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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21화)
11. 숨도 못 쉬게 안아주마(2)
금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는 것.
그가 정신 이동을 할 때마다 들리는 이상한 주문.
그녀는 그 주문이 바로 정신 이동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듣고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부근에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지안은 알고 싶었지만 그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분명 요구한다면 그는 가르쳐 줄 것 같은데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자주 들락거리던 대상에게 원거리 점프가 더 쉽다고 했잖아.’
‘맞아, 그리고…….’
지안은 또다시 설명 중인 금을 바라본다.
금은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똑똑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따스함이 있었다.
‘바보!’
지안은 금이 듣지 못하도록 낮게 중얼거렸다.
그를 표현하는데 그보다 정확한 단어는 없다고 생각했다.
돈에 대한 욕심도 많고 응큼함도 있었지만 마치 아이처럼 표정과 행동에서 다 나타났다.
금의 그런 모습이 싫지 않은 지안이었다.
혼잣말하던 버릇마저 서서히 사라져 가는 금이었기에 주문을 완성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고 그가 가르쳐 준 선도법에 매달리고 있을 때였다.
―지안아, 밖에 나가고 싶었지? 미안. 내가 그동안 너무 내 생각만 했나 보다. 내가 정신 이동 방법 가르쳐 줄게.
역시 바보였다.
미안한 얼굴로 말하는 금을 보며 자신이라면 절대 그런 비법 따위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을 텐데라고 지안은 생각했다.
그녀에게 정신 이동은 또 다른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었고, 드디어 상상 속으로만 하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신미향에게 어떻게 한 거야?’
‘응? 신미향이 왜?’
금의 질문에 지안은 속으로 놀랐지만 겉으로는 모른 척 말을 받았다.
그녀는 눈앞의 금과 다르게 얼굴에 표정을 보일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이 이상해. 기억들 일부가 까맣더라고.’
‘그건 아마…… 내가 테스트한다고 3일 동안 머문 다음부터 생긴 증상일 거야.’
지안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녀는 진실을 말할 뻔했다.
금에게는 쉽사리 거짓이 나오지 않는 그녀였다.
결국 진실과 거짓을 약간 섞기로 결정했다.
‘선도법을 배우고 오래 머무는 테스트를 했거든. 그때 3일 정도 한 사람의 몸에 있으니 변화가 생기더라고. 뭐랄까? 내 육체와 연결이 끊기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위험했던 거 아냐?’
지안은 금의 얼굴에 나타난 걱정스러운 표정에 가슴이 아팠다.
항상 자신과 관련된 일에는 저런 표정이다.
지안은 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행복하길 바랐다.
‘위험한 일은 하지 마! 내가 윤승호의 몸에 3일간 머물면서…….’
‘그러지 마. 내가 보기엔 그 사람과 일체화가 되어 버려. 내 육체가 죽어 버릴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리고 그때 강제적으로 연결이 끊으면 영체에 손상을 입는다고.’
속으로 바보라고 말하며 지안은 사실을 말해줬다.
그녀가 한동안 그 앞에 나타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알았어. 대신 앞으로 테스트 금지야. 그냥 쇼핑이나 하면서 복수 준비나 해.’
‘휴∼ 알았어. 나도 복수전까지 무리하지 않을게.’
‘복수 후에도 마찬가지.’
‘알았다니까.’
워낙 강렬한 금의 눈빛에 지안은 결국 그러겠다 할 수밖에 없었다.
‘너 윤승호에게 가야 하는 거 아냐?’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그럼, 나중에 봐.’
‘그래.’
평소처럼 벽으로 이동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금을 바라보는 지안.
그가 사라진 후엔 누워 있는 그의 육체를 가만히 바라본다.
‘바보…….’
지안은 한때 복수를 포기하고 금과 그냥 지금처럼 지낼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새끼를 보고 다시 솟구친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복수를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원거리 점핑을 준비하는 지안.
금의 말이 맞다면 신미향에게 원거리 점핑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팟!
지안의 모습은 금방 사라진다.
방 안에는 영혼 없는 두 육체가 가늘게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다.
***
신미향은 공원에서 조깅 중이었다. 이제 지안이 보기에도 예전의 자기와 비슷한 몸매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일.
오전이라 공원은 한산했다.
한쪽에 마련된 벤치에 편하게 앉았다. 그리고 유체 이탈과 일체화를 하며 신미향의 정신세계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할 일은 아까 금이에게 원거리 점핑에 대해 들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이 공간에 남겨둔 글을 찾아 없애기 시작했다.
다시 금이 신미향에게 점핑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방을 모조리 정리한 지안은 금이 만들어뒀던 조각상 앞에 섰다.
그녀가 생각만 해도 사라질 조각상. 지안은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다.
한동안 그를 떠나 있어야 했기에 그의 흔적이라도 놔두고 싶었지만 거의 원거리 점핑을 막아야 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휴∼’
지안의 긴 한숨 소리와 함께 조각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녀는 잠시 조각상이 사라진 공간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정신세계가 흔들린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잠시 당혹스런 표정을 짓던 지안은 곧 신미향과 일치화를 한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누군가에게 공원의 으슥한 곳으로 끌려가고 있는 신미향의 몸이 보인다.
거친 손이 자신의 입을 막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옆구리를 돌아 가슴 부근을 움켜쥐고 있었다.
지안은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그리고 발작적으로 몸을 흔든다.
“가만히 있어, 씨발! 얌전히만 있으면 목숨은 살려둘 테니. 킬킬킬!”
“아주 팔딱팔딱 뛰는 활어 같군. 크크크!”
두 명이었다.
