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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18화)
Chapter.7 테리언 찾기 대소동(4)
그녀들의 반응으로 인해 확실해졌다.
자신이 결코 착각한 것이 아님을.
로리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려 애쓰며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그보다 그 사람을 찾는다고 했었지? 나도 같이 따라가도 될까?”
“그야 찾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지만, 넌 네 볼일 보지 않아도 되는 거야?”
“지금은 그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
리엘로트는 놀람을 감추지 못한 채 로리에를 바라보았다.
냉혈의 악녀라 불리는 그녀는 공식적으로 다른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명성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결코 그녀와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다른 이들과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늘 혼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저렇게까지 집착을 하는 대상이 있다니?
“일단 내가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본 장소까지 안내할 테니까 따라와.”
리엘로트와 클레첼은 고개를 끄덕이며 로리에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한편 리엘로트는 날이 갈수록 테리언에 대한 의문이 쌓여 가는 것을 느꼈다.
‘가르바드 가문의 자식을 호위학생으로 두고 있고 냉혈의 악녀라 불리는 로리에와도 뭔가 아는 사이라니?’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수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땐 단순한 변태남인 줄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2년 이상 선도부장을 맡아 온 그녀의 특유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테리언의 편입으로 인해 프로티나 아카데미에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Chapter.8 오해(1)
시끌벅적했던 견학 소동이 끝이 났다.
리엘로트는 선도부원의 대다수를 동원해서 수소문까지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하교시간 때까지 찾지 못했고 합류했던 로리에는 기숙사 통금시간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며 돌아갔다.
리엘로트의 경우에는 선도부장의 권한으로 좀 더 학생 교사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애초에 제네시드와 같이 있었을 때와 달리 독단으로 행동하는 테리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테리언에겐 마나의 흐름이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맨 처음 옥상으로 향하던 테리언을 발견한 목격자 이후로는 그 누구도 테리언을 보았다는 이가 없었다.
그야 그럴 것이 맨 처음엔 테리언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나 로리에에게 쫓긴다는 신세가 되자 최대한 몸을 숨긴 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움직이다 보니 목격자조차 쉽게 발견할 수 없던 것이다.
결국 해가 질 때까지 그 누구도 테리언을 찾지 못했다.
하루 종일 찾았는데도 테리언이 보이지 않으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었다. 하지만 손님 숙소로 돌아온 클레첼와 리엘로트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혹시 숙소에 돌아오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손님 숙소로 돌아오니 그곳에는 형편 좋게 잠들어 있는 테리언이 있던 것이다.
‘로턴 아저씨가 괜히 그렇게 충고를 해 주신 게 아니었구나.’
테리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황당한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으니 항상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키게 만들어 놓고 태평하게 자기 혼자 숙소로 돌아와서 잘 수 있다니!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제대로 견학은 못했지만 그래도 아카데미의 지리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놀랐어. 설마 그분이 로턴 휴스 님의 따님이셨을 줄이야.’
점심시간에 테리언을 찾아다니는 것을 잠시 멈추고 식사를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찾아다니는데 열중하다 보니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클레첼과 로리에는 서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던 와중 클레첼은 로리에의 성을 듣고서는 로턴과 같은 성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싶어 로턴을 아냐고 물어 보니 놀랍게도 로리에는 로턴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러다 어느새 로리에와 편히 말문을 틔게 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로턴이 테리언을 편입시키기 위해 수도에 왔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굉장히 들떠 보였다.
뭔가 오늘 하루는 굉장히 삽질을 한 기분이었지만 후회는 들지 않았다.
힘은 들었지만 덕분에 리엘로트와 로리에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보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클레첼은 별안간 몸을 일으키며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식히고 나니 돌연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손님 숙소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날. 우연히 수상한 자의 뒤를 밟다가 자신과 연관된 모종의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들키지 않았겠지?’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도망치긴 했지만 로리아나는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였다. 물론 아무리 수준 높은 마법사라도 자신이 마음먹고 기척을 숨긴다면 대마법사라도 찾기가 힘들 정도니 알아채진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와야겠어.’
그래도 자신과 연관된 일이라는 것을 안 이상 그대로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클레첼은 단단히 옷을 챙겨 입으며 숙소를 나섰다.
혹시나 싶어 테리언의 숙소에 가 보니 아직도 그는 꿈나라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테리언이 잠든 모습을 확인한 클레첼은 곧바로 숙소를 나서 연금학과의 건물의 뒤편으로 향했다.
‘이쯤이었나?’
