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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14화)
7. 윤승호 환자가 정신을 차렸어요!(3)
그 뒤로 의사와 몇몇 사람들까지 지금 우리가 껴안고 있는 장면을 바라본다.
“어쩌냐?”
난 모기 같은 작은 소리로 지안에게 말했다.
“내가 해결할 테니 넌 조용히 있어.”
그녀 또한 내 귀에만 들릴 정도로 말한다.
난 그녀를 믿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윤승호 환자가 정신을 차렸어요!”
응? 지안아,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냐?
“심장박동이 이상해서 방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침대 밖으로 떨어지려는 해서 붙잡고 있어요.”
“그래? 빨리 침대에 눕혀!”
담당의사가 나에게로 다가오고 윤승호의 어머니는 신을 찾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신다.
난 황당함에 지안을 바라본다.
입에서는 ‘너, 너’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안은 위기를 넘겼다는 듯 뿌듯한 얼굴이다.
야! 곽지안! 이 일을 어쩔 거야!
눈으로 소리쳤지만 지안은 이미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었다.
***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거야?’
난 지안을 향해 따지듯이 물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너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거야?’
‘그거야…….’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그때 깡패들을 처리한 것처럼 할 수도 없는 일.
‘아무리 그래도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왜? 잘 해결됐잖아. 우리 둘 다 무사하잖아.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는 알아. 하지만 갑작스럽게 일어났다가 다시 쓰러져 못 일어나는 이들은 많아. 다시 일주일만 지나면 조용해질 거야.’
물론, 일은 잘 해결되었다.
한 가지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승호야, 일어나! 넌 이 엄마가 보고 싶지도 않아? 일어났으면 정신을 차려야지 다시 이렇게 누워 있으면 어쩌자는 거니? 승호야! 으흑흑흑∼!”
옆방에서 들리는 저 목소리만 들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마음이 울컥하게 만드는 저 울음소리에 TV나 라디오에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에잉! 들어가서 귀 닫고 수련이나 해야겠다.’
지안과 얘기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 나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려 했다.
‘그냥 네가 저 몸에 들어가 연기 좀 해.’
‘뭐라고?’
‘어차피 내 육체와 연결하려면 테스트가 필요하잖아. 현재 저보다 좋은 사람은 없잖아. 그리고…… 네 육체와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어. 내가 병원 기록을 확인하니 넌 8년 전 목과 허리 부근의 척추가 완전 비틀리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어. 재활 훈련도 사실 효과는 없다고 봐야 해. 그러니…….’
‘조용히 해! 더 이상 얘기하지 마!’
난 지안을 향해 소리쳤다.
일순 당황한 지안의 얼굴이 보인다.
내 속마음을 들켜서일까? 쉽사리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그렇게 마주 보고 잠시 시간이 흐르자 방금 고함친 것이 후회가 된다.
‘미안. 나 들어가 쉴게.’
‘금…….’
무슨 말을 하려는 그녀를 무시하고 난 내 육체 속 정신세계로 들어왔다.
그리고 외부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차단했다.
지안의 말이 모두 옳았다.
그러나 그 말이 진실이기에 더욱 화를 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미 오래 전 내 기록을 확인했다. 내 몸 상태가 얼마나 최악인지는 잘 안다.
돈을 밝히고, 내공심법을 구하고, 그 내공심법을 수련하는 건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기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미쳐 버렸을 것이다.
나 결코 강하지 않다.
다만 하나의 희망에 매달려 아등바등거리는 것뿐이다.
‘으아아아아아악!’
고함을 질러본다.
하지만 마음속의 복잡한 마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선도법으로 대상의 몸을 차지하고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악마의 속삭임 같은 생각도 했었다.
다른 사람의 몸을 차지하고 살아갈 생각.
하지만 사람들의 살아온 기억을 읽게 되면 그러한 마음이 사라졌다.
맞다. 윤승호의 경우에는 꺼릴 게 없다. 이미 죽어 버린 사람.
그의 부모님에게 죄스럽긴 하지만 영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오히려 그들은 기뻐할 것이다.
또한 톱스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안에게 고함을 지른 것은 아마 내 속마음이 들켜서일지 모른다.
나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지안이라고 그런 생각이 없을까?
그녀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도 3년.
햇수의 차이가 있을 뿐 그녀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방을 나서 끝도 없어 보이는 어둠을 향해 걷는다.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한 번 걸어볼 생각이다.
어둠은 역시 끝이 없었다.
물론 내가 끝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육체를 버릴 수 없다고 결론은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육체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다른 사람의 육체를 차지하기로 결정했다.
평생을 내 육체를 움직일 수 있게 하려고 낭비하기는 싫었다.
영체라고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염라대왕과 저승사자가 있다면 내 수명이 다하는 날,
영체를 데리러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신 지안을 다시 보려고 하니 미안하다는 생각에 유체 이탈을 망설이게 된다.
‘젠장, 혼날 거라면 혼나야지. 나의 유일한 친구를 잃을 순 없다.’
결심을 하고 유체 이탈을 했다.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는 지안. 영체의 색이 좀 이상하다.
마치 점핑을 하고 온 것처럼 영체는 희미했고, 약간씩 밝아졌다 흐려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 지안아?’
항상 밝고 강할 것 같은 지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내 부름에 곧 울 것 같은 아이 의 표정으로 돌아본다.
‘금아,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미안해…….’
‘아냐, 아냐! 오히려 내가 화를 내서 미안해.’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어. 단지…… 그냥 네가…….’
