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프리크1권(20화)
Chapter.8 오해(3)
* * *
F반에 편입하긴 했지만 딱히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의 반은 성적이 높으면 높은 반에 올라갈 수 있는 반면 오히려 성적이 안 좋으면 낮은 등급의 반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워낙 F반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학생들이 많아 테리언의 편입에도 그리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단지 처음 보는 얼굴이라 잠시 관심이 쏠렸을 뿐이었다.
게다가 테리언은 현재 교복도 제대로 착용하지 않고 남방 차림이었으니 겉으로만 볼 땐 완전히 불량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오려는 학생조차 없었다.
오히려 주 관심사라면 테리언의 호위학생으로 들어온 클레첼이었다.
테리언은 여성의 미모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클레첼은 일반적인 남학생들의 시선에선 상당히 귀여운 축에 속했다.
그때 한 남학생이 클레첼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클레첼이라고 했던가? 몇 살이야?”
“저, 저요? 올해 17살이요.”
“헤에. 나랑 동갑이네? 어디서 살다 왔어?”
“그러니까……”
“아까 남자애랑 같이 들어오던데 그 남자랑 아는 사이야?”
“아, 그건 제가 호위학생으로서 들어온 거라서…….”
“호위학생? 그럼 저 남학생은 귀족인거야? 어쩐지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는데…….”
“아뇨. 그게 아니라 사정이 있어서…….”
클레첼은 주변에 몰려든 남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클레첼이 울상이 되어 구원의 눈길로 테리언을 쳐다보았지만 테리언은 생각에 잠긴 채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수업은 엄청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F반 애들은 자포자기 한 애들이 많다 보니 수업이라기보다 거의 노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가르치는 교수마저 졸거나 딴 짓하는 학생들이 있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테리언 역시 처음엔 듣는 척을 했지만 결국엔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자기까지 했다. 유일하게 클레첼만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수업에 참여할 뿐이었다.
‘그래도 오후에는 실기 수업이라고 들었으니 좀 기대해도 되려나.’
기본적으로 S반을 제외한 A∼F반은 오전에는 이론 수업을.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수업은 실기 수업이 매번 이루어졌다.
이론 수업은 말 그대로 실생활에 필요한 분야의 과목에 대한 이론을 배우는 것이었다. 교양이라든가, 상식이라든가, 여러 가지 등등.
그리고 실기 수업에서는 검술 수업과 마법 수업이 있었다.
물론 마법 면에선 어느 정도 재능이 없으면 마법 구현조차 힘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기 좋든 싫든 간에 정규 수업은 반드시 참여해야 졸업할 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검술이니 마법이니 하는 건 전부 관심이 없단 말이지.’
오히려 관심이 있는 대상이 있다면 여자의 가슴이겠지만 공교롭게도 아카데미 교복은 가슴이 돋보이지 않도록 디자인 되어 있었다.
테리언은 문득 제네시드와 대화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우리 아카데미의 여학생 교복은 완전 최악이라고. 그 어디 하나 제대로 노출된 부분이 없어! 치맛단은 완벽하게 무릎까지 내려오질 않나. 심지어 그마저도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게 해. 긴 팔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유일하게 가슴의 노출을 볼 수 있는 목덜미 부분도 갑갑한 리본 넥타이로 가려 버린다고! 심지어 장갑에다가 모자까지 씌우니 유일한 노출 부분이 얼굴밖에 없어.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디자인이야.’
정말 누가 디자인한 교복인지는 몰라도 만약 디자인한 사람이 남자라면 성불구자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띠리링― 딩동―
어느 덧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클레첼이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는 모습에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 전까지는 엄연한 수업시간이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F반에서의 수업 모습은 흐지부지한 분위기였기에 수업 시간에 떠들어도 별 지장이 없었다. 그저 수업 시간 동안에 교실 바깥에만 나가지 않으면 될 뿐.
교실 안에만 있으면 수업을 받은 걸로 치다니 딱 봐도 막 나가는 반이 아닐 수 없었다.
“클레첼, 점심 먹으러 가자.”
생각에 잠겨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던 테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남학생들의 무리에 쌓여 곤란해 하던 클레첼은 테리언의 말에 반색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테리언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까 생각하다가 마침 구실이 생기니 쏜살같이 빠져나온 것이다.
“죄송해요. 더 이야기해 드리고 싶지만 호위학생이지라 테리언 곁에 있어야 하거든요.”
클레첼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남학생들은 아쉬움과 질투 섞인 눈빛으로 교실을 빠져나가는 테리언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만 이미 F반 사이에서 테리언은 불량학생으로 찍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했다.
교실을 빠져나온 테리언은 여전히 남방 차림이었다. 그로 인해 지나가던 학생들은 테리언과 스쳐 지나가면 흠칫 놀라며 떨어져 걷거나 알아서 길을 비켜 주었다.
‘뭐야, 왜 저래?’
테리언은 학생들이 왜 저러는지 몰랐기에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
심지어 이상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애초에 테리언은 가슴을 만져 오면서 저런 부류의 시선들은 수없이 봐 왔기에 이미 면역력이 생긴 지 오래였다.
유일하게 클레첼만이 그 시선에 신경 쓸 뿐이었다.
‘이거 왠지 첫날부터 불안한데.’
클레첼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문득 테리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로 가긴. 당연히 밥 먹으러 가지.”
저번에 학생 교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급식소가 어디 있는지 이미 알아 둔 상태였다.
