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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핑1권(23화)
12. 운수 좋은 날(2)


□□병원 간판이 보인다.
지안이 점핑할 대상자를 찾기 위해 많은 조사를 해야 했다.
외국의 경우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혼수상태의 환자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자를 병원에 의탁을 한다.
그리고 일부는 지극 정성한 가족들의 간호를 받는다.
이들 중 다시 정신을 차리는 사람은 1%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제정신이 아닌 정신착란 상태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있다.
왜 깨어난 이들이 정신착란 증상을 보일까는 나와 지안의 경우를 봐 대략 짐작은 간다.
미쳐 버리지 않고는 어둠 속에서 버틸 수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그럼, 나와 같은 경우처럼 연고가 없는 환자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나라에서 일정 기간 그들을 돌보거나 드문 경우지만 병원에서 병원비를 받지 않고 돌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넘으면 그들은 사망 처리된다.
그래도 일정 기간 보살핌을 받는 이들은 그나마 행운에 속한다.
나라에서 일정 기간 돌보는 이들이 가장 많은 곳이 내가 온 병원이었다.
“형, 혼자 들어갈게. 심심하면 드라이브나 하고 와. 전화할게.”
난 배동수의 말을 듣지 않고 빠르게 말한 후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 로비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제일 북적이는 곳이 접수처와 약재실이 있는 곳이었다.
난 그곳 자리에 편하게 자리를 잡고 고개를 숙이고 점핑 대상자를 물색했다.
난 어제 나름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간단했다.
담당 의사에게 점핑을 해 환자의 정보를 알아내고 가장 적당한 환자들에게 점핑을 하기로 했다.
원거리 점핑이 가능하니 환자에게 들어갔다가 실패하면 다시 점핑하면 되는 일이었다.
‘저 사람!’
무슨 과 의사인지 상관없다.
그의 기억을 읽고 담당의를 찾으면 된다.
점핑!
내가 점핑한 대상자는 레지던트였다. 그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욱!’
영화에서 보던 잔인한 장면 따위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다.
의사들에 대한 약간의 존경심이 생길 정도다.
이들은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워낙 많이 봐와 면역이 된 건지는 몰라도 처음 겪는 나로서는 참기가 힘들다.
“우∼웨엑!”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통을 붙잡고 구토를 한다.
내가 있던 병원에서 많은 이들에게 점핑을 했다.
신경과 의사들이라 해도 그들이 과를 정하기 전에 행했던 장면들을 봐서 익숙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왜 의대생들이 외과를 꺼려 하는지 알 만했다.
뱃속에 있는 모든 걸 화장실에 토해내자 겨우 살 것 같다.
오늘 이 병원 의사들 내장을 모조리 비우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야, 최종수. 어디 가?”
“예, 과장님이 심부름 때문에 신경과로 갑니다.”
“빨리 끝마치고 와!”
“예.”
선배 의사가 말을 걸었지만 적당한 핑계를 대고 빠르게 신경과로 향했다.
그의 기억에 있는 신경과 과장에게 점핑할 생각이다.
‘신경과 과장이다.’
점심때라 마침 점심을 먹으러 가는 모양이다. 난 그에게 점핑했다. 지금은 방을 만들 여유가 없었다.
약간의 이질감. 눈을 뜨니 눈앞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최종수가 보인다.
“과, 과장님, 안녕하세요.”
당황하면서도 인사를 한다.
“그래, 여기서 뭐하냐?”
“글쎄요. 딴생각하느라 잘못 올라온 모양입니다.”
“몸 관리 잘하면서 해.”
난 그에게 말을 건네며 기억을 읽었다.
나이 많은 의사라 그런지 기억을 읽는데 오래 걸린다.
다행인 건 그가 수술한 지 오래됐는지 끔찍한 장면은 안 봐도 되었다.
하지만 불행도 있었다.
바로 코마 환자들에 대한 처리에 관한 기억은 끔찍한 장면보다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과장님, 식사하러 안 가세요?”
