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점핑1권(6화)
3. 각인을 하다(2)


오전부터 같이 다녔던 기사 아저씨에게 추가로 20만 원을 주고 병원 앞에서 헤어졌다.
화곡동에 들렀다 내가 살던 곳으로 갔지만 그곳은 이미 재개발 공사 중이었다.
유체 이탈과 정신 이동 방법이란 책을 찾고 싶었지만 이미 8년이란 세월이 지났기에 이미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 현장을 보고 완전히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차장으로 향했다.
백윤희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들고 있던 패드형 컴퓨터는 한쪽에 숨겨둔 후, 문을 열고 자리에 앉은 후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지만 좀 피곤한 생각이 든다.
창밖으로 적당한 인물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병원 관계자면 곤란했기에 간호사들의 기억을 훑으며 바라본다.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중후한 남성.
괜찮아 보인다.
이제 백윤희를 떠날 시간이다.
난 핸드백에서 그녀의 핸드폰을 꺼내 옆자리에 던져 놓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메시지를 보낸 후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정신을 집중하고 중년의 남자에게 점핑을 시도했다.
눈을 떴을 땐 막 차문을 여는 자세였다.
다시 차문을 닫고 백윤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얼떨떨한 표정.
아마 알아서 추측하고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납득할 것이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숨겨둔 패드형 컴퓨터를 들고 잠시 기억을 읽을까 고민해 본다.
좀 피곤한 게 읽으면 그냥 튕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하려면 읽는 게 좋다.
잠시 고민하던 난 결국 읽기로 결정했다.
결정하자마자 쏟아지는 기억들.
극히 짧은 시간에 중후한 남자의 일생을 본다.
그리고 그의 일생을 본 한마디 소감을 내뱉었다.
“나쁜 새끼!”
기억을 안 읽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 자식 이 병원의 이사장이었다. 한데, 정말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
아니, 돈만 밝히면 그나마 다행. 젊었을 때부터 어지간히 사고를 많이 쳤다.
강간, 폭행, 사기 등. 아주 밟아 죽일 놈이다.
지금도 와이프 몰래 사귀는 여자만 두 명이다.
당장에라도 병원 제일 위층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할 일이 있어 참는다.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경과 과장의 사무실로 갔다.
“헛! 이사장님이 무슨 일이십니까?”
“김 선생, 고생하십니다.”
“별말씀을요,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내가 들어가자 놀란 표정의 의사. 곧 사근사근한 표정으로 소파로 안내한다.
그의 행동을 보니 아주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 같다.
“한데,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십니까? 그냥 전화로 하셔도 다 처리해 드릴 텐데.”
“그럴 수야 있나요. 오늘 원장님 보러 온 김에 부탁할 게 있어 들렀습니다.”
“부탁이라뇨. 편하게 말씀하시죠.”
평소 이사장의 성격을 잘 아는지 신경과 과장은 알아서 긴다.
이러한 모습이 신기하긴 했지만 말을 이었다.
“제가 좋은 일을 좀 하려는데 김 선생이 좀 도와주세요.”
“…….”
헐, 이 아저씨 얼굴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다.
이해한다. 내가 차지한 이사장이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나도 어디 가서 자랑할 일이 필요하지 않겠소.”
“아!”
그제야 이해하는 얼굴이다.
난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혼수상태 환자 중 두 명을 선별해 방을 옮겨 재활훈련도 시키고 영양제도 팍팍 넣어주고, 나중에 그들이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방송국도 부르고.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당장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용은 내가 전부 부담할 텐데 얼마나 나올까요?”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경비로 처리하셔도…….”
“그럼 안 되지요. 방금 말했잖아요. 비용을 내가 내야 나중에 목에 힘 좀 줄 거 아니요.”
“하하! 맞습니다. 역시 이사장님은 탁월하십니다.”
참 이 사람도 먹고 살려고 노력한다.
