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점핑1권(8화)
4. 암천회(2)


난 눈을 뜨고 차영호의 머리끝을 바라보고 주문을 외웠다.
느낌이 좀 이상하다.
그의 머리끝에 느껴지는 홀이 마치 무언가로 막혀 있는 것 같다.
난 그 막힌 벽을 뚫고 들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후∼ 무술의 고수는 원래 이렇게 힘든가?’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다시 시도했다.
막고 있는 벽을 의지로 계속 두드려 본다.
그도 이상함을 느꼈을까?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나에게 시선을 돌리고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순간 벽에 약간의 구멍이 생긴다.
‘됐다!’
난 그 구멍을 향해 더 많은 힘을 쏟았다.
순간 뻥 뚫린 벽. 이제 점핑이다.
한데, 그 뚫린 구멍이 빠른 속도로 메워진다.
이미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벽에 부딪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쑤우욱∼∼∼
다행히 구멍을 통과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강한 이질감.
‘젠장! 정말 힘들군.’
다른 사람들보다 일체화하는 게 몇 배는 힘들다.
하지만, 이미 몸 안에 들어온 이상 시간문제일 뿐이다.
“응? 제가 왜 여기 누워 있는 거죠?”
“아까 몸이 좋지 않다고 하셔서 잠깐 쉬신다고…….”
이남호와 금두환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빨리 일체화가 되어야 할 텐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이사님이 기다리고 계시겠군요. 서두르죠.”
“네.”
이사실로 움직이던 둘이 내가 움직이지 않자 의아한 듯 쳐다본다.
‘움직여! 움직여!’
“사형, 뭐하세요?”
금두환이 다가와 속삭인다.
이거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급속도로 피곤해진다.
“사형?”
“괜찮다. 차장님 죄송합니다. 잠깐 딴생각하느라…….”
다행히 그와 일체화를 이뤘다.
기억을 읽어 들이며 이남호의 뒤를 따른다.
“여기에서 기다리세요.”
“예.”
이사실로 들어가는 이남호에게 인사를 하고 문 앞에 선다.
차영호의 삶은 이남호와 비슷했다.
이남호가 후계자 수업을 평생 받았다면 차영호는 무술 수련에 평생을 바친 이였다.
문제는 그의 기억 중 많은 부분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찾았다!’
선도법(仙道法).
그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해오던 호흡법으로 정기신(精氣神) 삼단 즉, 상·중·하단전을 고루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내공심법이었다.
난 선도법에 대해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수련 방법에 관한 정보들이 들어온다. 그러다 두 개의 단어가 떠오르며 또다시 기억이 이어지지 않는다.
‘응? 암천회(햌天會)? 노사(老師)?’
아무리 그 두 단어를 반복해도 반응이 없다.
단어를 유추해 보면 뭔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내공심법을 얻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냥 떠날까 하다 이남호에게 했던 것처럼 방을 만들고 몇 가지를 각인시키고자 했다.
한데 이거 만만치가 않다.
겨우 방을 만들고 나니 내 육체가 날 당기는 느낌이 든다.
빈방만 남겨놓고 가기가 아쉬웠지만 각인시키다 영체가 다칠까 싶어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잡고 있던 긴장을 풀며 내 육체로 돌아가길 바랐다.
차영호의 눈으로 바라보던 복도의 풍경이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

“정신 이동자…….”
“사형, 무슨 말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다.”
차영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
분명 자신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이남호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잃었다.
한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남호는 이사실로 들어가 있는 상태.
자신의 사부에게서 정신 이동자에 대해 듣지 못했다면 잠시 졸았다고 느꼈을 상황.
만일 그의 생각이 맞는다면 지금 당장 자신의 사부에게 연락을 해야만 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 됐습니다. 회사로 가죠.”
이사실의 문이 열리며 이남호가 나온다.
“이 차장님,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말하세요.”
복도를 걷던 이남호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다.
“혹시, 아까 기억을 잃지 않으셨습니까?”
“네? 아! 소파에서 쉴 때 말이군요.”
“예.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남호는 생각하려 해 봤지만 설명할 것이 없었다
“설명하고 말 것이 없군요. 그냥 잠깐 존 것 같은 느낌일 뿐이었습니다.”
“그럼, 아까 회사에 들어오기 직전 쓰러지려고 했던 것은 기억에 나십니까?”
“그랬었나요? 아마 그때 정신을 잃었나 보군요. 그때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차영호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까 전의 상황을 재생하듯이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 경호원!
경호원 한 명이 잠깐 얼떨떨한 표정이었던 것이 생각난다.
“사제, 차장님 모시고 차에 가 있어. 난 잠깐 들렀다 바로 갈게.”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금두환은 오늘따라 좀 이상한 차영호를 바라본다. 하지만 차영호는 엘리베이터로 급하게 뛰어갈 뿐이다.
“오전에 입구에서 근무를 서던 친구가 누굽니까?”
급하게 상황실로 달려온 차영호는 책임자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잠시 당황하던 책임자는 곧 그가 누군지 알고 대답한다.
경호팀에서도 극비에 속하는 이들.
그룹의 중요 인물들은 모두 이들이 경호했다.
비록 자신이 경호팀 책임자라곤 하나 저들에 대해서는 어떤 명령도 할 수가 없었다.
“추승교과 김칠현 경호원입니다. 혹, 그들이 무슨 실수라도…….”
“아닙니다. 단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그런 것뿐입니다.”
약간 긴장한 얼굴의 책임자를 보던 차영호는 자신이 너무 성급했음을 깨닫고 말을 부드럽게 했다.
“두 사람은 경호팀 휴게실에서 쉬고 있을 겁니다. 희열아, 이분 휴게실로 안내해 드려라.”
“예! 저를 따라오십시오.”
오전 근무를 섰던 두 사람은 잠깐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아까 이상한 행동을 보인 경호원이었다.
“잠을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혹시 오전 근무할 때 뭐 이상한 점 없으셨습니까? 가령 잠깐 졸았다거나…….”
“저, 그게…… 그러니까…….”
김칠현은 뜨끔한 표정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괜찮은 직장인데 혹 불이익을 당할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결코 무슨 문제가 생겨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불이익도 없을 겁니다. 다만 아까 조금 이상해 보여 묻는 것뿐입니다.”
차영호는 김칠현의 표정으로 그의 마음을 알고 부드럽게 그에게 말했다.
“아, 제가 본사 한쪽에 서 있는 차량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잠깐 졸았나 봅니다. 깨고 나니 차장님이 들어오고 계시더군요.”
“혹시, 그 차량 번호나 안에 있던 사람 기억하십니까?”
“글쎄요? 그 차량에 가서 뭐라 하기 전에 잠든 것 같은데요.”
“멍충아! 아까 너 차량에 가서 차 빼라고 하고 왔잖아.”
옆에 있던 추승교가 끼어든다.
“그랬나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머리를 긁적이는 김칠현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는 차영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역시 정신 이동자가 확실해.’
혹 오전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까 해서 상황실에 가서 봤지만 차량 종류만 알 뿐 번호는 알 수가 없었다.
상황실에서 나온 차영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사부님, 저 영호입니다.”
그의 말에 수화기 건너편에서 나이 지긋한 노인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오늘 정신 이동자가 저와 이남호에게 들어온 것 같습니다.”
―뭐라고! 정신 이동자? 자세히 말해보거라.
놀란 노인의 목소리에 차영호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

