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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9화)
Chapter.3 호위학생(3)


클레첼은 자신의 이야기임을 확신하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퀄러트가 음침하게 웃었다.
“흐흐. 물론 다른 샘플들도 흥미롭긴 했지만 앞으로 우리의 계획을 생각했을 땐 신체를 강화시킬 수 있는 요소만큼 뛰어난 장점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저번에 실험해 보니 이 유전자 샘플은 능력이 발현되었을 때 마법 저항력이 엄청나게 강해지더군.”
“그래. 저번에 그 샘플을 채취한 여자와 상대했을 때도 일반적인 마법이 통하지 않아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결국 흑마법까지 썼다고.”
“호오? 대륙에서 몇 안 되는 대마법사인 로리아나가 최후의 수단인 흑마법을 사용할 정도였다? 이거이거, 앞으로의 연구 결과가 더욱 기대되는군.”
클레첼은 행여나 자신의 고동 소리가 그들에게 들키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심박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분명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똑똑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유전자 샘플은 뭐고 인체복제술은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저 여자가 오빠가 말하던 그 로리아나였어?’
대마법사 로리아나.
프로티나 아카데미에서도 상당히 유명 인사로 알려진 학생이며 과거 가르윈이 짝사랑했던 여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단순히 마법 실력이 뛰어난 것뿐만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도 어마어마해서 상당한 인재로 손꼽히고 있었다.
클레첼이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한 후 다시 그들을 바라보려 할 때였다.
돌연 로리아나가 미간을 찡그리더니 클레첼이 있던 문 쪽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지?”
“문 바깥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
“누가 있다고? 설마, 이 장소는 너와 나랑 그자밖에 모를 텐데?”
“그럼 그자인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을 하던 클레첼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려왔다.
로리아나가 문을 향해 다가오자 엄청난 불안감과 공포심이 클레첼을 엄습했다.
이대로 붙잡히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특히 로리아나의 흑마법은 신체강화술로 인해 증대된 마법 저항력마저 무시하는 힘을 지녔다. 물론 그때처럼 그녀의 손이 자신의 육체에 닿게 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마법의 위력만 강한 것이 아니라 움직임 역시 남들과는 범주를 달리했다.
그 당시 로리아나가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가져간 순간에도 그 움직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어서 도망쳐야…….’
게다가 저 퀄러트라는 자가 어떤 힘을 가졌을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저들의 홈그라운드. 자신이 상당히 불리했다.
결국 클레첼은 한계치까지 신체강화술을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미친 듯이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하지만 긴장을 한 탓이었을까.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도 클레첼은 벌써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대놓고 숨을 몰아쉬자니 왠지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발견해 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캄캄한 어둠 속을 질주하던 클레첼은 이윽고 자신이 맨 처음 들어왔던 입구 쪽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가지?’
그제야 클레첼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들어올 때는 로리아나의 마법 덕분에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부숴 버리지 않는 이상 나갈 방법이 없던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은 로리아나처럼 마법을 사용해서 벽의 구멍을 냈다가 수복하는 기술은 없었다.
물론 클레첼에게 있어서 이런 벽 따위는 신체강화술을 시전한 상태라면 부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문을 부수고 나간다면 그들은 분명 자신들의 대화를 누군가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언가 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모른다.
이대로 부수고 나간다 하더라도 누가 엿들었는지 알 방법이 없겠지.
하지만 이대로 문을 부수고 나간다면 다음에 이들은 분명 보안을 더 강화한다든가 장소를 옮길 것이 빤했다.
그럼 자신은 더 이상 그들의 음모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자기 일 아니라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지도 모른다.
혹은 오지랖 넓은 이들은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뛰어들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그들이 얘기했던 내용에는 다름 아닌 자신의 무언가와 관련되어 있었다.
클레첼은 자신의 유전자를 이용해 무언가 일을 꾸민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벽을 부수지 않고 멍하니 있다간 로리아나가 추격해 올 것이다.
‘아냐. 침착해지자. 방법은 분명 있어.’
심호흡을 한 후 냉정하게 주변을 살피던 클레첼의 시선이 문득 벽의 일정 부분에서 멈칫했다.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신체강화술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상태였기에 아까는 볼 수 없던 부분까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벽돌은 다른 벽돌이랑 다르게 맞물려 있는 모양이 이상해. 게다가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모하게 볼록 튀어나와 있고.’
벽돌을 이리저리 만져 보던 클레첼은 혹시나 싶어 가볍게 벽돌을 밀어내자 놀랍게도 벽돌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드르륵.
지잉―!
그와 동시에 아까 들어왔던 벽 부근에 일순간 푸르스름한 마법진이 생기더니 벽에 문 형태의 구멍이 생겨났다.
‘이건 설마?’
