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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8화)
Chapter.3 호위학생(2)
로턴은 그 외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로 클레첼에게 호위학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들려주었다.
“으음, 그렇다면 테리언 님의 호위 학생으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그래! 좋은 결정을 내린 거다. 분명 프로티나 아카데미에 가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야. 무엇보다 너의 목적도 이루는 데 한결 도움이 될 거고.”
클레첼의 겨우 승낙 의사를 보이자 로턴은 내심 안도했다.
워낙 사고뭉치에 순수한 성격을 지닌 테리언이 행여나 아카데미에 가서 사고를 치진 않을까 걱정되던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무예 실력을 가진 클레첼이 곁에 있어 준다면 든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신체강화술이라는 놀라운 비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행여나 테리언이 사건에 휘말린다 하더라도 그녀가 곁을 지켜 준다면 다소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렇게 로턴과 클레첼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별안간 앞장서서 걷고 있던 테리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러더니 클레첼에게 다가와 문득 입을 열었다.
“님 자 붙이지 마.”
“네?”
“그리고 그 존댓말도 쓰지 말라고.”
“그게 무슨?”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당연히 님이라는 존칭을 붙이는 게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존댓말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테리언은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너, 열일곱 살이라고 했지?”
“그런데요?”
“그럼 나랑 동갑이잖아. 말 편하게 하라고.”
“그게…….”
클레첼이 당황스러워 하자 테리언은 클레첼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자, 따라 해 봐. 테리언.”
“어, 얼굴이 너무 가깝…….”
“따라 해 봐. 테. 리. 언.”
“테, 테리언…….”
“좋아. 잘했어.”
그제야 테리언은 만족스러운 듯 클레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반면 클레첼은 테리언의 돌발적인 행동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로턴이 껄껄 웃으며 그들을 지켜보던 중 문득 클레첼을 불렀다.
테리언도 다가오려 했지만 로턴은 클레첼에게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테리언을 물리게 했다.
그렇게 테리언이 멀찍이 떨어지자 로턴이 진지한 표정으로 클레첼을 바라보며 말했다.
“클레첼. 내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으면 하는 게 있다.”
“뭔데요?”
“혹시 너는 테리언이 거부감이 든다던가 하지는 않니?”
“네?”
로턴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이러했다.
테리언이 하는 행동이 여자가 보았을 때 유쾌한 장난이 아니다 보니 클레첼 역시 테리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클레첼과의 첫 대면에서도 테리언은 클레첼의 가슴을 만졌다.
그것이 어떠한 경우와 이유였다 하더라도 클레첼의 입장에선 충분히 불쾌했으리라.
그랬기에 로턴은 테리언의 행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클레첼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테리언을 힐끗 바라보다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만약 거부감이 든다면 저는 뻔뻔한 사람이 되겠죠. 자칫하면 두 번 다시는 신체강화술을 쓰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테리언 님……. 아니, 테리언 덕분에 그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오히려 테리언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다행이구나.”
* * *
그리고 다음 날.
수도에 도달하고서도 반나절을 더 가서야 프로티나 아카데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클레첼은 막상 이야기로만 듣던 아카데미에 실제로 오게 되자 다시 한 번 긴장감을 느꼈다.
인내심 하나는 대단했던 클레첼의 친오빠인 가르윈도 아카데미에서 학생으로 지낸 시절에는 몇 번이나 울컥할 뻔했다고 했다.
다행히 자신은 가르윈처럼 일반 학생의 신분이 아닌 호위학생으로 지내게 되겠지만 불안함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호위학생이 되었다곤 해도 자신은 과연 호위학생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을까?
‘테리언은 짐정리가 끝났으려나?’
현재 클레첼은 프로티나 아카데미의 손님 전용 숙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직 테리언은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편입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태.
그래서 편입 절차가 끝날 때까지는 손님 숙소에서 머물러야 했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고 나온 클레첼은 파자마 차림으로 복도에 나왔다.
1층은 남자 숙소, 2층은 여자 숙소였다.
그중 테리언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101호 실이었다.
로턴이 있다면 그를 통해 부탁을 해 보았겠지만 그는 현재 여기 없었다.
로턴의 말로는 잠시 수도에서 해야 할 일거리가 있다면서 편입 전까지는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가 버린 것이었다.
“테리언.”
101호 실 앞에 도착한 클레첼은 가볍게 노크를 하며 테리언을 불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안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몇 차례 노크를 하면서 목소리까지 높여 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자고 있나?’
테리언이 마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기각 대신 오감을 높여 방 안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방 안에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고 있구나.’
어쩔 수 없이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던 클레첼은 어디선가 인기척을 느꼈다.
깜짝 놀란 클레첼이 조심스레 인기척이 느껴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카데미에 심어진 가로수 사이로 한 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었다면 별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괴한 마나의 흐름이 너무나 수상했다.
