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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1권(24화)
Chapter.10 달갑지 않은 재회(2)
문 입구의 벽면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설치된 연락 송신기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테리언은 이내 깨달았다.
‘설마 또 내 힘이 작용한 건가?’
요즘 어지간한 물건들은 전부 마법의 힘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이 연락 송신기 역시 마법으로 작동될 터. 그렇다면 마나의 힘을 거부하는 테리언이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네시드랑 같이 등교하려고 했더니 아쉽군.’
제네시드와 연락해서 같이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테리언은 볼을 긁적이며 하는 수 없이 방을 나섰다.
남자 기숙사에는 여자 기숙사 같은 순간이동 마법진이 없었기에 계단을 일일이 내려가야만 했다.
‘그러고 보면 15층에 살고 있는 학생들은 아주 죽을 맛이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1층까지 내려온 테리언이 막 기숙사 건물의 현관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타악―!
갑자기 테리언의 앞에 남학생 한 명이 하늘에서 경쾌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하늘에서 떨어졌던 남학생은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아, 놀랐다면 미안. 15층에서 내려오는데 영 귀찮아서 말이야.”
“다리는 안 아픈 거야?”
테리언이 놀라며 다리 쪽을 쳐다보자 남학생이 씨익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착지하기 직전에 발바닥에 기를 깔아 놓으면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어서 문제없어.”
“굉장한데!”
테리언이 눈을 빛내며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15층 높이에서 뛰어내려도 멀쩡할 수 있다니!
“근데 넌 이 기숙사에서는 처음 보는데 혹시 편입생?”
“최근에 편입했지. 테리언이라고 해.”
“그래? 여하튼 반갑다. 나는 아카데미 스카우트 소속인 네이젠 아달리아라고 한다.”
“아카데미 스카우트?”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단어였기에 테리언은 잠시 머릿속을 떠올리는 듯 고개를 좌우로 까닥였다.
네이젠이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제야 뭔지 떠올린 테리언이 환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아카데미 스카우트라면 그 S반 학생들이 소속된다는 그 재미있는 곳이잖아!”
“재미있는 곳? 푸하하하!”
테리언의 말에 네이젠이 폭소를 터트렸다.
테리언은 그 의미를 몰랐기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네이젠이 애써 웃음을 참으며 테리언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하! 너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너 아카데미 스카우트에 대해선 정말 정확하게 들은 거야?”
“응. 리엘로트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
리엘로트라는 말이 나오자 네이젠이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뭐? 그 선도부장 아가씨한테? 그렇다면 분명 아카데미 스카우트가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설명해 줬을 텐데……. 그런데도 이곳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거야?”
“당연하지! 그 지루한 정규 수업을 안 들어도 된다니 엄청나잖아! 게다가 다른 나라에 의뢰 같은 것도 받는다면서? 그러면 분명 프로티나 왕국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에도 간다는 거 아냐?”
네이젠은 한참이나 대답 없이 테리언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모습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 같은 모습이었기에 뭐라 말해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워낙 깐깐하기로 소문난 리엘로트가 설명해 주었다면 분명 필요한 내용은 전부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너도 S반 소속인 거야?”
테리언이 묻자 네이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원래는 D반인데 어쩌다 보니 가입 제의를 받아서 아카데미 스카우트 소속이 된 거지.”
“흐음. S반만이 아카데미 스카우트가 되는 건 아니었군.”
아카데미 스카우트는 S반 학생은 의무적으로 소속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 자의적으로도 가입 신청을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테리언 같은 호기심 넘치는 자들이 아카데미 스카우트의 활동 이력에 관심을 가져 지원한 자들이 다소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아카데미 스카우트에 소속되어 의뢰 관련 일을 겪어 보고 나면 소속된 것을 후회하고 만다.
‘목숨이 아깝다는 거겠지.’
아카데미 스카우트에 소속된다 한들 물질적인 이득은 없다.
그저 다른 나라에 자신의 얼굴을 알리면서 명성을 높임과 동시에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인맥을 쌓게 된다는 점. 그리고 실전 경험을 늘릴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실전 경험.
아카데미 스카우트에는 가입하기 위해선 세 가지 조항을 지켜야 한다는 서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하나는 아카데미 스카우트를 활동하는 동안에는 결코 다른 조직에 소속되지 않는 것.
둘은 아카데미 스카우트로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아카데미의 명예에 누가 되는 행동을 하지 말 것.
그리고 마지막은 아카데미 스카우트로 활동하는 동안 본인 책임으로 인해 일어나는 불상사에 대해선 프로티나 아카데미는 결코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들 마지막 문구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아카데미 스카우트에 가입했지만 결국 큰코다친 이들이 많았지.’
실제로는 거의 불구가 되거나 죽은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소문이 아카데미에 퍼지게 되었고 현재는 아카데미 스카우트에 소속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혹시 나도 인정받으면 그 아카데미 스카우트에 소속될 수 있을까?”
“뭐?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네이젠이 당황하며 테리언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S반은 소속될 경우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기에 목숨을 걸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S반도 아닌데 소속하는 건 솔직히 이득보다 손해가 많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아카데미 스카우트에서 하는 일은 목숨이 오고 가는 일들이 많다.
어지간히 실력자가 아니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소리. 괜히 S반에 소속되기 위해선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설마 지원 자격도 없다든가?”
“아니. 인정만 받는다면 소속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러나 네이젠은 모르고 있었다.
