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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프 대제 1권(11화)
제4장 무도회(3)
***
“그럼 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크리스토프는 축사를 끝내고 난 후 연단에서 내려갔다.
“절 따라오십시오.”
막스가 말했다. 알렉산더는 막스를 따라 동 연회장의 바로 옆방으로 갔다.
“이 방은 휴게실입니다. 무도회가 힘드시면 이곳에서 쉬시면 됩니다. 또한 식사도 여기서 하는 것입니다. 연회장에는 음료수와 다과밖에 없습니다.”
“잘 알아들었다.”
“그리고 이 맞은편 방이 서 연회장입니다.”
시종이 문을 열었다.
움찔.
알렉산더가 들어가려다가 몸이 굳어 버렸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그만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서 연회장에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멋지게 치장한 귀족가 영애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랍의 하렘이 이보다 더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알렉산더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 역시 이건 아니야.’
알렉산더는 이곳으로 들어가기 싫어졌다.
“후계자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시종이 말했다.
“연단에 오르십시오.”
막스의 말에 따라 알렉산더가 연단에 올랐다. 그 후 막스와 근위기사들은 전처럼 연단 아래에 쭉 늘어서 알렉산더와 영애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과연 이곳에 있는 여자들 중에 자발적으로 그것도 순수하게 결혼을 전제로 온 자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도회를 열기 전에 묻겠다.”
알렉산더가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레이디들 중에 자발적이지 않고 강제로 온 레이디가 있다면 아무런 문책이 없게 할 것이니 나가도 좋다.”
그 말에 영애들이 술렁거리더니 2, 3명씩 뭉쳐 있던 여자들이 서 연회장에서 나갔다. 그 숫자는 10명이었다. 부모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한 강압에 어쩔 수 없이 온 여자들이었다.
‘그래도 많아.’
알렉산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미래를 약속한 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온 자는 나가라.”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알렉산더가 말을 이었다.
“재상을 통해서 조사하면 다 나온다.”
몇몇이 불평을 하며 나갔다. 그 숫자는 20명이나 되었다.
‘32로 줄었군.’
“그러면 이제 시작하겠다.”
알렉산더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가씨를 선정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알렉산더와 영애들이 춤을 추는 서 연회장은 감미로운 음악 소리로 넘쳐 났고 귀족들이 모인 동 연회장은 이야기 소리로 가득했다.
“……그래서 내가…….”
“오호, 그랬군요.”
“요즘 제국의 정세는…….”
“이거 위험하겠군요.”
사적인 이야기부터 정치적인 이야기, 외국의 정세 등 다양했다.
“흠…….”
크리스토프가 얀 백작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보았다. 왜냐하면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과 그의 말에 흥미를 느끼고 경청을 하는 귀족들 사이에서 떠벌떠벌 대는 얀 백작이 하는 말은 꽤나 중요한 대외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흠, 스탈 왕국의 강경파 두목 콘스탄틴 공작이 위독하다라……. 정보부에서 요즘 콘스탄틴 공작이 대전회의 때 안 보인다고 하더니, 스탈 왕국이 숨기려고 노력한 것을 용케 알아내 놓고 이런 데서 떠벌떠벌 대다니……. 멍청한 녀석. 스탈 왕국의 강경파 공작이 죽으면 제국에 대한 강경 노선이 약해지겠군, 어쩐지 제국군의 대규모 병력이 우리 국경 쪽으로 온다 했어. 그나저나 얀 백작, 대외 상인답게 국외에 대한 정보력은 수준급이군. 근데 국외 정보는 그렇게 빠삭하면서 국내 정보는 왜 그리 모르는 거지? 5년 전에 법률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다니.’
크리스토프가 얀 백작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핵심 정보는 다 들은 상태였다.
‘왕의 자리를 노리는 자가 국내 정보를 모르고 왕좌를 노리다니,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역시 저놈은 왕의 재목이 아니야. 그러고 보니 자신의 영지민들에게 가혹하다지? 그럼 저놈 영지의 재정이 왕국의 재정을 능가한다는 게 사실인가…….’
“이봐, 샴페인 한 잔 줘 봐.”
“네.”
시종이 얼음에 파묻어 둔 샴페인 병을 꺼내서 크리스토프의 잔에 따라 주었다. 크리스토프가 샴페인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한 잔 더 줘 봐.”
“네.”
