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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17화)
Chapter.7 테리언 찾기 대소동(3)


결국 이성을 잃어버린 세르갈은 눈이 뒤집히더니 괴성을 지르며 로리에를 향해 달려들었다.
차라리 할프의 경우에는 거구였기에 위압감이라도 느껴졌지, 그에 비해 세르갈은 말 그대로 형편없었다.
“쯧.”
로리에는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세르갈을 보며 혀를 찼다.
할프도 가볍게 쓰러트린 그녀였기에 하물며 그녀와 체격이 비슷한 세르갈은 상대조차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전과 달리 로리에는 할프의 경우처럼 업어치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달리 피하려는 자세조차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세르갈이 범위 안에 들어오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세르갈의 사타구니를 걷어차 버렸다.
“허어어억…….”
로리에의 발등이 완벽하게 세르갈의 사타구니에 적중하자 세르갈이 힘 빠지는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줄곧 바라보던 제네시드와 테리언 역시 그 모습을 보며 마치 자신이 얻어맞은 것처럼 사타구니를 움츠렸다.
세르갈은 하반신으로부터 서서히 근육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그래도 오기는 있었는지 끝까지 이를 악물며 버팅기고서는 로리에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세르갈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실수였다.
퍼억!
“…….”
결국 결정타로 사타구니를 한 번 더 걷어차이고 나서야 세르갈은 정신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세르갈은 점점 초점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힘없이 고꾸라졌다. 게다가 기절하면서 오줌까지 지려 버린 세르갈의 모습은 귀족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제네시드는 마른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으으. 역시 냉혈의 악녀다워. 한 번 찬 것도 충분히 치명타인데 그걸 또 걷어차다니. 세르갈이 잘못했는데도 어째서인지 그가 불쌍해질 정도야.”
제네시드는 공포에 젖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시 한 번 로리에의 무서움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 이제 충분히 알았겠지 테리언? 저 여자가 왜 냉혈의 악녀라고 불리는지.”
테리언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로리에를 바라보았다.
테리언 역시 로리에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았다. 아니, 깨달은 걸 넘어서 확실히 그의 뇌 내에 각인될 정도였다.
여태까지 테리언은 이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없다고 느꼈다.
동화에서 자주 나오는 유령이든 성질 사나운 용병들이든 테리언의 눈에 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대륙에 이름난 기사인 카르반과 왕녀기사단을 상대로도 위축되지 않았던 그.
그런 테리언이 난생 처음으로 공포라는 것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공포심은 단순히 ‘무섭다’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남자라면 누구나 느낄 원초적이며 절대적인 두려움.
남자에겐 또 하나의 심장이라 불리는 그곳을 저렇게 표정 하나 안 바뀌고 걷어차 버리다니!
그 순간 제네시드와 테리언의 귓가에 소름 끼치는 한마디가 들려왔다.
“거기 수풀 너머로 숨어 있는 녀석. 좋은 말로 할 때 나오는 게 좋을 거야.”
할프와 조텐이 세르갈을 끌고 도망치자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리에가 수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한 말이었다.
제네시드와 테리언은 로리에가 틀림없이 자신들을 지적한다는 것을 깨닫자 화들짝 놀랐다.
분명히 완벽하게 숨었을 텐데 어떻게 알아낸 걸까.
그러나 그들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거기 수풀 너머로 망원경 삐져나와서 다 보이거든?”
제네시드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자신의 망원경을 바라보았다. 망원경이 워낙 길다 보니 어느 샌가 망원경 머리 부분이 수풀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던 것이다.
“테리언, 어떡하지?”
제네시드가 울상이 되며 테리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테리언 역시 로리에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았기에 두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만약 자신들이 여기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들 역시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다.
남자의 그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어차던 그녀였으니 자신들 역시 그렇데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제네시드, 미안한데 그 망원경이 필요할 것 같다.”
“뭐, 뭘 하려고?”
“살고 싶으면 어서 내놔!”
제네시드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테리언은 허겁지겁 제네시드의 망원경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하늘을 향해 집어던졌다.
“지금이야!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튀어!”
로리에의 시선이 망원경으로 향하자 테리언이 먼저 수풀에서 튀어나오더니 전력으로 도망쳤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제네시드도 테리언을 따라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내 망원경이!”
“시선을 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아무리 그녀라도 망원경을 어떻게 하진 않을 테니까 나중에 확인하러 가자고!”
“하지만…….”
제네시드는 미련이 남았는지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잠시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던 로리에가 어느 순간 갑자기 속력을 내더니 그들을 향해 추격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으아아악!”
테리언은 제네시드의 비명의 의미를 알아채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구두를 신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리에는 놀라운 속도로 그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다리에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르갈의 사용했던 약품의 반경에서 벗어나니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잠깐만 기다려! 나 좀 봐봐!”
어느새 10m까지 거리를 좁혀 온 로리에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분명 엄청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등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원초적인 공포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그와 동시에 테리언은 전신의 근육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세르갈을 노려보던 로리에의 싸늘한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았다.
