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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5화)
2. 친구를 얻다(3)
“고생들 해.”
“고생들 하세요.”
“들어가세요.”
“…….”
난 정신을 집중하고 주문을 외웠고 백윤희에게로 점핑했다.
“윤희 씨, 왜 그래?”
“……아, 잠깐 어지러워서요. 이제 괜찮아요.”
“그래? 많이 피곤했나 보다. 얼른 가서 쉬어.”
선임 간호사의 물음에 답한 후, 병원을 빠져나왔다.
“내일 봬요.”
“수고하셨어요.”
선임 간호사와 헤어지고 병원 앞 꽃집에서 꽃을 산 후 택시를 탔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분당추모공원으로 가주세요.”
“네!”
백미러로 힐끔거리는 나이 지긋한 택시 운전사.
같은 남자로써 충분히 이해한다.
백윤희는 정말 섹시하다.
얼굴, 몸매 어디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띵동!
메시지다. 명품 핸드백을 열고 스마트 폰을 꺼냈다.
비밀번호는 이미 알고 있다.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직여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메시지를 확인했다.
―노블레스 호텔 2103호. 어서 와. 식사 준비해 놨어.
백윤희는 병원 의사와 부적절한 관계였다.
그녀의 부적절한 상대는 이 메시지를 보낸 의사뿐 아니라 두 명이 더 있었다.
그녀가 걸친 명품 옷과 액세서리는 그들에게서 나온 돈으로 구입한 것이다.
처음 그녀에게로 점핑을 했을 때 기억을 읽고 왠지 모를 실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이해했다.
그녀의 어두운 과거를 잘 알고 있으니까.
―오늘은 힘들 것 같아요. 머리가 많이 어지럽네요.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아 겨우겨우 문자를 작성해 보냈다.
띵동!
―(― ―;;)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몇 번 더 ‘띵동’ 소리가 들려 결국 전원을 꺼 버렸다.
“허허, 남자 친구와 싸웠나 봐요?”
“아뇨, 그냥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사람이에요.”
“저런! 당장 경찰서에 연락해요. 손님 중에도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처음부터 따끔하게 혼내지 않으면 안 돼요.”
“네.”
“아는 분 중 한 분은 글쎄 집 앞까지 와서…….”
말씀이 많은 분이다.
하지만 나도 맞장구치며 얘기를 했다.
세상 사는 얘기들과 택시 기사의 어려운 점 등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저씨, 저 잠깐 들렀다 다시 서울로 갈 건데 기다려 주시겠어요? 미터기는 켜두셔도 돼요.”
“허허, 그럼 나야 좋죠. 다녀와요.”
택시에서 내려 곽지안의 기억을 더듬어 그녀의 부모들이 안장된 납골묘로 향했다.
백윤희는 키가 컸다.
그래서 조금 낮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걸을 만했지 정말이지 높은 굽이었으면 걷지도 못할 뻔했다.
여러 종류의 납골묘가 보인다.
모두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는데 조각품이 서 있는 것들도 있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더욱 화려해 보이는 납골묘들이 나타난다.
넓은 공간에 병풍처럼 돌 벽이 서 있고 그 앞에 석조 관처럼 생긴 재단이 있다.
재단 위에는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서로 기대고 있는 조각품이 있다.
들고 온 꽃을 재단 앞에 두고 잠시 묵념을 했다.
비록 목적이 있어 왔지만 망자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체 이탈과 정신 이동이 가능한데 영혼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모르는 일. 마치 주변의 잡초를 뽑는 것처럼 움직이며 재단의 옆으로 갔다.
재단 옆에는 납골함을 넣을 수 있는 입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홈에 손가락을 넣어 당기자 열린다. 반쯤 열고 안쪽으로 깊숙이 손을 넣어 더듬는다.
‘죄송합니다.’
납골함이 손에 걸리자 나도 모르게 사과를 한다.
좀 더 더듬거리자 손에 잡히는 작은 가방.
재빨리 가방을 꺼낸 후, 재단의 입구를 다시 밀어 넣고 일어났다.
“이런.”
먼지와 흙으로 엉망이다.
대충 털고 가방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통장과 도장, 그리고 카드가 몇 개나 있었고 아무도 손댄 흔적은 없었다.
