를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공장 사장님의 이름도 아니었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는 누굴까?
내 짐작은 내가 구한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가면 반드시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 준비한 것이 동선.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곽지안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할 일은 많은데 하루만에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잘 다녀와.’
‘응!’
3살 차이가 났지만 우리는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드르륵!
점핑 대상자가 문을 여는 소리.
급할 건 없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정신 이동이 가능할 정도니까.
윽! 곰이다.
‘호호, 아무래도 신미향과는 무슨 인연이 있나봐.’
‘방해하지 마!’
꼭 정신 이동을 하려면 저 여자가 들어온다.
지안의 말마따나 무슨 인연이 있는 건가?
쓸데없는 생각.
난 신미향의 머리끝에 집중했다. 그리고 주문.
영체가 쑤욱 그녀에게로 향한다.
난 신미향의 몸을 차지한 후, 바로 패드형 컴퓨터의 환자 상태에 대해 ‘이상 없음’ 버튼을 눌렀다.
“갔다 올게.”
지금 영체로 있는 지안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 근무자들은 갔니?”
동료 간호사에게 물었다. 신미향은 이곳 병동 6명의 간호사 중 선임 간호사를 제외하곤 가장 오래 근무했다.
“아뇨, 아직 옷 갈아입는 중인가 봐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커피를 마실 때가 아니었다. 지금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두 사람이 보인다.
선임 간호사와 백윤희. 이미 두 사람에게 점핑을 해 봐서 그 둘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일을 편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백윤희가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