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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17화)
9. 경험 쌓기(2)
백효준. 스물한 살로 올해 꽤 유명한 대학교 음대생이었다.
강남에 많은 건물을 가진 집안의 아들로 그가 사는 집과 그동안 놀아온 삶을 봤을 때 최적의 점핑 대상자였다.
상대 여자는 같은 학교 1년 후배로 침대에 끌어들이기 위해 그동안 꽤 공을 들이고 있었다.
또한, 이 건물 주차장에 쌈박한 차까지 주차해 뒀다.
“금아, 갈까?”
팔짱을 끼며 방긋 웃는 낯선 그녀.
“얘 이름 효준이야.”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하루 동안 놀아보자고 하는 일인데.”
백 번 지당한 말이다.
“그럴까? 안∼”
난 지안을 ‘안’이라고 부르며 그녀에게 어깨를 두르며 주차장으로 갔다.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시내에 있는 호텔 스카이라운지였다.
“똑바로 걸어. 넌 손님으로 온 거야.”
“어깨 펴고, 턱은 살짝 올린 상태에서 턱만 그대로 당겨.”
“숙녀의 의자를 빼주는 건 기본이야.”
“모를 땐 그냥 추천 요리를 주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
창밖으로 펼쳐진 화려한 서울의 야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안의 잔소리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속이 타는 기분에 물컵을 들어 마셨다.
“여기저기 눈치 보지 말고 좀 더 자신감 있게 마셔.”
“적당히 해. 물먹고 체하겠다.”
결국 퉁명스럽게 한마디 뱉는다.
하지만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다.
난 지금 배우러 온 입장이니까.
병원 이사장이나 윤승호의 기억엔 이런 곳에서 식사하는 영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볼 때와 행동할 때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안아. 어떻게 이들이 부자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어?”
난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글쎄? 특별할 것 없어. 그런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하지만 굳이 구분을 해 보자면 일단 옷차림. 나라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구분할 수는 없어. 하지만 대략적으로 감이 오지. 아마 너도 윤승호로 지내다 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야.”
“감이라니……. 어렵네.”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맥이 빠진다.
“하지만 옷차림보다 중요한 게 있어.”
“뭔데?”
“행동이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가진 자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 명품을 입었다고 행동을 딱히 조심해 하지 않고,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거든. 그리고 은연중에 자신감이 넘치지.”
애매한 말이다.
난 주변에 있는 손님들을 지안이 방금 말한 것들을 상기하며 바라봤다.
역시 구분하기 쉽지 않다.
다들 자신만만해 보이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 보인다.
“저 커플은 어때?”
대각선으로 보이는 곳의 남녀 한 쌍이 그나마 이런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물었다.
지안은 살짝 뒤돌아 그들을 바라보곤 고개를 흔든다.
“남자는 좀 무리해서 이곳에 온 것 같은데 여자는 아냐. 입고 있는 옷이 수천만 원이 넘는 옷이야.”
“에에? 그냥 시장에서 사 입은 옷처럼 보이는데?”
“내가 말했잖아. 부자라고 모두 그런 건 아니라고.”
“포기다, 포기.”
난 결국 포기했다.
귀찮더라도 점핑을 몇 번 더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맛은 그저 그랬다. 지안의 잔소리 때문인지, 비싼 가격만큼 값어치를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그냥 선지국밥 한 그릇이 훨씬 낫겠다 싶었다.
다만 즐겁게 식사하는 지안의 모습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
밤 문화를 즐긴다. 밤 문화를 경험한다. 이때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가 있다.
바로 클럽.
젊음의 상징과도 같으며 무수한 남성들이 클럽에 빠져 방탕한 생활로 젊음을 허비하기도 한다.
“노래방이나 가자.”
“됐거든. 빨랑 들어가지?”
