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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7화)
3. 각인을 하다(3)
신미향은 남자에게 배신당한 후, 폭식증에 걸렸다.
그까짓 남자 뻥하고 차 버리고 쿨하게 잊어야지 어지간히 바보다.
꼬치꼬치 캐묻는 지안.
‘그놈은 뭐하는 놈인데?’
‘그냥 직장 다니는 사람. 단지, 그 회사 사장 딸과 결혼했어.’
‘하여간 그런 놈들은 물건을 잘라 버려야 하는데 말이야.’
움찔!
‘왜 니가 움찔대? 너도 혹시?’
‘아, 아냐! 난 지금까지 여자와 사귀어 본 적도 없었어.’
‘오호∼ 인기가 엄청 많았다며?’
‘…….’
‘알아, 알아. 인기와 사귀는 건 별개라 말하고 싶은 거지? 퍽이나.’
하여간 말을 못하게 하는 재주는 타고 났다.
‘혹시 살을 빼라거나 많이 먹지 말라거나 그런 암시는 못 심는 거야?’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가능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점핑을 하면 그냥 그 사람이 되는 것뿐이야. 너에게 점핑했을 때완 다르다고.’
‘어떻게 다른데?’
‘글쎄……?’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안에게 들어갈 때는 분명 내 몸에서 유체 이탈한 상태처럼 된 후, 몸과 일체화를 시도했다.
한데, 표현이 이상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점핑할 때는 유체 이탈한 상태를 지나치고 바로 일체화에 들어간다.
내 설명에 지안은 점핑 후 유체 이탈을 시도한 후 다시 일체화해 보란다.
될까라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눈앞에 뚱뚱한 실험체가 있으니 바로 점핑을 시도했다.
약간의 이질감 후 일체화가 되어 눈을 떴다.
“허억!”
신미향은 막 지안의 두 다리를 들어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당장 눈 안 돌려!’
보이지도 않는 지안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최대한 얌전히 그녀의 다리를 침대에 내려놓고 병실 한쪽에 있는 간이침대에 신미향의 몸을 눕혔다.
유체 이탈을 했을 때 그녀가 쓰러지면 난리가 날 것 같아서였다.
머리끝에 집중을 하고 양 눈의 중심 30cm 앞으로 나아간다 생각했다.
처음 내 몸에서 빠져나올 때보다 힘들다.
얼마나 했을까? 쑥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
‘그러게. 내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훨씬 힘들어.’
‘시간 없어. 얼른 들어가 봐.’
‘들어가서 정신세계면 어떻게 해야 해?’
난 여자에 대해 모른다.
아니, 아는 남자들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남자에 대한 복수.’
눈을 번뜩이며 말하는 지안.
인상이 자연스레 찡그려진다.
‘넌 어째 말만 나오면 그렇게 섬뜩하냐? 막장드라마 인어아줌마에 나오는 복수의 화신이냐?’
‘신미향은 결코 복수할 스타일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말하는 건 내가 멋쟁이가 되어 날 버린 걸 후회하게 만들 거야라는 복수를 말하는 거야.’
아니다. 지금 말하는 건 가식이다.
조금 전 말할 때는 분명 엄청난 복수를 하라는 말이었다.
난 다시 신미향과 일체화에 들어갔다.
일체화라는 단어 자체가 조금 기분이 나쁘다.
‘됐다!’
여전히 적응 안 되는 암흑.
일단 방을 만들었다.
지안의 방만큼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고, 그녀의 전 남자 친구가 여자들과 노는 사진들을 4면에 빼곡히 붙여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이어트’, ‘멋진 모습으로 바뀌어 복수’, ‘운동’ 등 그녀에게 자극이 될 만한 글을 붉은색으로 썼다.
또 한 가지 쓴 것은 기억상실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는 글이었다.
앞으로도 신미향의 몸을 자주 이용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다이어트의 부작용으로 생각하면 좋지만 혹, 다른 생각을 가질지 몰라서 해둔 안전장치였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과거 모습을 방 한가운데 조각상처럼 만들었다.