곽지안이 이곳에 숨겨둔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남편이 장인, 장모의 납골묘에 올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작은 가방을 백에 넣고 택시 있는 곳으로 갔다.
“아저씨, ○○은행 △△지점으로 가주세요.”
“네. 성묘는 잘 끝냈어요?”
“예.”
“이런, 흙이 잔뜩 묻었군요. 이 물티슈 사용해요.”
“감사합니다.”
기사 아저씨가 준 물티슈를 이용해 옷에 묻은 흙을 닦아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통장을 꺼내 금액을 확인해 본다.
‘큭! 이거 공이 몇 개야?’
하나의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억. 알고는 있었다. 곽지안의 기억을 읽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확인한 것은 전혀 별개였다.
내가 다니던 공장에서 2년간 정말 아끼고 아껴 모은 돈이 2,000만 원이 안 됐다.
한데 지금은 그 수백 배의 돈을 가지게 되다니.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 돈이 다 내 것이란 말이지.’
지안은 이 돈을 모두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좋은 집, 스포츠 카, 수영복 입은 미녀들.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생활들…….
“기분 좋은 일 있어요?”
“아, 예.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요.”
“허허, 아까 올 때완 다르게 기분이 좋아 보여서요.”
물론, 기분은 날아갈 것 같다.
돈은 충분하니 이제 내 몸만 제대로 치료하면 된다.
하루라도 빨리 내공심법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3. 각인을 하다(1)
은행에 들러 아직 유효기간이 남은 카드로 200만 원을 뽑았다.
그리고 통장과 카드 모두를 대여 금고에 넣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은행일과 패드형 컴퓨터 구입은 의외로 쉽고 편하게 끝마쳤다.
대여 금고를 빌리겠다고 곽지안이 만든 가짜 인물의 이름을 말하자 차장이라는 사람이 나와 편안한 소파가 있는 룸으로 안내했고, 이후에는 일사처리였다.
곽지안의 얼굴이 붙은 가짜 신분증도 제시했지만 문제될 건 전혀 없었다.
“앞으로도 저희 은행을 이용해 주십시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지 마시고 저를 찾아주십시오.”
공장에서 2년간 일하며 은행을 들락거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대접이었다.
“혹, 이 근처에 패드형 컴퓨터 살 만한 곳이 있나요?”
“바로 옆에 건물에 살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구매하실 거면 여기서 기다리시죠. 제가 잘 아는 친구들이니 구매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소파에 앉아 은행 직원이 가져다준 잡지책을 읽고 있으니 패드형 컴퓨터가 나에게 왔다.
계산을 하고 은행 문을 나설 때까지 내가 움직인 것은 대여 금고에 통장과 카드를 넣을 때뿐이었다.
역시 돈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 택시에 올랐다.
“일은 모두 끝났어요?”
“아직요. 일단 이 돈 먼저 받으세요.”
“뭘 이렇게 많이…… 감사합니다.”
택시의 미터기는 15만 원이 넘게 찍혀 있었지만 난 30만 원을 건넸다. 패드형 컴퓨터가 얼마나 할지 몰라 200만 원을 뽑았을 뿐. 가지고 있어 봐야 소용없는 돈이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혹시나 싶어 가지고 있지만 일이 끝나면 백윤희의 지갑에 남게 될 돈이었다.
과거에는 100원짜리 하나까지 챙기던 내가 용됐다.
“어디로 모실까요?”
“화곡동 140―XX번지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아저씨는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가 밝다.
화곡동 봉제산 밑에 있는 작은 빌라.
지은 지 오래돼 겉에서 보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나동 203호…….”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벽은 여기저기 스티커가 붙었다 떨어진 자국들과 벗겨진 페인트로 지저분해 보인다.
펜으로 쓰인 203이라는 숫자가 보이는 철문.
철문에 붙은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누구세요?”
안에서 들리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여기가 혹시 김병우 씨 댁인가요?”
“맞기는 한데 누구시죠?”
여자 목소리라 그런지 문을 열며 살짝 가재미 눈을 뜨며 물어본다.
‘아! 그때 비명을 지르던 아줌마다.’
