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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20화)
10. 놈은 토끼였다(3)


원거리 점핑은 쉽지 않았다.
벌써 이틀 밤을 뜬 눈으로 원거리 점핑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때의 느낌을 다시 느껴본다면 쉬울 것 같은데 하늘을 나는 꿈도 더 이상 없었다.
‘뭐가 부족한 걸까?’
짧은 머리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낸다.
너무 막연하게 점핑했던 대상자들을 느끼려 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한 명만 꼭 집어서 해 볼까?
난 원거리 점핑을 할 대상을 생각해 냈다. 바로 신미향.
지안이 예전에 나와 뭔가 통할 것 같다는 끔찍한 말도 했을 만큼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아가씨.
오늘 퇴근을 했으니 아마 집에서 단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난 선도법을 행하며 신미향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생각한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
요즘 신미향은 정말 몰라보게 예뻐졌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난 그녀가 곰처럼 지내던 때를 알고 있었기에 그런가 보다.
집중! 집중!
날씬한 몸매, 요즘 따라 부쩍 예뻐진 얼굴만 생각하며 의식을 집중했다.
그렇다고 해도 좀처럼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녀의 방은 어떨까?’
요즘 한 번도 신미향에게 점핑을 한 적이 없었다.
항상 신미향은 지안의 차지였다.
그녀의 정신세계에 만들어놓은 방을 그려보고 여전히 지안의 조각상이 있을까 궁금했다.
팟!
얼떨결에 성공했다.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역시나 내가 만들어둔 조각상.
그런데 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방이 아니라 이젠 복층 구조의 빌라라고 해야 할까?
지안은 신미향의 정신세계에 방이 아니라 아예 집을 지어 두었다.
과연 이런 집 구조는 신미향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어라?’
기억이 들어오는데 뭔가가 좀 이상하다.
다이어트를 하는 장면과 병실에 누워 있는 지안을 바라보는 장면만 있을 뿐 다른 기억들이 없다.
보통 타인의 몸에 들어가 기억을 읽을 경우 그 사람이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억들이 내 머리로 들어온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면 좀 더 세분화된 기억이 나에게로 전해진다.
그런데, 신미향은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난 방에서 그녀의 의식세계를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을 보기를 원했다.
좌르르 필름 모양으로 보이는 그녀의 기억들.
한데 필름의 일부분이 검게 칠해져 있다.
‘뭐야? 지안이 신미향에게 뭔 짓을 하는 거야?’
의문이 생긴다. 복수를 위해 신미향을 이용하려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기억을 지워 버리면 어쩌자는 거지?’
더 이상 생각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신미향이 아니라 내가 원거리 점핑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내일 지안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다시 원거리 점핑을 하기로 했다.
감각이 남아 있을 때 최대한으로 익숙해져야 한다.
이번에는 누가 좋을까?
결정! 백윤희.
신미향에 이어 가장 많이 점핑을 한 상대이니 적당한 대상이다.
난 백윤희를 생각하며 그녀의 정신세계에 만들어뒀던 방을 생각한다.
―자신을 소중히 하자.
그래 그거였다.
나의 의지가 그녀의 방에 닫자 내 정신은 빠르게 어디론가 나아간다.
‘어?’
약간의 이질감.
백윤희는 깨어 있었다.
그래서 정신세계가 아니라 바로 육체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침대?’
순백색의 침대가 눈에 보인다.
그리고 약간의 몽롱한 기분. 마지막으로 내 몸속으로 뭔가가 들락거리는 느낌……
이런 썅!
난 기급을 하고 시선을 뒤로 돌렸다.
우욱! 어떤 망할 자식이 뒤에서 열심히 운동(?) 중이다.
이 새끼! 저리 안 꺼져!
도저히 구역질이 나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난 바로 열심히 운동 중인 인간에게로 점핑을 시도했다.
이 수모와 황당함 때문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지만 나의 모든 의지를 쏟아서라도 성공하겠다는 일념 때문인지 점핑에 성공했다.
처음 점핑을 시도한 사람이라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 방금 전의 일 따윈 잊어버리자.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보답(?)을 받아보자.
“끝났어요? 정말 좋았어요.”
귀와 눈을 차지했는데 성의 없는 말을 던지고 백윤희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 나의 귀에 속삭인다.
그러더니 휑하니 샤워실로 가 버린다.
‘아냐! 아냐! 잠깐 멈춘 것뿐이라고!’
몸을 차지하는 짧은 멈춤에 그녀는 착각을 한 것이다.
몸을 차지했지만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찬바람에 더워져 있는 이놈의 몸을 식힌다.
방금 날 유린(?)했던 놈의 기억이 들어온다.

놈은 토끼였다.


