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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22화)
11. 숨도 못 쉬게 안아주마(3)


“왜? 엉덩이가 간지러워?”
“아뇨!”
원거리 출장을 나온 헤어디자이너의 물음에 난 신경질을 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자꾸 들락거리던 무언가가 생각이 나서 짜증이 솟구친 것이다.
앞으로 여자들에게 점핑을 할 땐 정말 주의를 기울일 작정이다.
“다 됐다. 환자가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거니?”
그의 말마따나 정말이지 거울 속의 나, 윤승호는 멋졌다.
만일 내가 이런 모습을 길거리에서 봤다면 밥맛이라고 할 스타일이지만 내가 살아가야 할 몸이니 관대히 봐주기로 했다.
“고생했어요, 형. 나중에 밥 한 끼 살게요.”
“어머, 너 죽다가 살아나서 인간이 되었다고 그러더니 정말이구나? 내 평생 너한테서 고생했다는 소리를 다 듣다니.”
“누가 그런 소릴 해요?”
“……아냐. 그냥 그런 소문이 있어서.”
눈동자를 보니 저 뒤에 고개를 움츠리는 배동수 저 인간이 소문을 냈나 보다.
눈치는 정말 빨라 금세 밖으로 후다닥 나가 버린다.
“이제 퇴원하려고?”
“아뇨,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다시 해서 당장은 힘들어요. 대신 이제 쉬엄쉬엄 일해야죠.”
“광고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참 이 사람 말 많다.
당연히…….
광고 때문이다. 도대체 며칠 일하고 3억이라니.
부담도 없다. 병원에서 며칠 출퇴근하면 되니까.
“나중에 술 근사하게 쏴∼ 흐흐흐!”
난 의자에 앉은 윤승호의 몸을 넘어지지 않게 살짝 뒤로한 후, 헤어디자이너에게 점핑을 했다.
원거리 점핑이 가능하니 많은 이들에게 방을 만들어두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유치한 생각에서였다.
물론, 주변인에 대해 잘 알아두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도 있었다.
‘Shit!’
정말이지 요즘 되는 일이 없나 보다.
기억을 읽으니 그는 바이(동성애와 이성애를 같이하는 양성애자를 일컫는 말.)였다.
1인칭 시점으로 때론 남자와 때론 여자와 놀고(?) 있는 장면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마치 두 사람의 몸에 동시에 점핑을 한 기분이다.
하지만, 할 일을 멈출 수는 없는 일 유체 이탈과 동시에 다시 그의 정신세계로 접속해 방을 만들고 글자를 남겼다.
―정체성을 찾자.
아주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이 사람에게 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깜빡 졸았나 보다. 필요할 때 또 불러∼”
“들어가요. 홍홍홍…….”
젠장! 내가 정체성을 찾아야겠다.
한동안 여자들과 바이에게는 점핑 금지다.

머리만 살짝 만지고 화장은 하지 않은 채 TV 연예 프로에 인터뷰를 했다.
아직 병이 낫지는 않았지만 활동하기에는 불편함이 없다는 점을 말해야 했다.
안 그러면 광고를 찍을 수 없기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작전이었다.
퇴원을 한다고 해도 딱히 불편할 것은 없었다.
바로 활동을 재계할 것은 아니었다.
“주사 맞을 시간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백윤희가 들어온다.
씁쓸한 추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내가 토끼도 아닌데 좀 찔린다고 할까?
난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엉덩이 주사예요.”
얜 도대체 패턴을 안 바꾼다.
“지안아, 장난치지 마.”
“네? 전 백윤희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주사를 바꾸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선생님께 확인시켜 드려요?”
너무 확실하게 말하는 그녀인지라 의심이 약간 사라진다.
점핑을 하면 확실하겠지만 당분간 여성에게 점핑 금지다.
“미안합니다. 제가 착각을 했네요. 이 정도면 되나요?”
난 침대에서 살짝 몸을 돌려 바지를 약간 내리며 물었다.
“좀 더 내려주세요.”
“네.”
“좀 더요.”
“네…….”
다시 의심이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하지만 늦었다.
찰싹!
“윽! 곽지안!”
“흐흐흐흐! 결국 속았지롱!”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
에궁! 장난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쩝! 그런데 원거리 점핑은 성공했어?”
“응. 지금 신미향에게서 백윤희로 점핑한 거야.”
“휘∼ 정말 빠르네. 난 며칠만에 겨우 해낸 건데.”
오전에 가르쳐 줬는데 벌써 원거리 점핑을 하다니. 난 축하 인사를 다르게 표현했다.
“머리가 다르잖아, 호호호!”
“그래 니 똥 굵다.”
“어머, 숙녀한테 그런 말을 사용하다니. 톱스타가 그런 말하면 안 돼요.”
“괜찮거든. 난 금이잖아.”
한참을 둘이 시시덕거린다. 그러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방에 있다는 걸 알고 물었다.
“이제 가봐야 하지 않아?”
“응. 그런데 너한테 부탁이 있어.”
“말해. 내가 뭐든지 들어주지.”
“그래?”
짓궂은 표정으로 바뀌는 지안을 보며 바로 말을 더했다.
“가능한 것만. 하하하!”
“어렵지 않을 거야. 내가 들어갈 만한 몸 찾아줄 수 있어?”
“당연하지! 이제야 결심한 거야?”
난 기쁘게 소리쳤다.
“응! 대신 내일부터 당장 알아봐 줘.”
“알았어. 내일 아침부터 바로 찾으러 갈게.”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구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난 두말 않고 말했다.
“고마워!”
“아냐, 너 몸 찾으면 윤승호와 같이 지내면 되겠다. 내가 아주 멋진 바디를 가진 여성으로 구해줄게.”
“마음에 안 들면 퇴짜 놓을 테니까 알아서 해.”
“걱정 마!”
난 자신 있게 대답했다.
“또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뭔데?”
오늘따라 약간 이상해 보이는 지안이다.
물론, 평소에도 조금은 이상했으니 평소와 같은 건가?
“꼬옥 한 번 껴안아 줘.”
“켁! 적당히 해라. 아무리 윤승호가 좋다고 하지만 매번 이러면 곤란해.”
하지만 왠지 지안의 표정에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확실하게 문은 닫았어?”
“물론이지. 오늘은 마땅한 핑곗거리도 없잖아.”
“쳇! 윤승호가 부러워지는군. 이리 와.”
난 두 팔을 쫘악 펴고 백윤희의 탈을 쓴 지안을 받아들였다.
“좀 더, 꽉!”
그래, 숨도 못 쉬게 해주마.
난 그녀를 더욱 꽉 안았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금”
“흥, 이번이 마지막으로 안아주는 거야. 난 톱스타라고.”
“그래…… 그래…….”
지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참 윤승호가 그렇게 좋은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지안은 그렇게 오랫동안 날 껴안고 있었다.