일단 시선이 닫는 곳에 누구라도 있어야 했기에 최대한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남자의 억센 팔에 고정이라도 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
지안은 작전을 바꿔 온몸의 힘을 뺐다.
“크크크, 그래. 너한테도 나쁘지 않을 거야.”
타인에 의해 끌려가는 몸은 공원의 가장 으슥한 곳에 도착을 했다.
“이거 보이지? 그냥 얌전히 있다가 가면 돼. 우리는 피를 안 봐서 좋고 넌 그냥 이번 일을 잊고 살면 그뿐이야. 오케이?”
뒤에서 들이 밀어지는 칼과 역한 입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지금은 별 도리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킬킬킬. 혹시 처녀라면 약간 피는 볼 수 있지만 그건 우리 탓이 아냐. 알았어?”
“그럴 리가 있겠냐? 빨리해, 등신아!”
둘의 대화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그들의 홀이 눈에 띄기만을 바랐다.
“혹시 모르니 동영상 찍어.”
“새끼, 아주 동영상 찍는데 재미가 들려서는…….”
한 놈은 옷을 벗기고 있었고, 다른 한 놈은 핸드폰을 꺼내더니 앞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안은 놈의 홀을 느끼자마자 그에게 점핑을 했다.
더러운 이질감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신미향의 하의가 거의 다 벗겨졌기 때문이다.
어쩐 일인지 자신의 정신으로 돌아왔을 신미향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를 못하고 있는지 아님, 침착한 건지 놈이 하는 대로 그대로 있었다.
“크크크, 몸매 죽이는데 잘 찍어라.”
“응!”
지안은 일체화를 이루고 그의 말대로 어느새 손에 쥐고 있던 돌로 그의 머리를 찍었다.
“어∼ 헉!”
괴상한 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진 남자는 그대로 신미향의 몸으로 넘어진다.
신미향은 그런 그를 침착하게 밀어서 치운 후, 옷을 추스르고 일어선다.
그리고 가만히 피를 흘리는 남자를 바라보더니 지안이 몸을 차지한 남자를 보며 말한다.
“감히 네가 가질 몸에 손을 대다니. 용서할 수가 없어.”
주변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 신미향은 그대로 지안이 들고 있던 돌을 뺏어 남자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퍽퍽!
끔찍한 소리와 함께 신미향의 몸 여기저기에 피가 튄다.
“그만해.”
지안이 몸을 차지한 남자가 저음의 목소리로 신미향을 저지한다.
“알았어. 그런데 그 남자는 어떻게 할 거지?”
지안은 피묻은 돌을 한쪽으로 던지고 피 묻은 얼굴을 옷으로 쓰윽 닦으며 일어나는 그녀를 본다.
지안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이미 익숙한 듯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신미향에게 지안이 처음 점핑을 했을 땐 참으로 연약하고 마음 약한 여자가 그녀였다.
겉(?)으로 보기에만 강해 보일 뿐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을 닮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금이가 그녀의 정신세계에 만들어 둔 조각상과 글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때, 지안은 복수에 신미향을 이용할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무의식의 세계뿐만 아니라 의식세계에도 지안 자신을 닮도록 부추겼다.
여기까지는 그녀가 자신을 닮고 싶어 한다는 걸 제외하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지안이 3일 동안 신미향의 몸에 머물면서 신미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영체에 손상을 입어 3일이 지난 후 신미향에게 들어간 지안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지안 자신의 기억이 신미향에게 전이되어 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영체로 지낼 때까지의 모든 기억까지.
몸은 신미향이지만 정신은 이미 곽지안이 되어 버린 그녀.
지안은 신미향에게 잘못을 빌고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문제는 지안이 3년간 남편에게 복수하겠다는 그 일념과 잔혹성마저 그대로 닮아 버렸다는 것이다.
“기억을 읽고 있는 거야?”
“응.”
신미향의 물음에 간단히 대답한 지안은 남자의 기억을 읽었다.
죽일 놈들!
족히 백 명이 넘어 보이는 여자들이 이 두 놈에게 인생이 더렵혀지는 영상이 펼쳐졌다.
“내가 칼로 찌를까?”
지안의 잔뜩 찌푸린 얼굴을 봐서 그런지 신미향이 물었다.
“아니. 증거를 남길 필요 없겠지.”
지안은 남자의 몸을 이용해 주변의 큰 돌을 한쪽으로 모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뒤져 나온 칼을 돌과 돌 사이에 잘 고정시켰다.
“어쩌려고?”
지안은 아무 말 없이 나무를 기어오른다. 남자의 몸이라 어렵지 않게 나무를 올라 굵은 나뭇가지에 올라선다.
“호호호! 정말 괜찮은 생각인데?”
“넌 내려가 있어.”
“보이는 곳까지 내려가 있을 게 확실히 해야지.”
신미향이 거리를 벌리자 지안은 나뭇가지 뛰어내릴 준비를 한다.
바로 그의 밑에 돌덩이들과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이고 있다.
지안은 몸의 힘을 빼고 그 돌무더기로 몸을 기울인다.
옆에서 보기에는 남자가 나뭇가지 위에서 자살을 하려는 듯이 몸을 그대로 그 돌무더기와 칼 위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다.
팟!
지안은 원거리 점프를 해 버렸다.
방금 전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으려던 놈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변화가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날카로운 칼과 바위가 자신의 머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으!”
칼이 눈을 파고들며 끔찍한 고통이 올라왔지만 비명을 지를 틈이 없었다.
퍽!
바로 돌무더기에 머리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지안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얼굴을 슥슥 문질러 피를 지운 후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