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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5화)
Chapter.1 괴짜소년 테리언(5)
‘테, 테리언?’
어느 샌가 나타난 테리언이 놀랍게도 거구의 여자의 뒤에 서 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문득 테리언이 로턴을 향해 무언가 손짓을 했다.
‘저 여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해 달라는 건가?’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되지 않아 다소 의문감이 들었지만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테리언은 연신 거구의 여자를 가리키며 두 손으로 몸을 감싸 안으려는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아마 두 손으로 몸을 감싸 안는 동작이 움직임을 멈춰 달라고 하는 의미가 아닌가 싶었다.
그때 거구의 여자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려 했다.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이 상황에서 저 거구의 여자에게 테리언의 존재를 발각시킬 수는 없었다.
로턴은 재빨리 두 손바닥을 지면에 대며 주문을 외웠다.
“대지의 포박술!”
로턴의 외침과 동시에 거구의 여자의 다리 아래 부근의 바닥이 돌출되더니 그녀의 두 다리를 감쌌다.
“뭐야? 이런 잔재주로 날 막아 보겠다고?”
거구의 여자는 엄청난 괴력을 가졌기에 조금만 힘을 주면 금방 풀려날 것이다. 막아 본다 한들 그래봤자 1∼2초 정도 움직임을 제약시키는 수준일까?
즉, 완전히 움직임을 봉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로턴은 애초에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테리언 녀석이라면 이런 순간에 뭔가를 할 것 같았다. 테리언에게 공격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것이었다.
쓰러트리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적어도 거구의 여자가 일시간 동안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 후 도망칠 틈이라도 벌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앗!”
테리언은 거구의 여자가 주춤하는 순간 있는 힘껏 거구의 여자를 향해 도약했다. 그와 동시에 테리언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그대로 두 다리로 그녀의 몸통을 조이며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 모습을 본 로턴은 경악했다.
‘테리언 녀석, 대체 뭐하는 거야!’
도망쳐도 모자를 판에 아예 달라붙다니?
“뭐야! 어느 틈에!”
거구의 여자가 당황하며 몸부림치자 테리언은 애써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통을 감싸 안은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외쳤다.
“내 숨겨 왔던 비장의 기술을 보여 주마!”
“뭣이? 필살기?”
로턴은 순간 긴장했다.
가슴밖에 만질 줄 모르는 녀석이 자신도 모르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게다가 테리언은 너무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이 상황을 타개시킬 정도의 기술이란 말인가!’
그러나 잠시 후, 로턴은 일순간이나마 진지하게 생각했던 자신에 대해 후회해야만 했다.
“꺄악!”
거구의 여자에 몸통에 매달려 있던 테리언이 뜬금없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로턴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상상에 맡기리라.
뭉클.
‘아니, 이건!’
한편 테리언은 그러거나 말거나, 거구의 여자의 가슴을 움켜쥔 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보통 여자의 가슴의 감촉은 한 단어로 정의되어 있었다.
물론 각자 여성마다 고유의 개성이 있었지만 결국 본질적인 느낌은 모두 똑같았다.
부드러우면서도 말랑말랑한 느낌.
하지만 거구의 여자의 가슴은 무언가 달랐다.
단순히 부드럽다든가 말랑말랑한 것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여태까지 수많은 여자들의 가슴을 만진 테리언이었지만 이런 감촉은 난생 처음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쫄깃쫄깃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테리언은 곧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가슴에서 쫄깃쫄깃한 느낌이 날 수 있는 걸까?
잠시 고민에 잠겼던 테리언은 곧 그 이유가 바로 거구의 여자의 몸이 근육질로 되어 있어서임을 깨달았다.
‘응?’
너무나도 새로운 감촉에 잠시 정신을 팔던 테리언은 갑자기 거구의 여자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느꼈다.
“테리언, 뭔가 이상하다! 그 여자에게서 떨어져!”
로턴의 외침에 테리언은 다급히 거구의 여자에게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거구의 여자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테리언에게는 단순한 빛이어서 눈이 부셔 눈을 감는 반면 로턴은 애써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모습을 주시했다.
‘흑마법의 위력이 사라지고 있어?’
아까 전까지만 해도 거구의 여자에게 걸려 있었던 흑마법의 구성이 깨지고 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거구의 여자의 체내에 잠식하고 있던 흑마력 역시 그 위력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다.
테리언이 뜬금없이 거구의 여자의 가슴을 만질 땐 이게 정녕 미쳤나 싶었다.
‘설마 테리언은 자신이 마나를 거부하는 힘으로 그녀를 쓰러트리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건가?’
가슴을 만지는 것 밖에 모르는 녀석이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설마…… 그냥 만지고 싶던 것뿐이겠지.’
로턴 자신이 알고 있는 테리언이라면 그럴 것이다.
애초에 비장의 기술이라 외쳐놓고 가슴을 움켜쥔 순간부터 이미 모든 것을 이해한 후였다.
그때 거구의 여자의 몸에서 빛나던 것이 사그라지자 로턴과 테리언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러자 거구의 여자가 있던 장소에는 난생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응? 넌 어디서 나타난 거냐?”