분명 남들 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마법적으로 설계해 놓은 장치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아까 로리아나가 들어오던 방식도 아마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다행히 클레첼이 바깥을 나서는 순간 벽의 구멍인 순식간에 메워졌다.
하지만 로리아나가 바깥에 나와서까지 확인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기에 그 후로도 클레첼은 숙소를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윽!”
그 순간 클레첼은 전신을 압박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심지어는 숨통까지 조여 왔기에 클레첼은 애써 기의 흐름을 순환시키며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원래 로턴이 세 시간정도 까지는 여유가 있다고 했지만 상황별에 따라서 그 시간제한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나 지금은 신체강화술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상태였으니 얼마나 시간제한이 줄어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로리아나의 기각에 감지되지 않기 위해 클레첼은 은신을 기각은신을 사용했다. 문제는 이 기각은신 기술이 매우 고난이도에다가 많은 마나량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마나 응고 현상이 빨리 일어나는 이유가 기각은신 때문인 듯싶었다.
‘이 정도나 떨어졌으니 더 이상 마나의 흐름을 감출 필요는 없겠지?’
결국 클레첼은 기각은신을 해제하고 폭발적인 속도를 내며 손님 숙소를 향해 달려갔다.
“…….”
한편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클레첼을 그런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이 있었다.
그들은 속닥이더니 이윽고 클레첼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 * *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육체가 있다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자신이 살아 있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미칠 듯한 공허함.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테리언은 미쳐 버릴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언제까지고 속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순간 정체 모를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중성적인 목소리.
게다가 그 목소리는 마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런 잔재주가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 마라. 어리석은 수호자들이여.”
테리언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분노와 욕망이 느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테리언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비록 저 목소리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상당히 위험한 존재임을 느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위압감이 느껴지며 절대로 마주해선 안 될 것 같은 존재.
단순히 목소리를 들을 뿐인데도 테리언은 생전 처음으로 공포가 무엇인지를 절감했다.
“나는 다시 부활한다. 그리고 그때는 반드시…….”


“허억!”
테리언은 헛숨을 들이키며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꾸, 꿈인가?”
테리언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않지만 방금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웠다.
‘후우. 별 이상한 꿈을 다 꾸는군.’
테리언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워낙 생생한 꿈이었다 보니 저도 모르게 긴장한 듯싶었다.
‘그보다 옷을 갈아입어야겠어.’
어째서인지 전신은 식은땀으로 인해 축축해진 상태였다. 마음 같아선 목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 근처에 목욕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에 아쉬운 대로 옷이라도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로턴에게서 건네받은 마법 가방을 뒤적거리던 테리언은 새 옷을 꺼내고서는 기존의 땀에 젖은 모든 옷을 탈의했다.
그리고 막 테리언이 주섬주섬 속옷을 입으려던 순간이었다.
콰광!
갑자기 현관문이 부서질 듯이 열리더니 클레첼이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졌다.
“헉! 뭐야!”
테리언은 황급히 속옷을 입으며 대충 겉옷을 걸친 후 클레첼에게 다가갔다.
“뭐야, 너 왜 그래?”
조심스레 클레첼의 어깨를 안아 올리자 그녀의 전신이 작게 경련하는 것을 느꼈다.
테리언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무슨 일이 있던 거야?”
“테, 테리언. 어…… 어서 치료를…….”
“치료?”
테리언은 순간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이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만약 클레첼이 신체강화술을 쓰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흑마법의 부작용의 증세가 나타난다고 들었다. 그럴 경우 처음에 클레첼의 저주를 풀었던 것처럼 신체강화술을 시전한 부위를 쓰다듬어 주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테리언은 어째서 클레첼이 이렇게 힘들어 할 정도로 신체강화술을 써야 했는지 궁금했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기로 생각했다.
“클레첼. 어디 부위에 신체강화술을 쓴 거야? 내가 바로 치료해 줄게.”
“그, 그러니까…….”
클레첼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자 테리언이 답답하다는 듯 클레첼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소리쳤다.
“뭘 망설이는 거야! 지금 엄청 힘들어 하고 있는데!”
테리언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자 클레첼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갑자기 시선을 피한 채 대답했다.
“전체.”
“뭐? 전체라니…… 설마?”
“나, 나중에 설명 해 줄게. 그보다 빨리…… 하윽!”
그 순간 클레첼의 전신이 크게 떨렸다.
마나 응고 현상이 심해지다 보니 마나의 흐름이 원활해지지 않아 급기야 마나의 통로가 팽창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마나의 통로와 신경계는 밀접한 연관이 있었기에 마나의 통로에 손상이 온다면 신경계 부분에서 극심한 고통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내 침대에 누워. 금방 쓰다듬어 줄게.”
클레첼은 테리언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테리언은 망설임 없이 클레첼의 왼팔을 시작으로부터 오른팔까지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