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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프 대제 1권(13화)
제5장 에린 폰 티르피츠, 아르니아 공주(2)
거기까지 생각한 알렉산더는 두 눈을 빛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한마디로 나의 왕권이 강화되고 내가 왕권을 상실하면 외부의 간섭이 오게 되니까. 외세를 극도로 싫어하는 애국자 헤르만 공작으로서는 절대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지. 게다가 내 아내가 될 사람이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잖아?”
“그렇지, 현재 아룬 왕국에 소드 익스퍼트 상급은 막스 후작과 헤르만 공작 2명밖에 없다. 왕이 될 너로서는 믿음직한 장수를 얻은 것과 다름없지.”
크리스토프가 맞장구쳤다.
“그리고 아르니아 왕국이 본국과 먼 곳에 있고 제국과 대립 중이라지만 본 왕국을 공격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긴 해. 그들이 전투 마법사가 대거 포함된 정규 사단 한 개만 보내도 우리는 속절없이 무너지겠지. 제국군은 동쪽의 강과 산, 숲이라는 천혜의 요새로 막아 왔는데 그들이 상륙할 서쪽 해안가는 평야이니까.”
“정확히 봤군, 거기까지 생각하다니 의왼데?”
“내가 누구에게 공부를 배웠는데.”
알렉산더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내가 왕을 잘 골라서 데리고 왔네.”
“보는 눈이 있구만.”
‘내가 제대로 데리고 왔구나, 랑스도르프 왕가에 새로운 명군이 탄생하겠어.’
크리스토프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근데 너 인마 불쌍해서 어쩌나.”
“뭐가?”
“결국 정략결혼이잖아. 물론 귀족 가와의 결혼도 아무리 마음에 들어서 결혼한다고 해도 거의 정략결혼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만.”
“훗, 그래도 난 루덴 대륙 최고의 절세미인을 얻었잖아? 비록 혼혈, 하프 엘프이지만.”
“넌 엘프가 좋냐?”
“글쎄, 솔직히 그들의 토끼같이 기다란 귀는 신기하지만 자꾸 보니까 왠지 징그러워.”
“나도 그래. 하지만, 넌 이제 세계 최고의 절세미인의 팬티에 손가락을 집어넣을 권리를…….”
“재상님!”
막스가 소리쳤다.
“이크! 이놈이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지랄은. 노인은 음담패설을 할 수 없냐?!”
“크리스토프, 방금 것은 좀 심했어.”
알렉산더가 코를 막고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너 인마, 방금 내 말 듣고 상상했지?”
뜨끔.
“아, 아니야!”
알렉산더가 얼른 부정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낳지. 으흐흐 역시 젊구나.”
“시끄러! 이런 노망난 할아범 같으니라고!”
“뭐야? 이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후작!”
막스가 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검신에는 백금색 빛이 감돌았다.
“아니 이놈이?!”
크리스토프의 입이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헤이스트!”
가속 마법을 통해 막스의 검을 피했다. 막스는 그대로 크리스토프에게 전광석화같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 그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크리스토프가 실드를 펼쳤다.
까가강!
실드에 살짝 금이 갔지만 막스의 검을 깨트리지는 못했다.
“나랑 지금 한판 해 보자는 거냐?!”
크리스토프가 소리쳤다.
“나의 주군을 더 이상 그딴 식으로 모욕하지 마라.”
그에 비해 막스의 목소리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모두들 그만하세요!”
알렉산더가 소리치자 막스가 검을 회수해 검집에 집어넣고 크리스토프는 실드를 풀었다.
하지만 둘을 서로를 노려보았다.
“막스 후작, 난 크리스토프 후작과 편하게 말하길 원하고 있으니 더 이상 이 같은 행동을 하면 처벌할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토프 후작은 너무 말이 심한 건 사실이니까 자제하도록.”
“응.”
“네.”
둘을 짧게 대답을 했지만, 아직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만 자고 싶군. 모두들 돌아가도록.”
그리고 알렉산더는 시종장을 따라 침실로 들어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을 청했다.
***
“후우∼”
창가 발코니에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에린이었다.
‘아룬 왕국이 과연 우리의 제안을 승낙할까?’
만약에 아룬 왕국에서 거절한다면 그녀의 어머니 에카테리나 여왕은 분명 다른 왕국에 억지로 첩으로라도 시집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다른 왕국에 가 봤자 정부인이 아닌 첩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다른 왕국들의 왕족들은 전부 결혼을 해서 홀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심하면 제국과의 화친을 위해 정말로 발정 난 제국의 2황자의 47번째 첩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정략결혼은 귀족이나 왕족의 숙명이라지만 첩만큼은 못해! 게다가 그 2황자 녀석 무슨 첩을 소대 단위로 둔 거야? 발정 난 새끼.’
그녀의 양손이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렸다.
‘난 이미 조국 혼란의 불씨, 절대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그녀는 사실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휘광이 너무 눈부신 나머지 그녀를 이용해 권력을 얻으려는 바보 같은 귀족들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었다.
에린은 혹시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남편인 알렉산더를 생각해 보았다. 근엄한 표정, 그리고 말투, 그리고 단상 위에 우뚝 서 있는 모습, 게다가 처음 보는 멋있는 제복. 군왕으로서의 기품이 넘쳤지만 그녀보다 약한 남자였다.
