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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13화)
7. 윤승호 환자가 정신을 차렸어요!(2)


선도법 3단계로 기를 아무리 처먹어도 도대체 육체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의식,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신(神)일지 몰라도 육체와 관련된 일에는 허공의 삽질하기나 다름없었다.
의식의 세계를 발 했을 때처럼 지랄발광도 해 봤지만 말 그대로 발광이었을 뿐이다.
‘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유체 이탈을 했다.
‘그동안 뭘 한다고 약속 시간에 나오지도 않은 거야?’
‘육체와 연결한다고 한동안 고심 좀 했지. 며칠이나 된 거야?’
‘일주일.’
헉! 기껏해야 3일 정도 지났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 모양이다.
어둠 속에 있으면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미안!’
‘괜찮아. 나도 그동안 바빴거든.’
다행스럽게 지안은 화가 많이 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약간 삐쳐는 있어 보인다.
‘선도법의 진전은 좀 있었어?’
난 모른 척 말을 걸었다.
‘아니. 여전히 제자리야.’
‘그럼, 그동안 뭘 한 거야?’
‘궁금하기는 하니?’
‘당연하지. 하하하!’
역시 수다 떨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동안 뭘 했는지 줄줄이 흘러나온다.
지안은 일주일 동안 점핑에 주력했단다. 그러면서 꽤나 자세한 데이터를 모았고 그걸 수치화했다.
점핑의 한계는 9번.
혼수상태가 아닌 일반 대상의 몸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
한번 점핑할 때 약 20분의 시간이 감소.
기억을 읽을 때 약 1시간이 감소.
그러니까. 9번의 점핑을 해 9명의 기억을 읽으면 총 12시간을 소모하는 셈이며 바로 자신의 육체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9번의 점핑 후, 8명의 기억을 읽으면 마지막 대상에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시간.
난 지안의 설명을 들으면서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애가 과학적이라고 해야 할지 집요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점핑한 상대 중에 이상한 사람이 있었어.’
‘어떤 점이?’
‘내가 점핑을 하면 그 사람을 움직일 수 있어. 하지만 내가 그 상대에게서 빠져나오면 못 움직이는 경우는 뭐야?’
내가 처음 이종진에게 점핑했을 때 얘기와 비슷하다.
‘너 환자한테 점핑했지?’
‘응, 어떻게 알았어?’
‘나도 점핑해 봤거든.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대략 두 가지더라. 영체가 없어서 못 움직이는 경우와 너나 나처럼 영체는 있는데 육체와 연결 고리가 끊긴 경우 말이야. 물론, 두 가지 동시인 경우도 있겠지만 아직 그런 경우는 못 봤어.’
‘그래? 그럼 영체는 어디로 사라진 건데?’
‘나도 모르지.’
‘음, 영체가 없는 경우가 불쌍한 걸까? 아님, 육체를 못 움직이는 경우가 불행한 걸까?’
‘후자.’
난 단호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
어둠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이지 고통 그 자체였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내 생각도 그래. 그래도 불쌍하다.’
‘도대체 어떤 환자였기에?’
‘윤승호. 근데 그의 실명이 뭔 줄 알아?’
‘뭔데?’
‘윤선불. 내가 그의 실명을 알았을 때 얼마나 웃었는데.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어.’
얘 내 이름을 들었을 때도 엄청 웃었겠군.
‘어쩐지 너랑 인연이 있는 것 같지 않아? 선불, 현금. 호호호!’
…….
어렸을 때 이름 때문에 얼마나 싸웠는지 내가 얘기를 안 했던 모양이다.
‘키키! 농담이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어휴∼ 저걸. 여전히 반달눈이다. 유일한 영체 친구라 참는다.
‘육체 연결은 잘되고 있어?’
‘전∼혀! 도무지 감을 못 잡겠어. 기만 엄청 먹고 나왔어.’
‘키키! 천천히 해. 틈틈이 나랑 놀아주기도 하고.’
‘쩝! 알았어. 감이라도 잡으면 될 것 같은데.’
‘감 잡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귀가 번쩍 뜨인다. 역시 머리 좋은 사람은 뭐가 틀려도 틀리다.
