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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15화)
Chapter.6 친구(3)
제네시드는 그 눈빛이 다시금 떠오르자 몸을 부르르 떨며 사타구니를 움츠렸다.
“으으, 정말 잔인한 여자야. 한 대로 걷어찬 것만 해도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는데 그걸 세 번씩이나 걷어차다니……. 그 남학생이 잘못했긴 했지만 세 대나 찬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
테리언이 대답이 없자 제네시드가 왜 그러나 싶어 지긋이 테리언을 바라보았다.
‘젠장, 망할 로턴 아저씨가 날 속였군!’
제네시드의 이야기를 들은 테리언은 속으로 로턴을 원망하고 있었다.
어쩐지 자기 딸을 너무 쉽게 내준다 싶었더니 이런 꿍꿍이가 있던 것이다. 로리에가 이런 성격임을 알고 있었기에 로턴은 자신이 어찌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쩐지 가슴을 마음껏 만지게 해 준다니 뭐니 한다는 게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었는데!’
하지만 딸의 아버지인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니 왠지 모르게 신빙성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철썩 같이 믿었는데 이런 최후의 한 수를 남겨 두고 있었다니!
마법사들은 하나 같이 영악하더니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로턴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상당히 출중하다고 들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제네시드는 테리언의 안색을 보고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내심 만족감을 느꼈다.
그때 돌연 테리언이 옥상의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가 보자.”
“응? 가 보자니 어딜?”
“매번 옥상 위에서 애들을 관찰하는 너라면 그 냉혈의 악녀가 주로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정도는 알 거 아냐?”
“그야 그녀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확실히 위험 지역은 다 확인해 두기는 했는데…… 너 설마 그 여자를 만나러 가 보겠다는 거야?”
제네시드는 안색이 파래지더니 그만두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테리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얘기만 들어선 확신이 안 서. 얼마나 악녀 같은지 그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해 주겠어.”
“하지만…….”
제네시드가 꺼려하는 분위기를 보이자 테리언이 괜찮다는 듯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걱정 마. 그녀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기만 할 테니까. 게다가 난 아직 학생 교사 건물 구조를 모르니까 네가 좀 도와주라.”
잠시 망설이던 제네시드는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지켜보기만 하는 거라면.”
“하하. 그래야 내가 인정한 친구답지! 자, 어서 가자고.”
테리언은 제네시드의 등을 토닥이며 먼저 옥상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제네시드는 테리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돌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는 복잡한 무언가가 담겨 있는 듯했다.
“친구라…….”
Chapter.7 테리언 찾기 대소동(1)
한편 테리언이 갑자기 사라지자 리엘로트와 클레첼은 서둘러 그를 찾기 시작했다.
‘로턴 아저씨가 그렇게 당부했는데 한눈을 팔다니……. 이래선 호위학생으로서 실격이야.’
로턴은 클레첼에게 테리언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녀석이니 꼭 그를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특히나 테리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니 한시라도 한눈을 팔아선 안 된다고까지 말해 주었다.
그런데 아주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테리언이 사라져 버렸다.
진정한 호위학생이라면 언제나 지켜 주어야 할 대상에서 눈을 떼지 말았어야 했는데 편입하기 전부터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다행인 점은 리엘로트가 아카데미 내에 친분이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리엘로트는 지나치는 학생들이 있을 때마다 테리언의 인상착의를 물어보았고 그때마다 학생들은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클레첼은 새삼 리엘로트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클레첼은 친오빠를 통해 아카데미의 귀족들이 얼마나 깐깐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클레첼은 사람을 찾는 리엘로트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 주는 학생들을 통해 리엘로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음. 그러고 보니 그런 학생을 만났었던 것 같긴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야 한 학생이 테리언을 알고 있는 듯한 눈치를 보였다.
리엘로트가 반색하며 말했다.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나요?”
“글쎄요. 리엘로트 양이 찾으시려는 학생이 제가 본 학생과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났던 장소가 학생 교사 4층 부근이었을 겁니다.”
“만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아마 삼십 분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리엘로트 일행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학생 교사의 4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테리언 님은 뭐하러 4층까지 올라가신 거지?’
학생 교사의 4층은 각종 물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용으로 사용되는 층이었다. 게다가 4층은 서로 계단이 이어져 있는 1∼3층과는 달리 학생 교사 복도의 가장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작정하고 찾지 않는 이상 찾기가 어려웠다.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설마 옥상에 가신 건가?’
거기까지 떠오르니 리엘로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이면 ‘그 녀석’이 옥상에 있을 시간.
리엘로트는 오늘은 테리언과 클레첼을 견학시켜 주기 위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클레첼 양. 옥상으로 가 보죠.”
“옥상이요? 하지만 아까 그분께서는 4층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호기심으로 4층에 갔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게다가 4층에 있는 모든 장소는 잠겨 있기 때문에 볼 것도 없고요. 물론 지금도 그곳에 있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클레첼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행여나 그 시간에 테리언이 다른 곳으로 갈까 봐 리엘로트 일행은 걸음을 바삐 했다.