‘한 번 속국이었던 나라는 멸망하지 않고서야 속국을 벗어나기 힘든 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역대 역사에서 속국이었던 나라가 외부의 도움 없이 속국을 벗어난 사례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 해냈다. 허나 그 상태를 유지하기에는 아직 우리의 상태가 불안하다. 어떻게든 우리나라를 안정화된 자주 독립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크리스토프가 다시 얀 백작을 보았다.
‘저런 놈들이 귀족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신민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망정 자신의 욕심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라면 제국에 나라를 팔고도 남을 놈들이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헤르만 공작이 낫긴 낫지. 하지만 헤르만 공작도 왕의 재목은 아니야. 그는 우리와 함께 제국에 맞서 왔고 개인적으로 그가 애국자인 것은 인정한다. 게다가 나름의 비전도 있고 머리 또한 좋다. 허나 그는 제대로 된 자를 부하로 둘 줄 모른다.’
실제로 헤르만의 측근은 전부 자신과 함께 싸운 자들, 즉 자신에게 충성 맹세만 한 자들 뿐이었다.
부하들의 실력이나 성품을 보고 뽑은 것이 아니다.
그는 모르는 듯하지만 헤르만을 따르는 부하들이 그의 위세를 업고 영지에서 폭정을 하는 것이 감지되었다.
헤르만 공작의 단점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전우를 너무 믿는다는 것이다.
“하아∼ 폐하께서 너무 일찍 서거하셨어.”
“뭐라고요?”
누군가 물었다.
“아닙니다.”
‘알렉산드로프 폰 랑스도르프, 그 녀석은 지금까지 받은 수업을 보면 마검사의 자질에서부터 왕의 자질 또한 보인다. 한스가 극찬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이계의 군사 기술…… 난 그것을 잊을 수 없다. 특히 대륙을 날려 버릴 정도로 그 강력한 무기.’
크리스토프가 생각하는 것은 핵폭탄이었다.
‘그런 무기를 알고 싶지도 배우고 싶지도 않지만, 그 외 다른 무기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할 것이다.’
장거리 장궁병과 단거리 석궁병으로 유명한 엘렌 왕국, 장갑보병과 도수부로 유명한 스탈 왕국, 수화로 싸우는 경보병대로 유명한 레이번, 해군의 다프칸, 수많은 마법사단을 보유한 아르니아, 마지막으로 기병대와 기사로 유명한 얀텐 제국까지.
각 나라마다 고유의 무기가 있고 그것에 따라 군대의 편제 또한 다르다.
‘아룬 왕국도 아룬 왕국만의 병기를 가지고 군 편제를 갖춰야 한다. 전처럼 전대 국왕만 의지할 수 없어.’
크리스토프가 알렉산더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과연 녀석의 두뇌에서 어느 무기를 빼낼 수 있을까? 그리고 녀석은 과연 국왕의 자질이 있을까? 만약에 없다면, 녀석의 두뇌만 빼내고 제거할 수밖에.’
크리스토프의 눈에서 갑자기 무섭게 변하였다. 그 어떤 생명도 죽일 수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사나운 눈빛만으로 먹잇감을 죽인다는 바실리스크의 눈도 그처럼 무섭지 않을 것이다.
“컥!”
“으윽!”
크리스토프의 주위에 있던 귀족 남자들이 심장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이크, 조심하자. 나도 모르게 피어를 사용했군.’
크리스토프가 얼른 피어를 거두었다.
‘나 크리스토프 폰 비텐베르크, 농노였던 내가 랑스도르프 왕가의 큰 은혜를 입어 7서클 마법사가 되었고 무병장수와 성을 얻어 후작이라는 귀족이 되었다. 왕가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왕국을 제대로 된 반석 위에 올려야 한다. 그래야 왕국과 왕가에 찬란한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목숨을 바쳐서 반드시 은혜를 갚을 것이다. 반드시. 바로 그것이 나 크리스토프 폰 비텐베르크의 마지막 목표다.”
***
‘아아∼ 힘들다.’
춤을 추며 알렉산더가 불평을 해 댔다. 그와 지금 춤을 추고 있는 아가씨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알렉산더를 보았다.
‘아아, 여자들은 전부 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미녀구나. 아아, 그렇지만 계속 그 미소를 보니 이제 흥미도 없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것이라도 자주 보면 흥미 없다.