제계 5위의 성정현 회장은 어제 받은 메시지 때문에 오늘 저녁에 있는 러시아 기업인과의 만남을 전무에게 맡겼다.
전무는 그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냐고 말했지만 그건 어제 받은 메시지의 중요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정신 이동자, 마인드 앰블레이터의 재출현.
“빌어먹을 놈.”
평생 있지 못할 뼈아픈 과거가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그다.
‘벌써 25년 전인가?’
25년 전 정신 이동자가 SJ그룹에 입힌 피해는 엄청났다.
비자금으로 모아둔 모든 돈과 재산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를 했고, 회사 주식도 회사원들에게 일정 부분 나눠줘 버렸다.
속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진정한 기업인이 났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기자단을 모아 그러한 일을 발표한 성정현 회장의 부친인 성남일 회장도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한 일을 알아차리곤 쓰러져 몇 년간 고생하다 죽었다.
그 일이 정신 이동자가 한 짓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그때, 그에게 정신 이동자라는 존재를 가르쳐 준 곳이 바로 암천회.
그들은 암천회에 가입을 하면 전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부분의 재산은 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두말 없이 암천회에 가입했다.
그리고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했던 기부금 중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아파 쓰러진 부친을 재산 기부 발표 당시 치매 상태였다고 거짓 증언을 해야 했지만 돌아가신 그의 부친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그 이후 악착같이 재산 증식에 열을 올려 겨우 예전 수준으로 재산을 모았는데 다시 정신 이동자가 출연하다니.
“이번엔 절대 안 된다. 뿌드득!”
정신 이동자가 경제인들에게만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어느 날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판사들은 터무니없는(?) 판결을 내렸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들을 고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5분 뒤에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알았네.”
암천회에서 붙여준 두 명의 경호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눈을 감는다.
암천회에서 회의가 있을 땐 언제나 이렇다.
차도 경호원들이 구해 온 차량을 이용해야 하고, 도착해서도 회원들끼리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시간 안배가 철저하다.
지금까지 어떤 사적인 자리에서도 암천회의 회원임을 밝힌 적도 없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암천회의 절대 규칙 중 하나가 바로 ‘회원이 누구인지 알아서도 추측해서도 안 된다’였다.
바로 기억을 읽으면 모든 사실을 알아 버리는 정신 이동자 때문이었다.
그래서 암천회는 철저히 점조직화된 곳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대충은 누가 암천회 소속인지는 알 수 있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암천회에서 연락이 와 이번 건은 양보하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
반대로 그런 식으로 이득을 얻을 때도 있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가시죠.”
문이 열리자 성정현은 차에서 내려 경호원을 뒤따랐다.
아무도 없는 길. 뒤에 누군가가 도착했지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이는 별장.
별장에는 몇 개의 방을 제외하곤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두웠다.
하지만 목적지는 별장의 지하였다.
앞선 경호원이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고 성정현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와 다르게 화려한 복도를 따라간다. 좌우로 수많은 방문이 보였고 그중 한 곳으로 경호원들과 들어갔다.
편안한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앞으로 모니터가 있는 단출한 방이다.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까지 회의 시작하려면 10분 정도.
“차를 드릴까요?”
“시원한 음료가 있으면 주게. 아무래도 목이 타니 시원한 걸 마시고 싶군.”
성정현은 경호원이 건네는 음료를 받아 벌컥벌컥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