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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12화)
Chapter.4 오해(3)


아무래도 아직 자고 있는 걸까.
안 되겠다 싶었는지 클레첼은 좀 더 목소리 톤을 높였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끄응. 대답이 없는데요?”
“그냥 직접 들어가서 깨우는 게 낫겠어요.”
철컥철컥.
하지만 손잡이를 돌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에서 잠군 모양이었다.
클레첼은 더욱 크게 외치며 문을 두들기며 불러 보았지만 여전히 테리언은 묵묵부답이었다.
이 정도면 깨어날 때도 됐는데 어째서 조용한 걸까.
리엘로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테리언 씨, 집을 비운 거 아니에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때 기절하고 나서 계속 잠들어 있다가 지금 일어난 처지라…….”
“그냥 강제로 들어가서 깨워야겠어요.”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리엘로트가 문 앞에 서더니 손잡이를 잡으며 주문을 외웠다.
철커덕!
그러자 잠금 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테리언이 무르고 있는 숙소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세상 물정도 모른 채 침대 위에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테리언이 있었다.
“저기요, 벌써 아침이 지났다고요. 슬슬 일어나시죠?”
어젯밤 일로 테리언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던 리엘로트의 목소리는 상당히 날카로워져 있었다. 수속도 제대로 밟지 않고 선도부실에서 도망친 것도 상당히 마음에 안 들던 참이다. 하물며……
“테리언, 일어나. 손님이 왔어.”
클레첼도 테리언을 깨우기 위해 조심스레 테리언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리언이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보이지 않자 리엘로트가 답답했는지 테리언 곁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테리언이 갑자기 허공을 향해 헛손질을 하는가 싶더니 클레첼과 리엘로트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앗!”
“흐익!”
그러나 아직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테리언은 헤벌쭉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헤헤…… 가슴 감촉이 상당이 좋으시네요. 그쪽은 가슴은 작지만 그래도 탄력이 있는 게 상당히 만족스럽…….”
그 순간만큼은 클레첼과 리엘로트는 같은 생각을 했다.
그녀들은 서로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들부들 떠는가 싶더니 결국 허공을 향해 손을 들어…… 사정없이 테리언의 볼살을 향해 후려 내려쳤다.



Chapter.5 또 다른 만남(1)


“아카데미는 워낙 넓으니까 행여나 길을 잃지 않도록 제 뒤를 잘 따라와 주셔야 해요. 아시겠죠? 클레첼 양. 그리고 변태남 님?”
“알겠어요.”
“…….”
클레첼을 통해 그들이 아카데미에 편입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리엘로트는 그들을 위해 아카데미를 견학시켜 주고 있었다.
그러나 테리언은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쳇,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꼭 그렇게 싸다구를 날려야겠어?”
“평범하게 깨우니깐 안 일어나서 말이죠.”
“그렇다고 이건 너무했잖아! 양 볼이 이렇게 부어올랐다고!”
테리언은 잘 보라는 듯 양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가리키며 호소했다.
“그것 참 깨소금이네요. 어제 무례하게 군 벌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리엘로트는 아카데미 법률로 테리언을 처리해 버릴 생각이었다.
본래 아카데미 법률에 의하면 테리언은 풍기문란죄와 더불어 추행 혐의로 징계를 내릴 수 있었다. 이 아카데미 법률은 반드시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아카데미 내에 있는 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법.
하지만 클레첼의 부탁에 결국 이번 혐의는 눈감아 주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리엘로트 님. 너무 테리언을 몰아세우지는 말아 주세요. 실수로 그랬다니 어쩔 수 없잖아요?”
“하지만 클레첼 양도 그 순간에는 있는 힘껏 저 변태남을 때리셨잖아요?”
“그, 그건 홧김에……. 그보다 알려 주실 말씀이 있다면서요.”
클레첼은 테리언의 눈치를 보더니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 그랬었지요. 여하튼 지금부터 제가 알려 드릴 말씀은 아카데미 생활하시는 데 있어서 쓸 만한 정보들이니까 잘 새겨들어 주세요. 특히 변태남은 모르시는 게 많은 것 같으니 잘 기억해 두시라고요.”
“그러도록 하지.”
하지만 테리언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투였다.
오히려 테리언이 관심이 있는 존재가 있다면 다름 아닌 프로티나 아카데미의 여학생들이었다.
원래 이 나이 때의 남자라면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하지만 테리언의 관심사는 정확히 말해 여학생들의 가슴이었다.
‘정말 훌륭하구나!’
테리언은 여학생들의 가슴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조심스레 침을 삼켰다.
이성에 대해 관심이 있는 남자라면 테리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으리라. 다만 테리언이 여자들의 가슴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달랐다.
일반적인 남자가 욕정을 품고 여자의 가슴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테리언은 예술적인 의미로 가슴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요리사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을 바라보는 갑과 을이 있다고 하자. 만약 이 상황에서 ‘맛있어 보인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갑이다. 하지만 ‘아름답다’라고 생각을 한다면 을이다.
그리고 테리언은 다름 아닌 을이었다.
단순히 맛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 음식의 멋을 살리기 위해 꾸며 놓은 장식, 음식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재료, 그리고 음식을 만든 요리사의 능숙한 요리 실력!
세부적인 모든 요소를 염두에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야 말로 진정한 을.
이른바 테리언은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좀 부담스럽군.’
테리언은 리엘로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프로티나 아카데미의 학생으로서 선도부장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하지만 테리언은 그녀가 비범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딱히 테리언이 사람 보는 눈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
“어머, 리엘로트 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수고하시네요. 역시 리엘로트 님 다우세요!”
아카데미를 돌아다닐 때마다 간간히 만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리엘로트를 반겼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는 사이인가 싶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매번 만나는 학생마다 리엘로트에게 아는 척을 해 오니 그제야 테리언은 그녀가 이 아카데미에서 유명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덧 처음엔 듬성듬성 보이던 학생들이 어느 순간부터 자주 마주쳤다.
왜 그러나 싶었더니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의 배움터, 바로 학생 교사였기 때문이었다.
“리엘로트 님!”
“안녕하세요,”
“역시 오늘도 오셨군요!”
“네, 하지만 오늘은 좀 더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 오게 되었답니다.”
“용무라고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아카데미에 새로이 편입하게 될 학생 분들에게 견학을 시켜 주게 되었거든요.”
“어머, 리엘로트 님이 직접 견학시켜 주시는 건가요? 선도부 일로 많이 바쁘실 텐데 어쩜…….”
학생 교사에 들어서기 무섭게 몇몇의 여학생들이 쫄래쫄래 모여들었다.
들은 바로는 오늘은 자율 등교 일이라고 들었는데 왜 이리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많은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뭐하러 등교하려고 한단 말인가?
조금이라도 더 배워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 하는 귀족들의 심리를 알 리 없는 테리언은 그저 황당한 시선으로 그녀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리엘로트 님 옆에 계신 저 아가씨 분이 새로 편입해 올 학생이신가요?”
주위에 몰려든 여학생들 중 한 명이 문득 리엘로트의 옆에 서 있는 클레첼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에요. 전 호위학생으로서 오게 된 거예요.”
“호위학생이요? 누구의 호위학생이신데요?”
“그건…….”
클레첼이 소개를 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라? 테리언?”
테리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클레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리엘로트 역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어느 샌가 그녀들의 뒤에서 따라 걷고 있던 테리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 * *