‘옆방에 윤승호의 몸을 이용하면 되잖아.’
좋은 생각이다.
‘괜찮겠어? 한 번 점핑하고 나면 오랫동안 못 나올 텐데. 계속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들잖아.’
방금 전 놀아주기로 약속했는데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보. 옆방이잖아.’
‘응?’
‘너 자리에서는 벽을 넘어가면 된다고. 바보야!’
벽까지의 거리는 대략 70cm.
난 영체다. 벽을 통과 못할 이유가 없다.
몸을 움직여 벽을 통과해 본다.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어색하지 않다.
특실인지 엄청 크다. 생명 유지 장치도 우리 방에 있는 것과 달라 보인다.
침대에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윤승호를 보았다.
남자가 보기에도 잘생겼다. 이름만 몰랐을 뿐 TV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다.
잠깐 눈을 감고 숨만 쉬고 있는 윤승호를 보며 그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난 그의 몸을 이용해 내 육체와 연결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

‘헉! 깜짝이야.’
윤승호에게 점핑을 해서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지안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만들어 놓은 정신세계의 방에는 그녀의 전신, 반신 사진에 각종 조각품들까지 온통 지안 모습의 예술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휴∼ 심장 떨어질 뻔했네. 하여간 어지간히 장난꾸러기라니까.’
방을 정리하고 싶은데 차마 지안이 만들어놓은 것들을 없앨 수가 없어 그녀의 방 옆에 작은 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차분히 윤승호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급할 것 없었기에 천천히 그의 일생을 바라본다.
스타의 일생이라 기대하고 본다.
중학교 때부터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으로 생활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TV시트콤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고, 한 해 뒤에 ‘MuRim’ 이라는 남성 5인조 그룹으로 가수로 데뷔해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인간 윤선불에서 스타 윤승호가 된 이후로 그는 건방져졌다.
하지만 연예계에서 욕을 먹는 것과 인기는 별개라고 그는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톱스타가 되었다.
한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10일 전 영화 촬영 중 낙마하며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그의 삶을 보고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럽기까지 했다.
나에 비하면 정말이지 하늘의 별처럼 살다가 쓰러진 것이다.
지금은 씁쓸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난 정신세계에서 누워 윤승호와 일체화하려 했다.
이 순간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내 육체에 적용할 테니.
첫술에 배가 부르면 안 된다는 법 따윈 없다.
하지만 역시 느끼기도 전에 일체화가 되어 버렸다.
눈을 떠본다. 눈부심에 잠시 감았다 다시 떴다.
오래 입원한 것이 아니라 역시나 쉽게 움직인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조금씩 움직여 보며 느낌을 알고자 해 본다.
한참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선도법을 해 볼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남자인 내가 듣기에도 좋은 미성이다.
눈을 감고 홀을 느껴본다.
그리고 그 홀로 기를 인도한다.
과일 장수 아저씨의 몸으로 이미 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어렵지 않았다.
영체에서 행할 때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기가 들어오면서 온몸이 상쾌함에 빠져든다.
영체일 때는 그냥 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이라면 인간의 몸과 일체화해서 받아들일 때는 수도관(管)을 뚫고 지나는 물처럼 머리부터 하단전까지 뚫고 지나는 느낌이 든다.
그나마 차이점이 느껴지는 선도법에 매달려 본다.
몽롱한 정신. 차이점을 느낀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오로지 선도법에 빠져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배고픔에 선도법을 멈췄다.
‘정말 배고프다.’
몇 년만에 느껴보는 배고픔일까?
이 느낌마저 새롭다. 하지만 신기함도 잠시 도저히 배고픔을 참을 수가 없다.
눈을 떠 이리저리 먹을거리를 찾아본다.
냉장고와 한쪽에 쌓인 선물 꾸러미가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온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선들과 링거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다.
손을 뻗으면 혹 닿을까 아무리 쭉 뽑아보지만 닿기는커녕 배고픔만 더해진다.
‘왜 이렇게 배고픔에 집착하는 걸까?’
‘그냥 내 육체로 돌아가면 배고픔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아귀(餓鬼)처럼 한 번 생긴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다.
