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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6화)
Chapter.2 만남(2)


결국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테리언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 그보다 그 신체강화술이란 걸 하면 그렇게 몸집이 커질 수 있는 거야?”
“네? 아아. 원래는 그런 경지까지 도달할 실력이 못되었어요. 그런데 그 흑마법으로 인해 마나가 폭주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예요. 그리고 몸집이 커지는 건 워낙 비효율적이라 보통 신체강화술에 능통한 이들은 전투에 있어서 효율적인 몸매로만 만들어요.”
“흐음. 커지면 커질수록 세지는 거 아니었나? 아까 주먹을 휘둘러서 생긴 바람으로만 해도 엄청나던데.”
테리언은 풍압으로 인해 볼에 생긴 상처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굳이 크게 만들지 않아도 각 몸의 부위마다 마나를 밀집시키면 실제로 커진 만큼의 위력을 낼 수 있어요.”
“흠,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하군. 흠……. 그래서 결론은 너는 아직 육체를 크게 하지는 못한다는 거지?”
잠시 생각하던 클레첼이 고개를 저었다.
“한 부위 정도면 가능할 거예요. 그동안 흑마법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은 동안 공교롭게도 수준이 많이 오른 것 같아요.”
“오오. 그래? 그렇다면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
“부탁이요? 어떤 부탁이신데요?”
클레첼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안 그래도 클레첼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테리언을 무턱대고 때려서 미안함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테리언의 부탁이 있다면 기꺼이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그러나 테리언이 막 입을 열던 찰나 돌연 로턴이 말했다.
“테리언, 꿈 깨라.”
“에엑?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테리언의 성격을 알 리 없는 클레첼은 그들의 대화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끝까지 테리언이 고집을 부리자 돌연 로턴이 정색을 했다.
그러자 테리언은 깨갱하며 뒤로 물러나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막무가내인 테리언도 진지하게 나오는 로턴 앞에선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는지 은근슬쩍 클레첼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클레첼이 말했다.
“아니에요. 테리언 님 덕분에 제가 저주에서 풀려날 수 있었으니 은혜를 갚을 수만 있다면 부탁을 들어드리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이라면 말이죠.”
“정말이야?”
클레첼의 말에 테리언의 눈빛이 빛냈다.
로턴이 뭐라 말하려 했으나 테리언이 한 수 더 빨랐다.
“아까 한 부위 정도는 육체를 크게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럼 가슴 크기도 조절할 수 있는 거야?”
“네? 그거야……. 시도는 안 해 봤지만 가능은 할 거예요.”
“그럼 그 신체강화술로 가슴을 커지게 해 볼래?”
테리언의 부탁에 클레첼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테리언의 부탁은 클레첼의 입장에선 부끄러운 부탁이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턴은 클레첼이 곤란해하는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바로 테리언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클레첼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런 부탁으로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볼게요.”
“정말?”
“하지만 가슴 부위의 강화는 처음 해 보는 거라 잘 될지 모르겠네요.”
클레첼은 한 차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내뱉지 않은 상태로 눈을 감았다.
테리언은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기에 그저 그녀가 뭘 하려나 보다 생각하고 있는 반면 로턴의 눈빛에는 이채가 띄었다.
‘호오? 기사들의 호흡 방식인 육체 호흡과 마법사들의 호흡 방식인 정신 호흡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니!’
기사들의 육체 호흡법과 마법사들의 정신 호흡법은 뿌리는 같지만 그 방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육체 호흡법을 통해 축적시킨 마나는 정제되지 않았기에 불안정했다.
반면 정신 호흡은 뇌를 통해 불순한 기운을 정제하여 자신의 고유의 마나와 동조시키기에 정밀한 사용이 가능했다.
얼핏 보면 육체 호흡법보다 정신 호흡법이 더 좋게 보이겠지만 그것은 각기 이유가 있었다.
육체 호흡법은 불안정한 마나를 축적시키는 대신 정신 호흡법보다 더욱 빠르고 많은 마나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정신 호흡법은 육체 호흡법보다 마나를 축적시키는 속도가 느렸지만 한 번 흡수하면 그 마나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어차피 육체 호흡법은 기사들을 위해 고안된 호흡법.
기사들은 마나의 사용을 검기를 생성시키는 용도로만 쓴다. 세밀함을 요구하는 마법사들의 마나처럼 안정시킬 필요가 없었기에 가능한 호흡법이었다.
하지만 로턴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육체 호흡과 정신 호흡을 동시에 할 필요가 있는 건가?’
혹시 신체강화술을 시전하기 위해선 두 개의 호흡법을 동시에 해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걸지도 몰랐다.
로턴은 신체강화술의 시전 원리에 대해 몰랐기에 그저 클레첼의 마나의 흐름을 보며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선 그 원리에 대해 물어보고 싶지만…….
그러나 클레첼이 자기 가문의 비기의 원리에 대해 그리 쉽게 가르쳐 줄 것 같지 않았기에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오오!”
로턴이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사이 문득 테리언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클레첼의 납작했던 가슴이 제법 풍만해진 것이었다.