“으, 응. 약간 머리가 아파서……. 난 좀 있다 먹을 테니 먼저들 가서 먹으라고.”
동료 의사들을 보내고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기억을 곱씹어본다. 하지만 그의 기억에는 몇몇 환자를 제외하곤 정보가 가물가물하다.
앞에 있는 컴퓨터로 병원 정보망에 접속했다.
“비밀번호?”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가물거린다고 했던가?
‘분명 오전에 출근해서 비밀번호를 넣었을 텐데?’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은 나에게 들어오는 기억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도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면 들어올 텐데.
내가 차지한 의사의 경우 좀 심한 것 같다.
그때, 모니터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이 눈에 띈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영문을 보는 순간 그것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됐다!”
비밀번호를 넣자 검색창이 나타난다.
“입원일은 1년…… 성별은 여…… 가족관계는 무(無)…….”
내가 알 만한 것들을 넣고 검색 버튼을 누르자 5명의 환자가 나타난다.
환자의 나이를 본다. 23세의 여자와 27세의 여자 2명이 지안이 들어가기에 적합한 나이다.
“어쩌다가…….”
한 명의 환자는 이제 16살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모든 환자들을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환자의 이름을 클릭하자 환자에 대한 정보가 펼쳐진다.
23세 고지윤은 3달 전 외과 수술 후 돌연 코마 상태에 빠졌고, 27세의 유미진도 비슷한 경우였다.
“일단 고지윤부터 점핑해 보자.”
지안이 외모에 대해 얘기했지만 성형수술의 천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먼저 그녀들의 병실을 기억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고지윤은 807호. 유미진은 809호.
“어머, 과장님 여긴 웬일이세요?”
“아, 문 간호사. 머리가 아파서 잠깐 걷고 있는 중이야. 별일 없지?”
“호호, 여기야 항상 별일이 없죠.”
“그럼, 점심 맛있게 먹어. 온 김에 병실에 잠깐 들러볼까?”
마치 혼잣말처럼 들리게 말하고 807호의 문을 열었다.
내가 있던 병실과 다르지 않았다.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 숨 쉬고 있는 이들.
난 고지윤을 확인하고 점핑했다.
고지윤의 정신세계는 어둠만이 있었다.
맨 처음한 일은 그녀를 움직여 보는 것이다.
하지만 마치 나처럼 몸과 연결이 안 된다.
지안에게는 맞지 않는 몸. 신경과 과장에게 점핑을 할까 하다가 어떤 사연을 지녔는지 궁금했다.
흘러들어 오는 기억들.
‘젠장!’
괜히 기억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나의 과거를 그대로 답습한 모습이다.
씁쓸함이 날 감싼다.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난 그녀의 정신 공간에 방을 만들었다.
TV에서 나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방.
그녀의 어린 시절 꼭 껴안고 지내던 곰 인형도 큰 크기로 만들었다.
고지윤은 육체도, 영체도 죽었을 수 있다. 하지만 영체가 살아 있다면 조금이라도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난 신경과 과장의 정신세계에 만들어놓은 방과 그 방에 적어 둔 글을 생각했다.
―환자를 가족처럼.
영체는 공주풍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방에서 신경과 과장에게로 나아간다.

***

유미진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다.
기억은 읽진 않았지만 고지윤의 정신세계처럼 방을 만들었다.
‘휴∼ 어쩌지. 다른 병원으로 가봐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한다.
물론,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다른 병원도 검색을 해뒀지만 가장 많은 코마 환자가 있다는 이곳이 이렇다면 좀 곤란하다.
‘40대도 괜찮을까?’
하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지안이 분명 길길이 날뛸 것 같았다.
‘차라리 10대 소녀가 더 나을지도. 그 애가 몇 호실이었지?’
난 유미진에게서 유체 이탈을 했다. 그리고 환자들이 있는 방을 살펴본다.