‘하지만 나 하나와 한 번 춤을 추기 위해 저렇게들 기다리고 있는데 기대에 보답할 수밖에 없어. 나는 32번 추는 춤이지만 저들은 겨우 한 번 춤을 추는 것이니까.’
“춤을 정말 잘 추시네요.”
같이 춤을 추던 영애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근사근하면서 귀여웠다.
“아까 이브릴이라 했나?”
“네, 이브릴 폰…….”
“아, 미안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레이디들의 정식 이름을 다 외울 수 없어. 그저 이름만 알아 둘게.”
“……네.”
그녀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음악 한 곡조가 끝나면서 그녀와의 춤도 끝났다.
“이제 제 차례군요.”
그다음 아가씨가 나섰다.
‘음?’
그녀의 미모에 알렉산더도 적잖게 놀랐다.
여태까지 춤을 추었던 여자들과 전혀 차원이 다른 미모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다. 탐스러운 금발 머리는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 있고, 얼굴 또한 갸름하면서 작았다. 에메랄드 빛 눈동자는 또한 크고 속눈썹도 곱게 휘어 있었다.
목 또한 수려하고 피부 또한 티 한 점 없으면서 깨끗했다. 또한 그녀의 금발 머리카락과 맞게 드레스 또한 황금빛 또는 노란색 계통의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가슴이 깊게 패어 있어 그녀의 풍만한 가슴 굴곡이 다 보였다.
“게르트루트 폰 요제프입니다.”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고혹한 미소인지라 알렉산더는 잠시 동안 얼빠지고 말았다.
“왜 그러시죠?”
“아니다. 시작하지.”
잔잔한 음악이 흐르면서 춤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춤은 단 한 점의 티도 없고 우아했다.
“잘하는군.”
“감사합니다.”
게르트루트가 말했다.
“옷이 정말 멋있군요.”
“고맙다.”
알렉산더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도 남자인 이상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무작정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데이트를 하면서 그녀의 인간성을 알아볼 수 있기에 괜찮았다.
“괜찮으시다면 저와 한 번 더…….”
“아니 됐다. 아직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음악이 끝나자마자 알렉산더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아무리 아름답다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 그녀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수고했다.”
그 후 알렉산더는 바로 다음 차례의 아가씨의 손을 잡았다.
“제길.”
게르트루트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남자들은 내가 웃음만 지어도 헤벌쭉해져서 내가 하자는 대로 했었는데 내 미모에 반하지 않다니, 도대체 뭐하는 남자야? 눈이 삐지 않고서야…….’
게르트루트는 이런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사실 그녀의 조바심에 의한 착각이지만.
‘제대로 유혹하지 못했나?’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 왔던 그녀였다.
그 후 모든 여자들과의 춤은 한 번씩 춤을 추었다.
“그러면 이제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골라 주십시오.”
시종이 말했다.
“알겠다.”
알렉산더가 영애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한 명을 가리켰다. 그것은 게르트루트였다.
‘역시! 내 미모가 한 건 하는구나!’
게르트루트가 속으로 탄성을 지르려는 순간이었다.
덜컹!
“후계자님!”
문이 열리더니 크리스토프가 달려 들어왔다.
“무슨……?”
“오늘 밤 무도회는 이만 끝내겠습니다. 급한 일이니 얼른 이곳으로…….”
크리스토프의 손에 손목을 잡혀 끌려 나갔다.
“무슨 일이지?”
“큰일이야.”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아르니아 왕국 사절단이 왔어.”
“지금? 난 아르니아 왕국 사절단이 오는지도 몰랐는데?”
“그야 내일 올 예정이라서 보고를 하지 않았는데 그것들이 전부 말을 타고 왔다는군.”
“음?”
“마차를 타고 온다는 가정하에 계산해 뒀었는데 사절단이 전부 말을 타고 왔어. 게다가 오자마자 알현을 청했어! 괘씸한 놈들 감히 우리나라를 무시하다니.”
“사절단의 인원은 어떻게 되어 있지?”
“아르니아 공주, 에린 폰 티르피츠와 호위기사단장으로 뮐러라는 자와 기사들만 왔다는군.”
“아르니아 공주? 다른 귀족들은 안 온 거야?”
“응, 안 왔어.”
“근데 어떻게 공주라는 여자가 혼자…….”
“그녀를 무시하지 마라 그녀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다.”
“……무섭네.”
“혹시 모르니까 근위군는 만전을 기하라.”
“네.”
크리스토프의 말에 막스가 답했다.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