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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4화)
Chapter.1 괴짜소년 테리언(4)


그 당시 테리언도 옆에서 직접 목격했기에 로턴의 마법 실력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로턴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협동을 했기에 가능했던 거였고 이 상황은 좀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거구의 여자는 무술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쳇! 뭐, 저런 뚱뚱이 아줌마한테 잘못 걸려가지고 이게 웬 고생이람?”
“뭐야! 누가 뚱뚱이 아줌마라는 거야!”
“흐익! 이걸 들었단 말이야?”
테리언은 화들짝 놀라며 거구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방금 중얼거렸던 목소리는 로턴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는데 하물며 멀찍이 떨어진 저 여자가 들었다니?
“설마 귓속 안에도 온통 근육으로 무장되어 있는 건가?!”
“아니, 귓속 안이 근육이 생긴다고 해서 청력이 높아지는 건 아니니까.”
테리언이 심오한 표정을 짓자 로턴이 한심하다는 듯 테리언을 바라보았다.
여하튼 방금 테리언의 말로 인해 화가 난 거구의 여자는 더욱 흉폭해져 버렸다.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한 차례 근육을 폭발적으로 불렸다.
“으으. 로턴 아저씨가 어떻게 좀 해 봐요! 아저씨가 이 길로 오자고 제안한 거잖아요!”
“알았다, 욘석아.”
로턴은 한숨을 짧게 내쉬더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로턴의 주변에 세 개의 녹색 구체가 나타더니 거구의 여자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오오. 로턴 아저씨의 주특기 마법인 빛의 총알탄!”
빛의 총알탄는 마법사들의 기본 공격 마법 중 하나였다.
마나가 적게 소모되면서도 비교적 다루기 쉬웠으며 그 명중률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한 그 위력은 다루는 이가 얼마나 능숙하냐와 마나의 역량에 따라 좌우되었다.
특히 로턴의 경우는 최대치로 빛의 총알탄를 쏘아 낼 경우 집채만 한 바위도 박살 낼 수 있었다.
로턴의 빛의 총알탄는 각기 거구의 여자의 급소 부위만을 절묘하게 노렸다.
그러나 거구의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콧방귀를 뀌었다.
“내 육체는 그런 우스운 마법 따윈 통하지 않아!”
거구의 여자가 크게 도약하더니 테리언 일행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눈에 띄는 동작이었기에 못 피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거구의 여자가 지면에 착지하는 순간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다.
쿠구구궁!
“서, 설마 지반 진동술?”
로턴이 당황하며 어떻게든 몸을 가누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믿을 수 없었다. 지반 진동술는 마법사의 경우는 적어도 15년 이상의 마경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즉, 매우 까다로운 마법이었고 또한 고위 마법에 속했다.
그러나 거구의 여자의 경우는 마법사와는 다른 운용 방식으로 지반 진동술를 발동시키고 있었다.
마법사는 세밀하게 마나를 운용해 자신이 원하는 구역에 기술을 사용한다. 그에 비해 거구의 여자는 말 그대로 우격다짐으로 마나를 대지에 쑤셔 넣어 강제로 땅을 뒤틀리게 하는 것이었다.
마법사의 세밀한 방법에 비하면 효율과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파괴력만큼은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
“응? 로턴 아저씨, 왜 그래?”
그러나 로턴이 애를 먹고 있는 반면 테리언은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테리언만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테리언은 마나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
지반 진동술를 일으키는 원리는 대지에 마나를 흘려보내 대지를 뒤흔드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테리언은 단순히 마나가 통하지 않는 것만이 아닌 근처에 있는 마나의 흐름을 간섭하기까지 했다. 정확히는 주변의 마나의 흐름에 방해를 주는 요소가 작용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테리언이 서 있는 지면 만큼은 거구의 여자의 마나가 닿지 않아 멀쩡했던 것이다.
“뭐야? 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멀쩡하게 서 있을 수가 있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테리언만 멀쩡히 서 있는 것을 본 거구의 여자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다면 넌 강하다는 소리겠지?”
“위험해!”
로턴이 소리치기 무섭게 거구의 여자는 테리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도약했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테리언은 그녀의 주먹이 자신에게 닿기 직전에 재빨리 몸을 비틀어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거구의 여자는 그냥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풍압이 엄청났었다. 하물며 저렇게 진심으로 주먹을 휘두르니 그 풍압이 날카로운 칼날로 변하며 테리언의 볼살을 스쳤다.
“허억!”
테리언은 찢어진 볼살 사이로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헛숨을 들이켰다.
“테리언, 이리로 와!”
로턴이 외치자 테리언은 떨리는 몸을 애써 억누르며 로턴의 곁으로 다가갔다. 로턴은 테리언의 떨리는 눈동자를 보며 착잡한 심정을 느꼈다.
아무리 길고 날뛰는 테리언이라 하더라도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로턴은 한 차례 숨을 크게 내쉬더니 말했다.
“저 녀석. 체내에 특수한 마법이 걸려 있어.”
“특수한 마법이요?”
“어떠한 마법이 걸렸는지는 탐색 마법을 해 봐야겠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선 시전이 불가능해. 하지만 기척이 느껴진다. 그래, 이건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불쾌한 감각이로군.”
잠시 뜸을 들이던 로턴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여자는 흑마법에 걸려 있다.”
흑마법이란 말에 테리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끔씩 로턴이 마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흑마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마법에는 총 네 가지 부류의 성향이 존재한다.
불, 물, 바람, 땅 등과 관련된 마법을 다루는 속성 마법. 그리고 빛의 총알탄라든가 지반 진동술 같은 아무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통상 마법. 그리고 주로 신을 믿는 교단의 사제나 성기사들이 사용한다는 백마법. 마지막으로 마족과의 계약이나 그와 관련된 매개체를 통해 시전 한다는 흑마법이 있었다.
