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프리크1권(14화)
Chapter.6 친구(2)
그 이야기를 듣던 제네시드는 처음엔 흥미롭다는 눈빛을 지었다. 그러나 테리언이 가슴과 관련된 언급이 나오자 점점 두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막바지 부분에는 마을 여자아이들의 가슴을 만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경악에 이르기까지 했다.
“너, 진짜 대단한 녀석이잖아!”
“사실 다들 어렸을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쉽게 허락해 줄 수 있던 거라서 그리 대단한 건 아냐.”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란 족속들이 얼마나 까다롭고 민감한 존재인데! 정말 그렇게 쉽게 가슴을 만지게 허락해 줬단 말이야?”
“물론 나도 처음부터 성공하진 않았어.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동안 얻어맞은 싸대기만 해도 백 번은 넘었을 거야.”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리엘로트와 클레첼의 싸대기는 도저히 인간이 견딜 만한 힘이 아니었다. 특히 클레첼은 신체강화술의 비기를 가지고 있다 보니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따갑다고 하기 보다는 욱신거린다고 해야 하나?
마치 주먹에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반면 리엘로트는 힘 면에선 클레첼보단 뒤떨어졌지만 엄청난 매서움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클레첼과 달리 리엘로트는 뺨을 때릴 때 힘을 절제하며 정확히 끊어 쳤다.
보통 격투가 들이 더욱 많은 데미지를 주기 위해 주먹을 끊어 치지 않던가.
그것과 같은 이치였다.
쉽게 말해 클레첼이나 리엘로트나 엄청 아팠다는 것이었다.
“큭. 그래도 그저 올라갈 자신이 없어 쳐다보기만 하는 나에 비하면 정말 대단하네. 나라면 엄두조차 못 낼 거야.”
테리언과 제네시드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옥상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네시드는 그동안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마음이 맞는 대상이 한 명도 없었기에 테리언의 존재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테리언 역시 매한가지였기에 그와의 대화에서는 좀처럼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요소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리언이 여자의 가슴을 좋아한다면 제네시드는 가슴을 포함한 여자의 그 모든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결국 본질은 같았기에 그들은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테리언, 넌 아카데미에 새로이 편입해 오는 학생이라고 했었지?”
“응. 그런데?”
“마을에서 살다 왔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귀족은 아닐 테고, 그럼 특기생으로 편입한 거야?”
아카데미에는 입학금을 내고 편입하는 방법과 특기생으로 편입하는 방법, 그리고 아주 이례적으로 아카데미 내의 관계자들의 추천을 받아 특례로 편입하는 방법이 있었다.
테리언의 경우는 로턴이 인맥을 통해 편입시켜 주었기에 특례 편입에 속했지만 테리언은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 난 그냥 로턴 아저씨가 알아서 해 줄 테니 아카데미 생활만 잘 하라고 했었거든. 그렇다고 내가 특기가 없다는 건 아냐.”
“오오. 그래? 뭔데?”
“음. 특기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너, 혹시 마법 쓸 줄 알아?”
“아니. 난 전략과 전술 관련에 관심이 있어서 마법엔 관심이 없어. 애초에 재능이 없기도 하고.”
“흐음. 그럼 보여 주기가 곤란한데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그 애라면…….”
테리언은 문득 마법을 사용했던 리엘로트를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제네시드는 리엘로트를 상당히 꺼린다는 것을 알았기에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응? 왜 이야기를 하다 말아?”
제네시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테리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음으로 무마해 버렸다.
“아, 그러고 보니 제네시드, 사실 내가 본래 목적이 있었는데 만나는 학생들마다 말만 걸면 까칠하게 구는 바람에 못했던 게 있었거든.”
“그 마음 이해해. 우리 아카데미엔 귀족들이 많거든. 걔네들은 하나 같이 자존심만 높아가지고,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면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하니까.”
“아아.”
그제야 테리언은 왜 자신이 말을 거는 대상마다 차갑게 대했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왜 말 끝마다 귀족이냐니 어디 가문이냐니 물었던 것도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 아카데미에 로리에 휴스라는 여자애가 있어?”