무엇보다 저렇게 모습이 안 보이도록 로브를 뒤집어쓴 것도 상당히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클레첼은 수상한 그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껴 조용히 그의 뒤를 밟았다.
그렇게 5분가량 그의 뒤를 따라가니 ‘연금학과’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에 도착하게 되었다.
‘연금학과라면 연금술과 관련된 학과인가?’
들은 바로는 연금술사들은 익명성을 중시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아카데미 내에서도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클레첼은 역시 오해였나 싶어 숙소로 돌아가려던 찰나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저 녀석은!’
진홍빛 머리카락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웨이브 머리를 한 마법사.
클레첼은 그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클레첼에게 흑마법을 걸어 거구로 만들어 버린 녀석.
첫인상이 워낙 강렬했었기에 클레첼은 아직도 그의 모습을 잊지 않았다.
클레첼은 마음 같아서는 자신에게 주었던 치욕을 되갚아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녀는 너무 강했다. 과거에 그와 만났을 때도 신체강화술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허탈하게 그녀에게 당해 버리지 않았던가.
신체강화술의 특징이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는 점이었는데 그녀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때는 방심해서 당했지만…….’
클레첼은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조심스레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난데없이 나타나선 자신을 습격했던 녀석이었으니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녀는 예상 외로 연금학과 건물의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건물의 반대편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니 그는 아무것도 없는 건물 뒤편에서 무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지?’
그때였다.
아무것도 없던 빈 벽에 갑자기 새로운 문이 생겨났다.
그녀는 주변을 경계하듯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대로 들어가 버렸다.
‘어떡하지? 왠지 들어가면 위험할 것 같은데 여기서 물러나야 하나?’
만약 그녀가 당당하다면 굳이 건물 뒤편으로 와서 마법을 써 가면서까지 은밀하게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잠시 갈등하던 클레첼은 결국 본능에 몸을 맡겼다.
그녀가 열어 두었던 문이 닫히기 전에 클레첼은 몸을 날려 들어오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스윽―!
하지만 그와 동시에 로리아나에 의해 구멍이 뚫렸던 벽이 다시 메워지자 주변은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렇다고 눈이 적응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물론 그녀에겐 신체강화술의 비기 중에선 양쪽 눈의 위력을 끌어올려 어둠 속에서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신체와 관련된 모든 것이라면 성능을 극도로 향상시킬 수 있는 비기. 그것이 바로 신체강화술의 힘.
‘하지만 다시 되돌리려면 테리언의 힘이 필요할 텐데…….’
현재 테리언은 숙소에서 잠든 상태.
로턴에게 들은 바로는 신체강화술을 쓰고 나면 세 시간 이내로는 테리언에게 치료를 받으라고 했었다. 세 시간이 지나면 응고 현상이 심해져 마나 흐름의 통로를 막아 버려 자칫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주 잠깐만 확인해 보고 나오면 되겠지.’
고심한 끝에 클레첼은 시야만 확보할 정도로 양쪽 눈에 신체강화술을 시전했다. 그러자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어둠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처음엔 그녀가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 시간이 꽤 지났기에 그녀가 이미 다른 곳으로 사라진 것은 아닐까 싶었다.
막상 시야가 밝아지자 길은 외길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 길대로 따라가면 그녀를 금방 추적할 수 있다는 뜻.
그렇게 기척을 죽인 채 앞으로 나아가자 클레첼은 이윽고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심스레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나아가던 클레첼은 곧 빛이 새어 나오는 문을 발견했다.
문 앞까지 다가온 클레첼은 비스듬히 열린 문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까 자신이 보았던 붉은 머리의 여자와 2대 8 가르마의 머리를 한 단신의 남자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진행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퀄러트?”
“흥, 로리아나. 넌 내 연금술을 의심하고 있는 건가?”
“설마…… 단지 진행의 진척도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 뿐이야.”
“그런가. 뭐, 진척도라면 총 5단계 중 겨우 1단계가 끝나가고 있을 뿐이다. 좀 더 자금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벌써 3단계는 끝났을 것을…….”
“어쩔 수 없잖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금술은 대륙 전체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니까. 특히 네가 행하고 있는 인체복제술과 관련되어서는 막대한 자금이 왔다갔다 하다 보니까 비밀리에 행해야 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클레첼은 그들의 대화가 무언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잘은 모르겠지만 금지니 비밀리에 행해야 한다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확실한 건 이들이 금지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소리인 것 같았다.
“그래서 퀄러트. 내가 가져온 유전자 중에서 결국은 어떤 걸로 인체복제술을 행할지 정했나?”
“흐흐. 그것도 정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1단계가 끝나가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겠지. 솔직히 네가 너무 열심히 가져다주기에 기세에 눌려 말리지 못했는데 말이야. 솔직히 맨 처음에 네가 건네줬던 유전자가 가장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처음에 가져다줬던 거라면……. 아아. 그 신체를 강화시키는 묘한 능력을 쓰던 여자아이의 샘플을 말하는 거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