‘저기 있다!’
다행스럽게도 다시 원거리 점핑을 안 해도 되었다.
신경과 과장은 아마 지금 어리둥절하고 있을 것이다.
고지윤에게서 원거리 점핑을 했을 때 다시 밥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병실로 올라왔으니 지금쯤 자신의 머리를 검사할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10대 소녀에게로 점핑을 했다.
익숙한 어둠. 난 눈을 뜨고자 의지를 일으킨다.
일체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둠이 갈라지며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됐다!’
입원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지 몇 번의 깜박거림에 눈이 곧 빛에 익숙해진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까닥거려 본다.
손가락은 잘 움직이는데 발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무슨 사고를 당한 건가?’
내 의문에 그녀의 기억이 들어온다.
교통사고였다.
새벽에 학교 가는 길에 승용차와 충돌하는 장면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오늘은 기억을 읽다가 우울증에 빠질 지경이다.
이지원. 어린 시절부터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는 명랑하고 밝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꽤나 똑똑하고 예쁜 얼굴로 학교에서 인기도 많았었다.
지안과 지원. 이름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했다.
난 이 아이로 결정을 내렸다.
만에 하나라도 영체가 있을 수 있었기에 방을 만들고 편지를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이제 이 아이를 어떻게 데려가느냐가 문제인데 이미 시나리오는 짜져 있었다.
약간의 수정만 가하면 된다.
난 윤승호의 몸으로 점핑을 했다.

눈을 뜨자 아까보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맞지? 내 말이 맞잖아. 승호 오빠라니까.”
“꺄아∼ 눈 떴어. 오빠가 맞다.”
“정말 윤승호다.”
“정신을 차렸나 봐.”
내가 윤승호의 인기를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이다.
순식간에 주변에는 인의 장벽이 만들어진다.
난 몸을 일으키며 그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다.
“꺄아∼”
웅성거림이 더욱 커진다.
예전이라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었겠지만 기억들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면서 이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난 유명 배우이자 사기꾼이고, 무술가이자 깡패이기도 했다.
“실례합니다.”
난 사람들을 헤치고 병원의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지만 난 오히려 기뻐했다.
윤승호임을 알아차렸는지 약간 놀란 표정의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이지원 환자가 이 병원에 있나요? 올해 나이는 만 16세로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자, 잠시만요. 이지원 씨라고요?”
“예.”
컴퓨터를 두드리는 직원.
난 표정에 신경을 썼다. 마치 애타게 환자가 있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예. 신경과에 입원을 해 있군요.”
“아! 드디어 찾게 되었군요. 어디 있나요? 그 아이 상태는 어떤가요?”
난 감격에 겨운 듯 소리치고 직원의 손을 잡고 다급한 말로 그 아이에 대해 물었다.
“……저, 그런데 환자완 어떤 관계이신지?”
실례의 행동이었지만 직원은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역시 얼굴은 잘생기고 봐야 한다.
“아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보낸 편지로 인연을 맺었고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없어 주소로 찾아갔더니 고아원이더군요. 그리고 그곳에서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 찾아오려고 했지만…… 제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이제야 찾아오게 되었군요. 병원 이름을 들었지만 잊고 있어서 이 근처의 병원을 모조리 뒤지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난 딴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말을 빠르게 토해냈다.
“네? 네! 지금 809호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환자 지금 혼수상태입니다.”
“예? 혼수상태요? 그런 일이…… 크으∼”
난 놀라서 외쳤고 괴로운 듯 손을 이마에 대며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럼, 혹시 담당 의사분과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네,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손 좀…….”
“아, 제가 실례를 저질렀군요. 죄송합니다. 담당 선생님은 어디에 계시죠?”
뒤에 있던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로 말했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소문을 내줄 것이기에 이지원의 보호자를 자처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앞에 있는 직원은 방금 내가 한 말을 의사에게 말하며 통화 중이었다.
난 담당 의사와 바로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