테리언은 갑자기 나타난 여자아이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려 했다.
“잠깐, 테리언! 그 여자는…….”
로턴이 아차 싶어 테리언을 부르려는 순간 여자아이가 테리언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이 변태!”
그리고 테리언은 한순간 시야가 번쩍이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Chapter.2 만남(1)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군. 나이도 어린데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군.”
“저야말로 느닷없이 공격을 해서 죄송합니다.”
거구의 여자…… 아니, 이제는 테리언보다 작아져 버린 소녀가 로턴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사과했다.
로턴은 소녀를 통해 그간 그녀가 겪었던 전후사정을 듣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클레첼 가르바드.
클레첼이 가진 힘은 ‘신체강화술’이라는 힘으로서 마나를 이용해 육체를 증대시키는 힘.
가문 대대로 내려져 온 신체강화술은 적은 마나 소비량으로 강력한 파괴력을 선사하는 강력한 기술로 알려져 있었다.
신체강화술의 비기를 잇던 가르바드 가문은 대대적으로 신체강화술의 비기를 터득한 자만이 가주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클레첼은 열일곱 살의 나이에 가주에 오를 여건이 갖추어져 자격을 받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의 목적은 실전을 겪으며 경험을 쌓아 신체강화술을 단련시키는 것.
그러던 중 정체불명의 마법사가 그에게 좀 더 강해지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이루어 주겠다는 말에 클레첼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서는 거절했지만 그러자 정체불명의 마법사가 강압적으로 나오더니 놀라운 실력으로 클레첼을 압도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클레첼은 신체강화술을 사용해 상황을 다소 역전시킬 수 있었다.
신체강화술은 시전 하는 순간 육체의 능력과 동시에 마법 저항력을 상승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마법사들에겐 천적일 수밖에 없는 기술.
그렇게 클레첼 쪽으로 승기가 기우는가 싶더니 순간 마법사에게서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무언가 낌새를 느끼기도 전에 마법사의 오른손이 클레첼의 가슴을 향하고 닿는 순간 손을 통해 불길한 마나의 기운이 체내에 주입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마법 저항력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마나가 흘러들어오면 방도가 없던 것이다.
그것을 끝으로 클레첼은 이성을 잃었다는 이야기.
로턴은 클레첼의 이야기를 듣고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틀림없이 흑마법이다. 흑마법은 시전자의 생명을 갉아먹는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더 무서운 것은 흑마법에 걸린 대상이라는 점이지.”
흑마법에 사로잡힌 대상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욕망을 끌어올려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클레첼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런 일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땐 제가 어떻게 되었나 봐요. 단순히 강해지겠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으니……. 아무래도 전 무예가로써 실격이겠죠?”
클레첼이 시무룩해지자 로턴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힘내거라. 흑마법에 사로잡혔으면서 그때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는 뜻이야. 만약 일반인이 흑마법에 걸렸다면 그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전혀 기억 못했을 거다.”
보통 흑마법에 걸리면 술에 취한 사람 마냥 자신의 이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클레첼은 흑마법에 걸린 와중에도 싸우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로턴은 그 이유를 뛰어난 마법 저항력을 가진 그녀의 신체강화술 덕분이 아닐까 짐작했다.
“으음.”
그렇게 로턴과 클레첼 간의 무거운 이야기가 오고 가는 동안 기절해 있었던 테리언이 정신이 들었다.
“뭐, 뭐지? 내가 왜 이런 곳에……. 아윽! 게다가 뭔진 모르겠지만 볼때기가 얼얼한 느낌이?”
테리언은 볼을 어루만지며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까 전 자신을 기절시켰던 클레첼과 마주하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저 여자는 분명 그!”
“인사해라. 아까 우리가 마주했던 그 거구의 여자가 이 애다.”
테리언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클레첼을 바라보았다.
분명 처음 봤을 땐 우락부락했었는데 어떻게 삽시간만에 이런 모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로턴이 부연설명을 해 주자 테리언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서 그런지 여전히 못 믿겠다는 시선으로 클레첼을 바라보았다.
그때 별안간 클레첼이 테리언에게 다가오더니 90도 인사를 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전 구해 주려는 것도 모르고 단순히 변태라고 생각해 무심코 때려 버렸어요.”
“으, 으응?”
때리려는 줄 알고 흠칫했던 테리언은 난데없는 클레첼의 사과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테리언에겐 두 가지 신념이 존재했다.
하나는 여성의 가슴을 만질 때 반드시 허락을 구한다는 것. 그리고 허락을 하지 않으면 결코 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까 전에 일어난 일은 테리언이 일방적으로 만진 경우였다.
과거 테리언은 마을 여자아이들의 가슴을 일방적으로 만졌다가 호되게 맞은 적이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 사실 허락을 구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클레첼도 과거 마을 여자아이들처럼 때리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잔뜩 긴장해 있던 테리언.
“아하하하……. 그,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굳이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 게다가 이렇게 얻어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이젠 적응됐다고.”
“그래도…….”
엄연히 자기 욕심으로 한 행동이었는데 클레첼이 사과하는 분위기가 보이자 테리언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