‘좀 아닌데?’
신미향이 과거에 꽤 예뻤다는 말이지 곽지안이나 백윤희처럼 아름답거나 섹시하진 않았다.
자극을 주려면 좀 부족하다 싶어 곽지안의 얼굴을 아주 살짝 섞었다.
그래도 부족해 보인다.
좀 더 섞었다.
몇 번 그렇게 하고 나니 조각상이 아예 지안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뭐, 자극을 주자고 한 일이니까.’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고 내 육체로 돌아간다.
4. 암천회(1)
백윤희의 몸을 다시 빌렸다.
내가 외출을 한 날 이후의 기억을 읽어보니 의사와 약간의 말다툼은 있었지만 아무 일없이 넘어간 모양이다.
이번엔 조심스레 차까지 끌고 왔다.
공장에서 일할 때 운전면허가 필수라 따놓기는 했지만 딱히 운전해 본 적은 없었다.
몇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차문을 내리고 사과를 하면 대부분 잘 해결되었다.
역시 이 세상은 돈, 미모 따위로 좌우되는 곳이었다.
기업의 총수가 일찍 출근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도대체 올 생각을 안 한다.
아무래도 도로에 비상등을 켜고 너무 오래 있을 수 없다.
일단 경비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점핑을 해야겠다.
그전에 잠시 할 일이 있다.
난 백윤희의 몸에서 유체 이탈을 했고 다시 일체화했다.
신미향에게 했던 것처럼 백윤희의 정신세계에 방을 만들었고, 몇 가지 작업을 했다.
자신을 소중히 하라는 것과 기억상실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문에서 서성이는 경비원 중 좌측 사람에게 점핑했다.
먼저 그의 기억을 읽었다.
고통이 일어났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인지 버틸 만하다.
김칠현. 경호팀 소속.
특수부대 출신으로 꽤나 험한 생활을 하다 경호팀장의 눈에 띄여 취업한 인물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정문 근처에 내가 주차해 놓은 차에 관한 것이었다.
난 김칠현의 몸을 움직여 백윤희의 차로 갔다.
창문을 두드리니 얼떨떨해 하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괜찮으십니까?”
모른 척 물었다.
“아, 예. 제가 요즘 왜 이런지 모르겠군요. 여긴 어디죠?”
“여기는 삼행그룹 본사 앞입니다. 많이 피곤하셨나 보군요?”
“아무래도 그런가 봐요.”
“여기 있으시면 저희가 곤란합니다. 우측으로 들어가는 길에 주차장이 있으니 피곤하면 그곳에서 쉬시고 가십시오.”
“아뇨. 배려에 감사해요.”
차를 몰고 멀어져 가는 그녀의 차를 바라본다. 멀쩡한 사람을 자꾸 이상하게 만드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는 하다.
―누구의 차량인가?
귀에서 들리는 소리에 상념을 깼다.
“피곤한 사람이 잠깐 피곤을 푼다고 주차를 한 모양입니다.”
―좋아. 계속 수고.
“예, 선배님.”
사람의 기억을 읽는 것도 요령이 생겼다.
일단, 기억 전송이 모두 끝나면 가장 최근 기억부터 더듬어 본다.
그럼, 이 사람이 현재 뭘 하는지 어떤 상탠지 등이 간단히 나온다.
그리고 다시 거꾸로 대략 한 달간을 본다.
이 사람으로 행동하기 적당하다고 생각할 때 본격적으로 내가 원하는 정보를 검색한다.
실제 평생 기억이라고 해도 하루하루 밥 먹고 양치하고 하는 기억은 나에게 전송이 안 된다.
특별한 기억들만 나에게 들어온다고 할까?
가령, 김칠현의 기억 중 군대에 관한 기억은 훈련소 시절 힘든 기억과 중간에 여자 친구와 헤어진 일은 또렷하지만 다른 기억은 흐릿하다.
