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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7화)
Chapter.2 만남(3)


로턴이 말했다.
“그때는 흑마력이 주입된 장소가 가슴 부근에 위치해 있었기에 테리언이 가슴을 만지면서 없앨 수 있었던 거였다. 이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응고된 마나를 풀어 주기 위해선 해당하는 부분에 테리언의 손길이 닿아야 될 것 같더구나.”
“그런…….”
“게다가 마나의 응고 현상은 꽤나 심각한 현상이다. 만약 응고가 지속되어 마나 흐름의 통로를 완전히 막아 버린다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거든.”
비교하자면 피가 흐르는 통로인 혈관과도 같은 이치였다.
만약 혈관이 막혀 버려 피가 흐르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클레첼이 울상이 되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일단 클레첼, 테리언에게 가슴을 만지는 것을 허락해 줄 수 있겠니?”
클레첼은 일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남에게 가슴을 만져져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흑마법에 걸려 마나 응고 현상 역시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물며 그것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만약 테리언 일행과 만나지 않았다면 클레첼은 행여나 다른 이로 인해 흑마법에서 풀려났다 하더라도 다시는 신체강화술을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로 보면 오히려 테리언은 클레첼에게 있어서 구원의 손길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괜찮은 거겠지?”
아까 전에 한 대 얻어맞고 기절한 경력이 있는 테리언은 불안한 눈치로 클레첼을 바라보았다.
“네, 괜찮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인걸요. 게다가 이렇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제 잘못인걸요. 오히려 제 문제를 테리언 씨가 해결해 주겠다는데 제가 꺼려해야할 이유가 없죠.”
“그렇다는 건?”
클레첼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릴게요.”
테리언의 표정이 환해지더니 기다렸다는 듯 클레첼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동작에 있어서는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보통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런 상황에서 한 번쯤은 망설이기 마련이지만 테리언에게 그런 건 없었다.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잡는다. 무엇보다 가슴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나 부탁하는데 거절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럼 부디 사양 않고…….”
아까 전투 중에는 상황이 급하다 보니 아무렇게나 만졌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클레첼의 가슴을 만지는 테리언의 손길은 레이시라의 가슴을 만졌을 때처럼 매우 신중함이 느껴졌다.
뭉클.
클레첼의 가슴을 움켜쥐자 아까 전 느꼈던 그 감촉이 다시 한 번 테리언의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아까 전에도 느꼈지만 신체강화술을 통해 커진 가슴은 일반적인 여자의 가슴의 감촉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드러났다.
“우으으으.”
테리언이 가슴을 조심스레 움켜쥐자 클레첼이 가느다랗게 몸을 떨면서 신음성을 토했다.
순간 로턴은 테리언이 야릇한 의도로 가슴을 만진 건가 싶어 놀랐다.
하지만 로턴은 평소 테리언이 가슴을 만지려는 의도가 순수하게 호기심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나 다를까…… 클레첼의 가슴 부위의 마나의 흐름을 보니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테리언이 클레첼의 가슴을 움켜쥐면서 그와 동시에 그녀의 가슴에 응고해 있던 마나의 찌꺼기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클레첼이 신음성을 토한 것은 마나의 통로가 갑자기 개방되자 순식간의 마나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신경계를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테리언이 두세 차례 가슴을 조몰락거리자 클레첼의 가슴이 서서히 작아지더니 마지막엔 원래의 납작한 크기로 되돌아왔다.
‘흠. 만질수록 작아지는 가슴이란. 뭔가 묘한 기분인데?’
테리언은 더 이상 만져질 가슴이 없자 손을 떼며 아쉬운 듯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고마워요. 테리언 씨.”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난생 처음으로 남자에게 가슴을 만져진 클레첼은 상당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뭐지, 이 감각은?’
게다가 테리언이 가슴을 만지는 순간 마나의 응고 현상이 풀리는 것 외에도 다른 현상이 일어난 것을 느꼈다.
로턴은 그저 바라보는 입장이었기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클레첼은 확실히 느꼈다.
‘테리언 님이 가슴을 움켜쥘 때마다 마나가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어.’
그 기분은 야릇하다든가 흥분되는 그런 감각과는 달랐다.
그동안 흑마법으로 인해 지쳐 있던 심신에 활력이 돌아오는 듯한 기분.
분명 불쾌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테리언이 가슴을 만진 순간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클레첼, 일이 이렇게 된 만큼 아무래도 당분간 너는 테리언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클레첼은 로턴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의 부작용이 생긴 사실을 안 이상 매번 응고 현상을 풀기 위해선 테리언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당분간 실례해도 될까요?”
“물론이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지금 프로티나 왕궁 아카데미에 가고 있던 중이라서 말이다. 혹시 따로 어디로 갈지 여행지는 정해 두었니?”
“아뇨. 딱히 정해 둔 곳은 없어요.”
“잘됐구나. 그래서 말인데 혹시 너도 아카데미에 관심이 있나 싶어서…….”
“프로티나 아카데미요?”
클레첼이 알고 있다는 눈빛을 보이자 로턴이 흥미를 보이며 말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알고 있나 보구나.”
“네. 저희 오빠가 프로티나 아카데미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오빠를 통해 간간이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어요.”
“그럼 너도 아카데미에 다녀 보지 않을래?”
“네? 제가요?”
클레첼은 깜짝 놀랐다.
프로티나 아카데미가 얼마나 들어가기 힘든 곳인지는 클레첼도 잘 알고 있었다.
귀족들의 교양에 있어서 필수 코스로 알려져 있는, 이른바 명문 아카데미라 불리는 곳이다. 무사히 프로티나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들은 그것을 자랑으로 여겨도 될 정도였다.
문제는 프로티나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귀족 학생이 많은 아카데미라 귀족 학생은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이들을 깔보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저는…….”
게다가 귀족 학생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여러 가지 해코지를 한다는 소문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클레첼의 친오빠도 그런 생활을 이를 악물며 간신히 졸업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클레첼은 프로티나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무래도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건 좀 그러네요. 부담스러운 것도 있고 솔직히 말하자면 좀 무서워서요.”
“그러냐. 그럼 어쩔 수 없지.”
로턴은 아쉬움이 들었지만 클레첼이 꺼리는 거 같았기에 어쩔 수 없이 권유를 그만두었다.



