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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9화)
4. 암천회(3)


팍!
잠시 후 앞에 있는 모니터가 켜지며 익숙한 노인의 모습과 각시탈을 쓴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회원 여러분이 모두 모이신 것 같으니 오늘 회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여느 회의처럼 박수 소리는 없었다.
성정현은 비록 화면이지만 노인과 각시탈을 쓴 이에게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뒤에 있는 경호원들이 노인의 제자들이고, 각시탈이 암천회의 회주라 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한 행동은 더더욱 아니었다.
성정현은 두 사람을 진정 존경했다.
25년 전 피해에도 SJ그룹이 여전히 제계 5위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저 두 사람의 힘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아마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급하게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모두들 이미 연락을 받으셨겠지만 아무래도 정신 이동자가…… 나타난 것 같소.
노인은 정신 이동자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잠깐 말을 멈췄다 이었다.
―확실하십니까?
회원 중 누군가가 한 말이 변조된 음성으로 들려온다.
심각한 회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우스운 상황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웃지 않았다.
―내 제자 중 한 명이 직접 정신 이동자에게 정신을 뺏겼다고 말했고, 정황상 내가 추측하기에도 맞는 것 같소.
성정현은 들고 있는 음료잔을 부수려는 듯 꽉 움켜진다.
스피커로는 탄성과 분노의 소리가 웅성거리듯 들려온다.
―모두들 침착하시오. 이번 정신 이동자는 어리석은 건지 너무 일찍 정체를 드러냈소. 그러니 지금부터 모두 조심만 한다면 피해 없이 해결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를 막을 방법이 없잖습니까?
회주가 침착하라는 말에 또 누군가가 말한다.
―막을 수 있습니다. 추측에 따르면 그는 중급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 이동시 걸리는 시간은 대략 1분. 하지만 일체화에 시간이 좀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여러분 곁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이 제압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외부로 활동이 많은 저로써는 그의 침입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성정현은 자신이 물으려고 했던 질문이 나오자 귀 기울였다.
―물론, 완벽하게 막을 순 없겠죠. 일단 대외 활동을 최대한으로 자제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 예전처럼 쉽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기자 회견을 원천적으로 막을 생각이며 이상 행동을 보일 경우 여러분의 옆에 있는 경호원들이 철저히 막을 겁니다.
꽤 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회주(會主)는 일일이 그에 답을 한다.
성정현은 회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고 있다면 당하겠지만 이미 정신 이동자가 재출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어 보인다.
좀 전까지 조급했던 마음이 이제 느긋하게 바뀌었다.
―한데, 그의 처리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지난번처럼…….
―말을 조심하세요.
회주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 따르게 딱딱해졌다.
―죄, 죄송합니다.
한 사람의 질문에 훈훈하게 바뀌던 분위기는 갑자기 싸늘해졌다.
지난번 정신 이동자의 처리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절대 비밀이다.
영체로 사람들을 옮겨가는 그들을 제거하는 방법은 많지 않다.
정신 이동자를 찾아 죽이는 방법과 그들이 누군가의 몸을 차지했을 때 그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 정신 이동자는 정말 들어가 있지 말아야 할 인물들에게 들어가 있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목숨을 잃어야 했는데 이 비밀은 죽음까지 가져가야 했다.
그때 잘못됐으면 암천회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마 나는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는 성정현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불상사가 없을 겁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은행에서 자금 추적은 물론이거니와 CCTV로 관련된 자들을 조사하면 정신 이동자 본인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정현은 회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특히, 암천회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성정현 혼자의 힘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정신 이동자는 자신이 무슨 의적이라도 되는 듯 행동했다.
이제 그런 행동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정신 이동자들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릴 테니 상기하여 조심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그들은 근처에 있어야 이동이 가능합니다.
―둘째, 이동 속도는 상급이 되면 30초 정도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일체화 속도도 눈치가 채기 힘들 정도로 빨라지니 각별히 주의하세요. 반드시 그가 상급이 되기 전에 붙잡아야 합니다.
