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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10화)
5. 선도법(2)
달칵!
신미향도 양반은 못되나 보다.
‘신미향 쟤 요즘 왜 저래?’
매일 보는 얼굴임에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 그녀다.
정말 죽기 살기로 다이어트를 하는지 마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글쎄? 네가 그녀에게 뭘 각인시켰는지 몰라도 고무적인 현상이네.’
설마 정신세계에 만들어 놓은 방과 문장들이 영향을 미치는 건가?
“나 왔어. 심심하지 않았어? 내가 운동시켜 줄게.”
‘어라, 너랑 대화도 하는데?’
‘응, 얼마 전부터는 나에게 말도 걸더라.’
신미향이 지안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모습이 마치 무시무시한 광경을 본 것 같이 으스스하다.
얼른 신미향의 정신세계로 가서 그 조각상을 부셔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 신미향에게 점핑할 거니까 말시키지 마.’
‘알았어. 근데, 들어간 김에 방 안에 있는 조각상 없애줘.’
‘무슨 조각상인데?’
‘보, 보면 알아.’
난 얼버무리고 지안의 눈길을 피했다.
잠시 날 노려보는 지안은 곧 집중하며 정신 이동을 준비한다.
내가 이동할 때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라 신기한 듯 바라본다.
처음이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신미향이 지안을 운동시킨다고 나가지 않아 급할 건 없었다.
‘아!’
일순간 지안의 영체가 하얗게 빛나며 신미향의 머리끝 홀로 들어간다.
한참 땀을 흘리며 지안을 운동시키던 그녀가 그 자리에서 멈춘다.
일체화 단계로 들어간 모양이다.
이제 거구라고 부르기에는 살짝 마른(?) 신미향이 움직인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신기하네.”
‘더, 더듬지 마!’
하필 테스트를 한다고 내 육체를 이리저리 쓰다듬는 지안이다.
난 기겁했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내가 이때 점핑을 하면 어떻게 될까?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혹 그러다 둘 중 한 명의 영체가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놀라지 마. 그냥 이렇게 느껴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뭘 느끼고 싶다는 거야!
“근데, 점핑 의외로 쉽지 않네. 연습이 필요하겠어.”
날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간이침대에 가 눕는다.
한참 있다 나오는 지안의 영체.
‘왜 쓰다듬고 난리야!’
난 고함을 빽 질렀다.
‘말했잖아. 그냥 사람을 만지는 촉감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야. 너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나도 3년만이란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 왠지 화가 더 나는 것 같다.
‘백윤희였다면 용서했을 텐데’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잠시 든다.
곧 신미향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지안.
가만히 그녀가 다시 나오길 기다린다.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꽤 길게 느껴진다.
‘지안은 항상 그런 날 바라보고 있었던가?’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정신 이동을 가르쳐 달라고 안 한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난 침대에 누워 있는 지안을 쳐다본다.
빼빼 마른 얼굴, 까까머리처럼 거칠게 잘린 머리카락, 주사바늘이 꽂힌 얇은 팔.
문득,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다.
가슴한 켠이 꽉! 막힌 듯 답답해져 온다.
‘뭘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어?’
‘어, 어? 벌써 나왔어?’
“이런 또 졸았네. 여기만 오면 이렇게 조는지 모르겠네. 자, 다시 시작할게요.”
신미향이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지안을 운동시킨다.
‘안에 재미난 걸 만들어놨던데.’
‘헤헤, 그냥 예쁜 사람을 모델로 만들다 보니…… 그런데, 그 조각상은 없앴어?’
‘없애긴 내 모습을 내가 어떻게 없애겠어? 신미향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니 놔뒀어.’
뭐 모델(?)인 본인이 괜찮다니 상관없을 것 같다.
지안은 정신 이동을 연습한다고 했고, 난 선도법을 익히기 위해 육체로 돌아왔다.
***
내 머리의 홀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기를 느끼고 그 기를 홀로 끌어당기는 것은 어려웠다.
다른 내공심법을 구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구한다고 해도 내 몸과 연결이 끊어져 있는 상태니 별 소용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선도법 3단계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지안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제외하고 저녁에 다니던 정신 이동도 포기하고 매달렸다.
‘아!’
太虛 虛而不虛 虛則氣 虛無窮無外 氣亦無窮無外
(태허는 빈듯 하지만 빈 것이 아니고 허가 곧 기이다. 허는 무궁무외이고 기도 무궁무외이다.)
旣曰虛 安得謂之氣 曰虛靜卽氣之體 聚散其用也
(이미 허인데 또 기라고 말하겠는가! 허가 고요하면 기의 체이고 모이고 흩어지면 용이다.)
知虛之不爲虛 則不得謂之無
(허가 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없음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서경덕의 ‘태허설’ 중 일부 발췌)
지안은 정신 이동을 연습하면서 혹 필요할지 모른다며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 말해주었다. 물론, 기(氣)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그중에 내 마음을 끈 것은 바로 서경덕의 ‘태허설’이었다.
더 길게 적혀 있지만 내가 이해한 요지는 간단했다.
허(虛:비어 있음)과 기(氣)는 같다는 말.
조금 전 그 말을 이해했고 깨달았다.
바보처럼 기를 느끼려고만 했고, 그걸 홀로 당길 생각만 했다.
모든 것이 기였다. 그것이 느껴지든 느껴지지 않든 말이다.
홀로 들어오는 무수한 기(氣)를 머리에 맴돌게 한 후 명치 부근에 머물게 했으며 다시 하단전으로 이끌어 축적했다.
뿌듯한 느낌.
한참을 느끼다 그렇게 기를 느끼다 멈췄다.
이제 내 육체와 연결하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 가능할지 모르는 일.
