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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10화)
Chapter.3 호위학생(4)
그러자 아까 전까지만 해도 경련하던 근육이 테리언의 손길이 닿는 순간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몸 전체가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테리언은 곧바로 다리 쪽으로 손길이 향했다.
순간 클레첼이 움찔하며 다리를 오므리자 테리언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아, 그게…….”
클레첼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오므렸던 다리를 다시 폈다. 그러자 테리언은 곧바로 그녀의 허벅지를 시작으로부터 발끝까지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테리언의 눈빛을 바라본 클레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의 신체를 쓰다듬으면 보통 남자들은 흥분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테리언에게는 그런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진정으로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진심 어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을 만질 땐 조금 엉큼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착각한 걸까?’
그렇게 양 다리를 어루만진 테리언은 클레첼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식은 땀 좀 봐. 그렇게 아파?”
테리언의 손길이 이마에 닿자 두통이 사라지며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테리언의 손길은 단순히 편안함을 느끼는 것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테리언의 손길이 닿는 순간 마나 순환 속도가 묘하게 빨라지고 있었다.
‘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게 가능한 걸까?’
하지만 아직 완벽히 치료가 된 상태는 아니었다.
“끄으으으.”
여전히 클레첼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자 테리언은 그녀의 하복부를 쓰다듬었다.
“이제 남은 건…….”
사실 테리언은 일부러 가슴 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부터 만지고 있었다.
보통 음식을 먹을 땐 가장 맛있는 것은 마지막에 먹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흠흠. 이제 마지막으로 가슴만 남았네.”
테리언은 일부러 중얼거리는 척하면서 조심스레 클레첼의 눈치를 보았다.
사실 테리언은 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당시 로턴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다.
특히 여자의 가슴을 절대로 멋대로 만지지 말라는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 대상이 클레첼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양해를 구하고 만져야 된다고 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그리고 클레첼 역시 로턴을 통해 그가 단순히 순수한 마음으로 여자의 가슴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고 들은 상태였다. 그 속에는 결코 야릇한 생각이라든가 욕망이 담겨 있지 않다고 들었다.
게다가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오히려 테리언이 만져 주면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졌기에 더 이상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러나 막 테리언이 클레첼의 가슴을 움켜쥔 순간이었다.
삐이이익!
등 뒤로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며 한 여성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성추행 청년! 당장 그 여성분에게서 떨어지세요!”
테리언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세 명의 여학생들이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그중 가운데에 있던 여학생이 테리언에게 손가락질하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프로티나 아카데미의 선도부장인 리엘로트의 권한으로 성추행 혐의로 당신을 연행하겠어요! 레이코, 테아. 어서 저 남자를 끌어내 주세요!”
Chapter.4 오해(1)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시간.
테리언은 프로티나 아카데미의 선도부 부실에 마련된 취조실에 있었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리엘로트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그쪽 남자 분께서는 그 여성분을 도와주기 위해 그런 짓을 저지르셨다고요?”
“그래.”
“그걸 지금 저보고 믿으라는 거예요?”
“그럼 믿지 말라고 하는 말이겠냐?”
테리언은 담담한 자세로 리엘로트와 대면하고 있었다.
리엘로트는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냐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다.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한 거지?’
리엘로트는 아카데미의 선도부장으로서 그동안 아카데미 내의 다양한 학생들과 대치를 해 왔다.
또한 많은 경험으로 인해 그녀는 사람을 보는 특유의 눈썰미가 생겨 상대의 심리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재주도 생겼다.
하지만 테리언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심리를 파악할 수 없다기 보다 너무 잘 보여서 어이가 없었다.
방금 전에 그녀가 보았던 테리언의 행위는 누가 봐도 명백한 성추행이었다. 그 모습을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선도부원에게 목격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테리언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듯 당당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잘못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리엘로트는 미간을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리엘로트가 테리언의 숙소를 습격했던 것은 어떤 거대한 기를 느껴서였다.
오늘 밤도 어김없이 선도부원으로써 아카데미 학원 곳곳을 순찰을 돌고 있을 때였다. 그러던 중 문득 멀지 않은 곳에서 심상치 않은 기의 흐름을 느낀 리엘로트와 선도부원들은 곧장 기가 느껴진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따라잡아 보니 그곳에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한 소녀가 있던 것이다.
순찰을 도는 입장인 그녀들에게 있어선 상당히 수상해 보였기에 따라간 결과 손님 숙소에 도달하게 된 것이었다.