처음 로리아나가 숨겨진 벽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땐 단순히 마법을 시전해 문을 여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마법을 시전 하는 순간 마나의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가 마법을 시전 한 것이 아닌 어떤 장치를 사용해 문을 열었다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연금학과의 벽면을 살펴 보니 예상대로 한 부분만 묘하게 벽돌의 이음새가 달리하는 부분이 있었다.
처음 건물 바깥에서 빠져나올 때도 벽 이음새가 다른 부분이 스위치였으니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리라.
드르륵.
특이하게 생긴 벽의 이음새 부분에 힘을 줘서 누르자 벽돌이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벽면에 마법진이 생기더니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생겼다. 처음에 건물 안에서 바깥으로 나갈 때와 같은 방법이었다.
‘역시!’
클레첼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짐을 느끼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저번처럼 어두컴컴했지만 이번에는 신체강화술로 시야를 밝히진 않았다.
어차피 외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벽면에 손을 짚으면서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 정도 걷자 저번과 마찬가지로 문 너머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저번에는 비스듬히 문이 열려 있었다면 오늘은 아예 문이 닫혀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문에 조심스레 귀를 가져다 댔지만 이상하게도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리를 비운 걸까?’
신체강화술에 의존하지 않은 순수한 감각으로만 느낀 것이기에 안에 사람이 없다고 확실히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신체강화술을 쓰자니 또 자고 있는 테리언을 깨워서 후유증을 가라앉혀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 그래도 앞으로도 매번 테리언에게 신세를 질 텐데 가급적이면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 저번에 내가 엿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 아니겠지?’
그러나 클레첼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침입의 사실을 눈치챘다면 뒷마당에 들어오는 비밀 출입구부터 당장 어떻게 해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딱히 조치해 둔 것이 없다는 것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는 뜻이 아닐까.
‘괜히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오늘은 돌아가자.’
안에 아무도 없다면 들어가서 무슨 짓을 꾸미는지 확인해 볼 기회일지도 몰랐다. 다만 그들의 계획은 아직 초기 단계라는 것을 알았으니 벌써부터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괜히 초반부터 섣불리 나섰다가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었기에 클레첼은 미련 없이 돌아서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직 때가 아니다.
좀 더 확실하게 그들의 음모를 저지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 * *
한편 그 시간.
학생 기숙사에서 리엘로트와 로리에는 각자의 침대에 걸터앉아 서로 응시하고 있었다. 철혈의 소녀라 불리는 리엘로트와 냉혈의 악녀라 불리는 로리에는 서로 룸메이트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리엘로트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란 게 뭐야?”
로리에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이윽고 대답했다.
“저번에 만났던 그 테리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려주고 싶은 게 있어.”
사실 그녀들이 이렇게 직접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리엘로트는 선도부 일로 바빠서 그녀가 일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왔을 땐 로리에는 항상 잠에 빠져든 상태였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날 때도 리엘로트가 먼저 일어났기에 아카데미에서 간간히 마주치는 것 외에는 이렇게 맘 편히 대화할 때가 없었다.
아카데미에서 마주친다 하더라도 그녀들은 필요하지 않다면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그녀들이 서로 쓰고 있는 거짓된 가면을 지켜 주기 위해서였다.
프로티나 아카데미에서 여학생은 대체적으로 무시 받거나 우습게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아카데미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대체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달랐다.
리엘로트의 경우엔 선도부장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그 어떤 대상으로라도 기가 죽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그녀에게 붙여진 가면이 ‘철혈의 소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면은 로리에에게도 있었다.
로리에는 편입 초기에 연약하고 만만해 보이는 외모로 편입 당시 다른 이들의 악질스러운 괴롭힘을 받았다. 심지어는 성추행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기에 그녀 역시 가면을 쓰기로 했다.
일부러 다른 이들에게 까칠하고 싸늘하게 대하여 주위의 접근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 어떠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결코 감정을 보이는 일이 없기에 냉혈의 악녀라는 가면이 주어졌다.
자신의 나약함을 가려 주는 거짓된 가면.
그 가면만 쓰면 다른 이들에게 무시 받거나 괴롭힘 당할 일은 없다. 하지만 마음속 한편으로는 이 거짓된 가면이 언제 들통 날지 몰라 항상 불안에 떨고 있었다.
우연히 서로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안 리엘로트와 로리에는 동지를 만났다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핥 아주고 공유하며 위안을 느꼈다. 반면 서로의 거짓된 가면을 지켜 주기 위해 보는 이의 눈이 많을 땐 철저하게 서로 모르는 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