만약 지척에서 그런 눈빛과 마주하게 된다면 온 몸에 힘이 풀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돌아봐서는 안 된다!
잡히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
‘잡힐까 보냐!’
이래 봬도 달리기 하나는 자신 있던 테리언은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미친 듯이 달려 본 적도 없던 것 같다고 생각한 그였다.
“으악!”
철푸덕!
반면 운동 면에선 그리 좋지 못했던 제네시드는 끝내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테리언도 그가 넘어지는 소리를 들었으나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어서 그대로 달릴 뿐이었다.
‘미안하다, 제네시드! 그래도 너의 숭고했던 정신은 내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거야!’
운이 좋다면 좋았을까.
테리언의 바로 뒤에서 달리고 있던 제네시드가 넘어지는 바람에 그 뒤를 추격해 오던 로리에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멈칫해야만 했다.
그러던 사이 테리언은 이미 맞은편 코너로 돌아서 그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로리에는 곧바로 테리언이 사라진 코너로 향했지만 워낙 갈림길이 많은 곳이었기에 찾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놀랍게도 로리에의 얼굴에는 눈에 띌 정도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세르갈 일행과 상대할 때도 시종일관 무표정을 고수하던 그녀였기에 의외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잘못 봤던 걸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이목구비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뒷모습은 어쩐지 자신이 알던 어떤 이와 매우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최근에 만났던 적이 9년 전이었기에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을 테니 방금 보았던 그가 자신이 알던 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목소리도 뭔가 묘하게 달랐었지. 좀 더 남자다운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9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목소리 역시 충분히 바뀔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이맘때쯤이면 그도 슬슬 사춘기에 접어들 때니까 말이다.
“제발 살려 주세요! 전 그냥 아무 짓도 안 하고 지켜보기만 했다고요!”
고개를 숙이자 그곳에는 바닥에 널브러진 제네시드가 엉엉 울면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너, 혹시 저 남자애랑…….”
로리에가 테리언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 걸음 다가가자 제네시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으아아악! 때리지는 말아 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응?”
오해라고 설명하려던 로리에는 문득 제네시드를 통해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잠깐, 너 혹시…….”
“어라? 너는?”
로리에가 제네시드에게 막 물어보려던 찰나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다급히 달려오고 있는 리엘로트와 클레첼이 보였다.
“리엘로…….”
순간 반가운 기색을 보이던 로리에는 리엘로트의 옆에 있던 클레첼을 의식하고는 곧바로 기색을 바꾸었다.
“무슨 일이지?”
리엘로트는 한참을 뛰었는지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제네시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이 녀석이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아니. 그냥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수풀 뒤에 숨어 있었어.”
“뭐?”
리엘로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제네시드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수풀에 숨어서까지 가까이 바라보려 했다니 뭔가 이상했다. 하물며 제네시드가 로리에의 악명을 모를 리 없었다.
리엘로트가 아는 제네시드는 엄청난 겁쟁이였기에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일 리가 없었다.
리엘로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혹시 이 녀석이랑 같이 붙어 있던 사람은 없었어?”
“다른 사람…… 한 명 있었긴 했지. 하지만 도망치는 바람에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어.”
리엘로트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짐을 느끼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얼마 안 됐어. 그런데 도망친 부근이 갈림길이 너무 많은 곳이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해.”
“흐음. 다 잡았다 싶었는데…….”
리엘로트가 아쉬운 표정을 짓자 로리에가 말했다.
“혹시 그를 찾고 있는 중이었어?”
“응. 여기 옆에 있는 클레첼 양이랑 같이 아카데미에 편입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견학을 시켜 주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도중에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말이야.”
리엘로트와 로리에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클레첼은 문득 그녀들의 대화 속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리엘로트는 마주치는 이들마다 항상 대화를 나눴지만 그 느낌이 뭐랄까…… 친절하다는 이미지에 어딘가 형식적으로 대하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로리에의 대화에선 그런 형식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 그녀들은 서로 말을 놓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만난 학생들에겐 존댓말을 썼는데 말이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지금은 테리언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클레첼이 리엘로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리엘로트 님?”
“어떻게 하긴요. 아무리 도망쳐 다녀 봤자 결국 아카데미 안일 뿐이에요.”
리엘로트는 선도부장으로서 아카데미의 지리를 그 누구보다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른바 아카데미가 리엘로트의 홈그라운드라고 봐도 무방했기에 추적하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클레첼은 또 테리언이 사고를 치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감을 느꼈다.
리엘로트는 클레첼의 떨리는 눈빛을 보고는 힘내라는 듯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그때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로리에가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야. 너희들이 찾고 있는 대상이 설마 테리언이라는 남자야?”
그러자 리엘로트와 클레첼이 깜짝 놀라며 로리에를 바라보았다.
누구를 찾는지에 대해선 아직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챘단 말인가?
특히나 가장 놀란 사람은 리엘로트였다.
“네가 어떻게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야?”
리엘로트의 질문에 로리에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