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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18화)
9. 경험 쌓기(3)
새벽 2시. 우리는 열기가 더해가는 부비부비 클럽에서 나왔다.
후루룩!
맛있게도 먹는다.
클럽에서 나오니 배가 고팠다. 그래서 근처의 포장마차에 들어와 가락국수를 먹고 있다.
“너 그렇게 먹어도 되냐?”
“냠냠! 살을 빼야 하는 건 내가 아니잖아.”
참 쿨한 성격이다.
“이제 슬슬 들어가 봐야 하지 않아?”
“둘이 소주나 한잔할까?”
지안은 돌아가기가 싫은 모양이다.
나도 이왕 놀러온 김에 더 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콜!”
사실 요즘 같은 몸 상태라면 며칠이라도 밤새워 놀 수 있다.
점핑 대상자에게 오래 있기 위해 지금도 선도법 3단계를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클럽에서는 정신 집중이 다른 곳에 올인(All―in)된 상태라 하지 못했지만 요즘은 밥을 먹으면서 행(行)하는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다.
“어디로 갈까?”
가락국수를 먹고 나와 지안에게 물었다.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꽤 많아. 거기 괜찮은 집 알고 있으니 그쪽으로 가자.”
난 지안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새벽 2시인데도 이 골목은 여전히 불야성이다.
일주일의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기분들이 좋은지 회사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저기 꼬치집 맛있어. 저리로 가자.”
지안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 손을 잡고 먼저 발길을 옮긴다.
“하하, 천천히 가.”
하지만 좋은 기분은 갑자기 지안이 멈춰서며 끝이 났다.
“왜 그래?”
앞만 보고 얼어 버린 그녀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신 얼굴이 서서히 독기를 품기 시작한다.
난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봤다.
그 새끼!
지안의 남편이 동료로 보이는 이들과 술을 마시고 술집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의 분노를 알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잡은 손에 힘을 줄 뿐이었다.
“먼저 들어가 있어.”
억눌린 분노가 말에 담겨 있었다.
“내가 같이 가줄게.”
“괜찮아. 오늘 당장 복수할 생각은 없어.”
그녀는 날 보고 있지 않았다.
조금씩 멀어지는 그 새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지안은 내 손을 뿌리치고 그가 사라지는 방향으로 뛰어간다.
방금까지 따뜻하던 손이 허전해진다.
멍하니 그녀가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잡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가 무슨 일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깡패를 만난다고 해도 나처럼 점핑 몇 번만 하면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돌아갈까?”
지안이 가 버리고 난 혼자가 된 듯한 기분에 중얼거려 본다.
혼자서 술을 마시기는 싫었다.
“파트너 없음 연락해.”
아까 클럽에서 만났던 샤이닝의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아직 있을까?
호주머니 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꺼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는다.
끊으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된다.
여전히 클럽인지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마치 배경 음악처럼 들린다.
―효준아, 왜?
“소주 한잔할래?”
딱히 딴 말은 나오지 않았다.
―호호, 소주만? 알았어. 어디야?
난 그녀에게 내가 있는 곳을 설명했다.
이쪽 동네에 대해 잘 아는지 금방 오겠다는 그녀.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상관없다. 나도 술만 먹자고 전화한 것은 아니니까.
경험은 직접, 간접 경험만 있는 건 아니다.
10. 놈은 토끼였다(1)
백효준은 미칠 지경이었다.
어제 그동안 공들인 1학년 후배, 홍민주와 만나기로 한 미용실에서 만났었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나오는 순간 기억을 잃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홍민주는 온데간데없고 낯선 여자애가 옆에 누워 있어 기급을 해야 했다.
뭐, 그런 거야 간혹 있는 일이니 그렇다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홍민주도 새벽에 집 앞에서 눈을 떴다는 것.
“아니라니까! 나도 모르겠어.”
―선배 혹시 저에게 물뽕…….
“그런 소리하지 마. 아직 24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 검사해 봐도 좋아. 하지만 나도 정신을 잃었다니까.”
―그럼, 어떻게 이 일을 설명해요.
“하아∼ 일단 만나서 얘기해.”
―됐어요,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에요.
“민주야! 민주야! 에이, 씨발!”
결국 그의 입에서 욕이 나온다.
백효준은 짜증이 나는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다.
오가다 만난 여자애라면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민주는 학교 후배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에 대한 별로 좋지 않은 소문들이 학과에 퍼져 있는데 홍민주가 혹시나 물뽕 얘기를 꺼낸다면 완전 찍히게 된다.
어쩌면 쪽팔려서 과를 옮기거나 학교를 옮겨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백효준은 다시 한숨부터 나온다.
“저, 손님. 여기는…….”
“알아요. 이제 나갈 거예요.”
호텔 직원까지 속을 긁는다.
그나저나 호텔 로비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나 보다.
“학생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호텔을 나가려는데 또 다른 사람이 백효준을 붙잡는다.
“왜요?”
당연 효준의 말은 곱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다만 명함을 건네며 다시 말한다.
“난 차영호라고 합니다. 절대 의심스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효준은 차영호가 건네는 명함을 받아 쳐다본다.
삼행그룹 경호팀. 차영호.
물론, 효준은 명함만으로 그 사람을 믿을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 약간은 누그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 때문에 절 부르신 거죠?”
“별거 아닙니다. 본의 아니게 학생의 통화 내용을 듣다 보니. 제 동생이 얼마 전에 겪었던 일과 너무 비슷해서 몇 가지 물어보려고요.”
차영호는 차분히 말을 꺼냈고, 효준은 자신과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사람이라면 뭔가 알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대화를 해 보기로 했다.
