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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16화)
Chapter.7 테리언 찾기 대소동(2)


틀림없는 로턴이 보여 주었던 딸의 사진과 동일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로턴과 같은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을 하고 있었으니 확실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실물이 좀 더 체격이 좋다고 해야 하나. 사진 속에서의 로리에는 약간 앳된 몸매였다면 실물은 어느 정도 성숙해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또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 바라보고 있는 로리에는 상당히 눈썹을 찌푸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제네시드가 말한 대로 제법 악녀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냥 봐서는 모르겠단 말이지.’
테리언은 무언가 아쉬웠는지 연신 턱을 매만졌다.
‘역시 로리에가 뭔가 반응하는 걸 봐야 하는데 괜히 내가 나서서 까불었다가 그 남학생처럼 사타구니를 걷어차여서 성불구자가 되는 건 죽어도 사양인데…….’
아무리 일대일을 상대로는 자신 있는 테리언이라도 그곳을 걷어차이는 것은 끔찍했기에 감히 도전해 볼 수 없었다.
또한 서로 만난다 하더라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곤란했다. 자신은 로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로리에는 자신을 모를 테니까.
이른바 전혀 남남인 상태로 만나는 건데 뜬금없이 말을 걸려고 하면 분명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할 게 빤했다.
당연히 낯짝이 두꺼운 테리언에겐 그런 세세한 부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별로 친하지 않거나 모르는 사이라 하더라도 한 번 마음먹었으면 될 때까지 부딪혀 보는 것이 테리언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실패의 결과가 사타구니를 걷어차이는 것이라면 절대로 하기 싫었다.
가슴을 만지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 수 있는 테리언이었지만 그건 사전 조사를 다 끝내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게다가 생각해 봐라. 만약 당신이 남자이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처지라면 칼로 베일 수 있는 상황을 도전해 볼 텐가? 아니면 사타구니를 걷어차일 수 있는 상황을 도전해 볼 텐가?
‘어떡하지?’
잠시 고민하던 테리언은 문득 제네시드를 바라보았다.
순간 제네시드를 미끼로 로리에의 반응을 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지간히 로리에가 무서웠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경계를 멈추지 않고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제네시드는 자신을 위해 이렇게 로리에가 나타나는 장소까지 자신을 인도해 주었다.
테리언 역시 제네시드와 같이 그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
게다가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의리를 저버리고 싶진 않았다.
“어?”
제네시드를 바라보며 잠시 갈등하던 테리언은 문득 제네시드의 안색이 바뀌었음을 눈치챘다. 표정을 보아 하니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왜 그러나 싶어 로리에 쪽으로 시선을 돌린 테리언의 시야에는 어느 샌가 나타난 세 명의 남학생이 서 있었다.
“크크, 드디어 납시었구만. 냉혈의 악녀.”
그 중 유난히 반듯한 옷차림을 한 남학생이 깐죽거리며 로리에에게 다가왔다.
로리에는 그 남학생을 바라보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르갈.”
그러자 세르갈의 양옆에 서 있던 두 명의 남학생이 히죽 웃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한 명은 양옆으로 목을 꺾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손의 관절 마디마디를 꾹꾹 누르면서 뚜둑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딱 봐도 고의적으로 겁을 주려는 행동이었다.
세르갈이 말했다.
“네 년이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무슨 용무지?”
“글세, 너도 눈치가 있다면 무슨 용무인지 짐작이 갈 텐데?”
세르갈의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남학생이 끼어들며 말했다.
“감히 건방지게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 세르갈 도련님의 청혼을 거절했겠다? 귀족도 아닌 주제에 건방지긴.”
“어떡할까요? 도련님. 바로 처리할까요?”
그 두 명의 남학생은 다름 아닌 세르갈의 호위병이었다.
귀족의 자식들은 정체불명의 이들에게 노려지기 쉬웠기에 행여 모를 위협으로부터 호위병을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의미가 어느 샌가 변질되어 지금의 호위병은 다른 이들에게 힘을 행사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호위병의 말에 세르갈이 입꼬리를 말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벌써부터 손을 봐주면 곤란하지. 그보다 이 주변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없도록 잘 처리했겠지?”
“물론입니다. 마음 놓고 볼일 보시면 됩니다, 도련님.”
로리에는 한 발짝 물러서더니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로리에의 바닥 아래에 푸른 마법진이 생겨났다.
숙련된 마법사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동 시전 마법진’이었다.
본래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선 일일이 주문을 외워야 하지만 자동 시전 마법진 위에 선다면 생각만 하는 것으로 곧바로 시전이 가능했다.
이른바 시전 시간을 없애 주는 마법사들이 애용하는 마법진 중 하나였다.
다만 단점은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고 시전자의 경지가 부족하면 고단위 마법까지는 즉시 시전이 불가능했다.
아니나 다를까, 로리에가 즉시 시전 마법진을 발동시키자 세르갈 무리들이 일순간 움찔했다. 저 마법진이 깔린 순간부터 언제 어디서 갑자기 마법이 시전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세르갈은 전에도 한 번 자신의 마법 실력을 믿고 들이댔다가 된통 당한 기억이 있었기에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하지만 마법 실력 면으로는 로리에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세르갈은 이번엔 철저하게 준비를 해 왔기에 전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일순간 당황했던 세르갈은 곧 평정을 되찾고 말했다.
“너의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알고 있어. 네가 그렇게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것도 그 마법 실력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 자만이 결국 화를 부르게 될 거다!”