“비용은…… 잠깐만요. 2인실에, 하루 두 번 마사지하고, 서서히 재활훈련을 하려면 일인당 한 500 정도? 아, 아니 350 정도면 가능하겠습니다.”
내 눈치를 살피다 금세 가격을 내린다.
“그 정도면 괜찮겠군요. 그럼 매달 계좌이체시킬 테니 내일부터라도 당장 시행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혹, 환자 명단을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두 명을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죠.”
패드형 컴퓨터를 가져온 신경과 과장은 명단을 보여준다.
“여기 현금이라는 환자와 곽지안이라는 환자가 좋겠군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더 좋겠죠.”
“하지만 그들은 척수를…… 네네, 젊은 환자가 좋겠죠.”
눈썹을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또다시 말을 바꾼다.
난 병원 통장으로 자동이체를 신청했고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더 말했다.
“물론이죠. 진즉에 그렇게 했어야 하죠.”
“내 김 선생이 이번에 제대로 신경 써주면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절대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혹 다시 저와 보시더라도 절대 모른 척해 주세요.”
“네네! 절대 모른 척하겠습니다. 혹, 그들이 깨어나면 그때 연락드리겠습니다.”
“참, 두 사람을 병실에 옮기거든 이것을 그들이 있는 방에 놔두세요.”
“예?”
“음악도 듣고 하려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 두 사람을 위한 제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약간의 억지였지만 이사장의 말이라 그런지 아무 의심 없이 받아 든다.
“이번 일은 제가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을 던져 주고 방을 나와 차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아까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제는 나의 육체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이 나쁜 놈을 그대로 보내자니 화가 난다.
뭐, 기회가 이번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난 눈을 감고 내 육체로 돌아가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날 당긴다.
지안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잠시 쉬어야겠다.
피곤한 하루였다.

***

내가 정신세계 속 쪽방에서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들은 소리는 꽤나 즐거운 댄스음악이었다.
별빛달빛을 반복적으로 부르는 아름다운 목소리.
최신가요인가?
잠시 정신을 집중해 유체 이탈을 시도했다.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전혀 기분 나쁜 얼굴이 아니다.
‘미안, 너무 피곤했나 봐.’
‘일이 잘된 것 같으니 용서하지. 그나저나 심심했어. 어제 있었던 일이나 자세히 얘기해 줘.’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주위를 돌아봤다.
신경과 과장이 꽤나 신경을 썼나 보다.
2인실로 나란히 지안과 누워 있고, 채광이 꽤 잘되는 병실이다.
또한, 벽면에는 큰 TV가 달려 있다.
물론, 지금은 무용지물이지만 나중에 TV도 켜놓으라고 말을 슬쩍하면 될 일이다.
내가 맡겨놓은 패드형 컴퓨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꽤나 귀에 거슬리는 음악도 있었지만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호사였기에 불만은 없다.
‘……그래서 문을 열어놓고 내 몸으로 돌아왔어. 이게 끝이야.’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없게 해? 너도 어지간히 여자에게 인기 없겠다.’
‘무, 무슨 소리. 나 좋다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퍽이나 그랬겠다.’
눈치가 백단이다.
‘그나저나 이 병원 이사장이 그 정도로 망나니였어?’
‘응! 얼마나 화가 나던지 병원 옥상에 가서 뛰어내리려고 했다니까.’
‘그럼, 재미가 없지. 가령, 그와 관련된 세 여자를 한자리로 불러내거나 그가 숨겨둔 비자금을 숨겨 버리던지. 좋은 방법들 많잖아.’
‘…….’
‘그런 인간들은 서서히 말려 죽여야 재밌는 거야.’
독한 것 같으니라고.
나처럼 깔끔하게 처리해야지.
음, 생각해 보니 나쁜 방법 같지는 않다.
놈이 숨겨둔 비자금이 어디 있는지 아니까 꿩 먹고 알 먹고인가?
‘이제 어쩔 셈이야?’
‘그러게. 내공심법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고민이다.’