Chapter.3 호위학생(1)


프로티나 왕국의 수도 가르반.
하나의 제국과 네 개의 왕국이 존재하는 하리카 대륙에서 프로티나 왕국은 가장 약소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티나 왕국이 500년의 역사를 이어 갈 수 있던 것은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불락의 성벽’ 덕분이었다.
수도를 감싸고 있는 총 183㎞의 길이의 불락의 성벽은 그 여타의 나라의 성벽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를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성벽에는 건설 당시 프로티나 왕국의 천재 마법사로 알려진 ‘프로보크’의 고밀도 방어 마법진이 구축되어 있다고 전해졌다.
여기까지는 다른 나라의 성벽도 얼추 비슷하게 요소를 갖추었지만 무엇보다 가르반이 천혜의 요새라 불린 이유는 지리적으로 땅이 대략 45도의 경사를 자랑하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테리언 일행은 여차여차하여 수도 가르반에 들어서기 위한 검문소에 도착한 상태였다.
다행히도 클레첼과 합류한 이후에는 수월하게 아드만 협곡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본래 도적 무리가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던 아드만 협곡이었다. 한두 명 정도는 도적 무리와 만나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클레첼이 폭주한 사이 도적 무리를 전부 소탕해 준 덕분이었다.
“여기 있소.”
로턴은 미리 준비해 둔 신분증을 꺼내 검문병에게 조회를 요청하는 중이었다.
한편 클레첼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거대한 불락의 성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책으로만 접해 봤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역사책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불락의 성벽의 높이는 20m를 자랑한다고 했다.
대제국이자 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엘도흐 제국의 수도의 성 높이가 13m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임을 알 수 있었다.
“왕궁마법사 로턴 휴스 님. 신분 확인했습니다. 옆에 있는 두 사람은 자식 되는 사람들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로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클레첼은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자식이라고 속이고 넘어가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테리언은 클레첼과는 다른 이유였다.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테리언에게 있어서 로턴은 진짜 아버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검문소의 문이 열리자 테리언 일행은 잔뜩 분위기가 고조된 채 안으로 향했다. 비록 검문소를 지나쳤다 하더라도 이제 수도 안으로 진입했을 뿐 사람들이 사는 지역까지 도달하려면 20㎞가량을 더 가야 했다.
클레첼은 주변 풍경을 둘러보더니 로턴을 향해 말했다.
“로턴 아저씨. 그러고 보니 아저씨는 프로티나 왕국에서도 유명한 마법사라면서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 위치에 있으면 돈을 많이 버셨을 텐데 지금까지 왜 수도에서 나오셨어요?”
로턴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른들만의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거야. 거기까진 궁금하지 않아도 돼.”
로턴의 대답 속에 씁쓸함이 묻어나자 클레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십 분가량을 말없이 걸었을까.
로턴은 괜스레 무거워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화제를 전환했다.
“클레첼, 그럼 호위학생으로 편입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니?”
“호위학생이요?”
그런 학생이 존재한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클레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일반 학생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야. 일반 학생과는 달리 수업을 반드시 들을 필요는 없고 말 그대로 호위 대상의 곁에 있기만 하면 돼.”
“그렇게 편입할 수 있다는 건 처음 들었어요.”
“그럴만도 하겠지. 애초에 호위학생이란 게 프로티나 아카데미는 워낙 귀족의 자식들이 많다 보니 생기게 되었거든. 귀족 학생의 부모들이 워낙 겁이 많다 보니 호위를 해 줄 이가 필요하다는 말이 많았거든. 대부분 귀족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편입이라 일반인들은 몰랐을 거야.”
“그럼 테리언 님은 귀족이에요?”
클레첼이 놀라며 새삼스레 테리언을 바라보았다.
언뜻 봐도 순박해 보이는 시골 마을 청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말이다.
로턴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녀석이 귀족일 리가 없지 않느냐? 반드시 귀족만 호위 학생을 둘 수 있는 건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차별이겠지. 무엇보다 프로티나 아카데미는 신분으로 구분 짓는 곳이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 구분 짓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