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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13화)
Chapter.5 또 다른 만남(2)


학생 교사 안을 돌아다니던 테리언은 때마침 지나가던 한 여학생을 발견하고서는 불러 세웠다.
전체적으로 인상이 순해 보이는 여학생이었기에 아무래도 말 걸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저기.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알려 줄 수 있겠어?”
그러나 여학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테리언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어느 가문의 출신이신지?”
“뭐? 가, 가문?”
오히려 질문을 받은 테리언은 당황해하며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뭐야. 설마 귀족이 아닌 거야?”
“아닌데?”
그러자 여학생의 안면이 팍 구겨졌다.
“갑자기 반말을 하기에 난 또 귀족 출신인 줄 알고 놀랐잖아! 감히 천한 평민 주제에 말을 놔? 내가 지금 바쁜지라 봐주겠지만 다음에도 무례하게 군다면 텔리크 가문의 이름을 걸고 용서하지 않겠어.”
여학생은 콧방귀를 뀌더니 그대로 테리언을 지나쳐 어디론가 가 버렸다. 할 말을 잃은 테리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여학생이 사라진 쪽을 쳐다보았다.
‘뭐야, 원래 마을 바깥의 여자아이들은 저렇게 성격이 깐깐한 거야?
리엘로트도 그렇고 방금 만난 여학생도 그렇고 하나 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두 명 만난 정도로 폄하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 테리언은 그 외에도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말을 걸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부 테리언이 질문을 해 보기도 전에 싸늘한 태도를 보이며 말하기를 거부했다. 혹시나 싶어 남학생에게도 물어보았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어지간해선 화를 잘 안 내는 테리언이라고 해도 이쯤 되자 슬슬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하물며 이야기라도 들어주면 몰라 다들 지 말만 하고 매몰차게 떠나 버리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동화는 동화일 뿐이라는 건가?’
테리언은 귀족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지는 것을 느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동화에서 나오는 귀족들은 세련되었으며 아름답고 우아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남들의 위상이 되는 존재였기에 테리언은 틀림없이 귀족은 멋진 존재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잠시 쉬어야겠군.’
귀족들의 쌀쌀맞은 태도에 잠시 흥분도가 올라감을 느낀 테리언은 적당한 곳에서 쉬기로 마음먹었다.
예전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적은 장소를 좋아했던 테리언은 으슥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 교사는 대부분 교실로 이루어졌는지라 마땅히 쉴 만한 곳이 없었다.
그냥 대충 벤치에 앉아야 되나 생각하던 찰나 테리언은 문득 옥상을 떠올렸다.
마을에서도 여러 번 바깥 공기를 쐬기 위해 로턴의 주택 지붕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왠지 높은 곳에서 쉬면 바람이 잘 불다 보니 휴식에 있어서 쾌적했기 때문이었다.
무작정 학생 교사의 건물을 오르던 테리언은 3층부터는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지 않자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건물 위치를 보건데 옥상으로 향하려면 한참 더 올라가야 옥상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십 분가량 3층 구간을 돌아다닌 끝에야 겨우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층에서도 옥상으로 가는 계단은 바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테리언은 또다시 삼십 분가량을 돌아다닌 끝에서야 겨우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끼익.
옥상 문을 열자 기분 좋은 바람이 테리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역시 옥상이 휴식하기에 공기도 좋고 바람도 잘 불고 딱 이란 말이지.’
잠시 두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하던 테리언은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는 곧바로 눈을 떴다. 잘 보니 옥상 난간의 철장 부근에 한 남학생이 서 있었다.
그런데 남학생의 행동이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그는 독특하게 생긴 망원경을 든 채 어딘가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는지 테리언이 지척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어이.”
테리언이 가볍게 남학생의 어깨를 얹으며 그를 불렀다.
“흐익! 잘못했어요, 선도부장님!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옥상에 온 이유는 제 일생일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어?”
테리언이 어깨에 손을 얹기 무섭게 남학생은 재빨리 자리에서 엎드리며 애절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남학생도 테리언의 낡은 신발을 보고서는 자신이 알던 대상이 아님을 알았는지 고개를 들었다.
“…….”
“…….”
그들은 한참 동안이나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테리언이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냐?”
남학생은 테리언이 경계 대상이 아님을 깨닫고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남자로써 태어났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지.”
“그 망원경으로?”
“훗. 한 번 볼래? 뭐, 본다 한들 여태까지 나의 숭고한 목적을 이해한 사람은 없었으니 봐도 모르겠지만.”
“어디 줘 봐.”
남학생에게서 망원경을 건네받은 테리언은 남학생이 줄곧 바라보고 있던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요소는 없었다.
남학생이 답답하다는 듯이 직접 망원경의 방향을 바꿔 주고 나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건?’
망원경의 시야에 포착된 것은 다름 아닌 어떤 방 안에서 여학생들이 옷을 탈의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이 남학생이 몰입하면서 보고 있던 게 이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단 말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남학생의 모습에 경멸하거나 이상한 놈으로 취급하는 것이 정상.
남학생 또한 테리언이 그러한 반응을 보이리라 예상했는지 실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차피 그런 이유로 비난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이미 내성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남학생은 시간이 지나도 테리언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남학생은 테리언을 슬쩍 떠보기로 했다.
“그래서 소감은?”
“흐음. 뭔 소감을 말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먼저 문의 출입구 왼쪽 편에 있는 보라색 브래지어를 한 여자아이의 가슴이 제법 훌륭하군. 하지만 왼쪽 가슴이 좀 더 커 보이는 게, 짝짝이라서 보기가 좀 그러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여자아이는 큰 체형에 비해 가슴이 작군. 하지만 이목구비가 순해 보여서 그런지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리고 또…….”
그 순간 남학생이 테리언이 들고 있던 망원경을 빼앗아 들었다.
갑자기 망원경을 빼앗겨 버리자 테리언은 당황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표정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였다.
남학생이 말했다.
“너, 이름이 뭐지?”
“테리언.”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물론 그 행위 자체는 여자들이 보기엔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직접 불쾌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지 않은가?
게다가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여학생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녀들에게 물질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훔쳐보았다는 것을 들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안 들키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굳이 상관없지 않나 생각했던 테리언이었다.
남학생은 진지한 표정으로 테리언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한 손을 뻗어 왔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테리언은 곧 그 의미를 알아채고는 뻗어 온 그의 손을 맞잡았다.
“여기서 동지를 만나게 되는군. 반갑다!”
“나야말로.”
남학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제네시드 바그단. 잘 부탁한다!”