그렇게 최대한 빨리 옥상에 도착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옥상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옥상 주변을 둘러보던 클레첼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없네요. 어쩐지 옥상으로 가는 길부터가 찾기 쉽지 않아 보여서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뇨. 잠시만요.”
옥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리엘로트는 이미 뭔가 수상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녀석’은 분명 이 시간대쯤이면 옥상에 있어야 했다. 설마 자신을 피해 숨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매번 이 옥상에 올라와 제재를 가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고 옥상에 올라오는 집념의 소유자였으니까.
리엘로트는 정신을 집중하더니 손을 펼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푸른 원형의 빛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클레첼이 신기해하며 말했다.
“그건 무슨 마법인가요? 마나의 흐름을 보니 상당히 정밀해 보이네요.”
“최근에 이 근처에 있었던 사람의 흔적을 찾게 해 주는 마법이에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유의 마나가 존재하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 마나를 주변에 발산시키거든요. 이 마법은 발산됨으로 인해 주변에 머물러 있는 마나를 감지하고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할 수 있죠.”
리엘로트는 그 손으로 옥상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오늘도 여기에 있었군.’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리엘로트는 이윽고 익숙한 마나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마나 상태를 보아 하니 아무래도 옥상을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그 녀석은 대부분 옥상에 있기에 자리를 떠도 그 마나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어야 하는데 정상이야.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찾다니 뭔가 이상해. 설마 그 녀석이 마나의 흐름을 지우는 마법이라도 배운 건가?’
하지만 리엘로트는 곧 그 예상을 부정했다.
그 녀석은 마법에는 일체 소질이 없는 학생이었다.
마나 구체조차 생성시키지 못하는데 하물며 마나의 흔적을 지우는 고단위의 마법을 사용할 리 없었다.
게다가 마나의 흔적도 뭔가 어설프게 지워졌다. 만약 그 녀석이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했다면 이렇게 어중간하게 지워 버릴 리가 없었다.
특히나 그 녀석은 머리 쓰는 쪽에 능통했으니 지울 생각이었다면 확실하게 지워 버렸으리라.
‘뭔가 이상해. 매번 옥상을 지키던 그 녀석이 이렇게 뜬금없이 사라질 리가 없어. 게다가 마나의 흔적이 어중간하게 지워진 것도 그렇고……. 혹시?’
어젯밤에 만났던 테리언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속박의 밧줄이 원인 모를 힘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던가.
‘그 변태남.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힘을 숨기고 있어.’
만약 테리언이 가진 힘이 마나를 지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이 현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여태까지 마나 그 자체를 없애 버릴 수 있다는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예 흡수해 버린다면 모를까 마나는 그 어떠한 경우라도 없애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리엘로트 님?”
리엘로트가 생각에 잠겨 있자 클레첼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아아, 죄송해요. 잠시 생각 좀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계속 찾아보실 거예요?”
“물론 그래야죠. 그 변태남이 또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요. 일단 탐지 마법을 써서 추격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예요.”
탐지 마법을 통해 그 녀석이 흩뿌려 둔 마나의 흔적을 따라간다면 그 녀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테리언도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막연히 찾아다니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 * *
“그래서 여기에서 기다리다 보면 나타난단 말이지?”
“확실해. 특히나 냉혈의 악녀의 경우는 내가 신경 써서 이동 루트와 시간을 파악해 뒀으니까.”
테리언이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전략전술을 공부한 사람 답구만. 처음 봤을 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더 대단해.”
“쳇, 내가 대단한 수준이면 넌 엄청난 수준이라고. 난 그나마 바라보는 것밖에 못하는 겁쟁이지만 넌 직접 행동으로 나설 정도니까.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테리언은 자신감을 가지라는 듯 제네시드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야. 보통 사람은 일일이 누가 언제 어디서 지나다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런 걸로 따지면 내가 그렇게 그녀에 대한 무서움을 알려 줬는데도 그녀를 만나 보겠다고 하는 너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그러자 문득 테리언이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정말 그 냉혈의 악녀가 그렇게도 무서운 거야?”
“하아, 역시 말로만 해서는 너도 믿겨지지 않는가 보구나. 하긴, 말로만 설명해선 납득하기 힘들겠지. 그녀를 처음 보는 이들도 초반엔 그녀의 순진한 외모에 전혀 악녀처럼 느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너도 그녀가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게 되면…….”
거기까지 말하던 제네시드는 갑자기 테리언의 머리를 누르며 몸을 낮췄다. 테리언이 왜 그러냐고 물으려고 하자 제네시드가 검지을 입술에 대 보였다.
제네시드의 긴장한 표정을 본 테리언은 곧 그 의미를 알아채고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제네시드가 작게 속삭였다.
“드디어 그녀가 왔어.”
제네시드가 주시하고 있는 쪽을 바라보던 테리언은 이윽고 한 소녀가 맞은편 코너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연보랏빛을 띤 검은 진한 파랑색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