솔직히 여기까지는 그냥 아카데미에 머무르는 손님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소녀가 남자가 머무르는 층인 101호 실에 들어가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혹시나 층수를 헷갈린 게 아닌가 싶어 알려 주려고 와 보니 놀랍게도 클레첼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테리언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차라리 그 여성분이 뭐라도 말을 해 주면 좋았을 텐데…….’
클레첼은 테리언이 가슴을 만진 순간 전신의 모든 마나 응고 현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긴장감이 풀린 나머지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깨워 보려고 했으나 상당히 지쳐 있었기에 결국 클레첼은 손님 숙소에 내버려 둔 채 테리언만 연행해 오게 되었다.
테리언은 연행되는 순간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기에 처음엔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한 건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취조하자 테리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서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여태까지 뻔뻔한 학생들을 수도 없이 봐 온 그녀였기에 이 정도로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뻔뻔하게 나오겠다면 그녀도 그녀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리엘로트는 테리언을 째려보며 말했다.
“그럼 질문을 다시 하죠. 이름이 뭐라고 했었죠?”
“테리언.”
“그렇군요. 테리언 씨. 남자가 여성의 가슴을 만진다는 것이 평범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겠죠?”
“알고 있지.”
“그럼 어째서 그런 짓을 벌이셨죠?”
“진짜 몇 번이나 말을 해 줘야 알겠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지금 그 상황에 만지지 않았다면 클레첼의 목숨이 위험했을 거야.”
“목숨이 위험하다니 무슨 소리죠?”
“그건…….”
귀로는 들었지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에 테리언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그걸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답답함.
결국 테리언이 즉답하지 못하자 리엘로트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역시 거짓말이군요.”
“아니, 그러니까 거짓말이 아니래도?”
“그렇다면 거짓말이 아니란 보장은 있나요?”
테리언은 골치가 아파졌는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머리 쓰는 것은 딱 질색인 테리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여하튼 간에 지금은 졸리니까 나중에 설명해 줄게. 어차피 클레첼이 일어나서 사정을 들으면 될 일이잖아?”
테리언은 그 말과 함께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가는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본 리엘로트는 테아와 레이코와 눈빛 교환을 했다.
“뭐야? 내가 할 얘기는 이제 다 끝났다고.”
그러자 테리언은 나가는 문의 양 옆에 선 채 가로막은 테아와 레이코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리엘로트 부장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리엘로트 부장님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진 나갈 수 없어요.”
테리언은 어이없다는 듯 리엘로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어? 난 이미 내가 해야 될 말은 다 한 것 같은데?”
“우리 쪽에선 아직 원하는 이야기를 전부 듣지 못했어요. 그리고 아무리 당신이 결백하더라도 저희들 입장에선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예요. 또한 한 번 선도부실에 연행된 학생은 절차를 따라야 할 의무가…….”
“하아.”
그때 테리언이 크게 한숨을 내쉬자 리엘로트는 말하던 것을 멈추고는 테리언을 노려보았다.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숨을 쉬니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
사실 테리언은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이러는 사이에 행여나 클레첼이 다시 한 번 마나 응고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로턴의 말에 의하면 클레첼이 완쾌되는 모습을 볼 때까진 방심할 수 없으니 계속 옆을 지켜 주라고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리언이 이들의 말을 순순히 따라 여기까지 온 것도 또한 로턴의 말 때문이었다.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으면 아카데미 내의 관계자들의 말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미안해, 로턴 아저씨.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건강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리엘로트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두 여학생의 기세를 보아 하니 쉽게 보내 줄 생각은 아닌 듯 보였다.
“앗! 머리카락에 벌레가!”
“꺄악!”
“꺅!”
테리언은 그녀들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테아와 레이코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리자 테리언은 재빨리 그녀들을 제치고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거기 서세요!”
리엘로트는 놓칠 수 없다는 듯 재빨리 주문을 외우며 빛의 형태의 밧줄을 허공에 생성시켰다.
이른바 속박의 밧줄이라는 움직임을 제약시키는 마법.
그렇게 허공이 생성한 속박의 밧줄이 빠른 속도로 테리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잡았다!’
그러나 속박의 밧줄이 테리언을 휘감는 순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소멸되어 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아무런 마나의 파동도 느끼지 못했는데?’
마나의 파동은 이른바 마법을 발현시킬 때 일어나는 기운.
하지만 테리언에게서 마나의 파동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마법이 맥없이 소멸 당해 버리자 리엘로트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난 당분간 손님 숙소에서 머물러 있을 예정이니까. 어디 안 도망 갈 테니 용무가 있다면 내일 손님 숙소로 와. 그럼 클레첼을 통해 너희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야!”
결국 테리언은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그녀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