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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19화)
Chapter.8 오해(2)


그녀들이 쓴 가면은 성질상 서로 성향이 맞지 않았기에 가까이 있어선 안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던 로리에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실 그 테리언이라는 사람은 내가 로렌스카 마을에서 살았을 시절에 만났던 사람이야. 리엘로트 너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지? 로렌스카 마을의 방화 사건에 대해서.”
“아아. 기억나. 예전에 너랑 대화할 때 네가 알려 줘서 알고 있어. 목숨의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한 사람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설마?”
리엘로트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로리에를 바라보자 로리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때 리엘로트는 누가 구해 주었냐는 말에 마을에 살았을 때 친하게 지낸 오빠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테리언 오빠가 아니었더라면 난 벌써 불타는 잔해에 깔려 죽었을지 몰라. 아직 그 날에 대한 은혜를 갚지 못해서 매번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어.”
과거 로턴의 가족은 로렌스카 마을에 살고 있었다.
로턴이 일하는 곳이 수도에 있었기에 부득이하게도 가족과 같이 지낼 시간이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언젠간 시간이 나면 이주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 불의의 사고로 인해 집에 불이 났다.
때마침 그 상황에는 아내도 잠시 집을 비웠던 상태였고 집안에는 오로지 어린 로리에밖에 없었던 상황. 그 당시 테리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로리에는 진즉에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로턴은 이 일에 대해서 자신의 잘못이라 판단했다.
매번 가족의 곁을 지켜 주지 못하고 떠나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급히 수도로 이주해 버렸다. 적어도 수도 내에서라면 불이 나더라도 로렌스카 마을과 달리 금방 구원의 손길이 뻗칠 수 있을 테니까.
로턴이 왕궁마법단을 그만둔 이유도 사실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좀 더 가족의 곁을 지켜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그날 이후 갑자기 이주를 해 버리는 바람에 테리언 오빠와 만날 수 없었어. 언젠가 반드시 꼭 보답을 하겠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버지는 수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서 언제 쯤 테리언 오빠와 재회할 수 있을까 고대하고 있었는데…….”
아카데미에서 보았던 남자가 테리언이라는 것을 확신했을 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미칠 듯이 반가웠는데 어째서인지 테리언은 그녀와 마주친 순간 도망가 버렸다.
사실 오래 전부터 로리에는 테리언도 같이 수도에 살았으면 했었다. 그리고 아카데미도 같이 다니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턴은 일부로 테리언을 수도에 데리고 오지 않았다. 대신 전에 로렌스카 마을에서 살던 집에 테리언을 재웠다고 한다.
로리에는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로턴은 끝내 알려 주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몰랐지만 아버지가 내린 결정이었으니 그러려니 했던 것이었다.
“리엘로트, 설마 테리언 오빠가 날 잊어버린 건 아닐까?”
“아냐. 그건 아닐 거야. 애초에 너를 몰랐다면 널 훔쳐보거나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왜 도망가 버린 걸까?”
“혹시 그동안 안 본 사이 네가 너무 예뻐져서 부끄러운 나머지 도망간 건 아닐까?”
리엘로트가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로리에가 얼굴이 빨개지더니 당황한 듯 헛손질을 했다.
“예, 예뻐졌다니 그게 무슨…….”
“하하.”
로리에의 근심을 풀어 주기 위해 애써 웃어 보였지만 리엘로트 역시 걸리는 부분이 있긴 했다.
분명 그때 당시 수풀에는 제네시드와 테리언이 함께 있다고 했다. 특히 제네시드는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정보들을 자신만큼이나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만약 그가 로리에의 악명에 대해 발설했다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리엘로트는 걱정 말라는 듯 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 내일 내가 테리언 님을 불러서 만나 보면 되잖아? 사정을 들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