세르갈은 비릿한 조소를 흘리더니 재빨리 주머니를 뒤적거려 정체불명의 약병을 꺼내 들었다.
세르갈이 수작을 부린다는 것을 눈치챈 로리에는 재빨리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지만 세르갈은 어림없다는 듯 약병을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푸슈우우―
약병이 깨지자 병 안에 들어 있던 액체가 빠르게 증발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거무스름한 연기가 피워 오르더니 세르갈 무리와 로리에 일대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슈유우웅―
“!”
그와 동시에 로리에의 바닥 아래 생성되어 있던 즉시 시전 마법진이 픽 하고 꺼져 버렸다.
로리에는 당황하며 다시 만들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체내의 마나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 모습을 보던 세르갈이 폭소를 하며 외쳤다.
“크하하하, 역시 그가 말한 대로야! 용돈을 전부 탕진해 가면서 산 보람이 있었군 그래!”
“무슨 짓을 한 거지?”
마법이 써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로리에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세르갈을 노려보았다.
세르갈은 혀를 차면서 검지를 들어 보이더니 양옆으로 저었다.
“쯧쯧.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진짜 중요한 건 넌 이제 나한테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는 거지.”
로리에는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더니 비웃음을 날렸다.
이런 상황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리에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기세였다. 게다가 로리에가 짓고 있는 가소롭다는 표정은 세르갈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내가 그럴 거 같아?”
“짜증나게 만드는 년이군. 이제 곧 그렇게 될 거다! 할프, 조텐. 처리해!
그러자 기다렸다는 세르갈의 옆에 서 있던 할프와 조텐이 로리에를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세르갈이 깨트린 약병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일정 시간 주변 일대의 마나의 흐름을 굳어 버리게 만드는 약이었다.
로리에의 주특기는 마법. 그런 그녀의 주특기가 현재는 봉인 되었으니 할프와 조텐은 이기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여겼다.
“크흐흐흐. 도련님의 눈 밖에 난 것을 후회하라고!”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할프였다.
로리에가 여자들 중에서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한참이나 왜소해 보였다. 특히 키가 2m에 달했던 할프는 별 다른 방어 동작도 없이 무턱대로 로리에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리 악녀라 불려도 어차피 가녀린 몸매를 가진 여자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판단이었다.
할프가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그를 주시하던 로리에는 돌연 달려오던 할프의 오른팔을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할프가 달려들던 속도를 이용하여 그대로 그의 오른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더니 반대편으로 업어 쳤다.
철퍽!
할프의 육중한 몸매가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나뒹굴자 세르갈이 경악했다.
“커억!”
할프는 등바닥이 제대로 지면에 충돌했는지 숨이 탁 막히는 것을 느꼈다.
기세를 몰아 곧바로 달려들려던 조텐은 할프가 맥없이 당하자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 로리에의 눈빛이 빛남과 동시에 조텐의 빈틈을 노렸다.
콰직!
로리에는 조텐이 당황하는 사이 재빨리 그의 오른쪽 다리를 그녀가 신고 있던 구두의 굽으로 내려찍었다.
“끄아아악!”
조텐은 성악가 뺨치는 비명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발등을 움켜쥔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얼마나 세게 내리찍었는지 굽으로 내려찍힌 조텐의 발등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두 명의 거한이 눈 깜짝할 새에 당해 버리자 여유 만만하던 세르갈의 안색이 파래졌다.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명하진 않았지만 할프와 조텐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힘 서열로 따지면 10위 안에 들 정도였다.
만약 그들이 대놓고 활보를 했다면 충분히 별명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괴력을 지닌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저렇게 허무하게 쓰러졌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로리에는 헝클어졌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더니 세르갈을 바라보았다.
“내가 마법에만 능통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어떻게 그런 몸으로 할프와 조텐을 쓰러트리다니…… 분명 무슨 수를 쓴 거로구나 이 악녀!”
로리에는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흘리며 세르갈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과 마주치자 세르갈을 포함해 제네시드와 테리언 역시 본능적으로 몸이 흠칫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눈을 통해 전류가 흘러 들어오는 듯한 서늘한 감각이었다.
로리에가 싸늘한 투로 말했다.
“수를 쓴 거라면 네 쪽이겠지. 마법을 쓰게 하지 못했다는 점은 제법 놀랐어. 하지만 여자를 상대로 그런 야비한 수법을 쓰다니 정말 쓰레기만도 못한 놈이구나?”
“뭐라고! 지금 날 모욕하는 거냐!”
“게다가 자신은 무서워서 나서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하는 짓이 호위병을 대신 보내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계집아이 보다 못한 놈이네?”
“그 입 닥치지 못해? 그 이상의 모욕은 체이크 가문의 이름을 걸고 더 이상 참지 않겠다!”
“여자를 상대로 그런 비열한 짓을 해 놓고도 당당하게 가문의 이름까지 걸다니. 너 정말 최악이구나? 그런 찌질한 성격을 보아 하니까 여자 친구도 없을 거 같네. 아마 단 한 번도 청혼도 못 받아 봤을 거 같은데…… 내 말 맞지?”
“닥쳐!”
안 그래도 세르갈은 다른 귀족의 아가씨들에게 청혼장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아 상당한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다.
요 근래 귀족 도련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이 바로 청혼장 개수였다.
심지어는 누가 더 귀족 아가씨들에게 청혼장 개수를 받았는가에 따라 서열을 나누기도 했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어이없다고 여기겠지만 귀족 도련님들 사이에선 상당히 유행하고 있는 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