로리에라는 이름이 나오자 제네시드가 황급히 테리언의 입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시퍼렇게 변한 안색으로 속삭였다.
“그 이름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고!”
“읍읍읍?(어째서?)”
“아, 미안. 너무 꽉 틀어막았네.”
제네시드는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테리언의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채로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여긴 우리 둘밖에 없으니까 다행이었어. 하지만 다음부터는 우리 둘만 있더라도 함부로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르지 마.”
“뭔 일이 있는 거야?”
제네시는 말도 말라는 듯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뭔 일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그 여자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가장 질 나쁘기로 소문난 아르킨 텔라피스마저 꺼려하는 대상이니까.”
그는 잘생긴 외모로 여학생들을 이리저리 꼬시다가 흥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차 버리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흔히 ‘악질의 바람둥이’라고 불리지.”
테리언은 피식 웃었다.
아직 편입은 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카데미 학생들은 참 재미있게 사는 애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학생 하나하나에 특이한 별명을 붙여 놓는 방식도 나름 유쾌한 발상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녀석이 겁을 먹을 정도라는 거지? 그 냉혈의 악녀가 그렇게도 대단한 존재야?”
“대단하다고 한다면 대단할 수도 있겠지. 그 냉혈의 악녀는 정말이지 한마디로 표현해서 가차 없다고.”
제네시드는 행여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엿듣지는 않을까 봐 들고 있던 망원경으로 잽싸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냥 두 눈으로 봐도 될 것은 뭘 저렇게 호들갑을 떠나 싶었지만 그런 모습이 썩 재미있어 보였다.
“그녀는 프로티나 아카데미의 사대천왕 중에서도 서열 3위에 속해 있어.”
“사대천왕? 그건 또 뭐야?”
“그러고 보니 넌 모르겠구나. 사대천왕이란 프로티나 아카데미에서 모든 남학생들이 선별한 네 명의 미소녀를 뜻하는 거야.”
“쿡. 또 그런 별명이냐. 이 아카데미 보면 볼수록 유쾌하네.”
“크으,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 여하튼 잘 듣기나 해, 이제부터 아주 중요한 내용이니까.”
제네시드는 한차례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사대천왕 중 한 명은 아까 내가 말해 줬던 그 선도부장. 철혈의 소녀는 서열 2위로 알려졌지. 그리고 방금 내가 말한 그 냉혈의 악녀는 3위고. 그리고 4위는 우리 아카데미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대마법사의 기질을 타고 났다는 로리아나 델만이야. 별명은 매혹의 마녀이지.”
“그럼 1위는?”
“1위는 우리 프로티나 아카데미를 총괄하는 이사장님이야.”
“흠. 1위는 별명 같은 건 없어?”
테리언의 질문에 제네시드가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풋, 이사장님에겐 그런 별명 같은 수식어가 필요 없기 때문이지. 뭐, 그래도 내가 임의로 지은 별명이 있긴 해.”
“뭔데?”
“이름 하여 절세의 미녀! 정말이지 이 별명만큼 이사장님에게 어울리는 별명도 없을 거라고. 내 소원이 있다면 지척에서 이사장님을 뵙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분은 매우 바쁘신 분이라서 볼 수가 없다는 거지.”
더불어 제네시드는 ‘절세의 미녀’는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하루에도 러브레터와 청혼장을 받는 개수로 산을 이룰 정도라고 덧붙였다. 또한 아카데미에서 네 달마다 다가온다는 사교회에서도 그녀와 춤을 추기 위해 줄을 서는 이들이 무려 수백 명에 이를 정도라고 했다.
“헤에, 이름은 뭔데?”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어째서인지 이름은 밝히지 않더라고.”
“그래? 그럼 외모는 알아?”
제네시드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유감이지만 외모도 몰라. 소문에 의하면 이사장도 이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잠입하여 학생들의 동태를 살펴보고 있다고 하다더군.”