* * *

편입 날이 다가왔다.
그사이 잠깐 아카데미에 들른 로턴은 당분간 개인적인 사정으로 바빠진다는 말과 함께 일이 끝나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로리에 관련 일로 상당히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한 테리언은 당장이라도 그에게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로턴을 통해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로 인해 결국 얘기하지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곁에서 떨어지시면 안 돼, 알겠지 테리언? 그때 견학 소동 때처럼 멋대로 도망가면 다음엔 못 도망치게 24시간 팔짱을 끼고 돌아다닐 거니까.”
“그건 적극적으로 사양하도록 하지.”
테리언은 나른한 표정으로 양 두 팔을 목 뒤로 깍지를 낀 채 학생 교사로 향하고 있었다.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테리언의 모습을 보며 클레첼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럽기도 했다.
만약 테리언마저 부들부들 떨면서 긴장하고 있었다면 자신은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테리언의 긴장감 없는 얼굴을 바라보자니 왠지 모르게 불안해하는 자신이 바보 같다고 여겨졌다.
“그나저나 무슨 아카데미 교복이란 게 이렇게 갑갑한 거냐.”
“글쎄?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클레첼이 봐도 확실히 옷 디자인이 갑갑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막상 입어 보니 덥기는커녕 통풍도 잘 되고 오히려 시원했기에 별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반면 테리언은 아예 멱살을 움켜쥐며 옷을 펄럭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여름이라서 더워 죽겠는데 통풍조차 안 되는 옷이니 미칠 지경이었다.
테리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문득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뭐야? 쟤네들은 이 날씨가 덥지도 않은 거야?’
이상하게 그들의 모습에선 일체 덥다는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중 여학생들은 갑갑해 보이는 긴 양말까지 신어 놓고선 땀은커녕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클레첼 양, 오셨군요. 그리고 테리언 님도…….”
학생 교사 출입구 부근에 기다리고 있던 리엘로트가 반기며 테리언 일행에게 다가오다가 테리언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테리언의 옷차림이 눈에 띌 정도로 땀에 젖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리엘로트가 놀라며 물었다.
“무슨 일이시기에 그렇게 땀을 흘리시는 거예요?”
“이렇게 갑갑한 옷을 입고 있는데 더운 게 당연한 거 아냐? 안 그래도 여름 날씨라 더워 죽겠는데 이런 교복을 꼭 입어야 하는 거야?”
“아카데미 수칙이라 어쩔 수 없어요. 그보다 뭔가 이상하네요. 혹시 옷에 걸려 있는 냉난방기능 마법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요?”
“마법이라고?”
테리언이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테리언은 자신의 신체가 마나를 거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 마법을 파훼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마법을 이로운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없애 버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는 마나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클레첼의 마나 응고 현상을 풀어 줄 수 있는 것도 테리언이 가진 힘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 신체에 직접적으로 닿는 교복에 마법이 걸려 있다면?
테리언은 리엘로트에게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처음엔 믿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결국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내 속박의 밧줄을 아무런 동작도 없이 소멸시킨 게 그런 힘을 가지고 있어서였구나.’
다만 정말 그런 힘이 존재하다니 지금 당장으로선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본래라면 자동 냉난방 기능으로 시원함을 유지해야 할 교복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하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리엘로트가 말했다.
“어쩔 수 없으신 상황이니 일단은 남방만 입도록 하세요. 원래는 교칙 상 교복을 전부 착용해야 하지만 테리언 님은 특별한 경우니까 선도부장의 권한으로서 허락해 드릴게요.”
“아아, 고마워.”
테리언은 기다렸다는 듯 웃옷과 조끼를 벗어 어깨에 걸친 채 학생 교사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 모습이 딱 봐도 불량학생처럼 보였기에 복도를 지나다니는 내내 다른 학생들의 눈초리를 받았다.
“앞으로 이 반이 테리언 님이 다니실 교실이에요.”
한참 동안이나 교실을 지나치던 리엘로트가 이윽고 멈춰 서며 하는 말이었다.
리엘로트 뒤에 있는 교실 문의 윗머리 부분에 달린 팻말을 바라보니 ‘F반’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테리언이 팻말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자 리엘로트가 설명을 덧붙였다.
“오해가 있으실 거 같아 미리 말씀드리자면 모든 학생은 전부 F반에서부터 시작한답니다. 그렇게 해서 차근차근 성적을 올리면 좀 더 높은 등급의 반으로 이동하는 방식이에요.”
“그렇군. 그럼 F반이 최하라면 최대 높은 등급인 반은 A반인가?”
“네, 보통은 그렇지요. 하지만 예외적으로 특별한 학생을 따로 선별하여 가르치는 S반도 있어요.”
“S반?”
테리언이 흥미롭다는 기색을 내보였다.
“네, S반은 조금 달라요. 뭐랄까, F반부터 A반까지는 매 분기마다 보는 시험을 통해 좋은 성적을 거두면 언젠간 진급할 수 있지만 S반은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거든요.”
성적과는 별개로 남들과는 차별화된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반이 바로 S반이었다.
“참고로 덧붙여 견학 소동 때 테리언 님이 만나셨던 그 제네시드라는 학생도 S반 소속이에요.”
“뭐? 걔가?”
테리언은 깜짝 놀랐다.
여자를 관찰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녀석이 S반이라니?
리엘로트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S반은 F부터 A반의 학생들과는 달리 정규 수업을 듣지 않아도 돼요. 그저 매 분기마다 자신의 능력을 검증해 보임으로서 합격점만 받으면 되는 것이지요. 그 외에는 전부 자유 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오오. 뭐야, 정말 끝내주는 반이잖아? 실컷 놀 수 있는 반이라니. 그거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어?”
테리언이 흥분하며 물었지만 리엘로트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얼핏 들으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S반은 정말 남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고 느낄 정도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또한 S반으로 선정된 학생들은 불규칙적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의뢰해 오는 일을 수행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으니 결코 놀고먹는 반이 아니에요.”
“의뢰라니 그건 또 뭐야? 그런 건 왜 하는데?”
“거기까지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간단하게만 설명하자면 아카데미 스카우트 같은 거예요. S반으로 진급할 경우 자동으로 가입되도록 되어 있죠. 아카데미 스카우트는 우리 아카데미의 이름을 달고 다른 나라에 출장을 가 의뢰를 완수하는 거죠. 왜 하냐고 물어보셨죠? 특출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니 아카데미에서 썩힐 수 없지 않나요? 그 재능을 실전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고 다른 나라에게 우리 아카데미의 위상도 드높이는 것이니까요.”
“흐음.”
테리언은 턱을 매만지며 리엘로트의 이야기를 듣다가 돌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클레첼은 뭔가 테리언이 또 사고를 칠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반면 리엘로트는 테리언이 미소를 짓기 전 교실 쪽으로 몸을 돌렸기에 그 미소를 보지 못했다.
다만 선도부장 특유의 감각으로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끼며 테리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