그가 아침 일찍부터 호텔에 있는 이유는 얼마 전부터 약간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이남호 차장 때문이었다.
그를 경호한 지 5년. 그동안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생활하던 이남호가 요즘 들어 술집도 자주 가고 그곳 아가씨들과 곧잘 잠자리를 가졌다.
어제도 그곳 아가씨와 이 호텔에서 잠을 잤는데 경호 업무 특성상 계속 지키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문 앞에서 기다릴 수 없는 일.
옆에 방을 구하고 기다리다가 나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사제에게 문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호텔 로비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로비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청년을 봤고 그가 하는 말을 들게 되었는데 그 행태가 자신들이 찾고 있는 정신 이동자의 짓과 흡사해서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벌써 몇 달 전 정신 이동자에 대한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전혀 흔적이 없어 차영호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한소그룹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재(私財) 5,000억 원을 기부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에 대대적인 조사가 들어갔다.
그러나 그건 정신 이동자의 소행이 아니라 한소그룹 회장이 자발적인 행동을 한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에 차영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암천회원 중 일부는 잘못된 정보로 설레발 친 거 아니냐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또다시 정신 이동자에게 당한 것 같은 이가 나타났으니 말을 걸어본 것이다.
“상황을 나에게 자세히 말해주시겠어요?”
속이 쓰리다며 아침을 먹는 백효준에게 차영호는 물었다.
“자세하고 말 것도 없어요. 분명 민주와 미용실을 나온 것까진 확실히 기억에 나요. 하지만, 눈을 떠보니 이 호텔방이더라고요. 그것도 잘 알지 못하는 여자와 함께요.”
“그것에 대해 민주라는 아가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걔도 기억이 전혀 안 난데요.”
“네?”
차영호는 일순 당황했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동시에 정신을 잃다니.
정신 이동자가 두 명이 동시에 나타난 적은 없었기에 정말 저들이 마약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제 말을 못 믿나보군요.”
백효준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말한다.
“아뇨.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 동생의 경우도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 그때는 동생 옆에 있던 사람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더군요. 그 친구도 말투만 평소와 조금 다를 뿐 제 동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평소와 같이 행동했답니다.”
“참, 신기한 일이네요. 어쨌든 걔도 전혀 생각 안 난다고 하는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차영호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호텔에서 같이 잤다는 여성은?”
“험! 그야 저도 모르죠. 이미 나갔을 걸요. 그건 제가 술을 먹고 실수한 것 같아요.”
그 여성에 대해선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차영호는 말을 돌렸다.
“제 동생의 경우, 돈도 없어지고 카드 내역을 보니 이곳저곳에서 사용했던데 학생은 어때요?”
“글쎄요, 돈은 크게 없어진 것 같지 않고 카드는 아직 확인 안 해 봤네요.”
“핸드폰에 내역은 나오잖아요.”
“이 카드 엄마 거예요.”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제 동생의 경우 현금서비스까지 몽땅 빼갔더라고요.”
차영호는 없는 동생을 갖다 붙이며 백효준을 부추긴다.
“잠깐만요.”
백효준은 바로 단축번호를 누르더니 그의 엄마와 통화를 한다.
“엄마, 나. 어제 내가 쓴 카드 내역 좀 알 수 있어?”
―니가 쓰고 왜 그걸 니가 몰라? 설마 너 또 대마초하는 거 아니지? 그랬다간 너 아빠한테 다리 부러진다.
전화기의 성능 때문에 차영호는 그들 모자지간의 통화를 들을 수 있었다.
“아냐! 친구 놈들이 서로 결재했다고 우기고 있어서 그런 것뿐이야. 빨리 불러줘.”
―기다려. 그건 그렇고 너 언제 들어올 거니? 좀 있다 기말고사잖아.
“교수님한테 아빠 양주 몇 명 갖다드리지, 뭐.”
―으이구, 이 화상아!
엄마나 아들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차영호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33만 원, 클럽에서 30만 원, 호텔에서 55만 원이네. 너 또 여자랑 있었어?
“아냐! 좀 있다 들어갈게. 끊어요.”
차영호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방금 들린 곳의 이름을 외웠다.
“들으셨죠? 동생분과는 좀 다른 경우 같은데요?”
“간 곳을 들었는데도 기억이 안 나요?”
“전혀요. 평소 제가 자주 가던 곳이라 그런 건가? 젠장!”
차영호는 눈앞의 백효준을 보면서 혹 잘못 짚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왠지 육감이 계속 조사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일단, 그곳에 가서 CCTV를 살펴보면 되겠군요.”
“아! 그 방법이 있었지. 아저씨 저도 같이 가도 되죠? 제발 민주와 같이 찍혀 있어야 할 텐데.”
“그럼, 가볼까요?”
“좋아요.”
차영호는 사제에게 전화를 해 잠깐 일이 있다고 한 후에 △△호텔 스카이라운지로 갔다.
“아, 글쎄. 정말 제 지갑이 사라졌다니까요. 그때 테이블에 놓고 온 게 분명해요.”
아는 경찰을 데리고 가야 했지만 백효준의 기지로 녹화된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셨죠? 지갑은 없습니다. 숙녀분과 결재를 하신 다음에도 지갑 같은 건 놓고 가시지 않았습니다.”
담당자가 설명을 했지만 백효준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맞아요, 얘가 바로 민주예요.”
다만 차영호를 보며 기쁘게 소리쳤다.
차영호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연신 두리번거리는 남자. 침착하게 앉아 있는 여자.
‘여자에게 정신 이동을 한 후 남자에게 정신을 잃게 하는 약을 먹인 모양이군.’
차영호는 대략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두 명의 정신 이동자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