호기심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위험한 행동도 불사를 수 있다는 것이 테리언이라는 사람인 것을.
‘하긴 나도 S반은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할 처지는 아니겠지.’
네이젠의 경우는 가문이 무예 관련이다 보니 아버지의 성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입한 경우였다. 아버지가 말하기를 그런 학생들로 구성된 허접한 소속에서조차 살아남을 수 없다면 우리 가문의 당주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테리언은 그런 경우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테리언이 실력자이기 때문에 저렇게 여유를 보이는 것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테리언은 실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날카로운 기도라던가 기세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네이젠은 평소에도 가문 내에서 실전과도 같은 훈련을 받아 왔기에 언제 어느 상황이라도 적의 습격에 대비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만약 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자들이라면 네이젠의 근처에만 가도 그가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채리라.
실제로 네이젠의 그런 적개심이 느껴지는 기의 흐름 때문에 실제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물며 그런 그의 기의 흐름을 느끼고 지레 겁먹어 다가가려 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테리언이 만약 실력자였다면 네이젠의 그런 기의 흐름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런데 저렇게 순진난만하게 웃으며 자신과 대화하고 있지 않은가.
그 모습을 본 순간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테리언이 아카데미 스카우트에 소속된다면 며칠도 채 버티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보이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거절하자니 아카데미 스카우트 소속 일원으로서 망설일 수밖에 없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카데미 스카우트가 워낙 위험도가 높은 조직이다 보니 학생들이 섣불리 가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최근 졸업생이 늘어나는 바람에 현재 아카데미 스카우트에 남은 학생 수는 고작해야 6명.
아카데미에서 동아리나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 인원은 6명. 아카데미 스카우트는 그 최소한의 일원수를 정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아카데미 스카우트에 소속된 일원 중 한 명이 유감스럽게도 자퇴 소속을 밟고 있다.
아마 빨라도 한 달 내로는 아카데미에서 자퇴, 즉, 아카데미 스카우트의 해산 위기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사장은 아카데미 스카우트가 해산하길 원하지 않는단 말이지…….’
아카데미 스카우트는 프로티나 아카데미의 얼굴이자 간판 같은 존재이니까 말이다. 만약 인원수가 부족하게 되면 실력이 없더라도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 아무나 투입시켜 버릴 것이 분명했다. 프로티나 아카데미 이사장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문제없네. 그 인정만 받으면 된다는 거지?”
“끄응.”
결국 네이젠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차피 원치 않아서 끌려오는 학생을 볼 바에는 차라리 원해서 오는 학생이 더 나으리라. 게다가 말린다 하더라도 네이젠은 직감적으로 소용이 없을 것이란 것을 느꼈다.
“알았어. 그럼 정규 수업이 끝나면 남자 기숙사 앞에서 만나자.”
* * *
‘테리언이 유난히 들떠 보이네.’
클레첼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테리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는 지루해 죽을 것 같다면서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딴전을 피우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상당히 들떠 있었다.
사시나무 떨듯 오른쪽 다리를 유난히 떨고 있는 것, 그리고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를 보면 확실했다.
클레첼은 그런 테리언의 모습을 보며 불안감을 느꼈다.
‘테리언이 어느 날 갑자기 들떠 있다면 그날 하루는 초긴장을 해야 할 거야. 그 녀석이 기분이 좋은 일이 있다면 분명 무슨 일을 벌일 뜻이란 거거든.’
언젠가 로턴이 클레첼에게 해 주었던 조언이었다.
그 조언을 잊지 않고 있던 클레첼은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을 곤두세웠다.
딩동― 댕동―
그때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클레첼은 저번 점심시간 때 테리언이 도망간 이후 리엘로트와 로리에와 셋이서 점심을 먹었었다. 놀랍게도 리엘로트는 클레첼을 위해 매번 싸 오던 도시락의 양을 늘려 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맛있게 얻어먹을 수는 있었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다.
‘테리언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이번에도 테리언은 리엘로트와 같이 먹자는 제안에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
로리에 때문이냐고 물어보았지만 테리언은 고개를 저으며 누군가와 만나야 할 일이 있다며 먼저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래도 누군가와 만날 일이 있다면 분명 친구겠지?’
테리언은 워낙 괴짜 같은 성격 때문에 마을에 살던 때도 마을 여자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마을 여자아이들은 친구라고 하기엔 테리언보다 두세 살 높은 연상이었기에 친구라 보기엔 좀 그랬다.
결국 클레첼은 테리언이 교실에서 나가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레첼 양!”
리엘로트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니 미리 기다리고 있던 리엘로트가 손을 흔들며 반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리엘로트 님.”
클레첼은 리엘로트의 인사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한 편 리엘로트의 옆에 서 있던 로리에는 테리언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또 도망간 거예요?”
로리에가 묻자 클레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이번엔 다른 사람과 선약이 있다면서 가 버렸어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네. 팔팔하던데요? 그때 일은 단순히 두통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크게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럼 내일은 꼭 불러 주실 수 있겠죠?”
“그럼요.”
클레첼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로리에의 표정이 어느 정도 환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클레첼이 말했다.
“로리에 님도 그렇게 웃으시니 정말 예쁘시네요.”
“네, 네?”
로리에가 당황하며 묻자 클레첼이 놀라며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단지 평소에는 워낙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시기에……. 저렇게도 웃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
로리에는 말없이 시선을 내리깔았다.