“뭐야? 그럼 외모도 모르면서 별명을 절세의 미녀니 뭐니 라고 붙여 놓은 거야?”
“그래도 어쩐지 1위라고 불리니까 엄청 이쁠 것 같지 않아? 2∼4위에 속하는 냉혈의 악녀도, 철혈의 소녀도, 매혹의 마녀도 전부 미소녀니까 1위도 미소녀지 않을까 예상하는 거지.”
“흠, 그런가.”
애초에 어떻게 생겨 먹은 지도 모르는데 청혼장의 개수가 산을 이루고 그녀와 춤을 추기를 원한단 말인가?
이 부분에 대해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테리언은 그러려니 했다.
게다가 워낙 제네시드가 열을 내면서 말을 하다 보니 차마 도중에 말을 끊기도 뭐했던 것이었다.
제네시드는 한차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크흠,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냉혈의 악녀는 말 그대로 ‘악녀’라는 별명이 너무나도 잘 어울릴 정도야.”
지금은 자퇴를 했지만 과거에 아카데미에서 악질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아르킨 못지않은 한 남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아르킨이 자신의 배경을 믿었다면 그는 자신의 강인한 체격을 믿었다.
일반인들과는 다른 키가 2m에 달하던 그는 우락부락한 체격에 더불어 온 몸이 근육덩어리였다. 게다가 그 체격에 걸맞게 힘은 얼마나 장사였는지 그가 딱밤 한 대만 날려도 벽돌이 가볍게 박살날 정도였다.
앵간 하면 힘 좀 쓴다는 이들도 그 남학생 앞에선 뼈도 못 추렸기에 그는 언제나 행동함에 있어서 거침이 없었다.
게다가 워낙 자기 멋대로 인데다가 무식하기까지 해 그가 한 번 지나갔다 하면 제대로 남아도는 게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철혈의 소녀라 불리는 리엘로트 마저도 그를 상대하는 데 애를 먹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그와 냉혈의 악녀와 시비가 걸리고 말았다.
남학생은 평소에도 체력을 갈고닦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학생 교사를 뛰어다녔다.
그러던 도중 맞은 편 코너에서 나오던 냉혈의 악녀와 부딪히고만 것이었다.
덩치가 워낙 컸던 남학생은 당연하게도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냉혈의 악녀는 큰 상처를 입었다. 남학생이 달려오는 속도가 있다 보니 그대로 로리에와 부딪히면서 그녀의 왼쪽 어깨의 인대가 늘어났던 것이다.
복도에서 뛰는 것은 금지였기에 당연히 남학생의 잘못이었지만 그는 잘못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그대로 무시한 채 지나치려고 했다고 한다.
보통 여자애라면 겁을 먹거나 눈물을 글썽였겠지만 그녀는 달랐다.
오히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고릴라 녀석’이라면서 그를 도발했다.
“안 그래도 그 남학생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고릴라라는 말이었거든. 그 녀석은 제대로 열이 받았는지 냉혈의 악녀가 여자이든 간에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다는 기세로 달려들었지. 하지만 그때였어.”
냉혈의 악녀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돌진해오는 남학생을 가뿐히 피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몸을 돌리는 순간 있는 힘껏 남학생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끝이 아니었다고?”
“그래. 한 번 걷어차인 것만으로도 지옥을 경험했을 텐데 그 악녀는 무려 세 번이나 그곳을 걷어찼단 말이야!”
무엇보다 제네시드는 두 눈으로 직접 그 상황을 봤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체격이 좋답시고 사타구니를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학생은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기다리기만 해도 잠시 후 쓰나미처럼 몰려 들어올 고통에 맥을 못 추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냉혈의 악녀는 남학생이 버티고 서 있자 한 대 더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결국 남학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그녀는 확인 사살이라도 하겠다는 듯 쓰러진 그의 사타구니를 또 걷어찼던 것이다.
그런 끔찍한 짓을 벌였으면서도 냉혈의 악녀의 표정엔 일말의 변화조차 없었다. 마치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한 하찮다는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