“저기. 리엘로트 님의 말로는 점심시간이 끝나면 학생 교사 중앙 마당에 있는 만남의 쉼터로 오라고 했는데?”
“만남의 쉼터? 거긴 왜?”
“모르겠어. 그냥 점심시간이 오라고 했어.”
“흐음. 배고파 죽겠는데 무슨 용무지?”
만남의 쉼터는 F반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창문 너머로 만남의 쉼터를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침 만남의 쉼터에 서 있던 리엘로트를 발견한 클레첼은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리엘로트 역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화답했다.
‘응?’
별생각 없이 만남의 쉼터를 내려다보던 테리언의 돌연 안색이 굳었다.
놀랍게도 리엘로트의 옆에는 어제 만났던 로리에가 서 있던 것이었다.
‘헉, 냉혈의 악녀!’
테리언의 안색이 나빠지자 클레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테리언 왜 그래?”
“아, 그…… 그게…….”
테리언이 떨리는 눈동자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자 돌연 리엘로트가 소리쳤다!
“클레첼 양! 테리언 님을 붙잡아 주세요!”
“네? 그게 무슨?”
클레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순간 갑자기 테리언이 쏜살같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앗! 어딜 가는 거야!”
클레첼이 불러 세웠지만 테리언은 이미 복도의 계단 위로 올라가 시선에서 사라져 버렸다.
뒤늦게 교사 안으로 들어온 리엘로트와 로리에는 테리언이 도망갔음을 깨닫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리엘로트가 놀라며 물었다.
“이거 아무래도 확실히 테리언 님이 오해하고 있나 보네요.”
“오해요?
“오해라니?”
클레첼와 로리에가 무슨 소리냐는 듯 리엘로트를 바라보았다.
리엘로트는 한숨을 쉬며 그녀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Chapter.9 남자 목욕탕에서 만난 소녀(1)
“역시 있었네.”
학생 교사 옥상에 도착하자 오늘도 어김없이 망원경으로 학생 교사 주변을 둘러보는 제네시드가 있었다.
“안녕?”
“…….”
그러나 제네시드는 테리언이 싱긋 웃으며 인사하는데도 무시한 채 망원경을 들여다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몇 번이고 불러 봐도 제네시드가 들은 체도 하지 않자 테리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너 혹시 로리에한테 도망칠 때 혼자 버리고 갔다고 삐진 거냐?”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렇게 볼이 잔뜩 부풀었는데?”
테리언이 검지로 제네시드의 볼을 꾹 누르자 제네시드가 새침데기 같은 눈빛으로 테리언을 흘겨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용건으로 왔는데?”
“에이. 친구 사이인데 용건 같은 게 필요하냐? 그냥 심심하면 같이 있고 그러는 거지.”
“그래? 그럼 그냥 있던지.”
제네시드가 테리언이 있던 반대쪽으로 망원경을 돌렸다.
분명 어제 도망치다가 제네시드가 넘어졌을 때 도와주지 않고 그냥 도망친 것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테리언은 제네시드의 반대편 의자로 이동하며 알랑거렸다.
“역시 삐졌잖아. 미안하다니깐? 어제는 진짜 경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게다가 만약 그 상황에서 네가 아니라 내가 넘어졌다고 생각해 봐. 그럼 너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겠냐?”
“그건…….”
“거 봐. 너도 망설이게 되지?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고. 게다가 보아 하니 네 망원경도 잘 찾은 것 같고 몸 상태도 별 문제도 없…….”
제네시드의 전신을 훑던 테리언은 문득 그의 오른쪽 무릎 부분이 묘하게 볼록해진 것을 발견했다.
“야 잠깐 무릎 좀 보자.”
“앗.”
제네시드가 뭐라 저지하기도 전에 테리언은 재빨리 제네시드의 오른쪽 교복 바지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무릎 부분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설마 이거 그때 넘어지면서 생긴 거야?”
“아냐. 그건 예전부터 있던 상처라고.”
“예전부터 있긴 무슨! 이렇게 붕대 부분에 피가 벌겋게 번져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네가 밀쳐서 넘어진 것도 아니잖아. 내가 한심해서 넘어지는 바람에 생긴 상처니까 너랑은 관계없어.”
돌연 테리언이 정색을 하더니 제네시스의 양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똑바로 제네시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관계 있어.”
“무, 무슨…….”
“내가 로리에를 보겠다고 제안만 안 했어도 이런 상처는 생기지 않았을 거 아냐. 그러니까 이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야. 그러니까 뭐든 부탁해 봐. 들어 줄 테니까.”
제네시드는 테리언이 진지한 표정으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돌연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곧 제네시드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얼굴 좀 가까이 들이밀지 좀 마. 부…… 부담스러우니까!”
“그럼 화 푸는 거지?”
문득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테리언은 해맑은 표정으로 제네시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제네시드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으악!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얼굴이나 붉히고…….’
제네시드는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그러나 테리언이 계속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좀처럼 얼굴이 식을 줄을 몰랐다.
결국 화를 풀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테리언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점심 먹었냐?”
“응? 아직 안 먹었어. 이제 먹어야지.”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급식소 갈래?”
“아냐. 나는 싸 온 도시락이 있으니까.”
제네시드는 반대편 의자에 있던 보따리를 들어 무릎에 올려놓았다. 이윽고 보따리를 풀자 그 안에는 2단으로 된 아담한 도시락이 있었다.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