‘알아. 니 맘 충분히 알아. 내 맘속의 숨기고 싶은 것이 들켜서 화를 낸 것뿐이야.’
난 그녀의 영체로 다가가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영체는 영체일 뿐이었다.
내가 그녀에게로 뻗은 손은 아무 느낌 없이 그녀를 통과했다.
그래도 껴안듯이 포즈를 취하고 그녀를 달랬다.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너무 피곤하다 가서 좀 쉴래.’
‘응. 그렇게 해. 기다리고 있을게.’
자신의 육체에 눕던 지안이 한마디한다.
‘우리 여전히 친구지?’
‘응! 넌 나의 유일한 친구잖아.’
지안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사라져 간다.
지안의 과거는 나와 달랐다.
부유했고,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혹시 그 때문에 어둠 속에서 더 버티기 어렵지 않을까?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 쉬고 있는 지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어떤 감촉도 느낄 수 없다.
분명 날 위해 해준 말이었는데…….
‘화내서 미안해, 지안.’
난 그녀를 바라보며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시 밖으로 나온 지안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덕분에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윤승호의 몸으로 점핑했다.
승호의 어머니도 건강이 악화되어 간혹 병실에 들러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실 뿐이셨다.
난 조심해하면서 선도법을 행하며 차이점을 알고자 노력했다.
윤승호는 최대한 오랫동안 병원에 있어야 한다.
퇴원을 한다면 내가 그의 몸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편하게 점핑을 할 수도 없고 지안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니까.
가급적 너무 오랜 시간 선도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도 병행해야 했다.
똑똑! 털컹! 탁!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숨을 죽였다. 하지만 묵직한 간호사의 발소리.
신미향이다.
“금아, 듣고 있니?”
지안인가 보다.
갑자기 따끔해지는 옆구리.
“아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깨어 있으면서 왜 말을 안 해?”
“혹시나 싶어 조심하는 거지.”
눈을 뜨고 바라보니 역시나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이제는 지안의 패턴을 잘 알고 있어 그리 놀라지 않는다.
“그나저나 신미향은 정말 살이 많이 빠졌다.”
“그렇지? 이제 70kg도 안 돼.”
“그러다 요요 생기는 거 아냐?”
“운동으로 빼는 거라 괜찮을 거야.”
“무슨 일이야? 내가 또 며칠 동안 누워 있었어?”
“아니. 물 먹고 싶지 않아?”
마시고는 싶지만 저 눈을 바라보니 뭔가를 바라는 게 있는 모양.
“설마?”
“키키! 이제는 잘 아는구나. 그럼 이리 와!”
“이러지 마! 차라리 백윤희로 오란 말이야.”
“안 돼! 걘 퇴근했단 말이야.”
집요하게 날 붙잡는 지안.
난 그 손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미향은 정말이지 힘이 셌다. 마치 갈고리에 붙잡힌 것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컥! 숨 막힌다.
“제대로 안 하면 계속 이러고 있는다?”
그건 절대 사양이다.
얜 지안이다. 얜 지안이다.
속으로 되뇌며 손을 올리고 신미향을 잡아본다. 정말이지 듬직하다.
털컹!
또다시 열리는 문. 도대체 문은 왜 안 잠그는데?
“스, 승호야!”
이거 지난번과 같은 패턴이다.
왜 매번 이런 순간에 누군가 들어오는지.
“이번에는 잘해라.”
난 지안에게 속삭였다.
걱정 말라고 속삭이는 지안이었지만 약간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님! 윤승호 환자가 정신을 차렸어요!”
야! 그때랑 호칭만 다르잖아!
또다시 어머님과 의사가 뛰어오는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8. 타인으로 살아가기(1)
“승호야 많이 먹어라.”
“예. 냠냠쩝쩝!”
난 내 앞에 놓인 음식들을 꼭꼭 씹으며 먹어 치우고 있었다.
“엄마도 좀 드세요.”
“오냐, 오냐.”
첫날엔 힘들게 나왔던 엄마라는 말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다.
죽만 한 3일 먹다가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얌전은 그만 떨기로 했다.
이왕 윤승호의 몸을 이용하기로 한 이상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잘 먹었습니다.”
“왜? 더 먹지 않고.”
“아뇨. 의사 선생님이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더 먹고 싶지만 위 기능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조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
괜히 먹었다 폭풍 설사라도 걸리면 나만 손해다.
“전 좀 잘게요.”
“그래라. 참, 연채 때문에 집에 갔다 올게.”
연채는 윤승호의 동생이었다.
그나저나 이름 참 놀림받기 좋은 이름이다.
윤선불, 윤연채.
“전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연채한테 신경 쓰세요. 걔도 고2라 한참 힘들 텐데. 엄마라도 옆에 계셔야죠. 한동안 저 때문에 병원에만 계셨잖아요.”
“그래도…….”
“이 기회에 좀 쉴 생각이에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전화 드릴게요.”
“그래, 그러면 내일 올게. 뭐 먹고 싶니?”
“계란말이가 먹고 싶네요.”
발걸음을 좀처럼 떼지 못하시다 결국 문을 닫고 나가신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큰 나로서는 행복한 순간이다.
가만히 엄마가 사라진 곳을 보다 병상에 누웠다.
내 몸으로 돌아가 육체 밖으로 나오자 지안이 기다리고 있다.
‘밥은 잘 먹었어?’
‘응. 널 생각하니 잘 안 넘어가더라.’
‘호호! 거짓말이라도 기분이 좋네.’
‘정말이라니까.’
‘그래, 그래. 믿어줄게.’
지안과 즐거운 대화 시간은 길게 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