그중 흑마법은 수십 년 전, 하르카 대륙의 모든 나라가 정식 조약 체결을 통해 그 어떠한 이유이든 간에 사용을 금지해 왔다.
흑마법은 다른 마법과는 달리 사용자의 생명력을 갉아먹음으로서 사용하는 마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흑마법의 범주는 매우 넓고 마법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마법으로 손꼽혔다. 그래서 법으로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마법사들은 비밀리에 흑마법을 연구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태까지 우리 왕국에서 흑마법사가 나타났다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로턴은 왕궁마법단에 탈퇴한 이후 왕국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간간히 파르카를 통해 주요 소식을 전해 듣긴 했지만 왕국 내에 흑마법사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로턴은 지반 진동술의 지속 효과가 끝나자 몸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문제는 테리언이었다.
테리언이 거구의 여자가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서 있자 로턴이 테리언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테리언, 정신 차려!”
“아, 응? 아아……. 미안, 잠깐 딴 생각 좀 했어.”
테리언은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로턴은 그가 마른 침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매사에 능글맞은 테리언이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로턴의 착각이었다.
테리언이 멍하니 서있었던 이유는 그와는 조금 다른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많이 다른 이유였다.
“작열의 불기둥!”
로턴은 거구의 여자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한 차례 마법을 외웠다. 그 순간 테리언 일행 주위로 반원형의 불기둥이 지면 위로 솟아올랐다.
‘이걸로 어느 정도 시간을…….’
그러나 거구의 여자는 로턴과 테리언 주위에 펼쳐진 불기둥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며 걸어왔다.
놀랍게도 거구의 여자는 불기둥에 몸이 닿아도 화상을 입기는커녕 피부가 벌게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로턴은 경악했다.
‘설마 저 여자도 테리언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자세히 보니 경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테리언은 아예 마나 접근 자체를 불허하며 오히려 마나를 흩어지게 만드는 힘이라면 거구의 여자는 말 그대로 면역력이 높았다.
‘골치 아파졌군. 마나에 대한 면역력이 높은 자는 보기 드문데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할 줄이야.’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었다.
남은 방법은 도망치는 것뿐이었는데 그조차도 무리.
물론 로턴 혼자서 도망치는 것이라면 별 문제는 없었다.
본래 마법사가 치고 빠지기에는 능한 직업이었으니까.
문제는 테리언이었다.
그를 데리고 같이 순간 이동 마법을 펼친다면 지금쯤 벌써 도망치고도 남았다. 그러나 테리언은 보다시피 마나를 거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보니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남은 방법은 그냥 순수하게 두 발로 도망치는 방법뿐이었지만 이조차도 무리였다.
저 거구의 여자는 힘뿐만이 아니라 체력까지 좋아 보였으니까.
“피해!”
불기둥을 헤쳐 나온 거구의 여자가 다시 한 번 테리언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애초에 테리언은 도망치는 데에는 도를 텄기에 별 탈 없이 피해 냈다. 로턴 역시 순간 이동 마법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다.
“헉!”
그러나 그 순간 거구의 여자가 근육을 팽창시켜 멀찍이 떨어진 로턴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도약했다.
그 속도는 마치 활시위에서 쏘아져 나간 화살처럼 빨랐다.
한순간에 로턴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미처 대응할 틈조차 없었다.
게다가 순간 이동 마법은 한 번 펼치면 다시 시전 하는 데 약간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기에 다시 시전 하는 것은 무리였다.
“보호의 장막!”
결국 피하는 것을 포기한 로턴은 두 손을 펼치며 방어 마법을 펼쳤다. 그러나 거구의 여자가 주먹을 날리자 보호의 장막이 너무나 손쉽게 부서졌다.
“아니?”
그러나 보호의 장막이 부서지는 순간 거구의 여자의 얼굴을 향해 빛의 총알탄이 직격했다.
거구의 여자는 면역력이 뛰어났기에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갑작스레 날아온 공격이었기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 버렸다.
로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일정 시간 육체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활력 마법을 걸어 재빨리 거구의 여자에게서 떨어졌다.
“테리언?”
로턴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테리언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아까 전 거구의 여자의 공격에 동시에 회피하긴 했는데 그 이후는 정신이 없는지라 어디로 갔는지 보지 못했다.
그래도 피한 것은 확실히 봤었기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의 위력은 약한데 다루는 솜씨는 제법이잖아? 꺄하하하. 간만에 강한 상대를 만나서 기쁜데?”
한편 거구의 여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턴을 바라보았다.
“이 부근에는 제법 강한 놈들이 있다고 해서 와 봤는데 너무 시시해서 말이야. 하도 쓰러트렸더니 더 이상 모습이 코빼기도 안 보여서 슬슬 다른 곳으로 이동할까 싶었는데, 마침 잘 됐지 뭐야.”
“왜 그렇게 강한 상대에 집착하는 거지?”
로턴이 묻자 거구의 여자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걸 몰라서 물어? 강한 상대를 만나 쓰러트리면 그만큼 자신이 강해졌다는 뜻이잖아! 강함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그러니까 넌 내가 강해지는데 있어서 밑거름이 되어줘야겠다.”
로턴은 식은땀을 흘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오랜만에 실전에서 마법을 쓰다 보니 벌써 체력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마나도 거의 반쯤 소모된 상태였다.
‘테리언은 벌써 도망간 건가?’
자신만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안 그래도 테리언 때문에 진즉에 쉽게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을 고민하고 있던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로턴이 막 순간 이동을 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는 순간 거구의 여자의 뒤로 누군가 서 있음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