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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11화)
5. 선도법(3)


‘응,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어. 나도 있다는 말만 들었거든.’
나쁜 생각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장씨 아저씨께 돈 좀 드리고 앞으로는 손님 받지 말라고 해. 그럼 되잖아.’
‘얼마나 줘야 해?’
‘한 달에 한 200만 원이면 될 거야. 일 년치 주고 오면 걱정 없잖아?’
2,400만 원.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20살 때 연봉보다 많은 돈. 하지만 내가 숨기는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런데 점핑 대상자에게 오래 머물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건 좋은데 지안이 너무 적극적이라 물었다.
‘복수하려고?’
‘복수? 당연히 해야지. 지금이라도 가능하지만 당장은 안 해.’
‘왜?’
‘바보, 그 새끼가 죽으면 내 재산이 어떻게 되겠어? 내가 죽지는 않았지만 식물인간 상태라고. 담당 변호사가 얼씨구나 하고 내 재산으로 장난칠 거라고. 변호사는 평생 내가 못 일어나고 죽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테지. 난 그 꼴은 못 봐.’
참 돈 많은 것도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새끼’를 떠올려 기분이 나빠졌는지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나라고 해도 그런 일을 당했으면 지금 당장 가서 복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녀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차라리 내가 그 일을 대신 해주고 싶어진다.


6. 점핑! 점핑!(1)


게임의 부하 테스트라고 할까?
난 점핑을 틈틈이 하며 대상자의 기억을 읽어 들였고, 의자에 잠시 앉거나 커피숍에 들어가 그들의 정신세계에 방을 만들었다.
내 몸에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걸까?
갈수록 방을 만드는 기술이 늘어난다.
그리고 고무할 만한 일이 생겼다.
점핑 속도가 빨라졌고 대상과 일체화시키는 것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이제 슬슬 어두워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 돈을 찾으러 갈 시간이다.
패스트 푸드점에 앉아 창밖을 보며 다음 점핑 상대를 찾아본다.
‘차가 있어야 하는데…… 찾았다!’
멀리 있지 않았다. 약간 떨어진 곳에 과일을 파는 분이 계셨다.
트럭이라 박스를 옮기기에도 제격이다.
상대의 홀을 느껴본다. 그리고 그대로 눈을 감고 점핑을 했다.
이질감이 잠깐 느껴졌지만 순식간에 상대의 몸을 차지했다.
“아저씨 이거 얼마냐고요?”
“잠시만요. 그거 오천 원, 아니, 칠천 원입니다.”
기억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기억의 맨 끝부터 하루 동안의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여기 오천 원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한 봉지에 오천 원이라고 트럭에 크게 적혀 있지만 그건 일종의 미끼 상품이다.
고르다 보면 아무래도 더 좋아 보이는 걸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난 아주머니와 흥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칠천 원짜린데 오천 원만 주세요.”
난 오천 원을 받고 트럭을 정리하고 운전석에 앉았다.
오래된 스틱 차량. 백미러에 걸린 가족 사진이 눈에 띈다. 장롱 면허지만 운전면허증을 딸 때 1종 보통으로 땄기에 어렵진 않으리라.
부르르! 털컥.
시동이 꺼졌다. 클러치 떼는 게 쉽지 않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트럭은 도로를 달린다.
병원 이사장의 별장은 가평이었고, 지안이네 별장은 청평이었다.
가평에서 일을 마치고 청평에 들러 돈을 놔두면 될 것이다.
그나저나 꽤 피곤하다. 시간을 확인하니 나온 시간부터 5시간이 흘렀다.
계산을 해 본다.
지금까지 5번을 점핑을 했고 5명의 기억을 읽었다.
한데, 피곤 정도가 아무래도 조만간 튕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무래도 너무 촐싹대며 시간을 허비한 모양이다.
선도법을 깨달은 것도 겨우 어제였다.
그동안 얼마나 축적했다고 그렇게 낭비했는지…….
튕기면 혹 사고가 날까 비상등을 켜고 트럭을 한쪽으로 세웠다.
과일 장수 아저씨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기억에는 내일 고등학교 다니는 딸아이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돈주머니를 보니 그 금액에는 많이 부족해 보였다.