거유라고 보기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자유자재로 가슴 크기를 늘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테리언에게는 혁명 그 자체였다.
테리언은 그 모습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게다가 클레첼의 가슴은 단순히 커진 것만이 아니었다. 그에 따른 탄력과 특유의 볼륨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여성들이 한다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것 같은 모양새 말이다.
‘만져 보고 싶다.’
그렇다면 과연 감촉은 어떨까?
테리언은 본능적으로 만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로턴이 무섭게 노려보았기에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저번에도 한 번 로턴이 보는 앞에서 마을 여자아이의 가슴을 만지려다가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 여자아이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로턴은 테리언의 가슴을 만지는 행위에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물론 테리언의 행위에서 야릇함이 담겨 있다든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은 로턴도 알고 있었다.
그나마 로렌스카 마을의 여자아이들은 테리언의 괴짜 같은 성격을 알고 있기에 장난으로 넘어가 주었다. 그래서 로턴도 테리언의 행동을 크게 꾸짖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마을 바깥으로 나간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운이 좋게도 마을 여자아이들은 테리언의 행동에 대해 관대했을지 몰라도 모든 여자들이 다 그럴 거란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세상에서는 아주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꼬투리가 잡혀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로턴은 잘 알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며 클레첼의 가슴을 바라보던 테리언은 결국 아쉬움을 뒤로했다.
“이제 됐어. 원래래도 되돌려도 돼.”
그러자 옆에 있던 로턴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테리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웬일로 네 녀석이 가슴을 만지겠다는 말을 안 했냐? 이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 아니냐?”
“가슴은 아까 만졌었잖아. 단지 나는 가슴을 자유자재로 커졌다 작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부탁해 본 것뿐이야.”
“흐음. 단순히 만지는 것만 관심이 있는 거 아니었나?”
“물론 주 관심사는 그것이지만 난 가슴 그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만지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니 로턴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만지는 것만이 아닌 가슴 그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다니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궁금한 게 있었는데 테리언, 넌 왜 여자의 가슴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냐?”
“그건…….”
테리언이 막 대답하려는 순간 돌연 클레첼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클레첼은 자신의 두 가슴을 만지며 뭔가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테리언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갑자기 왜 그래?”
“그게요. 분명 커지게 할 때까진 문제없이 잘 되었는데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오질 않아요.”
“뭐? 갑자기 왜?”
“모르겠어요. 아무리 가슴 쪽에 힘을 줘도 마치 제 몸이 아닌 것처럼 꼼짝도 하질 않네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로턴이 말했다.
“아무래도 흑마법 때의 부작용이 남은 것 같구나.”
“부작용이요?”
로턴은 마치 과거 일을 회상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전에 흑마법에 걸렸다가 풀려난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유능한 기사였는데 흑마법에 걸렸다 치료된 이후 15분 이상 검기를 발현시키면 마나가 역류하는 현상이 일어났었지.”
“마나가 역류하는 현상이 일어났다고요?”
클레첼은 자신도 그렇게 된 건가 싶어 안색이 파래졌지만 로턴은 잘못 짚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너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구나. 네가 신체강화술을 시전하기 위해선 한 부위에 마나를 집중시키지 않느냐? 문제는 일정 신체 부위에 마나를 집중시키고 나면 그 마나가 응고하는 현상이 일어나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흑마법에 빠져 오랜 시간 거구의 육체로 변해 있던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구나.”
“그, 그럼 한 번 신체강화술을 시전하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건가요?”
클레첼은 잔뜩 울상이 되었다.
물론 육체의 크기 면에선 클레첼이 늘리고자 하지만 않는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한 번 힘을 강화시킨 후 그 힘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게 될 경우였다.
힘이 증폭된 상태로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집게 되면 힘 조절을 할 수 없어 그대로 컵을 부숴 버릴지도 몰랐다. 또한 가볍게 문손잡이를 돌려 문을 연다는 것을 그대로 문고리를 부숴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다.
쉽게 말해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턴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대로 되돌아올 수 없었다면 넌 아까 거구인 상태로 있었겠지. 그런데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겠냐?”
“아!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클레첼은 일순간 표정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말끝을 흐리며 테리언을 쳐다보았다.
로턴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아마 당분간은 테리언이 직접적으로 풀어 주는 방법 밖에 없겠구나.”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었는데 테리언 씨는 어떻게 제 저주를 푸신 거예요? 혹시 테리언 씨도 마법사예요?”
“아니다. 너도 마나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테리언을 자세히 살피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클레첼은 무슨 말인가 싶어 테리언을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체내에 있는 마나의 흐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클레첼은 테리언의 상태를 보고 이내 경악했다.
“체내에 마나가 아예 없잖아요?!”
“그뿐만이 아니다. 테리언은 단순히 마나가 없는 것을 떠나서 마나를 거부하는 특유의 체질이다. 너의 신체강화술이 단순히 마나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것이라면 테리언은 마나 그 자체를 거부하는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아까 너의 흑마법을 풀어 준 것도 그 힘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네 쪽에서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은데…….”
“네?”
잠시 생각에 잠기던 클레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로턴의 말을 이해하고서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까 테리언이 자신의 흑마법을 풀어 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