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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2화)
Chapter.1 괴짜소년 테리언(2)
테리언은 사진을 뺏듯이 낚아채며 사진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보랏빛이 감도는 흑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뚜렷한 이목구비와 뽀얀 피부는 기본.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에 순진무구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녀는 레이시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잠깐?’
얼굴 면에선 레이시라가 좀 더 우위를 점했지만 사진 속의 소녀도 꿇리지 않는 요소가 있었다.
‘크다!’
사진 속 여자의 가슴 크기는 체형에 반비례할 정도로 컸다.
레이시라의 가슴은 적당히 한 손에 전부 움켜쥘 수 있을 정도였다면 사진 속의 여자는 한 손으로 움켜쥐고도 한참이나 남을 정도로 풍만한 가슴을 자랑했다.
테리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 여자애는 누구죠? 이런 완벽한 황금 비율의 가슴을 자랑하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로턴의 대답이었다.
“현재 프로티나 아카데미에 재적하고 있는 내 딸내미다. 이름은 로리에 휴스라고 하지. 만약 네가 프로티나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면 내 딸내미랑 잘 이어지도록 도와주지.”
잠시 눈을 빛내던 테리언은 수긍하려는 기세를 보이는가 싶더니 문득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물론 이런 귀여운 여자아이와 친해질 계기가 생긴다면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은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면 그곳에는 모름지기 사진 속의 소녀만큼 테리언의 이상형을 충족한 소녀들이 많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굳이 저 로턴의 제안에는 큰 메리트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예 확실하게 결혼시켜 준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런 걸 딸의 아버지 되는 사람한테 대놓고 말하긴 그랬기에 테리언은 영 미덥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로턴은 그 외에도 무사히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그 이후는 자기 마음껏 대륙 여행도 시켜 주겠다고 했지만 테리언의 표정에는 확신이 어리지 않았다.
‘이 녀석. 이런 것과 관련 되어선 묘하게 신중하단 말이지.’
테리언이 확고한 의사를 내보이지 않자 결국 로턴은 비장의 수를 쓰기로 결심했다.
“만약 졸업에 성공한다면 이 아버지가 잘 구슬려 딸내미가 가슴을 실컷 만지게 도와주마!”
딸의 아버지 되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발언!
그러나 로턴에겐 꿍꿍이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허락해 준다는 거지 내 딸이 허락해 준다는 소리가 아니니까. 그리고 테리언 몰래 딸에게는 싫다고 말하라 하면 되겠지.’
테리언은 가슴을 만지는 것은 정말 좋아했지만 상대가 싫어한다면 결코 만지지 않았다. 그것이 뭐 신념이라나 뭐라나.
로턴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로턴의 꿍꿍이를 알아채지 못한 테리언은 눈을 반짝이며 로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짝!’소리가 날 정도로 로턴의 손을 마주 잡더니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계약 체결.”
* * *
구름 한 점 없는 어둑한 밤.
이미 로렌스카 마을의 거리는 가로등을 제외하고는 전부 불빛이 꺼져 있었다.
밤하늘에 뜬 보름달만이 미약하게나마 어두컴컴한 로렌스카 마을을 밝혀 주고 있었다.
‘여러모로 준비할 게 많군.’
로턴은 테리언이 아카데미에 가겠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부터 꽤 분주해졌다.
아카데미에 가기 위해선 여러모로 준비해야 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똑똑똑.
그때 별안간 현관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꼭두새벽에 누구지?’
로턴이 현관문을 열자 그곳에는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그러나 결코 로턴에게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다.
로턴이 낮은 신음성을 토해 내며 말했다.
“……파르카.”
“오랜만에 뵙습니다. 로턴 휴스 님.”
파르카는 오른쪽 손바닥을 곧게 펴 가슴에 댄 후 주먹을 쥐며 이마에 대는 동작을 취했다.
마법사들의 공식 석상에서 사용하는 이른바 최대한의 예의가 담긴 인사였다.
로턴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역시 너한테 내가 사는 곳을 가르쳐 주지 말아야 했어.”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결정해야 될 시기이잖습니까. 로턴 님은 아직 왕궁을 떠나 시기엔 그 재능이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이대로 이런 마을에서 썩히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로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멍하니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오게.”
“가, 감사합니다.”
평소처럼 문전박대 할 줄 알고 잔뜩 긴장하던 파르카는 로턴의 이례적인 반응에 다소 놀랐다.
집 안에 들어선 로턴과 파르카는 거실에 마련된 의자에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의 눈빛은 각기 의미가 달랐지만 서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먼저 침묵을 깬 쪽은 로턴이었다.
“자네도 소식은 들었겠지. 레이시라 공주님이 우리 마을을 지나칠 때 일어난 사건 말이야.”
“그냥 들은 수준이었겠습니까. 말도 마세요. 벌써 프로티나 왕국 전역에 쫙 깔렸다니까요? 왕궁 내에서는 하녀들과 집사들 사이에서 온통 그 얘기뿐이랍니다. 레이시라 공주님의 가슴을 만진 파렴치한 소년이 나타났다고 말이죠.”