오늘 아줌마와 과일 장수 아저씨의 기억을 읽었는데 처녀, 총각 때를 제외하곤 참 많이 비슷했다.
자식을 위해 산다고 할까?
자식들이 무언가를 맛있게 먹는 모습에, 그들에게 뭔가를 해줄 때 행복해 하는 장면이 많았다.
겨우 두 사람의 기억을 읽은 것으로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아저씨에게 아이의 등록금이라도 전해주고 싶다.
“돈을 숨겨둔 곳까지 갈 수 있을까?”
탁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해 본다.
그러다 떠오른 생각.
이 아저씨의 몸으로 선도법이 가능할까?
난 눈을 감고 아저씨의 홀과 기를 느껴본다.
어렵지 않다. 그리고 홀로 기를 당겨본다. 움찔하던 기가 서서히 움직여 들어오더니 일순 거침없이 쏟아진다.
사이다처럼 온몸에 청량한 기운이 가득해진다.
그러한 느낌은 차츰 없어졌지만 그 기분에 취해 끊임없이 기를 들이킨다.
“헉!”
정신없이 선도법에 취해 있다 깨어나 시계를 보고 놀랐다.
잠깐인 것 같은데 벌써 2시간이나 지났다.
하지만 가뿐해진 몸에 시동을 걸고 다시 목적지로 출발했다.
비포장길을 트럭으로 달리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든다.
사이드미러로 사과가 여기저기 튀는 것이 보였지만 어차피 내가 샀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액셀을 밟았다.
드디어 별장이 보인다.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헤드라이트를 그대로 켜둔 채 차에서 내렸다.
별장을 향해 걸어가다 별장 한편에 어둠 속에 주차된 2대의 차량이 있는 것이 보인다.
‘잘못됐다.’
몸을 돌려 차로 돌아가려는 순간 어느새 포위를 하고 다가오는 인원들.
“크크!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
“너무 쉽게 돈을 버는 게 아닌가 했는데 역시 오네요.”
“킬킬킬! 삼 일 동안 쉬는 것도 지겨웠는데 잘 왔다.”
총 6명이 킬킬거리며 한마디씩 내뱉는다.
새됐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병원 이사장이 돈을 확인한 모양이다.
그리고 남의 집 가장을 이렇게 만들어 죄송스럽다는 생각.
마지막으로 내 아이들도 아닌데 아저씨네 아들, 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싸움이라곤 고등학교 때 고아원 출신이라고 놀리던 놈을 박살낸 기억밖에 없다.
동네에서 좀 놀았다고 해도 저들 한 명도 어쩔 자신이 없었다.
“누, 누구세요. 전 길을 잘못 들었을 뿐입니다.”
“크하하하! 형님. 저 새끼 말하는 거 웃기지 않아요?”
“잘못 들어왔는지 도둑질하러 들어왔는지 일단 맞으면 잘 생각날 거야.”
“왜, 왜들 이러세요. 전…… 전…….”
머리를 맹렬히 굴렸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다만 내가 몸을 차지하고 있는 이 아저씨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제일 먼저 6명을 살폈다.
그중 쇠파이프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는 놈이 눈에 띄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정신을 집중하고 놈의 백회 위 홀(hole)을 느끼고 점핑했다.
기억을 읽는 것은 나중 문제.
엄청나게 빨라졌다고 하는 일체화였지만 더디게 느껴진다.
“헉! 여기가 어디죠? 누, 누구세요?”
“이 새끼 정말 누굴 호구로 아나…….”
퍼억!
“컥!”
한 놈이 정신을 차린 아저씨의 복부에 사정없이 주먹을 박는다.
‘아저씨, 미안해요.’
난 속으로 아저씨에게 잘못을 빌었다.
아저씨로서는 갑자기 과일을 팔다가 눈 떠보니 깡패들에게 맞는 상황이니 얼마나 황당할까.
“일어나. 이 새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쓰러진 아저씨를 퍽퍽 차는 그 순간 일체화를 이뤘다. 손에 잡고 있는 쇠파이프가 차갑게 느껴진다.
어설픈 동정심은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는 아저씨의 목숨과 관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타깃은 바로 옆에 있는 놈.
킬킬거리며 아저씨를 차느라 뒤통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퍼억!
