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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프 대제 1권(8화)
제3장 제왕 수업(5)
***
모든 일이 끝난 후 한스가 들어와 지친 기색이 가득한 여자들에게 방 안을 말끔히 치우게 했다. 그리고 다시 시녀복으로 갈아입히고 얼굴을 가린 후 밧줄로 묶어 빠져나가게 했다.
그 후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알렉산더와 한스만 남았다.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턱시도 비슷한 양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회색 염소수염을 기르고 회색 머리 또한 단정하기 그지없었는데, 바로 궁내부 대신 발터 슈니버였다.
그는 고양이 같이 노란 눈동자를 가졌는데 그 노란 눈동자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끝났군, 매우 힘들어 보이시네.”
몸서리치며 그가 말했다.
“앞으로 보름 동안 후계자님의 기력을 올려 줄 포션과 음식만 올리게. 특히 단백질이 많은 음식으로, 또한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또한 잊지 말게. 그리고 지방이 든 음식은 되도록 삼가고.”
“알겠어.”
“앞으로 보름 동안 쉬지 않고 해야 하니까 각별히 신경 쓰게.”
그 말에 발터는 다시 한 번 몸서리를 쳤다.
“밖의 세인들, 그리고 또 나도 어렸을 때 왕이 되면 진귀한 음식에 좋은 옷만 입고 자기 멋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막상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되니 누가 나에게 왕 노릇하라고 하면 절대 하고 싶지 않군.”
“그래, 맞아. 왕이라는 직업은 힘들어.”
한스가 맞장구쳤다.
“가끔은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아.”
발터가 조용히 말했다. 알렉산더가 몸을 뒤척였기 때문이었다.
조금 뒤 한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것이 내가 학자가 되고 난 후 가장 후회스러운 것일세.”
“여자들은 어떻게 할 거지?”
“지하의 빈 창고에 숙소를 마련했어. 거기서 몸을 씻고 내일 밤까지 기다릴 거야. 아무도 그곳에 여자들이 있는지 모르게 했겠지?”
“물론.”
“이 비밀은 절대 새어 나가면 안 돼.”
“잘 알고 있어.”
***
알렉산더의 일상은 똑같았지만 매우 힘든 일정이었다.
크리스토프에게는 마법을, 막스에게는 검술을, 빌헬름에게는 역사와 군사학을 배우고 한스에게는 제왕학과 예법을 배웠다.
처음에 그는 왕 따위 집어치우고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날이 갈수록 귀향하고 싶은 그의 마음은 봄눈 녹듯 사라져 갔다.
그는 평소에는 먹을 엄두도 못 내었을 음식을 배불리 먹고, 커다란 침대에서 안락하게 잠을 잤을 뿐 아니라 궁정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왕 수업, 특히 한스의 수업에 그는 점점 매료되어 가고 있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네 말대로 왕에게는 왕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왕이 현명하지 못해 제대로 판단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럴 때는 부끄럽지만 왕의 정치에 대한 생각을 줄여야 합니다. 왕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아카데미의 학자들을 모아 자문기관를 창설합니다. 또한 아카데미의 학자들은 정치색이 거의 없는 평민 출신의 학자들 50명으로 구성됩니다. 그들이 왕의 두뇌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지요.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생기고 문제에 대한 대안이 나눠진다면 투표를 통해 대안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자문기관은 왕의 통치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기에 왕이 부끄러워하거나 자존심이 상해 자문기관를 둔 사례는 매우 적습니다. 둔다고 해도 금방 사라졌지요.”
“역대 왕들 중에 자문기관를 창설하고 오랫동안 둔 왕이 있었나?”
“있었습니다. 제 5대 왕이신 루돌프 1세께서 그러셨습니다.”
“그 시대에 나라는 평안했나?”
“네, 루돌프 1세의 재위 기간 동안 재난도 없었고 매년 풍년이 들고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었으며, 외부와의 마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역사가들은 그 시기를 황금 시대로 부르고 있습니다.”
“음…….”
보름이 다 되어 가는 동안 알렉산더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변해 갔다. 마나와 막스의 혹독한 훈련 덕분에 몸에 탄탄한 근육이 붙어 가더니 끝내 배에 왕(王) 자가 생겼다. 마법 또한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어 마법을 배운 지 일주일 만에 2서클로 진입했다.