‘뭐가?’
‘우리나라 인구만 5,000만 명이야. 하루에 10번씩 점핑을 한다고 해도 만삼천 년이 넘게 걸려.’
‘에휴∼ 넌 공부 좀 해야겠다.’
이게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만일 네가 대통령을 만나려고 해. 그럼, 너 주위 사람들 모두의 인맥을 이용한다고 할 때 몇 단계나 거쳐야 할 것 같아?’
‘글쎄? 만날 수나 있을까? 난 고아에 친인척이 없다고 말했잖아.’
‘너 공장 다닐 때 사장도 있고 너와 궁합이 잘 맞는 신미향 간호사도 있잖아.’
‘됐거든! 그 곰 얘기는 그만하지. 난 너처럼 예쁜…… 험. 나도 눈 높단 말이야.’
그동안은 멀리 떨어져 지안의 영체를 봤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바라보니 정말이지 예쁘다.
내가 그 의사였으면 물고 빨고 난리가 났을 텐데. 쩝!
‘예를 든 거잖아. 어쨌든 그런 식으로 만나가면 4번 정도면 대통령을 만날 수 있어. 나라면 한 단계만 거치면 대통령을 만날 수 있지.’
지안의 말은 공장 사장이 아는 사람 중, 경찰서장이나 청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럼, 그 경찰서장이 아는 사람 중 판, 검사가 있을 수 있고, 그 판, 검사 중에 대통령과 학연이든 지연이든 혈연으로 관련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라는 의미였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 알겠어?’
‘응! 고마워.’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만날지 말해봐.’
정말 날 무시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영체라서 용서한다.
‘점핑을 해서 기억을 읽는다. 그리고 그 사람과 관련된 인물 중 무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만나 점핑을 한다. 이렇게 하면 되잖아.’
‘휴∼’
지안은 세상 무너질 듯 한숨을 뱉는다.
아놔∼ 왜 그러는 건데?
‘그냥 내가 설명할게. 우리나라 기업 총수들이나 정치인 중 제법 유명한 이들에게 점핑해. 그리고 그들의 기억을 읽는 거야. 아마 네가 찾는 사람이 존재만 한다면 빠르면 며칠 안에 늦어도 일 년 안에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지안의 말을 듣고 있으니 공부를 해야겠다는 욕구가 생겨난다.
그냥 공부가 아니라 인생 공부 말이다.

얼마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한 생활이다.
해가 뜨면 햇볕이 드는 안락한 방과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기존에 음식 대신 먹던 링거액도 꽤 고급 링거액으로 바뀌었고 틈나는 대로 간호사들이 와 이상한 주사도 한 방씩 놓고 갔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물리치료사가 들어와 나와 지안의 몸을 열심히 움직여 준다.
단 이틀이었지만 얼굴 땟깔이 좀 달라져 보인달까?
‘눈 돌리지 마.’
자꾸 눈이 가는 걸 어떻게 해!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방금 전 나의 물리치료가 끝나고 지안의 물리치료가 시작되었는데 이게 상당히 야하다.
물론, 3년간 빼빼 마른 지안의 몸매가 어디 볼 것이 있겠느냐마는 영체의 모습과 겹쳐 보면 꽤나 훌륭한 볼거리다.
‘너도 내 모습 다 봤잖아!’
난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남자와 여자 다른 거야. 여자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거든.’
그놈의 비밀 타령은.
물론, 보기 싫은 모습도 있다.
특히, 소변 배출 통로를 확보할 때는 난 항상 고개를 돌렸다.
“응차!”
이 병원에는 여자 물리 치료사가 없나 보다.
지금 지안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신미향이었다.
‘신미향 씨도 살만 빼면 꽤나 예쁜 얼굴인데 말이야.’
‘응, 예전에 꽤 예뻤어.’
난 뒤로 돌아선 채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데?’
‘여자는 민감하거든. 그래서 상처받기가 쉬워.’
‘그게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지안의 말은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