11. 숨도 못 쉬게 안아주마(1)


차영호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모아온 자료를 살펴보며 연신 컴퓨터에 입력한다.
“사형, 뭘 하십니까?”
“응, 개인적으로 알아볼 게 있어서.”
차영호는 사제 문철용의 물음에 간단히 답했다.
문철용도 정신 이동자에 대해 알고 있지만 지금은 알아보는 단계라 말을 꺼내기가 껄끄러웠다.
“이남호 차장은?”
“여전하죠. 뭐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덕분에 저희가 편해지지 않았습니까?”
삼행그룹에서는 이남호의 이상한 행동에 제동을 걸기 위해 새로운 경호원들을 투입했다.
너무 오랫동안 경호원이 바뀌지 않아 해이해졌다고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덕분에 정신 이동자에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어 차영호는 만족했다.
“전 선도술이나 좀 해야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그래.”
모니터에 시선을 떼지 않고 차영호는 대답을 한다.
자료를 모두 입력하고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던 그의 눈빛이 빛난다.
‘주변에 순간 기억상실을 겪은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
그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워낙 다양했지만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오는 직업이 있었다.
간호사.
그리고 남녀의 비율도 상대적으로 여성이 많았다.
차영호는 노트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삐 발걸음을 놀린다.
대부분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던 그는 선도당이라는 현판이 걸린 고즈넉한 건물 앞에 섰다.
“영호더냐?”
“예, 스승님!”
“들어오너라.”
“예!”
영호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창호지를 바른 옛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도(道)’라고 휘황찬란하게 적힌 글 앞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노인이 정좌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더냐?”
그는 노인에게 절을 하고 멀찍이 무릎을 꿇고 앉는다.
“여쭈고자 하는 것이 있어 왔습니다.”
“말하거라.”
“혹시 정신 이동자 중에 여자도 있었습니까?”
“드물긴 하지만 간혹 여자들도 있었지. 뭐라도 찾은 것이냐?”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차영호는 말을 하면서 숙인 고개를 들지 않고 계속 말을 잇는다.
“그런데, 정신 이동자들은 성별을 따져 정신 이동을 하는 것이 맞습니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동을 한 후 대상자의 기억을 읽게 되는데 남자가 너무 많은 여자의 기억을 읽게 되면 정체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구나. 예전에 조사한 경우를 봐도 여자는 여자에게 남자는 남자에게 정신 이동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차영호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 정도 친척이 있었나 보구나. 왜 알리지 않았느냐?”
간단한 책망에 그의 머리는 마치 바닥에 닿듯이 내려간다.
“숨기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스승님께 누가되는 것 같아…….”
“쯔쯔! 회(會)의 어리석은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니…….”
“죄송합니다.”
“그들은 정신 이동자들의 무서움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들을 얼마나 빨리 잡느냐가 관건이다. 설령 그들이 미치기라도 한다면…….”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형제들과 같이 움직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래, 의심이 되는 지역이 어디더냐?”
“○○동의 종합병원입니다.”
“누군지 찾기가 쉽지 않겠구나. 서서히 좁혀 들어가도록 하거라. 실수가 없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차영호는 다시 스승에게 누가될까 걱정스러웠지만 그의 스승 말을 따르기로 했다.
혹 다른 말이 있을까 기다렸지만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어 조용히 일어나 문을 나서는 차영호였다.

***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냐.’
‘아무래도 수상한데?’
‘수, 수상은! 참, 어제 드디어 원거리 점핑에 성공했어.’
‘잘했네.’
지안은 자랑스러운 듯 말하는 금을 보니 자연스레 칭찬이 나온다.
원거리 점핑에 성공했다니 한편으로는 그에게 조금 덜 미안할 것 같다는 이기적인 마음도 들었다.
‘원거리 점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정신세계에 만들어놓은 방이나 각인한 글인 것 같아. 점핑 대상자를 생각하고 방과 각인한 글을 생각하면 원거리 점핑이 가능하더라고.’
‘그래?’
‘응, 어제 내가 점핑을 할 때…….’
참 착한 남자다.
지안은 원거리 점핑에 대해 하나라도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하는 금이를 보고 생각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으니 가슴 한 켠이 아파옴을 느꼈지만 애써 마음을 잡는 지안이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지안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그녀의 남편을 만들고 그 형상을 죽이고 또 죽이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평소 보지 못하던 테이블과 편지를 보았다.
깜짝 놀랐다.
자신의 정신세계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편지를 읽고 그녀는 미친 듯이 그 사람에게 자신의 궁금한 점을 적어 나갔다.
6시간의 기다림은 어둠 속에서 지냈던 시간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새로운 편지.
누군가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지안은 만족했다.
그리고 항상 제정신이 아니던 그녀에게 변화가 생겼다.
점점 과거의 그녀로 바뀌어간 것이다.
어느 날, 받은 편지에 유체 이탈 방법에 대한 글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자신의 공간을 빠져나간다는 생각에 유체 이탈에 매달렸다.
몸이 나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금을 만났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금은 너무나 순진해 보였다.
그를 잘 이용하면 남편에 대한 복수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점핑하는 능력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그 어둠의 공간에서 8년간 지냈다는 걸 알고 그녀는 그 생각을 버렸다.
자신도 배신을 당해 이런 꼴이 되었는데 자신을 어둠에서 빼내준 금에게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