나의 등을 계속 미는 지안이다. 하지만 왠지 발걸음을 떼기 힘들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 예쁜 아가씨들이 한여름에도 보기 민망한 복장을 하고 우리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백효준의 기억에 이런 곳에 대한 정보가 넘쳐 난다.
물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장소도 백효준은 최소한 20번 이상 들락거린 경험이 있는 곳이다.
부비부비 클럽.
처음 만나는 남녀가 서로의 몸을 부비며 상대를 탐색하고 그날 밤을 불태우는 곳.
백효준의 기억 속에 부싯돌 클럽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부비다 불꽃이 튀면 원나잇스탠드.
결국 지안의 힘에 못 이겨 들어갔다.
어둠침침하고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한 곳에 수많은 남녀가 몸을 흔들고 있다.
헉!
‘그러다 가슴 튀 나오겠다.’
남자의 과도한 손동작에 한 여성의 뽀얀 가슴이 얇고 많이 패인 옷을 뚫고 나올 기세다.
얌전히 춤만 추는 사람들,
먹이를 찾는 늑대인 양 연신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호텔에 가지 여기서 왜 그 짓을 하고 있는지 싶을 정도로 과격한 부빔을 하는 이들까지.
맨 정신으론 도저히 끈적끈적한 사람들의 물길 속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건배!”
“건배!”
우리 둘은 일단 맥주로 정신을 흐릿하게 만들기로 작정한 듯 마셔대기 시작했다.
물론, 시선은 스테이지(stage)에 고정한 채로.
“가봐!”
“응?”
“가보라니까!”
술을 어느 정도 마시자 지안은 또다시 내 등을 떠민다.
“너, 너도 같이 가.”
혼자서 들어갈 용기는 여전히 없었다.
“내가 경험하러 왔니? 난 술 먹고 있을 테니까 해 봐!”
“…….”
난 지안의 기억을 알고 있다.
나이트클럽은 자주 간 것 같은데 그녀도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난 들고 있던 맥주병을 다시 원샷으로 비우고 스테이지 외곽으로 접근했다.
‘우웃!’
열기가 엄청나다.
이 열기를 모으면 겨울 내 난방 걱정은 없지 싶다.
이 부비부비 클럽의 장점은 춤을 못 춰도 된다는 것이다.
비비는 기술은 딱히 없었다.
오직 본능에 맡기면 된다.
잠깐 몸을 음악에 맞춰 흔들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응?’
방금 전까지 없었던 아가씨가 몸을 흔들며 내 옆에 있다.
백효준의 기억을 살펴보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표현.
백효준이 기억 속에서 하듯이 난 살짝 그녀에게 다가가며 리듬을 타본다.
묘한 자세.
짧은 반바지에 배꼽티를 입은 그녀는 내가 붙을 수 있도록 살짝 몸을 돌려 뒤를 내준다.
스테이지의 열기에 좀 전에 먹은 술 기운이 올라와서일까?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좀 더 접근해 상체를 그녀의 어깨에 대며 비벼본다.
‘오홋!’
거부반응은 전혀 없고 그녀도 좀 더 자극적으로 붙어온다.
어느새 내 손은 그녀의 골반에 얹어졌으며 내 허리는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앞뒤 좌우로 흔들어진다.
술의 기운이 나와 백효준의 일체화를 높여주는 건가?
기억 속 백효준이 하듯이 나는 점점 더 그녀에게 밀착한다.
내 손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고 그녀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내 손을 받치듯이 잡고 흐느적거린다.
짧은 단발의 그녀의 어깨선과 쇄골, 심지어 탱크탑 옷이 움직일 때마다 살짝 벌어지며 뽀얀 속살까지 보인다.
얼굴을 그녀의 어깨 쪽으로 대며 목 부분에 키스를 한다.
‘하앍!’
이런! 이 아가씨 왜 이리 적극적이지?
손이 어디로 오는 거야?
순간적으로 이성이 돌아왔지만 곧 사라져 버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더워도 너무 더웠다. 땀이 등으로 흐를 정도다.