물론, 알려고 하면 더 많이 알 수 있지만 그건 내 영체의 힘을 약하게 할 뿐이었다.
“수고들 하십니다.”
출근하는 회사 직원이 인사를 한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인사를 받다가 생긴 요령이다.
처음엔 일일이 인사를 한 모양인데 출근하는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니 자연스레 바뀐 것이다.
가만히 서 있는 것도 곤욕이다.
무릎이 아프다.
본격적인 출근 시간이 되자 엄청난 인원들이 들어온다.
그 시간도 지나갔다.
이제 슬슬 점핑을 해야 한다. 점핑 대상자의 기억상실의 공백이 크면 스스로 이유를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장님 도착!
기회다. 응? 근데 차장? 차장한테 무슨 경호씩이나 재빨리 기억을 검색한다.
이남호. 삼행그룹의 후계자. 삼행건설에서 차장으로 근무 중.
이해가 됐다.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님 같은 분류다.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 차도 타지 않고 다가온다.
그 뒤로 두 명의 경호원이 뒤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그냥 회장 일가를 보호하는 경호원이라는 것뿐이다.
난 이남호의 머리끝을 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나아간다, 나아간다, …….’
점핑 성공!
이남호와 일체화가 되었을 때 들리는 낮은 목소리.
“괜찮으십니까?”
“예, 어제 저녁에 책을 읽는다고 좀 늦게 자서 그런가 봅니다.”
이남호의 기억엔 내 옆에서 날 부축하듯이 잡고 있는 경호원은 함부로 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시군요.”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
난 걸음을 옮기며 재빨리 기억을 훑기 시작했다.
오늘 이남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삼행건설 문제로 그룹 이사이자 삼촌을 만나러 왔다.
일단 기억을 읽고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가 좀 어지럽군요. 잠깐 쉬었다 이사님을 뵈어야겠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시죠. 물이라도 갖다드릴까요?”
“네.”
31층의 휴게실 소파에 머리를 기댄 채 이남호의 기억을 차분히 정리해 본다.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는 인생이다.
이남호는 생의 대부분을 교육받는데 보냈다. 아니, 지금도 삼행건설에서 그룹 후계자로 교육받고 있는 중이다.
가진 재산과 앞으로 물려받을 그룹을 생각하다면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참 심심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불행한 인생처럼 보인다.
특이한 점은 그를 수행하고 있는 경호원들.
그의 어버지인 삼행그룹 회장이 붙여준 인물들이었고, 그들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그 순간 아주 짧은 영상이 다시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들이 무예를 연습하는 장면.
마치 중국 무협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의 키를 훌쩍 뛰어넘고 꽤 먼 거리를 단숨에 도약하여 날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이들이다!’
가슴이 뛴다.
지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너무나 쉽게 무술의 고수를 발견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내공심법을 가지고 있는지는 점핑을 해 봐야 한다.
더 이상 이남호의 기억엔 그들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물 드시죠.”
“고맙습니다.”
물을 건네받아 마시며 두 사람의 경호원을 본다.
느낌상 물을 갖다준 사람, 금두환이 아랫사람 같다.
무술 연습하는 장면에서도 가만히 서서 경호를 서고 있는 차영호가 더 강해 보였다.
점핑할 상대로 더 강해 보이는 차영호를 골랐다.
바로 점핑을 하려다 잠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점핑이 아닌 이남호의 정신세계로 들어갔다.
방을 만들었다.
‘뭐가 좋을까? 그래! 그게 좋겠다.’
방에 뭘 각인시킬까 잠시 고민하다 세 가지 문장을 벽에 가득하게 도배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가지자.
즉흥적인 생각이었다.
그가 아버지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 하고픈 것도 못하고 지내는 것이 좀 불쌍하게 보였다는 점과 개인적으로 부자들이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각인시킨 것이다.
이렇게 정신세계에 방을 만들고 각인시키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라는 뜻에서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