정신세계에서 이 아줌마의 목을 수없이 졸랐었다. 그래서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 아줌마도 그때보다 많이 나이가 들었다. 많이 마르기도 했고.
“누구세요? 제 남편은 왜 찾아오셨죠? 설마 이 인간이…….”
“아뇨, 김병우 씨가 현금 씨의 병원비를 대고 계시죠?”
“아! 그건 그런데 무슨 일로…….”
“잠깐 들어가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들어오세요.”
안에 들어가니 휑하다.
거실에는 두 사람의 결혼 사진과 내가 구한 아이의 유치원 졸업 사진이 눈에 띈다.
오래된 TV, 낡은 장판.
마치 과거 나의 옥탑 방을 보는 것 같다.
또 한쪽으로 볼펜 조립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박스들이 있고 볼펜들이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다.
“차는 뭘로?”
“그냥 시원한 물 한 잔 주세요.”
거실에 앉아서 기다리자 물을 쟁반에 받쳐 온다. 한데, 아줌마 눈초리가 이상하다.
‘헙!’
치마를 입고 양반다리라니.
난 재빨리 다리를 옆으로 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녀가 준 물을 마시며 쪽팔림을 달래본다.
“집이 많이 엉망이죠?”
“별말씀을요.”
“현금 씨 일 때문에 오셨다고 하셨는데 무슨 일이시죠?”
“그전에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난 다시 물을 마시고 내가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법적으로는 아무 잘못도 없으신데 왜 절, 현금 씨를 도우신 건가요?”
“글쎄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군요.”
“아이를 구해준 사람이라 그러신 건가요? 하지만, 넉넉지 않은 살림이신 것 같은데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내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금 씨와 무슨 관계시죠?”
“친척입니다. 외국에서 최근에야 돌아왔거든요.”
이미 거짓말은 생각해 왔기에 내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휴∼ 그러시군요. 죄송해요. 제 부주의로 젊은 청년을 그렇게 만들었네요.”
“…….”
“우리 현아를 구해준 것 때문에 병원비를 냈다고 할 수 없네요. 그날…… 그러니까 현금 씨가 사고를 당하던 그날부터 전 지금까지 악몽을 꾼답니다. 날 원망하고 내 목을 조르는 꿈에 매일 밤 몇 번씩 깨죠.”
목을 조른다는 말에 잠깐 움찔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만히 장판을 만지며 고개를 숙인 채 말한다.
“남편과 현아에게는 미안하죠. 7년이 넘게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대부분은 병원비로 들어가요. 하지만 남편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라면서 웃어넘긴답니다. 차라리 저에게 화라도 내면 편할 텐데…… 병원비는 다른 뜻이 아니었어요. 저의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이기적인 도움이었을 뿐이랍니다.”
고해라도 하듯이 말하던 그녀는 결국 눈물을 떨어뜨린다.
나만 아팠던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이 여자도 나만큼 아파하고 있었나 보다.
“이제는 잊어요. 용서할게요. 아마 현금 씨도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그 마음에 고마움을 느낄 거예요.”
“흑흑! 으흑흑!”
흐느끼는 그녀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속으로 중얼거렸다.
‘용서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제는 잊으세요. 저도 이제 잊겠습니다.’
세상엔 참 나쁜 사람들이 많지만, 울고 있는 이 여자는 착한 사람이다.
그리고 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여자아이를 구한 건 잘한 일이라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었다.
“죄, 죄송합니다. 초면에 못난 모습을 보였네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정말이지 속이 후련하군요.”
“아녜요. 이제 편안히 지내셨으면 합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
난 내가 온 목적을 말했다.
“앞으로 현금 씨의 병원비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안 돼요! 저를 위해서라도…….”
“이제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현금 씨의 병원비로 사용한 금액을 돌려드리고 싶군요.”
“그건…….”
“현금씨를 위해 그토록 애써 주신 점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제 남편분과 저 아이…… 현아라고 했나요? 현아와 행복하게 사세요.”
난 패드형 컴퓨터를 꺼내 인터넷뱅킹으로 접속했다.
“계좌번호는 지금까지 병원으로 보낸 그 계좌로 보내면 될까요?”
나의 단호한 태도에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됐어요. 확인해 보세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문밖까지 따라 나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만 저들 가족이 행복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