―셋째, 이동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노사(老師)께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5∼10번 쯤 될 것이라고 합니다.
―넷째, …….
성정현과 회원들은 회주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기 시작했다.

넓고 옛 향기가 물씬 한 방. 큰 모니터에 분할된 화면이 하나둘씩 꺼진다.
“노사,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회주.”
각시탈을 쓰고 있는 암천회의 회주는 노인을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이제 저도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무슨 말씀을요. 저 많은 이들에게 제약(制約)의 암시를 건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심력을 소모하지 않습니까? 저라면 아마 10명에게도 힘들었을 겁니다.”
“허허! 무슨 겸양을.”
노인을 향한 회주의 눈빛은 존경으로 가득했다.
직접도 아니고 화면을 통해 저들의 머릿속에 암시를 걸어놓은 것이다.
혹시나 정신 이동자가 회원들에게 침입한다고 해도 암천회에 대해 크게 얻을 것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잘 해결이 되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노사와 저희 암천회가 나서는데 잘되지 않겠습니까? 혹, 천기를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단지 영호 그 아이의 심벽(心壁)을 뚫었다고 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게 노사께서 걱정할 정도입니까?”
암천회주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 아이의 수련이 약해서 그런 거라면 좋겠지만…….”
노사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다만 어딘가를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5. 선도법(1)


선도법이란 내공심법을 얻어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갔다.
선도술이란 무술도 있었지만 지금으로선 필요 없으니 패스.
선도법 수련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선도법의 호흡(呼吸)에는 3단계가 있었다.
첫 번째 단계가 흡(吸)시 머리끝에(상단전) 의식을 두고 잠시 멈춘 후, 다시 가슴의 명치 부근(중단전)에서 멈춘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단전에 의식을 두고 멈춘 후 서서히 뱉는(呼) 것이다.
두 번째 단계가 흡(吸)시 입뿐만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 빨아들인 기(氣)를 상·중·하단전에 멈추며 마지막에 서서히 뱉는다.
세 번째 단계가 입을 통한 호흡이 아니라 상단전을 통해 흡(吸)한 기를 역시 상·중·하단전을 거치며 축적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육체를 컨트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 번째 단계가 쉬우냐?
아니다.
차영호의 기억엔 그조차도 호흡법의 2단계도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
그러니 3단계는 단지 이론일 뿐이라는 소리.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련법은 결국 3단계밖에 없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머리로 빨아들인 기(氣)를 잠시 머릿속을 맴돌게 하고 다시 중단전에서 잠깐 멈추게 하고 하단전에 그 기를 쌓는다는 생각을 해 본다.
꽤 오랜 시간 이러고만 있다.
실제 기를 빨아들인 건지, 그것이 쌓였는지조차도 미지수.
아니,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단지 상상하는 것뿐일 것이다.
‘후∼ 젠장.’
결국 눈을 떴다. 괜히 헛짓이 아닌가 싶어 집중이 되지 않는다.
―……57분 교통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현재 성수대교의 교통사고로 오가는 차량이 모두 막히고 있으며…….
라디오 소리에 지안과의 약속 시간이 되었음을 알고 유체 이탈을 했다.
‘나와 있었네?’
‘응, 누구완 다르게 할 일이 없잖아.’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고 있는 지안의 말투에 뼈가 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을 봤다.
병원의 휴게실에 많은 이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밖이 그리운 건가?
그리울 것이다. 나 또한 매일 밤 점핑을 하는 이유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였으니까.
사실 그녀에게 정신 이동 방법을 가르쳐 줄까 생각도 해 봤었다.
하지만, 나만이 가진 기술을 가르쳐 주기 꺼려진다는 마음이 있었다.
한데, 오늘따라 지안의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어차피 점핑을 한다고 해도 결국 움직이지도 못하는 육체를 벗어날 길이 없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많은 돈도 줄 만큼 속이 넓었는데 난 속 좁게 뭔가 특별한 기술이라고 그동안 지안에게 숨겨왔는지 모르겠다.