“뭐, 뭐야?”
“야, 장종철! 너 미쳤…… 크윽! 씨발!”
갑자기 내가 내려친 쇠파이프에 한 놈이 쓰러지자 나머지 네 놈이 갑작스런 일이라 제대로 판단을 못한다.
그 순간 다시 나에게 말하는 놈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지만 어깨를 맞추는 것으로 끝났다.
“장종철! 당장 그만두지 못해! 이 씨발 새끼가!”
두목으로 보이는 놈에게 다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하지만 어설픈 내 솜씨에 맞을 리 만무했다.
“저 미친 새끼부터 일단 잡아!”
넷이 다시 나를 향한다. 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그들의 접근을 막으며 다음 점핑 상대를 골랐다.
두목은 아직이다.
짧은 경찰봉을 든 놈.
눈앞에 휘익 뭔가 지나가는 것처럼 흐릿해지며 점핑.
일체화는 귀와 눈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눈이 일체화가 되었을 때 쇠파이프를 든 놈이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어어’하는 순간 나머지 둘에게 제압당한다.
“이 새끼 미친 거 아냐!”
일체화를 이룬 난 쓰러진 장종철을 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과 거리를 좁혔다.
두 명의 눈이 갑자기 의아함을 표한다.
‘왜지?’
순간 들어오는 기억들.
“씨발. 내가 막내였냐?”
이미 기억이 들어옴과 동시에 경찰봉을 휘둘렀다.
내가 이번에 차지한 몸의 주인은 6명 중 가장 늦게 들어온 막내였다.
퍽!!
얼굴에서 피가 튀며 한 놈이 핑그르르 돌며 나가떨어진다.
“단체로 쥐약을…… 이 개새…… 큭!”
아까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다.
바로 몸을 날려 멀쩡한 놈을 후려쳤다. 하지만 좀 전과 같은 손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결정타를 날리려는 순간,
“컥!”
옆구리를 파고드는 다리.
숨이 막히고 쩌릿쩌릿한 고통이 뇌를 자극한다.
본능적인 고통에 구르며 피했다.
역시 두목이랄까?
악귀 같은 모습으로 날 아니, 자신의 막내를 공격한다.
반격은 생각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 점핑할 여유조차 없다.
최대한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늦었다.
턱으로 날아오는 다리.
여기서 기절하면 어떻게 될까?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쓰러진 과일 장수 아저씨가 보인다.
포기는 아직 이러다. 두목의 홀을 느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며 점핑을 시도한다.
‘……카아빌리도 가린지도노! 컥!’
점핑이 성공을 해서 흐릿해지는지 맞아서 그런지 헷갈리는 상황.
하지만 나아가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성공이다.
역시나 기분 나쁜 이질감.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 마무리만 하면 끝이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너도 혹시 정신이 없냐?”
“아, 아닙니다. 전 멀쩡합니다.”
“그럼, 저 새끼들 몽땅 묶어! 다시 지랄들 하기 전에.”
“예, 형님!”
입까지 일체화되어 다행이다. 말하는 중 모든 일체화를 이뤘다.
제일 먼저 기억을 읽었다.
젠장! 어쩐지 엄청 강하다 했다.
이 몸의 주인은 나상열.
전직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어릴 때부터 안 한 운동이 없을 정도로 소질이 있었지만 운동보다 애들 삥 뜯길 좋아했다.
본격적으로 깡패의 길로 들어선 건 역시나 돈 때문이었다.
물론, 집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경찰보다 깡패가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이유에서였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기로 하고 일단 남은 한 녀석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아까 막내가 떨어뜨린 경찰봉을 주워 열심히 묶고 있는 놈에게 다가갔다.
“빨리 묶어!”
“예, 형님. 그나저나 이놈들 귀신에라도 씐 걸까요?”
“응.”
“예?”
“미안!”
퍽!
갑작스레 당해서인지 비명 소리도 없었다.
난 녀석을 묶고 안 묶인 놈들을 묶었다.
“왜 이렇게들 무거워! 젠장.”
한쪽으로 다섯 명을 옮기는데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경황이 없어 힘 조절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있는 힘껏 내려친 거라 혹시나 죽은 이가 있을까 코에 손을 갖다 대보니 다행히 죽은 이들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