‘역시 여자들만 있는 곳에 껴 있는 건 상당히 부담스럽단 말이야.’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대열에서 이탈한 테리언은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학생 교사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리엘로트에게 아는 척을 해 오던 학생들이 대부분 여자였기에 덕분에 눈이 호강은 할 수 있었다.
다만 리엘로트와 같이 다니다 보면 저절로 이목이 집중되어 여자의 가슴을 마음 놓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행여나 바라보려고 하면 여학생들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테리언을 째려보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리엘로트는 상당히 위험인물이라고 판단해 왠지 가까이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이런 시시콜콜한 이유로 아카데미에 오게 된 게 아니란 말이지.’
테리언이 아카데미에 오게 된 이유가 단순히 로턴이 유혹해서만은 아니었다.
이미 마을 내에선 모든 여자들의 가슴을 보았고 또한 만져 보았기에 더 이상 테리언을 충족시켜 줄 만한 요소가 없었다.
하지만 마을 바깥으로 나간다면 자신을 만족시켜 줄 만한 가슴을 가진 여자들이 많이 있으리라.
특히나 자기 또래의 여자들이 많이 있을 아카데미라면 더더욱!
‘그런데 리엘로트랑 클레첼 때문에 이목을 받게 되면 내 목적을 달성하기가 곤란하단 말이지.’
차라리 이렇게 따로 다닌다면 리엘로트나 클레첼이랑 다니는 것보다는 이목을 덜 받으리라.
다행히 옷 문제에서는 리엘로트가 어느새 학생복을 미리 준비해 둔 상태였기에 문제는 없었다.
‘하도 대화에 빠져 있기에 미처 혼자 다니겠다고 말 할 틈을 찾진 못했지만……. 뭐, 상관없겠지. 보나마나 혼자 다니겠다고 하면 분명 거절할 테니까.’
느닷없이 아침부터 뺨을 얻어맞으면서 일어난 것만으로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을 만졌니 뭐니 하긴 했지만 테리언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니 그저 억울할 따름이었다.
‘크윽. 로렌스카 마을의 여자아이들이 천사였던 거구나. 이렇게 되면 나의 가슴 만지기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건가?’
만약 마을 바깥의 여자아이들이 전부 리엘로트 같은 성격이라면 가슴 한 번 만지기 위해서 뺨을 수도 없이 맞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로턴 아저씨의 말로는 딸도 이 학원에 다닌다고 했었지.’
이름도 분명히 기억해 두고 있었다.
‘로리에 휴스.’
로턴이 무사히 아카데미를 졸업한다면 잘 이어 준다고 했던 소녀.
특히나 사진 속에서 본 로리에가 짓고 있는 눈웃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였다. 어지간하면 여자를 보면서 예쁘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테리언마저도 감탄할 정도였으니까.
‘흠, 리엘로트는 선도부장이니까 혹시 그녀에 대해 물어보면 뭔가 알고 있을 것 같긴 한데…….’
리엘로트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없이 그녀들을 내버려 두고 이탈했는데 괜히 돌아갔다가 잔소리를 듣긴 싫었다.
결국 테리언은 지나가던 학생들에게 묻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