“이건 기적이야! 마법이 이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니! 마나랑 얼마나 친화력이 있는 거지? 내가 맨 처음 마법을 배울 때는 2서클로 올라가는데 10일이나 걸렸는데 7일 만에 2서클로 진입하다니! 재능이 아깝다! 너 그냥 마법만 배워 봐라!”
크리스토프가 알렉산더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통상적인 마법사는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1서클에서 2서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알렉산더가 그 통념을 무시해 버린 것이었기에 크리스토프가 발광하는 이유는 타당했다. 그리고 마법사들의 정치기구인 마법사 협회에 통보되었다.
또한 알렉산더는 한스의 수업을 받을수록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왕이 된다면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지 대해서 말이다.
‘일단 왕권의 절대화를 해야 할 거야. 얀텐 제국과 전쟁이 일어날 것은 분명할 터……. 그렇다면 난 그 전쟁을 이용해야 하겠지. 그 옛날 프랑스의 왕들이 전쟁을 통해 왕권의 절대화를 이룬 것처럼. 그리고 나의 과학적 지식을 동원한다면 이 세계를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는 생각을 통해서 자신만의 비전을 확실하게 정해 두고 그 과정을 설계해 나갔다. 점차적으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 아닌 한 나라의 국왕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세요?”
무도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 어두운 밤, 수많은 여자들 사이에 누워 있는 알렉산더에게 여자들 중 하나가 물었다. 그녀를 빼고 나머지들은 지쳐서 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다.
“내일 있을 일 때문에.”
“저희와의 일도 이제 마지막이네요.”
보름 동안의 정사로 인해 알렉산더는 이제 쾌락에 대해 내성이 생겼다.
처음에는 쾌락에 노예가 되어 3시간 동안 몽롱한 상태가 되었지만 지금은 아무리 일을 치러도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여자들이 달콤한 말과 신음 소리를 내도 그는 거의 흥분을 하지 못했다. 일을 치룰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약 때문이었다.
“그러네, 그러면 이제 금화 30개를 받고 어디로 떠날 건가?”
“전 물론 집으로 가야지요.”
“집?”
“네, 저희 집은 가난해서 제가 거의 팔려 오다시피 했어요. 사창가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 번 일 덕분에 저희 가족이 10년 동안 배불리 먹을 정도, 아니 아껴서 산다면 20년 동안 걱정 없이 먹고 살 정도의 돈을 벌었으니까요.”
“가족을 안 본 지 얼마나 됐어?”
“이제 한 3년 됐네요. 여태까지 쓸쓸했지만 이제 괜찮아요. 이제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 돈을 벌었으니 이 정도 쓸쓸함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고향에 돌아가서 잘 살아. 그동안 수고했어. 네 이름은 뭐지?”
“엘리카라고 불러 주세요.”
“그래, 엘리카.”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알렉산더가 검은 반바지를 입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문이 열리면서 한스와 막스가 들어왔다.
“일어나라.”
알렉산더가 여자들을 깨웠다. 일부는 엉덩이를 두드리며 깨웠다.
“아으, 저질.”
여자들이 교태를 부리며 일어났다.
“모두들 시녀복을 입고 짐 챙겨라.”
여자들이 짐을 챙기고 옷을 입자, 한스가 그들에게 헝겊으로 된 주머니를 주었다.
“우와!”
여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안은 번쩍번쩍 빛나는 금화로 가득했다.
“계산을 치렀으니 지하로 내려가서 짐 챙길 준비를 해야지.”
그 후 막스가 여자들의 얼굴을 가리고 밧줄로 묶었다. 그리고 기사를 하나 불러 그녀들을 인도하게 했다.
“여태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스가 말했다.
“그녀들을 잘 보내 줘라.”
알렉산더가 나가는 엘리카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한스의 눈 한쪽이 움찔거렸다.
“음?”
그동안 눈썰미가 좋아진 알렉산더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푹 쉬십시오. 오늘 밤은 늦잠을 자셔도 좋습니다.”
“아아, 꿀맛 같은 잠이 될 것이다.”
잠을 5시간 이상 자지 못했던 알렉산더였다. 한스와 막스는 고개를 푹 숙인 후 방을 나갔다.
‘뭔가 있어.’
알렉산더가 맨발로 살금살금 걸어서 닫힌 문틈 사이에 귀를 댔다.
“지하에서 짐을 챙기게 한 후 밥을 먹이고 왕궁 밖 뒷산으로 이어진 비밀통로로 인도해서 미리 파 놓은 구덩이에서 처리한다. 구덩이는 깊이 팠겠지?”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녀들을 죽여?’