“풋.”
로턴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왕국의 공주 앞에 불쑥 나타나 정중하게 가슴을 만져도 되겠냐고 물어보겠는가.
차라리 강제로 만졌더라면 성추행으로 몰렸을 것이다.
하지만 테리언은 레이시라의 동의룰 구하고 가슴을 만졌으니 형식상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국왕이 딸 바보라는 말을 언뜻 들은 것 같은데.’
그러나 파르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기에 로턴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진짜 정신 나간 녀석 아닙니까? 죽으려고 환장한 놈도 아니고 말입니다. 들은 바로는 카르반 남작과 왕녀기사단도 함께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레이시라 공주님의 가슴을 만지도록 허용해 주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군요.”
로턴은 내심 실소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녀석은 분명 일반인이 보기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파르카가 저렇게 반신반의 하는 모습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자신도 그 상황 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긴 했지만 두 눈으로 보고도 놀라웠으니까 말이다.
로턴은 테리언에게 미리 언질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그만두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테리언은 반드시 성공한다면서 결연한 각오를 보였기에 어쩔 수 없이 지켜만 보고 있던 것이다. 만약 로턴 자신도 그 자리에 없었다면 카르반 남작이 당했다는 소문을 허황된 것이라며 믿지 않았을 것이다.
로턴이 말했다.
“그 녀석은 영리해. 오랫동안 그 녀석을 지켜봤기에 알 수 있어. 그 녀석은 레이시라 공주님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그런 거야.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레이시라 공주님이 얼마나 순수하고 착하신 분인지 말이야.”
파르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시라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예전에는 레이시라를 인질로 붙잡고 감히 국왕을 대상으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던 겁 없던 녀석들이 있었다. 물론 어설프기 짝이 없던 인질은 카르반에 의해 간단히 무마되었다.
본래라면 당연히 사형감이었던 납치범들을 놀랍게도 레이시라는 아무런 징벌 없이 봐주자고 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국왕께서도 테리언이 공주님의 가슴을 만진 소문을 필히 들으셨을 텐데……. 이거 자칫해서 둘이 마주쳤다간 테리언이 위험할 수도 있겠군.’
국왕은 어지간해선 성 바깥에 나갈 일이 없었기에 테리언과 마주칠 일은 없으리라.
다만 로턴을 불안하게 하는 점은, 그런 만행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왕국 측에서 아무런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레이시라의 가슴을 만진 존재.
하물며 딸을 지극히 여기고 있는 국왕이라면 벌써 병사를 보내 테리언을 연행해 가고도 남았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걸까?’
국왕 쪽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숨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테리언이 겨우겨우 아카데미에 입학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이상 더 이상 꾸물거리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반면 파르카는 테리언의 이야기에 로턴의 기색이 눈에 띄게 변하는 것을 눈치챘다.
파르카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그 표정과 말투를 보아하니 그 소년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으신가 보군요.”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로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잘 알고 있다마다. 그 녀석은 겉보기엔 그래 보여도 다방면으로 대단한 녀석이지. 문제는 그런 좋은 재능을 썩혀 두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지만.”
“그런 면으로 치면 로턴 님도 매한가지입니다. 로턴 님은 아직 정정하십니다. 좀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보실 수 있으시단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디 왕궁으로 복귀해 주십시오.”
파르카가 이런 제안을 해 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그는 자신을 왕궁마법단에 복귀시키기 위해 몇 번이고 자신의 주택에 찾아왔던 것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파르카가 아카데미 쪽의 관계자들과 인맥이 있다고 했었지.’
안 그래도 마침 테리언을 어떻게 아카데미에 입학시킬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만약 면접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파르카라면 입학하는데 있어서 좋은 여건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알겠네.”
“그러니까 몇 번을 말해야…… 예? 뭐라고 하셨죠?”
파르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로턴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번에도 거절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네의 부탁에 가는 건 아니야. 그 녀석의 비상한 재능을 나는 좀 더 키워 주고 싶네. 마치 그 재능은 가공하지 않은 원석 같은 존재야.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지. 특히 체내에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더더욱 연구해 봐야…….”
“네?”
로턴이 말끝을 흐리자 파르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흠흠. 여하튼 그 녀석을 아카데미에 편입시킬까 하네. 들은 바로는 자네가 왕궁마법단과 겸임해 아카데미의 면접관 감독 관리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만…… 혹시 테리언을 입학시킬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나?”
파르카는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낮게 내리깔더니 눈동자를 움직여 로턴을 올려다보았다.
“테리언이라면 그 소문의 소년을 말하는 것이겠군요. 그렇다면 로턴 선배님의 뜻을 도와준다면 왕궁마법단에 복귀하실 겁니까?”
“무사히 편입을 한다면 말이네.”
그러자 파르카의 얼굴빛에 화색이 감돌았다.
“특채로 편입시키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본래 특채의 경우엔 자작 이상의 귀족의 추천이나 아카데미 관련 일에 업무하고 있는 자들의 추천이 필요하지요. 그런 면에서 면접관 감독 역할을 맡고 있는 저의 추천이면 특채 편입서류까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로턴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