어느 정도 됐다는 생각에 지안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밖으로 나왔다.
정신세계에 있는지 점핑을 해 외출을 했는지 지안은 없었다.
‘혹시 복수하러 간 건가?’
약간 걱정이 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
―흥! 뭐하나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밀고 당기기를 해? 그래, 앞으로 연락하지 마.
―혜, 혜진아.
…….
밤인지 지안이 좋아하는 드라마가 방송 중이었다.
며칠 전부터 라디오 대신 TV를 보게 됐다.
하루 종일 나오는 TV로 8년이라는 세월 차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내가 있던 시대와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는 뭐니 뭐니 해도 걸 그룹들이 나오는 음악 방송이었다.
그리고 싫어하는 프로그램은 드라마. 8년이란 세월 중 유일하게 바뀌지 않은 것이 바로 막장드라마의 인기였다.
‘젠장, 리모콘만 누를 수 있다면 좋겠는데.’
물론, 바람일 뿐이었다.
‘나갈 때 앞으로 음악 방송이나 틀어두라고 해야겠다.’
싫어하는 드라마임에도 보다 보니 어느새 끝이 났다.
다음 프로는 내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선전도 볼 만하다.
요즘 누가 인기 있는지 알 수 있고 나름 재미있었다.
오늘의 출연진이 보인다.
‘아싸! 걸 그룹이 나오는구나.’
‘인간아, 그렇게 좋냐?’
옆에서 들리는 지안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디 갔다 왔어? ……어라? 너 영체가 왜 그래?’
희미해진 지안의 영체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반투명한 영체가 희미해져 곧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
‘응, 쇼핑하고 왔어.’
‘쇼핑? 영체가 무슨 물건이 필요하다고.’
‘그냥 재미지. 지금은 피곤하니 내일 얘기해.’
‘알았어. 좀 쉬어. 그러다 영체가 사라질까 걱정이다.’
‘내일 봐.’
말과 함께 육체로 돌아가는 그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가슴이 조금 답답해진다.
‘설마?’
…….
영체도 병이 생길 수 있는 건가?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
지안은 12시간이 좀 지나자 멀쩡한 모습으로 밖으로 나왔다.
‘아웅, 잘 잤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기지개를 켠다.
‘너 나 몰래 뭐 먹었어?’
‘아니. 영체가 뭘 먹어?’
보자마자 엉뚱한 소리다.
정신 이동을 한 뒤로 자신이 완전히 사람으로 착각하나 보다.
‘근데, 왜 그렇게 포동포동하게 보여?’
영체가 살쪄 보인다는 말은 난생처음이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비정상적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내가?’
‘응. 색깔이 진해진 건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좋아 보여.’
한 가지 퍼뜩 드는 생각.
선도법 3단계. 어젯밤부터 오늘 오전 내내 선도법에 매달렸다.
물론, 육체와의 연결은 꿈쩍도 안 하고 있다.
‘어제 선도법 3단계를 이해했거든 그래서 그런가?’
‘성공했어?’
‘응. 기를 빨아들이려 기를 찾으려고만 했지 모든 곳에 기가 있다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 네가 말해준 태허설에서 힌트를 얻었지. 어느 순간 기가 느껴지더라고.’
‘그게 그렇게 쉬운 거였어?’
‘쉬운 거였으면 내가 선도법을 읽은 차영호도 벌써 3단계에 이르렀겠지.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어. 내가 영체이고 머리 위에 있는 홀을 느낄 수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지안이 말한다.
‘혹시 점핑을 하면 상대방의 몸에 얼마나 있을 수 있지?’
‘꼼짝 안 하고 정신세계에만 있으면 24시간. 그냥 몸을 차지하고 있으면 12시간. 그런데, 점핑할 때마다, 기억을 읽어 들일 때마다 시간이 줄어들어.’
‘음…….’
다시 생각에 빠지는 지안.
난 궁금함에 물었다.
‘무슨 생각하는데?’
‘어제 내가 외출하고 난 다음 영체의 색이 흐려졌다고 했지?’
‘응.’
‘너도 외출하고 갔다 오면 흐릿해져. 그런데, 현재 너의 영체는 진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이해했다.
선도법을 행하면 밖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당장 실험해 봐.’
‘당장?’
빨리 내 육체와 정신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은근히 귀찮다.
‘그래, 이 병원 이사장 돈도 다 못 옮겼잖아. 겸사겸사 테스트해 보라고.’
내 표정을 읽었는지 돈으로 유혹한다.
내가 21살 때는 상상만 했던 돈이 지금 있다.
그런데도 지난번에 챙겨 오지 못한 신사임당이 차곡차곡 쌓인 박스들이 생각난다.
예전 기사에 사과 박스 하나당 1억이 조금 넘는 돈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한 박스당 5억이 넘는 돈이라는 소리.
그때 다섯 박스를 훔쳤다.
아직 남은 박스는 6박스.
부자들이 왜 돈이 있으면서도 돈돈 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알았어.’
난 결국 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도 땅에 묻을 거야?’
‘딱히 보관해 둘 곳이 없잖아.’
‘왜, 그 새끼도 모르는 별장 있잖아.’
그랬나?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니 과연 별장이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과거에 타인의 명의로 구입해 둔 것이었다.
‘근데, 거기 관리하는 장씨 아저씨가 손님을 받고 있잖아?’
‘응,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이 망가지잖아. 그래서 펜션처럼 손님을 받으라고 했어. 거기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해둔 방이 있어. 그곳에 패닉룸(외부의 침입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대피소)이 있거든 거기에 숨겨.’
‘패닉룸이 있어?’
과거 패닉룸이라는 영화를 봐서 그녀가 뭘 말하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 방은 기억에 있지만 패닉룸은 기억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