벌컥!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에 후다닥 손을 제 위치시키면서 정신을 잃은 척했다.
지겹도록 듣던 간호사의 신발 소리가 나에게 다가온다.
“금아, 그렇게 후다닥 움직이면 바보라도 네가 정신 차린 줄 알 거다.”
백윤희의 목소리.
그런데 날 저렇게 부르는 사람은 오직 하나.
지안뿐이다.
난 살며시 눈을 떴다.
“헉! 깜짝이야.”
심장 떨어질 뻔했다. 백윤희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자, 장난 좀 치지 마. 심장 떨어지겠다.”
“사내 놈이 심장이 콩알만 해서 어디 쓰겠냐?”
“그런데, 네가 여기엔 웬일이야? 백윤희의 몸까지 차지하고.”
“바보야, 네가 윤승호의 몸을 과하게 움직이면 심장박동수가 올라가 간호사실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것도 모르냐?”
알고는 있었는데 배고픔에 잠깐 눈이 뒤집혔나 보다.
“내가 백윤희에게 점핑을 해서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아.”
“휴∼ 다행이다, 고마워.”
“뭐가 다행이야. 도대체 뭘 하기에 또 3일간 코빼기도 안 보이나 혼내주러 왔는데.”
손을 들어 가볍게 내 이마를 꽁 때리는 지안.
“벌써 삼 일이나 지났어?”
“응.”
침대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날 바라보는 지안의 눈에 약간의 걱정스러움이 묻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의 착각일까?
“험, 너는 3단계 성공했어?”
“응, 오늘 오전에 기(氣)를 느꼈어. 참, 오묘하더라고. 넌 육체를 움직일 실마리라도 잡은 거야?”
“아니, 선도법만 실컷 했다.”
“에∼? 그럼 왜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던 거야?”
“배가 미치도록 고파서. 또 말을 했더니 배고프다. 지안아, 먹을 거 좀 줘.”
다시 배고픔을 인식하자 미친 듯이 배가 고프다. 난 지안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미쳤니? 윤승호는 지금 10일 넘게 굶은 몸이란 말이야.”
“그럼, 음료수라도 한 잔 줘. 아님, 물이라도.”
정말이지 물이라도 한 모금 마셔야지 참을 수가 없다.
“알았어. 물은 괜찮겠지. 대신 내 부탁 하나 들어줘야 한다.”
무슨 부탁이든 상관없다. 난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오로지 목에 무엇이라도 넘기는 게 중요했다.
지안이 갖다준 물을 한 모금 삼킨다.
메말라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물을 뿌리는 기분이다.
“한 잔만 더 줘.”
두말없이 다시 한잔 갖다준다.
“하∼”
물이라도 넘어가니 살 것 같다. 배는 다른 걸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참을 만했다.
“훗! 물 두 잔에 그런 행복한 모습이라니.”
“모르겠어. 그냥 무언가 무지 먹고 싶어지더라고.”
“됐으면 내 부탁 들어줘. 나도 이제 나가봐야 하거든.”
“부탁이 뭔데?”
“간단해. 날 한 번 꼬옥 껴안아 줘.”
“…….”
무슨 이런 개떡 같은 부탁이 다 있단 말인가.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님 기분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옛날부터 윤승호에게 한 번 안겨보고 싶었다고. 얼른!”
‘뭐, 연예인을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영혼이 둘 다 다른 사람으로 바뀐 이들이 이러는 게 웃기다.
백윤희의 탈을 쓴 지안은 윤승호의 탈을 쓴 나를 꼬옥 껴안는다.
난생처음 이렇게 미인의 포옹을 받고 있으니 기분이 붕 뜨면서 심장이 쿵쾅거린다.
난 손을 들어 간호사복을 입은 백윤희를 꼬옥 껴안았다.
백윤희를 안고 있지만 마치 지안을 안는 기분이다.
향긋한 내음과 촉감.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촉인지…….
난 더욱 힘을 줬다.
심장은 폭발할 듯이 쿵쾅거렸지만 이 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쾅!
“승호야!”
갑자기 문이 열리며 윤승호의 어머니가 소리치며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