그리고 술기운이 떨어졌는지 이성이 돌아온다.
정말 모든 곳을 더듬고 비볐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피식 웃음이 나온다.
“덥지 않아?”
“무지 더워.”
“술이나 한잔할래?”
“좋지.”
그녀도 거부하지 않고 따라 스테이지에서 내려온다.
난 맥주 2병을 시켜 그녀에게 건네고 나도 목을 축였다.
그제야 지안이 생각났다.
‘어디 갔지?’
그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같이 온 사람 있어?”
“응, 근데 안 보이네.”
“춤추고 있나 보지.”
그런가 싶어 스테이지 쪽으로 눈을 돌렸지만 아까보다 더욱 많아진 사람들 덕분에 보이지도 않는다.
“여자야?”
역시 여자들은 눈치가 빠른 모양이다.
한 손으로 계속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의 힘이 풀리며 내려간다.
“응, 그런데 친구야.”
“그렇구나. 아무리 친구라도 이런 데서 혼자 놔두는 건 실례야.”
전혀 아쉬운 표정 없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
난 괜스레 미안해졌다.
“미안.”
“호호! 괜찮아. 그리고 파트너 없음 연락해.”
“……?”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설마 백효준과 아는 사이인 건가?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휴∼ 기억도 못하니? 하긴 그때 많이 취해 보이긴 하더라. 샤이닝이라고 전화번호에 적어뒀잖아. 없음 말고.”
망할 자식! 도대체 저렇게 예쁜 애를 기억 못한다는 게 정상적인 거야?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찾아보니 정말 샤이닝이라고 적힌 번호가 있다.
몇 번 백효준을 욕했지만 내 인생도 아닌데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맥주병을 들고 지안을 찾으러 스테이지를 돌아본다.
보이지 않는다.
‘윗층에 있는 건가?’
계단을 타고 올라가 찾아보니 혼자서 열심히 흔들고 있는 지안이 보인다.
지금 지안이 차지한 아가씨는 착한 몸매, 착한 얼굴의 소유자.
당연 옆에서 치근거리며 춤추는 남자들이 보인다.
하지만 지안의 싸늘한 태도 때문인지 금방 투덜거리며 자리를 뜬다.
아직 날 발견하지 못한 그녀에게로 접근해 갔다.
그리고 뒤에서 살짝 그녀의 등에 가슴을 부빈다.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보는 그녀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하지만 나임을 확인하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바뀐다.
“여기서 뭐해?”
난 그녀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춤추고 있었다. 왜?”
“진즉에 같이 추지. 한참 찾았잖아.”
“흥, 아까 호텔까지 갈 분위기던데. 그래서 비켜준 거라고.”
참, 여자의 심리는 알 수가 없다.
자신이 등을 떠밀고는…….
“너, 내가 실패하기를 바랐구나.”
수많은 간접경험 때문일까? 약간은 지안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 아니거든!”
발끈하기는.
“나 딱지 맞았어.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좀 가르쳐 줘.”
몇 번 다시 콧방귀를 뀌었지만 계속된 나의 부탁에 그녀는 결국 화를 푼다.
내가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읽은 것 중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역시나 사기꾼의 기억인가 보다.
그는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단 몇 분 말하고 전혀 모르는 이에게 하루 일당을 빌리기도 했고, 여자들을 속여 수천만 원을 사기치기도 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도 결국 감옥에 몇 번 들락거리며 인생을 허비했고 지금은 지하철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맨 처음 이사장의 별장에서 돈을 훔칠 때 잠시 점핑했던 이가 바로 그였다.
“허리에서 손 안 떼?”
“후후후! 부비부비 클럽을 경험하러 왔으면 경험을 해 봐야지.”
나와 지안은 어느새 입장이 바뀌어 있었다.
난 계속해서 그녀에게 부비부비거렸고 그녀는 화들짝 놀라면서 피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우리의 밤 문화 체험은 재미를 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