Chapter.6 친구(1)


학생 교사의 옥상은 언제나 한가했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 인적이 드문 장소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그 계단이 오묘하게 숨겨져 있어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카데미에 다닌 지 몇 년 이상이나 된 이들도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그랬기에 학생 교사의 옥상은 매번 제네시드가 전세 낸 것 마냥 지내고 있었다.
물론 제네시드도 처음엔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학생 교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발견해 낸 장소가 바로 학생 교사의 옥상이었다.
무엇보다 학생 교사의 옥상이 명당인 점이 무엇이냐면 옥상이라면 학생교사 그 어느 장소이든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옥상에서 학생 교사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이사장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이사장이 위치해 있는 방이 옥상 부근이었는데 창문 너머로 학생들의 동태를 살펴보기 쉽게 건물이 지어졌던 것이다.
제네시드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옥상에 올라와 이렇게 망원경으로 학생 교사를 둘러보았다.
정확히는 여학생들을 살펴보기 위함.
물론 그 행위를 굉장히 불쾌해하는 존재가 한 명 있었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상당히 유명하며 질 나쁜 학생들도 어지간해선 건드리지 않는다는 존재.
일명 철혈의 소녀라 불리고 있는 선도부장 리엘로트 아르시아.
제네시드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풍기문란죄라니 뭐라니 하면서 징계 받은 것만 해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저 보는 것뿐이었기에 재학에 있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안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제네시드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고민거리가 있다면 바로 그 망할 선도부장 때문이지!”
제네시드는 이를 바득 갈며 본능적으로 망원경을 어루만졌다.
그동안 리엘로트가 풍기문란죄로 그의 망원경을 뺏어 간 개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네시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낙은 여학생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제네시드가 말했다.
“‘옛말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라는 말이 있지. 하지만 그 나무 위에 미소녀가 있다면 올라가진 못할망정 눈요기라도 하겠다는 의지로 지금까지 버텨 왔어. 이 세상에 날 가로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거든.”
“오오, 대단하군.”
테리언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그런 모습을 본 제네시드는 왠지 모르게 우쭐해지면서 한편으로는 자신과 의견이 맞는 테리언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내 이야기는 어느 정도 다 해 준 것 같은데 말이야. 테리언, 이번엔 네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어?”
“물론이지. 하지만 나는 너처럼 그리 대단한 정도는 아니라서 지루할 수도 있겠는데 괜찮겠어?”
“상관없어. 나와 같은 동지의 이야기라면 기쁘게 들을 수 있지.”
“나는…….”
입을 뻥긋했던 테리언은 문득 로턴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레이시라의 가슴을 만진 괴짜소년의 정체가 자신이라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알려 주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테리언은 결국 그 이야기는 뺀 채 자신이 마을에서 지내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