‘지안아, 밖에 나가고 싶었지? 미안. 내가 그동안 너무 내 생각만 했나보다. 내가 정신 이동 방법 가르쳐 줄게.’
‘정말?’
윽! 그런 초롱초롱 눈빛은 곤란하다고.
‘으흠! 그, 그래.’
침대와 침대 사이라 해 봐야 1m가 조금 넘는다.
그곳을 넘어와 얼굴을 바싹대고 말하는 지안 때문에 내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금아, 내가 지금까지 나쁜 놈이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고마워.’
갑자기 마음이 바뀌는 건 내가 소심한 놈이라 그런 거겠지?
하지만, 지안이 이처럼 기뻐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미리 가르쳐 주지 못해 괜스레 미안해진다.
‘유체 이탈과 비슷해. 대신 바라보는 것이 상대방의 머리끝에 있는 홀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면 돼.’
‘머리 꼭대기에 홀이 있어?’
‘응, 집중하면 잘 느껴져. 처음엔 난 그것도 모르고 점핑을 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더 빨리 점핑할 수 있어.’
‘그뿐이야?’
‘아니, 마지막으로 주문이 필요해.’
‘아, 네가 항상 중얼거리던 거?’
내가 그랬나? 하긴 혼잣말하는 것이 습관화되었으니.
‘잘 들어. 세그라이노 아진카이블로 사이진도 우르지보이노…….’
난 주문을 지안에게 들려주었다.
‘세그라이노 아진카이블로 사이진도 우르지보이노……. 맞아?’
‘아니 끝이 쇼리지아인 카아빌리도 가린지도노야.’
‘오케이!’
지안은 머리가 좋았다.
몇 번 중얼거리더니 벌써 다 외운 모양이다.
‘금아, 근데 머리끝에 홀이라고 한다면 혹시 선도법 3단계의 머리로 기를 빨아들이는 곳을 말하는 거 아냐?’
‘어라? 그런 건가?’
‘그러지 않을까? 그냥 생각일 뿐이야.’
생각해 보니 지안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다른 이들은 다 가지고 있는 홀이 나에게 없을 리 없다.
다만 내 머리끝을 바라볼 일이 없었기에 몰랐던 것뿐이다. 난 다시 나의 육체를 봤다.
있다!
바로 나와 육체를 연결하는 투명 선이 홀과 이어져 있었다.
‘지안아, 혹시 호흡법 할 때 느낀 것 없었어?’
똑똑한 지안이라면 혹시 뭔가를 느꼈을까 싶어 물어봤다.
‘아니. 그냥 생각만 할 뿐이었어.’
하긴, 얘라고 무슨 특별한 수가 있을까.
하지만 좋은 정보를 얻었으니 실험해 봐야 한다.
나의 홀을 느끼고 거기로 기(氣)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왠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어제는 뭐했어?’
‘어제? 헤헤! 돈 좀 벌고 왔지.’
‘결국 이 병원 이사장 비자금 털었어?’
‘응, 그런데 너무 많아서 일단 절반만 가져왔어.’
어제 난 밤에 밖으로 나갔었다.
그리고 차를 가진 남자에게 점핑해 이사장의 별장에 가 돈을 가져왔다.
‘혹시, 그 돈 어딘가에 기부했어?’
‘아니. 잘 묻어뒀어. 수고비로 남자의 주머니에 몇 푼 찔러 놓고 온 걸 제외하곤 몽땅 땅속에 잘 있을 거야. 근데 그건 왜?’
난 정직하게 생활했었다.
하지만 정직하다고 돈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나 몸이 병실에 누워 있으니 더더욱 돈에 대해 욕심을 가지게 됐다.
‘잘했네. 그런 돈은 기부해도 문제가 생겨. 그리고 1,000만 원 이상 되는 돈이 통장으로 오고 가면 금융당국에서 주시를 하게 되니 조심하라고.’
‘그래?’
몰랐다.
이사장의 별장에서 훔쳐 온 돈도 통장에 입금할까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땅에 묻어 뒀는데 천만다행이다.
‘얜 왜 이렇게 안 오니?’
지안은 신미향이 들어오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