12. 운수 좋은 날(1)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의 시작.
밤새 선도법을 행하다 TV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지안은 어디를 갔는지, 아님 쉬고 있는지 윤승호에게 점핑할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윤승호에게 점핑한 난 의사 선생님을 만나 간단히 내 상태에 대해 들었다.
물론, 그들의 말은 길었지만 결국 내가 간혹 정신을 잃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방법이 없다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와 지안이 있는 방에 오지도 않던 인물들이 여기는 어지간히도 들락거린다.
난 윤승호가 아니라 나 자신과 지안을 위해 그들의 노고에 감사했다.
그래야 앞으로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형, 준비해 왔어?”
“응, 밖에 있어. 근데 나가도 될까?”
“괜찮아. 의사 선생님한테 허락받았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물론, 의사 선생님에게 아주 잠깐 외출한다고 했다.
잠깐은 원래 개인마다 기준이 다르니 상관없다.
“옷 여기 있다.”
“고마워, 형.”
환자복에서 배동수가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마지막으로 모자를 눌러쓰니 남들이 알아보기 쉽지 않아 보인다.
“가요.”
여전히 내 외출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배동수를 잡아끌고 밖으로 나왔다.
“주차는 어디에다 해뒀어?”
“지하 주차장에.”
우리는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여기야.”
매니저답게 아주 조심스런 목소리로 날 부른다.
“미안, 이 차밖에 빌릴 수가 없었어.”
“괜찮아요. 이 정도면 훌륭하지.”
말은 훌륭하다고 했지만 정말이지 오래된 차였다. 내가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꽤 인기가 좋은 모델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차종이다.
프라이드 왜건 97년형.
불안한 마음과 달리 차의 상태는 꽤 좋았다.
“어디로 갈까?”
“경기도 □□병원.”
“거긴 왜? 거기서 치료받으려고?”
“아니. 그냥 일이 있어서 가는 거야.”
지금까지완 다르게 아주 편하게 앉아 창밖의 풍경을 구경해 본다.
윤승호의 몸을 차지해서 이게 무슨 호사인가 싶다.
하지만 이왕 윤승호가 되었으니 내 육체가 다시 움직인다고 해도 열심히 지내볼 생각이다.
금이의 이중생활.
캬하하하!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승호야, 창문 좀 닦아줘…….”
“…….”
창밖의 풍경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앞좌석 창문에 서리가 끼면서 얼어붙고 있었다.
히터도 소용이 없었다.
난 열심히 사이드미러가 보이게 연신 창문의 서리를 제거해야만 했다.
차도 몇 번씩 세워서 운전석의 서리를 제거하고 다시 달려야 하는 상황.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택시를 타고 갈 것을.
“승호야, 안 추워?”
“괜찮아. 이러다 경기도까지 가는데 하루 종일 걸리겠다, 형. 다른 곳도 들러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배동수는 벌벌 떠는데 난 전혀 춥지 않다.
‘윤승호가 추위에 강한 체질인가?’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겨울이 싫었다.
겨울만 되면 난방비 때문에 고아원에서도 최대한 난방을 하지 않았다.
손님이 오는 크리스마스, 명절 때가 되어서야 아주 잠깐 따뜻함을 느낄 뿐이었다.
특히 옥탑방에서 보낸 겨울은 정말이지 악몽이었다.
창문을 비닐로 막고 전기장판까지 틀어놔도 등만 따뜻할 뿐 얼굴은 콧물이 얼 정도로 추웠다.
“11시 넘어가면 한결 괜찮을 거야.”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한 나라의 왕자가 부럽지 않았다.
자연 짜증은 사라졌다.
역시 올챙이일 때를 잊으면 안 된다.
“형, 그러지 말고 근처 식당이나 들어가. 그래서 11시 넘어서 나오자고.”
“그래도 될까?”
“응. 형 그렇게 추위에 떨다가 사고 날 것 같아.”
배동수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근처 식당으로 운전해 간다.
내가 배동수에게 형이란 호칭을 쓰면서도 반말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원래 윤승호도 그랬다는 것과 실제 내 나이가 그보다 더 많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반말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대신 형이란 말은 붙였다. 그게 나의 최대한의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