“네, 기사단에게 함구령을 내린 후 파 놓았습니다. 깊이 파 놓았으니 그녀들을 산 채로 묻어도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기사단 또한 피의 맹세를 했으니 죽어서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막스의 목소리 또한 들렸다.
“만약의 탈출을 대비해서 1시간 정도 잠복 기간이 있는 독약이 든 음식을 먹일 것이다. 그녀들이 도망간다고 해도 죽을 것이니 도망가더라도 추격하지 말고 1시간이 지난 후 도망간 흔적을 추격해서 시신을 수습해라. 1시간 만에 뒷산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금화는 어찌할까요?”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수습해서 그녀들의 가족에게 줘라. 만약에 가족이 없다면 연인이나 친척에게 줘라.”
“알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후계자님을 위한 것이니 자비심을 가지지 말도록.”
“네, 걱정 마십시오.”
그 후 그들의 발소리는 멀어졌다.
알렉산더는 당장 돌아가 자신의 침실 벽에 걸려 있던 어검(御劍)을 꺼내 들었다. 금을 입히고 여러 가지 보석을 박은 손잡이와 은과 강철을 섞어 만든 도신이 반짝거렸다. 검은 장식용과 다름없었지만 칼날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물건이었다.
멈칫.
침실 문을 나가려는 순간 알렉산더는 멈칫거렸다.
‘왕가의 치욕은 절대 한 점이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왕권의 약화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왕은 자기 자식을 벨 정도로 냉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들었던 수업에서 한스가 한 말이 생각난 것이다. 왕권에 흠집이 나선 안 된다. 하지만 그녀들은 왕권에 흠집이 낼 수 있는 정보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알렉산더가 문을 열었다.
“헉!”
간 줄 알았던 막스와 한스가 복도에서 서 있었다.
“후계자님.”
한스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그 세 글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많이 섞인 말이었다.
“자책하지 마라. 난 아직 왕이 아니다. 난 절대 그녀들이 죽는 꼴을 볼 수가 없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후계자님은 아직 수업을 더 들으셔야겠군요.”
“비켜라.”
알렉산더가 검을 들이대며 말했다.
“난 그녀들을 구해야 한다.”
“어째서입니까? 그녀들은 왕권의 훼손을 줄 만한 정보를 가진 여자들입니다. 사창가의 여자 따위 몇 사라진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이 없습니다.”
한스가 말했다.
“내 머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내 마음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난 오늘 밤 집에 간다고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좋아하는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 그녀의 작은 행복은 왕이라도 막을 순 없다. 차라리 왕권이 훼손되는 것이 나아!”
“후계자님…….”
“내 말은 끝났다. 비켜라.”
한스의 말을 자르며 알렉산더가 나아가려고 했지만 막스가 막았다.
“난 널 이길 순 없지만 넌 날 베지 못해. 비키지 않으면 스승이라도…….”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막스가 말했다.
“뭐?”
“이 모든 것은 저희가 꾸민 것이니까요.”
알렉산더는 잠시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감히 후계자님을 시험하기 위해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
한스가 말했다.
“그럼?”
“예정대로 돈을 쥐어 주고 보낼 것입니다.”
알렉산더가 뒷걸음질 치더니 주저앉았다.
“왜?”
“후계자님께 큰 교훈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무리 왕권이 훼손된다고 하나 신민의 행복을 꺾을 순 없습니다. 우리 지배자, 저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공직자들의 일은 아무리 미사여구를 쓴다고 해도 신민에게 걷은 세금을 효율적으로 분배를 하는 자들입니다. 그 대가로 우리는 이렇게 호사스럽게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 귀족들은 신민들에게 봉사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아…….”
알렉산더가 탄식했다.
“방금 전의 사건처럼 아무리 왕권의 훼손된다고는 하나 그것은 왕의 사생활, 즉 공익의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일 때문에 신민을 죽인다면 그것은 귀족도 왕도 아닌 자입니다. 당장 귀족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한스가 미소를 지었다.
“시험 통과를 축하드립니다. 후계자님, 아니 나의 왕, 마이로드,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한스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막스는 경례를 했다.
“푹 주무십시오.”
“……그래, 정말로 꿀맛 같은 잠이 될 것 같군.”
알렉산더는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만 다시는 날 시험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한스가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