‘하아, 나보다 약한 남자라니. 되도록 나보다 강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이게 바로 왕족의 숙명.’
“하아.”
그녀가 거울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한없이 예쁜 얼굴이었다. 누가 전에 자신을 도자기 인형 같다고 했었다. 또는 평소 그녀의 무표정과 전장에서의 잔혹함으로 무섭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그녀의 별명이 드라이밸리일까? 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독신으로 살고 싶어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헤∼”
그녀는 미소를 지어 보았다. 하지만 미소는 좀처럼 제대로 나오지 못해 자연스럽지 않고 억지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천성적으로 잘 웃지를 못했다. 아마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때문이리라. 또는 에카테리나 여왕 즉위 초기에 여자라는 이유로 왕권에 도전한 귀족들 때문에 살얼음판 같이 불안한 왕권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제대로 내놓지 못한 덕분이리라.
“하아, 역시 이상해.”
미소를 풀며 그녀가 말했다.
‘근데 만약에 결혼한다면 그 후계자는 날 어떻게 대할까?’
그녀는 자신의 미래가 불안해졌다. 그녀는 되도록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었다. 국왕의 정무를 보는 에카테리나 여왕은 어린 그녀와 자주 놀아 주지 못했고 항상 유모와 지냈기에 그녀는 사랑에 목말랐다. 고독한 북방의 여왕이라 불리는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최소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양을 떨 줄 알아야지. 가만,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아직 저쪽에서 허락한 것도 아닌데.’
“젠장.”
에린이 이를 꽉 깨물었다. 덕분에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
다음 날 알렉산더는 몸을 씻고 아침식사를 한 후 왕의 옷을 입고 알현실로 갔다. 알현실로 들어가니 이미 대신들은 전부 모인 상태였다.
“사신들은 전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시종장이 말했다.
“들어오라 해라.”
“네.”
이후 문이 열리면서 에린과 수행원들이 들어왔다.
“밤사이에 편하게 지냈습니까?”
“후계자님의 배려 덕분에 편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에린이 말했다.
“귀국의 제안은 수락하기로 결정했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공식 외교문서는 예부 대신과 상의하고 결혼 일정은 차후에 결정할 것이다. 또한 당신은 귀국으로 가지 못하고 본국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
“네.”
“또한 에린 공주는 왕비 전용 침실로 침소를 옮긴다. 이상.”
그렇게 말한 후 알렉산더는 알현실에서 나왔다.
‘하아, 제대로 살 수 있기는 글렀구나.’
에린의 귀가 축 쳐지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자세한 것은 저와 이야기하지요.”
한스가 나섰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네.”
에린이 쓸쓸히 한스를 따라갔다.
***
와장창!
왕궁에서 귀족들에게 배정된 방, 세밀하게 조각된 기사의 조각이 박살 나고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멋진 도자기가 깨졌다. 이 못된 짓의 주범은 바로 얀 백작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그는 아무리 국법으로 왕의 장인이 중앙에 진출 못한다고 해도 자신의 딸 게르트루트를 이용한다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게다가 무도회에서 참가한 영애와 자신의 딸이 말하는 것으로 보면 자신의 딸이 지명될 뻔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게르트루트의 미모와 여태까지 배운 실력으로 충분히 후계자를 농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르니아 왕국에서 공주가 오더니 후계자랑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다 된 빵에 잼 대신에 끈적끈적한 오크 콧물을 바른 꼴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힘으로라도……. 그렇기 위해서는 일단 영지로 돌아가서 국내 정보를 모아야 한다.’
“일단 돌아가도록 하지.”
씩씩거리며 자신의 방을 나간 얀 백작이었다. 그리고…….
“……이런 썅노무 새끼 나갈 거면 곱게 나갈 것이지 물건을 망가트려서 내 일거리를 더 만드냐고?”
시종은 투덜거리며 그가 나간 방을 치웠다.
***
“귀국과의 우애가 앞으로 더 좋아지길 빕니다.”
한스가 외교문서에 사인을 하며 말했다.
“네.”
에린이 한스에게서 문서를 받아 사인했다. 외교문서는 2개였다. 그중 한 개를 에린이 수행기사에게 주었다.
“뮐러, 이것을 본국에 전해.”
“알겠습니다.”
수행기사는 그것을 받았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네, 평안하십시오.”
그리고 그 수행기사는 나갔다.
“공주께서는 앞으로 왕비 전용 침실로 숙소를 옮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왕비 시종부가 생길 것이며 근위기사들이 항시로 호위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면 절 따라오십시오. 역대 왕비들께서 묵으신 침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짐은 이미 다 옮긴 상태입니다.”
“알겠습니다.”
한스를 따라가며 에린은 궁성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름 꾸미기는 했지만, 자신이 살던 아르니아 왕국의 궁성에 비해 작고 볼품없었다.
“그러고 보니 후계자는 어떤 성품을 지닌 사람이지요?”
“그것을 저한테 물어보시면 안 되지요.”
한스가 웃으며 말했다.
“차후에 천천히 알아보십시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분은 좋은 분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더 궁금하잖아.’
“하아∼”
에린이 한숨을 쉬었다.
‘검을 들고 전장을 누빌 때가 마음이 편하고 좋았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결혼하기 싫다.’
“하아∼”
계속 한숨만 쉬며 그녀는 한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